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 번 사는 프로듀서-514화 (515/601)

늪에 빠져버리면 (7)

“미카엘이 안 보여요.”

“……뭐?”

박호중 PD의 말에 빠르게 주변을 살폈다.

“제대로 찾아본 거 맞아?”

“네. 계속 전화하고 있는데 받지도 않고, 휴대폰이 울리지도 않아요.”

저 멀리서는 미카엘의 매니저가 발을 동동 구르며 계속해서 전화를 걸고 있었으나, 응답이 없는지 그는 머리를 쥐어뜯고 있었다.

“미카엘!”

주변을 향해 소리쳤으나.

“미카엘, 나와!”

응답은 없었다.

그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우리가 묵고 있던 숙소는 오히려 더 세차게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나는 스태프들에게 뛰어가 물었다.

“미카엘 나온 거 본 사람 없어?”

“…….”

허나, 응답은 없었다.

“이런 제기랄…….”

설마 안에 있나?

만약에 그렇다면, 단순히 프로그램의 문제가 아니다.

과정이 어떻게 되었든 간에 사람이 다치는 건 총 연출, 즉 감독인 나의 책임이니까.

“미카엘 마지막으로 본 사람이 누구야?”

다들 서로 두리번거리기만 할 뿐,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다들 술에 거나하게 취해서 누구를 돌보거나 보살필 만한 여력이 없었으니까.

부우웅- 끼익!

때마침 도착한 소방대원들이 우르르 소방호스를 들고 내리기 시작했다.

대원들은 현장에서 진압을 시작했고, 미카엘의 매니저는 다급하게 우두머리로 보이는 사람에게 뛰어갔다.

“도와주세요, 지금 한 명이 실종되었는데…….”

* * *

“휴대폰 위치는 숙소 안으로 확인되고 있거든요.”

“…….”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미카엘이 휴대폰을 두고 나왔을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다.

다만, 미카엘이라는 사람의 특성상, 어지간한 상황에서도 휴대폰을 들고 가는 스타일이라는 건 부정할 수 없었다.

심지어 촬영할 때도 휴대폰을 챙기고 있는 몇 안 되는 인물이었으니까.

“1층은 전부 확인했으나, 사람은 보이지 않았고요. 2층은 아직 잔불이 남은 상태거든요.”

“예.”

“한 30분 안에 완전히 소화가 될 것 같으니, 그때 바로 진입해서 확인해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는 뒤를 한 번 돌아보고는.

“그리고 불이 안에서 난 게 아니라, 바깥에서 덮쳐왔다고 하셨죠?”

“네.”

“조사 중이라 아직 확실하지는 않지만, 저쪽 떡갈나무 아래에서 화재가 시작된 걸로 확인되거든요.”

“저쪽 말씀하시는 건가요?”

“예. 저기 타서 꺾인 나무 보이시죠?”

“보입니다.”

“저쪽에서 담뱃불이 마른 나뭇잎에 옮겨 붙어서 발화가 된 것 같아요.”

“아, 그렇습니까?”

“네. 더 자세한 건 확실해지면 말씀드리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꾸벅.

소방대원은 인사를 하고 돌아섰다.

“하아.”

나는 탄식을 내뱉으며 머리를 쓸어 넘겼다.

저 떡갈나무에서 담배꽁초가 화재의 원인이라면…….

외부 인력이 아니라, 내부 사람으로 인해 일이 발생했을 가능성이 굉장히 높다.

이러면 더 골치가 아파지는데.

출연진의 문제라면 소속사에서 배상을 해야겠지만.

스태프라면, 우리 스튜디오에서 배상을 해야 하니까.

하나, 지금은 돈을 따질 상황이 아니다.

미카엘.

제발 살아 있었으면 좋겠는데.

* * *

쉬시시시식-.

불이 천천히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2층에 남아있던 잔불도 거의 진압되기 직전이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미카엘에게 전화를 걸어 봤지만, 그의 휴대폰 전원은 어느새 꺼져 있는 상태.

느낌이 좋지 않았다.

“선배님.”

박호중 PD는 내게 다가오더니 목소리를 낮췄다.

“죄송한데, 저쪽도 신경을 써 주셔야 될 것 같은데요.”

“왜, 무슨 일 있어?”

“그게…….”

그는 옆을 흘긋 곁눈질하면서 말했다.

“조금 전부터 이소현 씨 상태가 좋지 않아요.”

“소현 씨가 왜?”

나는 저 멀리 있는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

“어디 아프시대?”

나오다가 다친 건가?

“아니요. 몸이 안 좋은 건 아닌 것 같은데.”

박호중 PD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딘가 불안해 보여서요. 매니저 통해서 물어봤는데도 아무 것도 아니라고 하는데, 아시잖아요. 저 상태면 아무것도 아닌 게 아닌 거.”

내가 봐도 그렇게 보인다.

