소설리스트

두 번 사는 프로듀서-420화 (421/601)

420화 시야를 넓히면 (7)

-(익명) 강준수 사단의 실체를 폭로합니다.

제목을 보자마자 들떴던 기분이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이게 뭔데?”

내 물음에 박호중 PD는 안절부절못하며 아래를 가리켰다.

“내용 한 번 읽어보세요. 무슨 인증까지 있는데…… 지금 반응이 심각해요.”

-안녕하세요.

저는 강준수 사단의 비리를 고발하기 위해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연예계에서의 활동을 지망하는 제 신상 보호를 위해 익명으로 글을 쓰게 된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지난 3월, 저는 처음으로 강준수 사단의 한 프로듀서를 만났습니다.

이름은 언급할 수 없으니, 초성을 따서 K라고 부르겠습니다.

K는 처음 저에게 길거리 캐스팅을 제안했습니다.

강준수 감독님께서 직접 연출하는 작품에 넣어줄 수 있다고 이야기를 했죠.

그리고는 제출용 배우 프로필을 찍는 스튜디오를 연결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그 스튜디오에서는 다른 곳에 비해 엄청난 액수를 요구했습니다.

하지만 강준수 사단과 연결된 곳이라고 하더군요.

다른 곳을 가도 괜찮다고는 말하지만, 그 뉘앙스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저 같은 신인 배우들은 다른 선택지가 없었습니다.

어떻게 온 기회인데, 반드시 잡아야죠.

그래서 보통 헤어메이크업을 포함해도 40만 원, 비싸도 50만 원 선으로 가능한 프로필 촬영을 무려 150만 원을 주고 했습니다.

그렇게 프로필까지 보냈습니다만, 돌아온 거라고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오디션을 볼 기회조차 얻지 못했죠.

그리고 시간이 흘러서는 더 심한 걸 요구하더라고요.

여자로서 차마 입에 담기도 부끄럽고. 떠올리기도 싫지만…….

업계의 관행이라는 명목으로 성상납을 요구하더군요.

제가 그렇게 하지 않아도, 저를 대신할 사람이 많다고 말하니, 저로서는 마음이 조급해지더라고요.

그래서 호텔 입구까지 갔지만, 결국 그렇게까지 해서 연예계에 데뷔해봤자, 의미가 없다는 생각에 결국 돌아왔습니다.

제가 약속을 어기자 화가 났는지, 그 K라는 인간은 노발대발하며 욕을 하더군요.

저는 두려워서 전화를 끊은 뒤, 받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저한테 협박성 문자를 남기더군요.

다시는 연예계에 발붙일 생각도 하지 마라. 잡히면 죽여버린다면서요.

강준수 사단은 TV와 큐튜브에는 허울 좋은 모습으로, 친절하고 착하고 화목한 분위기로 비춰지고 있지만, 실체는 그 이름을 통해 약자들에게 성범죄나 일삼는 악질 집단이었던 거죠.

강준수 감독이 이 실체를 알고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 집단의 수장이라는 사람이 모를 리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제가 아닌, 또 다른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이 글을 적습니다.

강준수 사단이라는 이름에 속아 마음과 돈 그리고 시간을 모두 잃는 그런 참사를 당하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 조작이라고 하시는 분들이 많아 추가 인증하겠습니다.

K에게 받은 명함을 첨부하겠습니다.

-사진.

“이게 무슨 일이야?”

어윤중 본부장도 믿기지 않는다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

나 또한 어안이 벙벙했다.

“이거 근데 스튜디오 J 명함 형식 맞지 않아?”

“네. 맞아요.”

나를 포함한 강준수 사단의 명함 형식은 모두 똑같다.

인터넷의 글쓴이는 명함의 세부 내용.

즉 K라는 인간의 이름 및 연락처, 이메일 그리고 회사의 주소까지 모두 블러 처리를 했으나, 스튜디오 J에서 쓰이는 명함이라는 건 단번에 알 수 있었다.

“강 PD.”

어윤중 본부장은 심각한 얼굴로 물었다.

“알고 있는 거 있어?”

“전혀요.”

“하긴. 알고 있었으면 애초에 네가 대처했겠지.”

아니나 다를까, 어윤중 본부장의 휴대폰이 세차게 울리기 시작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윗선이랑 한 번 이야기하고 올게.”

“예. 저는 PD들 소집해서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조연출 박호중 PD를 향해 말했다.

“호중아. 오늘 촬영 중인 팀 없지?”

