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 번 사는 프로듀서-508화 (509/601)

늪에 빠져버리면 (1)

“이거 기사 내용이 사실이 아닌가 보네요?”

“……!”

순간, 김연지 기자는 흠칫하더니 동공이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 그게 무슨 소리예요?”

그녀는 오히려 성을 냈다.

“저를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모르겠는데, 저는 기자이기 전에 이 업계 종사자로서….”

“뻔하죠.”

나는 김연지 기자의 말을 끊었다.

“어차피 기사에는 L모 배우라고 썼죠. 특징을 몇 가지 썼으나, 이에 해당하는 후보가 몇몇 있으니, 한 명을 특정하진 않았으니 누군가를 저격한 건 아니라고 변명이 가능하고. 또 후속기사를 안 내면 법적으로 문제될 리도 없고.”

“…….”

“뭐, 기자로서 찔리는 점이 있긴 하겠지만, 그걸 생각했다면 이 자리에 안 왔겠죠.”

“지금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모르겠는데요.”

김연지 기자가 날카로운 목소리를 냈지만,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본인도 취재하다가 느낀 거 아니에요?”

나는 입꼬리를 비틀며 그녀에게 몸을 기울였다.

“그동안 모은 자료와 증거들로 원조교제 의혹을 만들 수는 있겠으나, 실제로 그런 적이 없다는 걸.”

김연지 기자의 목울대가 꿀렁였다.

당황했다는 증거다.

“그래서 후속 기사를 내지 않고 마무리를 짓고 싶은데, 그러자니 괜히 시간 끌다가 이소현 씨가 피해도 안 보고 적당히 끝날 것 같고. 그래서 우리한테 찾아온 거 아닙니까?”

“하.”

그녀는 코웃음을 치며 턱을 치켜들었다.

“내가 왜요?”

“그건 모르죠.”

그래서 처음에는 우리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대가로 금품이라도 요구할 줄 알았다.

하지만 그런 게 전혀 없으니 오히려 더 의심이 된 거고, 이러한 결론에 다다른 것이지.

“이소현 씨한테 억하심정이 있을 수도 있고, 단순한 질투심일 수도 있죠. 우리가 모르는 숨겨진 사정이 있을 수도 있고요.”

둘만의 이유일지, 개인의 이유인지도 확신할 수는 없으나, 확실한 건 당신이 이소현 씨에게 앙심을 품었다는 겁니다.”

사납게 그녀를 노려보며 덧붙였다.

“더 중요한 사안은 그로 인해 저까지도 피해를 받을 수도 있는 상황이 되었다는 거죠.”

김연지 기자는 입술을 깨물었다.

“말 같지도 않은 소리하고 있네.”

그녀는 붉으락푸르락 얼굴이 달아오른 채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영화감독이라더니, 혼자서 시나리오 쓰는 데 아주 소질이 있네요.”

“왜 화를 내십니까?”

“도와주려는데 되도 않는 소리 하니까 화딱지가 나지!”

김연지 기자는 빼액 소리를 지르고는 가방을 챙기더니.

“안타까워서 좀 살려 주려고 했던 내가 오지랖이었지. 망하든 말든 알아서 하세요.”

얼굴을 붉힌 채로 카페를 빠져나갔다.

“어….”

박호중 PD는 걱정스런 얼굴로 날 바라봤다.

“선배님. 저도 듣던 중에 이상하다고 생각을 하긴 했는데… 이래도 괜찮을까요?”

“뭐가?”

“기자잖아요. 만약에 선배님이 군장수라는 정체를 기사로 낸다면 저희 완전 큰일 나는 거잖아요.”

“안 그럴걸.”

“네?”

“저 여자는 어디에도 말 안 할 거야.”

나는 여유롭게 입꼬리를 휘었다.

“그걸 밝히는 순간, 본인이 이번 기사로 이소현을 음해하려했다는 걸 증명하는 셈이니까.”

“아!”

그는 깨달았다는 듯 테이블을 탁 쳤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아니, 근데 만약에 찌라시를 내서 소문이 돌 수도 있잖아요.”

“못 그러지.”

나는 냉정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하더라도 본인 이름을 걸고 기사를 낸 이상, 이소현을 엿 먹이려고 했다는 건 확실해지거든.”

“…아아, 그렇군요.”

“쟤는 어디서도 말 못 해.”

나는 시간을 확인하며 물었다.

“이소현 씨 소속사에서 연락 왔어?”

“예. 지금 회사에 계신대요. 회의 중이라고 하시네요.”

“그러면 우리도 가자.”

“10시 다 되어 가는데요?”

“시간이 문제야? 애초에 거기도 퇴근 못 하고 있을 텐데, 우리가 가야 빨리 결론을 내지.”