나무 밑에 주저앉아 다리를 감싼 채로 멍하니 한 곳을 응시하고 있으니까.

불타는 걸 보고 있는 것도 아니고, 발화점이라고 짚었던 떡갈나무 밑을 보고 있는 상태.

“내가 한 번 가 볼게.”

“예, 부탁 좀 드려요.”

“혹시 소방대원분 오시면 네가 이야기 잘 들어놔.”

“알겠습니다.”

박호중 PD를 뒤로하고, 이소현에게로 향했다.

그녀는 내가 온 것도 모르고 여전히 공허한 표정으로 한 지점으로 시선이 빼앗겨 있었다.

“뭘 그리 유심히 보세요?”

흠칫.

이소현은 움찔하며 날 바라봤다.

“아, 감독님이시구나.”

그제야 그녀는 안도하며 경계심을 풀었다.

“옆에 앉아도 돼요?”

“네.”

이소현의 옆에 털썩 엉덩이를 붙였다.

가까이서 보니, 떨고 있는 것 같은데?

“무슨 일 있어요?”

“아니에요.”

이소현은 고개를 저었다.

“그나저나 팔은 좀 괜찮으세요?”

“네, 뭐.”

소방대원이 응급처치를 해주었다.

뼈가 부러진 건 아니고, 살짝 금이 간 것 같다고는 하는데 심한 건 아니기에 간단한 알루미늄 부목만 대주었다.

“내려가서 제대로 진찰받아 보세요.”

“그럴 게요.”

나는 다시금 이소현을 자세히 바라봤다.

“근데 진짜 무슨 일 없어요?”

“네?”

“있는 것 같은데.”

“…….”

이소현은 잠시 고민하나 싶더니.

“말해도 될지 모르겠는데…….”

그녀는 미간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그래도 감독님은 아셔야 될 것 같아서요.”

고개를 끄덕이자, 이소현은 주변을 살피고는 나직이 이야기를 시작했다.

“아까 술 마시다가 제가 너무 답답해서 바람 쐬러 나왔었거든요.”

기억난다.

덥다고 술 깨러 간다고 했었지.

“북쪽 테라스에 나와서 앉아 있는데, 갑자기 담배 연기가 나는 거예요.”

“흡연장은 남쪽에 있지 않아요?”

“네, 맞아요.”

내가 탈출했던 곳.

바람이 북쪽에서 남쪽으로 불어나가는 구조기에, 주차장 근처에 흡연장을 만들었다고 들었다.

“그래서 일부러 연기가 안 오는 곳으로 나갔는데 담배연기가 오니까, 궁금해서 둘러봤는데…….”

이소현은 미간을 찡그렸다.

“떡갈나무 밑에서 누가 담배를 태우고 있는 거예요.”

잠깐만.

“저 발화점이라는 나무 말하는 건가요?”

“네.”

그녀는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그래서 담배 피우면 안 된다고 말하려고 다가가려는데, 자세히 보니까 통화 중이더라고요.”

“아…….”

“다른 사람이 들으면 안 되는 이야기를 하느라고 자리를 옮겼구나, 생각하고 제가 그냥 들어가려고 했어요.”

“설마 그 사람이…….”

“네. 미카엘이었어요.”

지끈-.

갑자기 두통이 몰려왔다.

“그리고 한두 시간 후에 갑자기 불이 나서 대피를 하라는 소리가 들렸고요.”

“미카엘은 못 봤죠?”

“네. 미카엘의 숙소가 2층이기에 바로 올라간 게 아닐까 싶어요.”

“흐음…….”

발화가 시작된 곳 자체가 다른 이들이 피우는 구역이 아니기에 화재의 원인은 미카엘일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오히려 희망이 있을지도.

미카엘이 실수로 불을 냈다가 위험성을 인지하고 숙소 반대편으로 도망갔을 가능성도 있으니까.

그래서 만나지 못하는 거라면 천만다행일 터.

하지만 그러한 희망도 잠시.

……잠깐만.

아니지.

휴대폰이 숙소에 있는 걸로 확인됐다고 했잖아.

제기랄.

그러면 전화가 끝나고 숙소로 들어간 것 같은데…….

화재의 연기는 원래 위로 올라가니, 2층이면 우리보다 상황이 더 심각했을 터.

예감이 좋지 않다.

“소현 씨.”

“네?”

“지금 이 사실, 누구한테 이야기했어요?”

“감독님이 처음이에요.”

“일단은 비밀로 해 줘요.”

끄덕끄덕.

“근데 왜요?”

“스태프들이 들으면 미카엘을 원망할 수가 있잖아요.”

“……아!”

그렇다고 완전히 숨길 수는 없는 노릇.

“소방대원들에게는 제가 따로 이야기할게요.”

“네. 그러면 저는 조용히 있을게요.”

“고마워요.”

자리에서 일어났다.

“감독님.”

이소현은 앉은 채로 날 올려다봤다.

“네?”