“예. ‘나의 일상 다이어리’ 진행하는 이하영 PD님 팀은 어제 촬영 끝내서 휴식 중이고 그 외에는 전원 출근했습니다.”

“우리 회사 소속 프로듀서들 전부 2층 대회의실로 모이라고 해. ‘나의 일상 다이어리’ 팀도 전화해서 다 나오라고 하고.”

“알겠습니다.”

나는 넷상에 뜬 글을 다시 한 번 확인하며 서둘러 회의실로 걸음을 옮겼다.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야?

* * *

K.

피해자는 해당 프로듀서의 초성을 따서 K라고 지칭했다.

이름에 K가 들어갈 수도 있으나, 상식적으로는 성에 들어간다고 하는 게 옳다.

허나, K라는 성씨를 인물이 한두 명이 아니었다.

김 씨, 강 씨, 고 씨 등

애초에 나 또한 ‘강준수’인 만큼 K에 포함되는 인물이니 말할 것도 없지.

회의실의 공기는 숨 막힐 듯 차갑게 내려앉았다.

어떤 상황인지는 다들 미리 전해 들었으니까.

이미 인터넷에선 논란이 커지고 있고.

각종 매체에서도 속보를 내고 있을 지경.

허나, 우리 측에서는 사실 확인 중이라는 보도밖에 낼 수 없었다.

실제로 알고 있는 상황이 아니었기도 하고.

보통 건이 아니었기에 내부에서도 섣불리 접근할 수 있는 건이 아니었으니까.

나는 스튜디오 J의 모든 PD가 모인 자리에서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솔직히 이야기해도 돼. 본인이 K라는 당사자가 아니어도, 조금이라도 연관이 되어 있거나 그에 대해 알고 있는 게 있으면 지금 말해 줘야 돼.”

당연한 말이지만, 실내는 조용하기만 할뿐, 아무도 입을 열지 못했다.

강준수 사단에 소속된 PD들만 해도 메인부터 서브, 막내 PD는 물론이고 캐스팅 디렉터들까지 포함하면 30명 가까이 된다.

사안이 사안인 만큼 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자신 있게 고백할 사람은 없겠지.

그런데 그때.

“감독님.”

조감독 하나가 조심스레 손을 들었다.

“이번 사건과 직접적으로 연결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하나 의심스러운 점이 있긴 하거든요.”

“말해.”

“얼마 전부터 감독님 시나리오에 대한 문의가 한 번씩 들어오고 있거든요. 전화로 특정 작품의 제목을 대면서 이거 섭외 끝났냐거나, 혹은 무슨 PD님이 자리에 계시냐고요.”

그는 조심스레 말을 보탰다.

“그런데 제가 알기로는 감독님께서 바로 준비하시는 영화는 없는 걸로 알아서 잘못 아신 것 같다고 답했거든요.”

그때 박호중 PD도 손을 들며 눈을 크게 떴다.

“어, 저도요.”

“저도 비슷한 문의 전화 받은 적이 있습니다.”

총 다섯 명이 손을 들었다.

비슷한 문의 전화를 받았다는 소리.

“그 PD 이름 기억해?”

“김…… 무슨 PD였던 것 같은데. 처음 듣는 이름이라 잘 기억이 안 납니다.”

“혹시 통화 녹음본 남아있나?”

“일주일 지나면 파일이 밀리는 시스템이라, 없을 겁니다.”

“그래?”

뭔가 아귀가 맞아들어 가는 것 같기도 하고.

허나, 그렇다고 해서 내부에 범인이 없으리라는 확신을 할 수는 없었다.

“일단 그러면 한 명씩 나랑 이야기하자.”

“네.”

* * *

“진짜 없어?”

“예. 아닙니다.”

“문제가 있으면 사과를 해야 하고, 아니면 부정을 해야 돼.”

“저는 진짜 아닙니다, 선배님.”

“여기서 인정하면 회사에서는 몰라도, 내가 그간 일했던 의리를 지켜서 개인적으로 도와줄 수는 있어. 하지만 그게 아니면 끝이야.”

“정말 아닙니다. 믿어주세요.”

그의 눈빛은 진심이었다.

같이 일해 왔기에 확신할 수 있었다.

“그래.”

나는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의심해서 미안하다.”

“아닙니다. 저만을 의심하신 게 아니라, 전원 확인을 해보셔야 하니까요.”

“이해해줘서 고마워.”

고태용 PD를 마지막으로 개인 면담을 마무리했다.

총 28명의 스튜디오 J의 PD들과 전원 직접 면담을 거쳤다.

짧게는 5분, 길게는 30분까지.

시간적 차이는 있을 수밖에 없었다.

