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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 사는 프로듀서-501화 (502/601)

501화 돌발적인 혹은 도발적인 (4)

다음 날 아침.

일찍이 준비를 마치고 서혜나의 숙소로 향했다.

똑똑.

노크를 하자, ‘네!’라는 활기찬 목소리와 함께 서혜나가 문을 열었다.

“앗, 감독님!”

가벼운 옷차림에 수건으로 머리칼을 말아 올린 그녀는 날 보자마자 민망한 미소를 지었다.

“제가 어제 실수 많이 했죠?”

“…….”

나는 대답 대신 미소를 지었다.

차마 부정할 수는 없었다.

“진짜진짜 죄송해요. 제가 너무 술에 취해서…….”

서혜나는 민망하게 머리를 긁적였다.

“근데 어제 다들 많이 취했었죠?”

“취하긴 했는데…… 혜나 씨 들어갈 타이밍엔 다들 멀쩡했죠.”

“……그래요?”

서혜나는 울상을 지었다.

“어제 손님이 없다는 슬픔에 박호중 PD님이랑 너무 달렸나 봐요.”

“그럴 수 있죠.”

“다음부터 실수 안 할게요. 진짜 약속드려요.”

“그래요. 술만 조금 조절하면 될 것 같아요.”

“네. 네. 그럴게요!”

그녀는 힘차게 대답했다.

“어.”

하지만 이내 갸웃거렸다.

“근데 그러면 어제 왜 그랬지?”

“뭐가요?”

“어제 미카엘이 방에 찾아왔더라고요.”

“……미카엘이요?”

“네. 감독님이 저한테 갈아입을 옷 챙겨 주셨잖아요. 근데 너무 피곤해서 맥주만 홀짝이다가 그냥 자려고 하는데 갑자기 미카엘 씨가 찾아왔더라고요.”

“이 방에요?”

끄덕끄덕.

“잠깐 대화 좀 하자고 막 횡설수설하는데…… 저는 갑자기 잠이 막 쏟아져서 그냥 다음에 이야기하자고 말하고 보냈거든요.”

“다른 일은 없었고요?”

“네. 그냥 그러고 끝나긴 했어요.”

대체 무슨 일이지?

미카엘은 화장실을 간다고 했는데…….

방을 잘못 찾은 건가?

아닌데. 여자 출연진 숙소와 남자 출연진 숙소는 아예 층 자체가 다르다.

그렇다고 미카엘이 실수할 만큼 취하진 않았던 걸로 기억한다.

분명 멀쩡하게 돌아와서 토마토 축제 이야기도 했었는데…….

뭐지?

“이따가 미카엘 씨랑 이야기해 보죠, 뭐.”

“네. 무슨 일 있으면 알려 줘요.”

“예.”

서혜나는 미소를 지으며 끄덕였다.

“그나저나 제가 실수한 것 때문에 오신 거예요?”

“아니요. 어제 혜나 씨 들어가고 나서 저희끼리 내기를 했거든요. 그래서 소현 씨가 오늘 빠지게 되었어요.”

“어디 가요?”

“토마토 축제요.”

“와, 부럽다.”

……나는 죽을 맛일 것 같은데.

벌써부터 그 인파에 치이는 그림이 예상된다만.

“여하튼 그렇게 되어서 오늘 서혜나 씨가 이소현 씨 몫까지 세팅을 좀 해줘야 되거든요.”

“저랑 미카엘, 김노민 씨 셋이서 나눠서 하는 거죠?”

“네, 맞아요.”

“알겠어요. 그 정도야 어렵지 않죠.”

“그거 이야기하러 왔어요. 얼른 준비하고 나와서 점심 먹어요.”

“네, 그럴게요!”

서혜나는 화사하게 웃으며 덧붙였다.

“재밌게 놀고 오세요.”

* * *

“……어후.”

절로 버거운 숨이 튀어나왔다.

“진짜 장난 아니네.”

예상은 했다만, 상상한 것 이상이었다.

“뭐 이렇게 사람이 많아?”

인산인해.

사람이 산을 이루고 바다를 이뤘다는 그 단어가 피부로 와닿을 지경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정말로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사람이 많았으니까.

“촬영 허가를 받은 게 의미가 없을 지경인데.”

VJ들도 헛웃음을 터뜨렸다.

“그러게요. 바로 뒤에 있어도 앵글이 안 나와요.”

원하는 대로 움직일 수가 없었다.

사람들의 행렬에 따라 앞에서 움직여 공간이 생기면, 뒤에서 밀어서 자동으로 걸음이 움직이는 지경이었으니까.

“오히려 좀 떨어지는 게 낫나?”

“네. 차라리 그게 나아요. 멀리서 줌 당겨서 찍어 볼게요.”

VJ들과 거리를 좀 벌렸다.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해 경호원들도 비치를 해 두었으나, 사실상 의미가 없어서 VJ들과 함께 근처로 거리를 벌린 상태.