“…하긴. 저희도 그게 끝나야 편집을 할 수 있겠네요.”

그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천천히 나오세요. 차 끌고 앞으로 올게요.”

“그래.”

* * *

“허. 내 참. 어이가 없어서….”

김연지 기자는 성큼성큼 발걸음을 옮기며 자신의 차에 올랐다.

“저 인간은 뭐가 그렇게 잘났어?”

강준수 감독이 보통 사람이 아니란 건 몇 번이고 들었지만, 이렇게나 날카로울 줄은 몰랐다.

“군장수라기에 신인 PD인 줄 알고 구워 삶아보려 했더니만, 무슨 괴물이 나왔어?”

그녀는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시동을 걸었다.

“아, 짜증나네. 왜 하필 군장수가 쟤야?”

저 인간에 대해서는 불만이었지만.

실력 하나만큼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멘탈 부서져서 쉬고 있는 줄 알았더니만.”

이렇게 이름을 숨기고 대박 프로그램을 연출하고 있었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

그녀는 핸들을 쥔 채로 입술을 깨물었다.

“확 기사로 내 버려?”

허나, 그럴 수는 없었다.

그렇게 했다가는 자신의 직업을 잃어버릴지도 모르니까.

“근데 진짜 어떻게 알았지?”

김연지 기자는 어느새 손톱을 물어뜯고 있었다.

“뭔가 알고 있는 건가?”

단순히 예리한 거라고 생각하기엔 너무 정곡을 찔려버렸으니까.

강준수가 말한 것의 전부가 사실이었다.

김연지 기자도 이소현에 대해 원조교제 의혹을 품은 건 진실이었지만.

취재 결과, 사실이 아님을 밝혀냈으니까.

그럼에도 이소현을 엿 먹이기 위해 기사를 낸 것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김연지 기자는 대학시절부터 이소현에게 앙심을 품고 있었다.

둘은 같은 대학교 연극영화과 동기였다.

자잘한 것까지 따지면 끝도 없겠지만.

가장 단순하면서도 큰 건은 사랑이었다.

이소현은 현재 활동하는 여배우들 중에서도 예쁜 축에 꼽힌다.

대학에서는 더했으면 더했지, 덜할 리가 없었다.

문제는 김연지 기자가 짝사랑하던 선배가 이소현을 좋아했다는 것.

그 선배는 이소현에게 고백을 했으나, 매몰차게 차였다.

김연지 기자는 자신에게 기회가 왔다고 생각했으나, 선배는 그 뒤로도 이소현에게 계속 구애를 할 뿐, 자신을 돌아보지도 않았다.

그뿐이랴.

연기 실력도 과에서 탑 수준이었는데.

외모도 예쁘고 연기까지 되니, 데뷔하는 건 일도 아니었다.

대학을 졸업하기도 전에 데뷔를 해서 활동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부럽기도 하고 시기심도 같이 들었다.

하지만 졸업 후에도 김연지는 단역 생활만 할 뿐, 제대로 활동을 하지 못했고.

먹고 살기 위해 결국 기자로 길을 나선 것이다.

이때까지만 해도 이소현은 미니시리즈 조연 수준이었기에 그러려니 했지만.

어느 날부터, 이소현은 드라마 주연급까지 올라가며 인기를 끌기 시작했고.

연예부 기자로서 이소현에 대한 기사를 쓸 수밖에 없던 김연지 기자는 배가 아파서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던 것이다.

학창시절부터 눈엣가시였던 인간이 잘 사는 걸 보는 것도 모자라, 그녀에 대한 기사까지 써야 하는 상황이 되었으니 오죽하겠는가.

그렇게 한참을 지내다 보니, 이소현에 대한 증오심이 생겨났고.

결국 김연지 기자는 흑화하여 기자라는 이름하에 그녀를 깎아내리기 위해 움직이다가 이번 일을 포착하게 된 것이지.

하지만 그 계획도 시작하자마자 실패해버렸다.

군장수 PD를 설득해서 이소현을 하차시키려고 했는데, 이마저도 수포로 돌아가 버렸으니까.

강준수 PD가 김연지 기자의 속내를 알아챈 이상, 그녀가 할 수 있는 건.

‘정정 기사를 내야 하나?’

그것밖에 없었다.

이소현도 하차하지 않고 버틴다면, 분명 많은 이들이 자신에게 후속기사를 요구할 테니까.

‘…망한 것 같은데.’

김연지 기자는 핸들에 얼굴을 묻었다.

* * *

SW크리에이티브.

사옥 주차장에 차를 주차해두고 박호중 PD와 함께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PD님!”

“예, 안녕하세요.”

“이쪽으로 오시죠.”

우리를 맞이하러 나온 직원은 팀장급이었다.

물론, 여기서도 나는 군장수 PD라는 정체를 숨기고 있는 상태.