피해자가 여성으로 추정되는 만큼, 만에 하나 내부에 K가 있다면 여자 PD들보다는 남자 PD들이 가능성이 더 높으니까.

그리고 그 결과.

내부에 K라는 인간은 없었다.

“확실해?”

어윤중 본부장은 걱정스런 목소리로 물었다.

“예. 없습니다. 있을 수가 없어요.”

그건 확신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염려가 되는지 턱을 매만졌다.

“부정하는 건 어렵지 않아. 다만, 그렇게 해놓고 우리 측의 잘못인 게 밝혀지면 영영 회복할 수 없어.”

맞는 말이다.

그렇게 되면 우리 스튜디오 J는 범죄자를 은닉하고 옹호한 것이 된다.

회사는 물론이고, 나까지도 방송계에서 일하기 힘들어질 수도 있으니까.

허나, 지금으로서는 내 동료들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만약 틀렸다면, 내 안목이 잘못된 것이니 내 책임도 있다.

“그러면 우선 강경 대응하는 걸로 나갈까요?”

“작가들 조사한 건 어떤데?”

내가 면담을 하는 사이, 다른 작가들은 현 상황에 대해 조사하고 인터넷에 글을 쓴 피해자와 접촉을 시도했다.

허나, 알아낸 건 없었다.

철저하게 익명으로 가려졌기에 경찰이 아닌 이상, 접촉할 수가 없었으니까.

“현재 상황으로서는 알 수 있는 게 없어요.”

“흐음…….”

어윤중 본부장은 다시금 깊은 고민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오랜 심려 끝에 입을 열었다.

“그래. 내부에 그런 인간이 있을 리가 없지.”

“맞아요. 애초에 저희는 업무하느라 따로 시간도 못 내는데 길거리 캐스팅하고 그런 악질적인 일을 하고 있을 리가 없잖아요.”

그는 굳게 고개를 끄덕였다.

“세게 나가자.”

“알겠습니다.”

* * *

-안녕하세요, 스튜디오 J의 강준수입니다.

제가 직접 말씀드리는 게 좋을 것 같아 글을 남기게 되었습니다.

내부 확인 결과, K라는 프로듀서는 없는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그러나 확실한 전후사정을 파악하기 위해 처음 글을 남기신 분과 접촉을 해보았습니다만, 저희와 만나는 것은 물론이고 대화하는 것까지 거부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저희가 보기에는 스튜디오 J를 억지로 까내리기 위한 허구적 사실이라고 판단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현재 넷상에 퍼지고 있는 일에 대하여는 일체 사실 무근이라고 밝히며, 허위 사실 유포와 명예 훼손에는 법적으로 강경 대응하겠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강준수 올림.

우리 측에서는 세게 나갈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 않으면, 실제로 내부에 범죄자가 없는데도 범죄 집단으로 인식이 되어 버릴 테고.

이는 곧 우리 스튜디오 J의 제작물에 대한 불매 운동으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을 테니까.

실제로 사실여부가 밝혀지기 전인 오늘만 해도 내 작품 ‘숲 : 사각지대’의 예매 취소가 줄을 잇고 있는 상태.

강경 대응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 다음 날.

인터넷에는 다시금 글이 올라왔다.

-(익명) 어이가 없네요.

-강준수 사단에서 직접 무릎 꿇고 사과하리라고는 생각지 않았지만, 진심 어린 반성을 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오리발을 내밀다니요.

이걸 듣고도 똑같은 반응을 보이실 수 있을지 궁금하네요.

제가 해당 PD와 직접 나눈 대화의 녹음본입니다.

-녹음 1.

-녹음 2.

-녹음 3.

글만 봐도 잔뜩 화가 나있는 게 눈에 보일 정도.

나는 어윤중 본부장을 포함해 PD들과 함께 모여 해당 녹음 파일을 들어봤다.

그리고 그 결과.

“이 목소리 처음 듣는데?”

“우리 PD들 중에 없잖아.”

“회사 사람 아니에요. 퇴사한 사람 중에서도 이런 목소리는 없어요.”

그때 박호중 PD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데 이거 글 쓴 사람 보면, 진짜 피해자 같단 말이에요. 허위 사실 유포로 이렇게 나오면 회사에서 강경 대응한다고까지 말했는데 이렇게 나올 정도면, 무언가 이상한데.”

그 말을 들은 순간, 직감이 왔다.

“잠깐만.”

나는 주먹을 꽉 쥐며 말했다.

“……누가 우리 회사 소속이라고 사칭하고 다닌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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