“근데 이거 토마토 축제면…… 뭐 하는 거야?”

VJ의 물음에 나는 실소를 지었다.

“여기서 더 난장판이 되죠.”

“뭐 하는데? 토마토를 던지기라도 해?”

“예.”

“어?”

“토마토 200톤 정도 나온다고 했죠?”

“그건 들었어.”

“그걸 전부 뿌리고 집어던져요.”

“……뭐?”

다른 VJ들은 탄식과 함께 이마를 쳤다.

“그래서 버려도 되는 옷 들고 온 거라고 한 거야?”

“예. 저희가 거리는 좀 벌리고 있어도 분명 토마토 맞을 거거든요.”

“토마토 단단해서 맞으면 아플 것 같은데…….”

“그래서 토마토를 던지기 전에 으깨서 무르게 만들어야 한다는 규칙이 있긴 해요.”

부우웅-.

때마침 저 멀리서 대형 트럭 한 대가 쭉 미끄러져 들어왔다.

“……시작이네.”

보자마자 아찔해지려 한다.

이소현은 벌써부터 흥분되는지 몸을 들썩거렸다.

그리고 잠시 후.

트럭이 입장하며 그 위에 타고 있던 스태프들이 토마토를 무더기로 던지기 시작했다.

그게 축제의 시작이다.

참여한 시민들은 토마토를 집어 마구잡이로 내던지기 시작했다.

퍽!

퍼벅!

허공에서 토마토들이 마구잡이로 휘날려왔다.

……난장판이다.

마치 고구려의 석전(石戰)을 보는 듯한 느낌.

팍!

어디선가 토마토 하나가 날아와 내 어깻죽지를 강타했다.

“아야!”

어떤 자식이 깡깡한 토마토를 던진 거야?

그런데 그때.

“감독님!”

이소현은 꺄르륵거리며 나를 향해 토마토를 힘껏 던졌다.

하지만 다행히도 내 옆을 스쳐지나가 옆에 있던 외국인의 입에 골인했다.

자신도 모르게 토마토를 먹은 그는.

“오!”

따봉을 치켜들었다.

……진기명기야?

“으하핫!”

이소현은 답례로 따봉을 한 번 들어주더니.

“감독님, 다시 가요!”

다시금 나를 향해 토마토를 던졌다.

아니. 왜 자꾸 나한테 던지는 거야?

그런데 토마토는 허공을 지나 빙그르르 아름다운 포물선을 그리더니.

푸왁!

“헙!”

나도 모르게 헛숨을 들이마셨다.

그도 그럴 것이 토마토가 내 소중한 부위에 적중했으니까.

“흐억!”

나도 모르게 이상한 비명이 터져나왔다.

절로 다리에 힘이 풀렸다.

미, 미친…….

숨이 안 쉬어지는 것 같아…….

“헉, 감독님 괜찮으세요?”

이소현이 다급하게 왔으나.

나는 급하게 손을 뻗어 막았다.

“오지 마세요.”

“네?”

“저 카메라에 담기면 안 된다고요.”

“……아.”

그리고 무엇보다도.

“저 이제 혼자 있고 싶어요…….”

* * *

축제에서의 촬영을 마무리하고 돌아가는 길.

여전히 인파는 많았지만, 그래도 아까보다는 나았다.

그나마 원하는 방향으로 걸음은 옮길 수 있을 정도?

이런 상황이 카메라로 찍기엔 더 수월하긴 하나, 촬영은 마무리했다.

그도 그럴 것이, VJ들을 포함한 스태프들도 축제 현장에 함께 왔었기에 그들도 만신창이가 되어있었으니까.

카메라에 토마토가 묻고, 마이크에 토마토즙이 들어가고 난리도 아니었기 때문.

게다가 현장에서 분량은 충분히 나왔기에 돌아가는 길은 무난하게 걸어가기로 한 것이지.

스태프들은 먼저 걸어가고 나는 그 뒤를 천천히 따라갔다.

나는 아직도 아까의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해서 빠른 걸음으로 움직일 수가 없었으니까.

그렇게 걷다 보니, 거리가 어느 정도 벌어졌을 무렵.

“감독님.”

앞서가던 이소현이 걸음을 돌려 내게 다가와 조심스런 목소리로 물었다.

“진짜 괜찮으세요?”

아니요.

당신은 유나희한테 저항받을 거야.

“죄송해요. 저도 거길 노린 건 아니었는데…….”

“아닙니다. 사고인 걸요.”

“제가 허리라도 두드려 드릴까요?”

“……제발 그러지 마세요.”

“한국 돌아가면, 제가 흑마늘이랑 장어즙 좀 사다 드릴게요.”

“말하면 말할수록 제가 더 비참해지는 거 아시죠?”

“아아…….”

