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 번 사는 프로듀서-515화 (516/601)

늪에 빠져버리면 (8)

“미카엘 맞습니까?”

“……예.”

매니저는 입술을 깨물며 힘겹게 대답했다.

“맞아요.”

어느새 그의 눈에는 눈물이 차올랐다.

소방대원은 안타까운 얼굴로 고개를 꾸벅 숙이고는.

미카엘의 가슴팍을 덮고 있던 멱모를 머리까지 끌어올렸다.

“하아아.”

이를 지켜보던 스태프들 중 적지 않은 이들이 입을 틀어막거나 오열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허무하게 죽음을 맞이하다니.

스태프들도 믿기지 않는지 허망한 얼굴로 탄식을 내뱉으며 우울감에 빠져들었다.

허나, 나는 눈물이 한 방울도 흐르지 않았다.

슬픈 건 부정할 수 없었다.

미카엘이라는 사람과 하루이틀을 알고지낸 것도 아니고, 무려 수개월을 함께 웃고 떠들며 여행을 다녔으니까.

하지만 딱 그 정도가 전부였다.

그의 실체를 알게 되어서인지, 감정이 북받친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사망했다는 사실에 머리가 차갑게 식었으니까.

뭐라고 해야 할까…….

죗값을 치른 게 아닐까, 싶은 생각마저 들었으니까.

심지어 죽기 몇 시간 전에도 서혜나가 등산할 때 레깅스를 입은 뒷모습을 도촬했으니까.

자신을 찍는 카메라가 그렇게 많은데, 어떻게 안 걸렸는지 신기할 따름.

스태프나 다른 출연자들에게는 알리지 않았지만, 서혜나는 피해자였기에 그녀에게는 알려주었다.

그래서인지.

“이런 말하긴 뭐하지만.”

서혜나는 퉁명스레 말했다.

“잘 죽었어요.”

나는 흠칫했지만, 서혜나는 팔짱을 낀 채 태연하게 말을 이었다.

“만약에 오늘 이러지 않았다면, 앞으로도 수많은 피해자가 생겼을 거 아니에요?”

“그렇긴 해요.”

서혜나는 역시나 화끈한 성격이라 그런지, 말에 거침이 없었다.

“오히려 처벌 못 한 게 아쉬울 정도예요.”

어감이 세긴 하지만, 그녀의 분노가 삐뚤어진 건 아니었다.

실제로 미카엘의 사진첩에서 서혜나의 사진은 단순히 도촬뿐만 아니라, 딥페이크 영상까지 있었으니 더 말할 것도 없지.

“죄가 나쁘지, 사람이 나쁜 건 아니라는 말이 있잖아요?”

서혜나는 단호하게 말을 이었다.

“이건 사람이 나쁜 거예요.”

그때 박호중 PD가 내게 다가왔다.

“선배님. 잠깐 괜찮으십니까?”

“응, 말해.”

“소방대원분께서 말씀해주셨는데, 저쪽 떡갈나무 밑에 있던 담뱃불에서 불이 시작되었을 것으로 거의 확실하다고 하네요.”

“그래?”

“네. 담배꽁초에 대한 성분 검사를 해봐야 더 확실해지겠지만, 아마 미카엘 씨가 피운 담배일 확률이 높고요. 평소에 피우던 담배와 종류도 똑같대요.”

본인이 죄를 스스로 불러온 것이라고 밖에는 생각되지 않는다.

“추가로 나오는 게 있거나, 물어볼 게 있으면 전화 준다고 합니다.”

“그래. 우리도 이쯤에서 마무리하고 내려가자.”

“예, 선배님.”

* * *

장례식은 짧게 치러졌다.

아무래도 사망 추정 시각이 오후 10시 전후였기에, 3일장이라도 실질적으로는 빈소를 차린 뒤 발인까지 만으로 하루 정도가 걸렸을 뿐이니까.

그의 유골은 프랑스에 있던 가족이 인도해갔다.

자칫하면, 안전관리에 대해 우리 프로그램이 경고를 받을 수도 있었으나.

전후사실을 아는 소속사에서 전부 자신들의 책임으로 돌렸다.

실제로 미카엘의 실수로 인해 화재가 발생했고, 희생자는 그 한 명이었으니까.

피해보상과 관련해서도 전부 소속사가 책임지기로 한 상태.

미카엘의 정산금으로 어느 정도 메운다고 하니, 경제적으로 큰 부담은 없다고 했다.

우리에겐 도의적인 책임 정도만이 남았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수준이었다.

그리고 미카엘의 범죄 사실에 관해서는 언론에 공표하지 않았고.

오직 피해 당사자들에게만 따로 전하기로 했다.