“고마워요.”

“뭐가요?”

“저 구해 주신 거요.”

“아까 감사 인사 했잖아요.”

“그래도…… 지금 상황 보니까 다시 말하고 싶었어요.”

나는 미카엘 생각을 뒤로하고 애써 미소를 지었다.

“쉬고 있어요.”

* * *

“미카엘 휴대폰입니다.”

“…….”

매니저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미카엘은요?”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습니다. 2층은 상황이 더 심각해서 진입하는 데 시간이 꽤 걸려요.”

소방대원은 어깨를 으쓱이며 휴대폰을 노트북에 연결했다.

“이거라도 건진 게 다행입니다. 배터리는 나갔지만, 다행히 데이터는 멀쩡해서요.”

“……아, 그래요?”

매니저는 안절부절못하며 물었다.

“휴대폰은 확인하지 않으시면 안 될까요?”

“죄송하지만, 법적으로 저희가 체크를 하게 되어있어서요. 특히나…….”

소방대원은 목소리를 낮춰서 말했다.

“미카엘 씨께서 화재의 원인을 발생시키셨을 가능성이 농후하기에 더 그렇고요.”

“……그렇군요.”

“예. 그리고 혹시 실종 직전의 상태를 확인할 수도 있어서 체크를 해봐야 합니다.”

띠링-.

그때 노트북과 휴대폰의 데이터가 연결이 되었다.

“먼저 통화 목록부터 살펴볼게요.”

특별할 건 없었다.

화재가 발생하기 직전에 ‘이태원녀24’라고 적힌 인물과 한참 통화한 기록이 있는 것 정도.

“누군지 아시나요?”

“아, 아니요.”

매니저는 어설프게 대답했다.

소방대원은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지만.

내가 보기엔 뭔가 미심쩍은 느낌이 들었다.

알고 있는 것 같은데…….

“문자나 통화 기록엔 특이사항이 없으니, 사진첩 확인해 볼게요.”

“저기!”

매니저는 다급하게 손을 뻗었다.

“사진은 없지 않을까요?”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요.”

소방대원은 냉정하게 매니저를 밀어내고 갤러리에 들어갔다.

그런데.

“……이게 뭐야?”

소방대원을 포함해 노트북을 지켜보던 내 얼굴에는 경악이 물들었다.

“이거 미카엘 휴대폰 맞아요?”

“…….”

매니저는 대답을 하지 못했다.

부정하지 못하는 걸 보면 맞는 것 같은데.

소방대원은 차갑게 굳은 얼굴로 스크롤을 내렸다.

“이거 범죄예요.”

사진첩은 충격적이었다.

온갖 딥페이크 영상부터 시작해서 연예인들의 합성사진.

그리고 실제로 찍은 걸로 추정되는 사진들까지.

대부분의 사진들이 살색이었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상태.

“도촬도 좀 있는 것 같고, 합성도 있는 것 같은데.”

두통이 세게 몰려왔다.

이건 충격적인데…….

미카엘과 대화할 때 그에게서 간혹 묘한 뉘앙스가 풍겨오긴 했지만.

외국인이기에 한국말에 서툴러서 그런 줄 알았었는데.

“매니저님.”

“네?”

“이거 경찰에 넘겨야 될 것 같은데…….”

소방대원은 여전히 안색이 굳어 있었다.

“불만 없으시죠?”

“……예.”

“일단 스태프분들께는 말씀 안 드릴게요.”

“……감사합니다.”

그는 더 이상 못 보겠는지 스크롤을 멈췄다.

그런데.

“잠깐만요.”

그때 문득 내 시선을 끄는 사진이 한 장 눈에 들어왔다.

“살짝만 위로 올려주실 수 있나요?”

“예?”

유심히 화면을 확인했다.

“이런 씨…….”

욕설이 절로 튀어나왔다.

유나희의 사진도 있었다.

정확히는 합성의 티가 나는 사진.

나도 모르게 언성이 높아졌다.

“이거 완전 미친 놈 아니야?!”

주먹에 힘이 꽉 들어갔다.

미카엘 이 자식 이거…….

매니저 표정을 보아하니, 미카엘이 이딴 짓을 하는 걸 이미 알고 있었던 것 같은데.

그를 사납게 노려봤다.

매니저는 어색하게 고개를 푹 숙였다.

“저랑 잠깐 이야기 좀 하시죠.”

“…….”

“따라오십시오.”

그를 데리고 자리를 옮기려는데.

휘이이익-!

커다란 호루라기 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리자, 2층의 부서진 창문으로 소방대원 하나가 고개를 내밀었다.

그는 수신호를 보냄과 동시에 무전기를 통해 무언가 말했다.

그러자, 노트북을 잡고 있던 소방대원의 무전기로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2층에서 사망한 시체 한 구 발견되었습니다!

-겉으로 보아, 외국인으로 추정됩니다.

-현장 사진 찍고 운송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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