이소현은 다시금 고개를 꾸벅 숙였다.

“죄송해요.”

“농담입니다. 괜찮아요.”

미안해할 필요 없다는 의미로 미소를 지어보였다.

“근데 분량은…….”

“충분해요. 재미있는 그림 많이 나왔어요.”

내가 맞는 것도 잘 살릴 수 있을 것 같긴 하다.

카메라가 세 대나 붙었으니, 앵글에 따라 얼굴이 나오지 않는 선에서 컷을 살릴 수 있을 테니까.

“제가 아프긴 하지만…….”

나는 실소를 지었다.

“방송 나가면 시청률은 장난 아닐 것 같습니다.”

이소현을 위로하려는 게 아니라, 진심으로 하는 말이다.

원래 이런 돌발적인 상황이 시청자로 하여금 웃음을 자아내기엔 제격이니까.

솔직히 아프긴 한데…….

기대되는 것도 사실이다.

이번 영상은 역대급일 것 같은데?

* * *

보름 뒤 한국.

“선배님, 선배님.”

박호중 PD는 호들갑을 떨며 감독실로 들어왔다.

“왜, 뭔데?”

“저 방금 ‘무엇이든 합니다’ 스페인편 2화 편집 마무리했습니다.”

“그래?”

“근데 이번에 느낌이 진짜 좋아요.”

그는 클클거리며 날 바라봤다.

“특히 토마토 축제 영상이 레전드였어요.”

“아, 그렇긴 하지.”

이소현과 내가 해프닝을 만들어낸 장면도 재미있긴 했지만, 식당에서도 예상치 못한 그림이 나왔으니까.

토마토 축제를 다녀온 손님이 가게에 들어왔는데, 김노민이 보고 화들짝 놀라서.

“살인 사건 아니에요? 아니면 폭행사건이라든가!”

라며 호들갑을 떨더니.

“경찰 신고 해야겠어요!”

소리치며 옆에 있던 통역사에게.

“스페인의 112가 몇 번이에요?”

“112요.”

“그러니까 112가 몇 번이냐고요!”

“112라니까요.”

“아니, 그건 경찰번호잖아요. 아니, 한국에서잖아요!”

“그러니까 스페인에서도 경찰 번호가 112라고요.”

“……아, 그래요?”

“그리고 저분 잘 보세요. 피가 아니라 토마토예요.”

“토마토는 무슨……!”

김노민이 황급히 다가가 손수건으로 손님의 목을 닦아주었는데.

손님이 즉흥으로 쓰러지는 연기를 하며 김노민이 호들갑을 떠는 그림이 현장에서 배꼽을 자아냈으니까.

김노민의 허당 캐릭터가 완전히 살아났으니까.

“아, 이러다가 우리 시청률 20% 찍는 거 아니야?”

“아하핫. 그러니까요. 이번에는 진짜 가능성 있다니까요.”

행복회로가 절로 돌아갔다.

솔직히 토마토 축제에서 이소현의 투척으로 나도 고통이 있긴 했으나, 이 정도 결과물이면 나쁘지 않은 교환이었던 것 같기도 하고.

“근데 선배님. 진짜 괜찮으세요?”

“뭐가?”

“엄청 세게 맞으셨던데.”

“…….”

나는 대답 대신 사무실 내에 있는 미니냉장고를 가리켰다.

박호중 PD는 안을 확인하고는 폭소를 터뜨렸다.

“으하하핫!”

그도 그럴 것이 흑마늘환과 장어즙으로 가득 차있었으니까.

“이소현 씨가 사다 주신 거예요?”

“어. 귀국하자마자 다음 날 보내줬더라.”

“건강해지시겠네요, 선배님.”

“그러게나 말이다.”

화기애애한 대화도 잠시.

똑똑똑.

다급한 노크소리와 함께 문이 벌컥 열렸다.

“감독님!”

들어온 인물은 다름 아닌, 막내 작가.

표정을 보니 뭔가 심상치 않았다.

“지금 기사 떴습니다.”

“무슨 기산데?”

“이소현 씨 스캔들 났어요.”

“……뭐?”

단번에 웃음기가 싹 가셨다.

잠깐만.

설마 원조교제 기사가 터진 건가?

제기랄.

이게 왜 벌써 터져?

몇 년은 지나야 터지는 건데.

타이밍이 왜 이렇게 지랄맞은 거야?

“기사 뜬 거야?”

“네. 지금 속보로 포털사이트 도배되고 있어요.”

나는 이를 악물며 인터넷에 들어갔다.

옆에서 봐온 바에 의하면, 단순한 원조교제는 아닌 것 같았는데.

미간을 찌푸리며 연예/뉴스 면에 들어갔다.

그런데.

“……뭐야?”

예상과는 전혀 다른 방향의 기사가 사이트를 도배하고 있었다.

“이게 무슨 개뼈다귀 뜯어먹는 소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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