어차피 미카엘의 사망으로 인해 공소권이 사라졌고.

피해자들의 입장에서도 자신들을 성적으로 이용한 사실이 세간으로 퍼져서 좋을 게 없을 테니까.

“편집은 평상시처럼 하면 될까요?”

“응. 남은 영상만 살리고, 한 달 정도 휴방 처리하자.”

“알겠습니다.”

미카엘의 소속사에서는 사죄의 의미로 선물을 보냈지만, 전부 거절했다.

지금 그들에게 선물을 받는 그림이 이상하기도 하고.

그렇게 하면, 왠지 그들에게 무언가를 받기 위해서 미카엘에 대한 이야기를 함구하는 것 같았으니까.

그 일을 끝으로.

미카엘이란 사람은 내 기억 속에서 추하게 사라졌다.

* * *

보름 뒤.

“선배님, 어깨는 좀 괜찮으세요?”

“응, 멀쩡해.”

다만, 여전히 깁스는 하고 있었다.

“의사 선생님이 며칠만 더 경과를 보자고 하시네.”

“금갔다면서요?”

“실금이야, 실금. X-Ray 사진 봤는데, 잘 보이지도 않더라.”

“그래도 그만하니까 다행이네요.”

“그렇지.”

박호중 PD는 미소를 지으며 손짓했다.

“회의 준비 끝났어요. 천천히 들어오세요.”

“그래, 바로 가자.”

회의실로 들어서자, 다들 묘한 표정으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다들 어색하지?”

PD들과 작가들은 민망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싱숭생숭하겠지만, 우리는 할 일 하자고.”

“예.”

미카엘이 사망했다고 한들, 프로그램을 종영할 수는 없었다.

촬영 중에 고정 출연자가 사망한 건 사실이긴 하나.

미카엘 스스로가 불러온 실수였기에 대중들도 우리를 동정하면 동정했지, 손가락질하는 이는 없었으니까.

심지어 휴방하는 기간 동안에는 폐지하지 말라며 시청자 게시판에 응원하는 글도 올라왔을 정도니, 더 말할 것도 없지.

“자자, 우선 다음 방송에 관해서야.”

촬영지와 콘셉트는 어느 정도 이미 구성이 되어있었다.

“문제는 출연진인데…….”

“3인 체제로 가긴 힘들겠죠?”

작가의 물음에 박호중 PD는 조심스레 의견을 냈다.

“3인 체제에서 게스트가 매번 출연하는 건 어떨까 하는데…….”

“그건 힘들 거야.”

난 고개를 저었다.

“4인 체제에서. 그것도 대부분은 게스트가 출연해서 5명 혹은 6명이서 촬영을 이어나갔는데 3명이서 이끌어나가면 빈공간이 크게 느껴질 거거든.”

“하긴, 게스트의 머릿수로는 한계가 있죠.”

한두 회차 정도는 어떻게 끌어갈 수 있을지언정, 아무리 화려한 게스트를 데려와도 손님은 손님이다.

시청자들이 보기에 티가 날 수밖에 없을 터.

게다가 군장수 PD의 특성상, 게스트의 숫자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내 정체가 알려질 위험부담은 커질 수밖에 없다.

“우선은 고정 멤버를 하나 뽑아야 해.”

나는 차분하게 말했다.

“방송국에서 휴방은 한 달 허가받았고, 만약에 더 필요할 경우 2주 정도는 더 유예해줄 수 있으니 최대한 갈무리 잘해서 돌아오라고 하더라.”

“그러면 후보 리스트 한 번 정리해봐야겠네요.”

“응. 우선 브레인스토밍부터 해보자.”

“우선, 남자가 좋겠죠?”

“그래야 밸런스가 맞지.”

“아예 새로운 인물이 나을 것 같아요.”

“맞아. 강준수 사단의 프로그램에 고정 출연을 한 적이 없던 사람이면 좋겠는데…….”

그렇게 두어 시간 쯤 지났을까.

지이잉-.

휴대폰에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발신인 : 유나희.

“잠깐 쉴까?”

“네.”

“15분 쉬었다가 다시 회의하자.”

“예.”

나는 홀로 감독실로 자리를 옮겨 전화를 받았다.

“어, 나희야.”

-뭐 해, 바빠?

“회의 중이었어.”

-끝나고 뭐 해?

“바로 집으로 갈 것 같은데, 왜?”

-이유가 있어야 물어보나?

왠지 모르게 까칠한 느낌.

“그냥 물어보는 거야.”

-몇 시쯤에 끝나?

“오늘 회의가 좀 길어질 것 같아서…… 한 8시?”

-알았어. 그때 맞춰서 갈게.

뚝.

뭐지?