팀장은 옆에 있는 박호중 PD가 군장수인 줄 알고 그에게 말했다.

“오느라 고생 많으셨죠?”

“아닙니다.”

박호중 PD는 태연하게 물었다.

“안에 많이들 계시나요?”

“대표님이랑 본부장 및 매니저들만 남아있습니다.”

“내부에서는 결론이 났나요?”

“아닙니다. 아직 계속 이야기 중이라서요.”

“논의할 게 많은가 보네요.”

“네. 아무래도 상황이 영 좋지 않아서요.”

예상치 못한 대답에 고개가 갸웃거려졌다.

안 좋다고?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소현이 저지르지 않았으니 단순하게 입장문만 발표하면 끝인데.

어떤 증거를 제시해야 되나 고민 중인 건가?

“지금도 회의 중인 건가요?”

“현재는 대표님이랑 본부장님만 이야기 중입니다.”

“이소현 씨는요?”

“잠깐 나와 계세요.”

“상황이 안 좋을 게 있나요?”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슬쩍 물었다.

“그게….”

팀장은 곤란하다는 듯 머리를 긁적거렸다.

“소현이가 아무 말씀도 하지 않고 계셔서요.”

“…예?”

뭐지?

나는 물론이고 박호중 PD도 꽤나 당황했다.

“일단 저희랑 말씀 나누시기 전에 소현이랑 먼저 한 번 이야기해보시는 게 어떨까 하는데….”

“네. 그게 좋을 것 같네요.”

팀장은 우리를 3층 회의실로 안내했다.

“여기서 조금만 기다려 주시면, 제가 소현이 데리고 오겠습니다.”

“예, 감사합니다.”

그는 꾸벅이고는 문을 닫고 빠져나갔다.

팀장이 사라진 걸 확인하기 무섭게.

“선배님.”

박호중 PD는 나를 향해 돌아앉았다.

“혹시 김연지 기자가 마음에 걸리는 거 아닐까요?”

“어떤 점에서?”

“둘이 대학 동기잖아요.”

그는 미간을 찌푸리며 덧붙였다.

“아무래도 아는 사이라서 기자가 실수한 걸 드러내기가 미안한 게 아닐까 해서요.”

“본인이 아닌데 대체 뭐가 걸리겠어?”

“…그런가요?”

“당연하지. 실제로 깨끗하다면, 자신이 아니라 다른 누군가를 저격했다고 생각할 거 아니야?”

“그건 또 그렇네요.”

박호중 PD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애초에 본인을 저격하는 건지도 모르고 있는 게 정상이네요.”

“그렇지. 게다가 의혹을 받는 다른 배우들도 전부 아니라고 해명문 올리고 있잖아.”

그런데 이소현은 지금까지도 입장문을 내지 않고 있다.

심지어 회사에도 아무런 이야기를 하지 않고 있다는 건 무언가 걸리는 게 있다는 뜻이다.

“일단 단순히 넘어갈 문제는 아니야.”

“그렇겠네요.”

똑똑.

그때 노크소리와 함께 이소현이 들어왔다.

나를 보고 흠칫 놀란 그녀는 꾸벅 인사를 하며 들어와 테이블 맞은편에 앉았다.

팀장과 매니저도 함께 들어왔으나.

“죄송한데, 잠깐 저희끼리 이야기 좀 해도 될까요?”

“아, 그러시겠습니까?”

팀장은 자리에 앉으려다가 슬쩍 자리에서 일어났다.

“천천히들 이야기 나누시죠.”

그는 나가려다가 문득 멈춰서더니 나를 보고 말했다.

“메인 감독님이랑 단 둘이 이야기하는 게….”

“아닙니다.”

박호중 PD는 고개를 저었다.

“이 친구는 같이 있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아, 그런가요?”

그래야지.

내가 메인 PD니까.

“예. 저희 셋이 이야기 좀 할게요.”

“알겠습니다. 옆방에 있을 테니 끝나면 말씀주세요.”

“네.”

팀장과 매니저가 떠나고 회의실에는 셋만이 남았다.

박호중 PD는 뒤로 슬쩍 물러났다.

내가 이소현과 단 둘이 대화를 할 수 있도록 배려해준 것이지.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그녀를 향해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소현 씨. 저희가 기자 만나고 왔는데, 이번 일은 단순히 해명문 내고 마무리 지으면 될 것 같아요.”

“아니요.”

그녀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예?”

“저 하차할게요.”

이소현은 그제야 고개를 들더니 초점이 흐려진 눈으로 말했다.

“그 기사 주인공 접니다.”

“아니, 그건 아는데 사실이 아니잖아요.”

“사실이에요.”

“…예?”

“그러니까 제가 하차하겠습니다.”

…뭐?

이소현 이 여자,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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