목소리가 평소 같지 않았는데.

화난 것 같지는 않고.

그렇다고 마냥 좋은 것 같지도 않고.

무슨 일이 있나?

뭐, 중요한 거면 전화로 언질이라도 해줬겠지.

일단 일에나 집중하자.

* * *

아파트 주차장.

차를 세워 두고 엘리베이터로 향하려는데.

끼익-!

타이어가 바닥에 마찰해 스키드마크를 내는 것 같은 소리가 들린 직후, 눈앞에 밴 한 대가 멈춰 섰다.

“……뭐야?”

벌컥-.

세차게 차에서 문이 열리며 한 여성이 내게 뛰어서 달려왔다.

“군장수 PD님!”

……어?

잠깐만.

내가 잘못 들었나?

강준수가 아니라, 군장수라고 한 것 같은데.

“안녕하세요, PD님!”

나는 경계심을 늦추지 않고 물었다.

“누구세요?”

“저 백민아라고 합니다!”

모르는 여자다.

잠깐만.

저 밴, 얼마 전부터 우리 촬영할 때 따라붙었던 차 같은데?

번호판도 익숙하고.

“그러니까 누구신데요?”

얼굴이나 몸매를 생각하면, 언뜻 보아도 일반인은 아니라는 직감이 왔다.

최소 연습생.

아니면, 이미 데뷔한 무명 아이돌일 수도 있고.

“아, 저는 스윗걸즈 백민아라고 합니다.”

잠깐만.

스윗걸즈?

이름은 어디서 들어본 것 같은데…….

어디서 들었더라.

“우리 구면은 아니죠?”

“네.”

부우웅-.

저 멀리 차가 들어오는 게 눈에 들어왔다.

“일단 이쪽으로 오시죠.”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는 주차장의 구석으로 향했다.

“제가 군장수인 건 어떻게 알았어요?”

“……쫓아다니다 보니까 그렇더라고요.”

역시 며칠 전부터 미행했던 게 이 여자였던 모양.

얼굴을 드러낸 걸 보면, 내게 사심이 있는 것 같지는 않은데.

“저한테는 왜 오신 겁니까?”

“부탁이 하나 있어서요.”

그녀는 몸을 움츠리며 두 손을 모았다.

“PD님 프로그램에 저 좀 출연시켜 주시면 안 될까요?”

“……예?”

“제발요.”

……위험하다.

눈빛이 심상치 않았다.

본능적으로 이 여자가 아슬아슬한 상태라는 게 느껴졌다.

자칫하면 큰일나겠는데.

백민아는 두 손을 모아 빌었다.

“진짜 부탁 좀 드릴게요.”

“그건 소속사에 말씀을 하셔야죠, 왜 저한테 그러십니까?”

“……불가능해요.”

“예?”

나는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스윗걸즈 소속사가 어딘데요?”

“AGW엔터였어요.”

“……아.”

그제야 기억이 났다.

얼마 전, 공중분해가 되었다던 그 회사.

“저 한 번만 도와주시면 안 될까요?”

백민아는 간절한 얼굴로 내게 다가왔다.

허나, 나는 일부러 뒤로 물러나 거리를 벌렸다.

위험한 인물이다. 안전거리를 유지해야 한다.

“시키는 거 다할게요.”

“……시킬 거 없어요.”

“돈이 필요하면 빚을 져서라도 모아 오겠습니다.”

“아니, 민아 씨. 지금 무슨 생각을 하시는지 모르겠는데…….”

“그게 아니라, 다른 게 필요하면…….”

백민아는 대뜸 입고 있던 코트를 벗으려 했다.

제정신이 아닌 것 같은데.

“잠시만요, 민아 씨.”

거리를 벌린 채로 그녀를 만류했다.

“일단 입으세요. 저 그런 거 필요 없습니다.”

“그러면 뭐가 필요하신데요?”

그녀는 희번덕거리는 눈으로 말했다.

“저 비밀 잘 지켜요. 외부에 안 새어나가게 할게요. 다른 거 안 바라요. 그냥 한 번만 도와주시면 안 될까요?”

광기다.

이거 자칫하다가는 위험해질 수도 있을 터.

백민아는 자신의 티셔츠를 움켜잡았다.

“진짜 저 믿으셔도 돼요. 괜찮다니까요? 아니면…….”

“오빠.”

그때 이쪽을 향해 카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유나희였다.

“쟤 누구야?”

그녀는 내게 다가오며 백민아를 흘겨보고는 사나운 눈빛으로 날 바라봤다.

“누군데 여기서 이러고 있어?”

이거 오해한 것 같은데.

그런데 그 순간.

히쭉.

백민아의 입꼬리가 음흉하게 비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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