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 번 사는 프로듀서-520화 (521/601)

구원 (3)

“선배님.”

똑똑똑.

“강준수 선배님?”

나는 한 박자 늦게 반응하며 고개를 들었다.

“어, 나 불렀어?”

박호중 PD는 걱정스런 표정을 지으며 내게 다가왔다.

“무슨 생각을 그리 골몰히 하세요?”

머쓱함에 고개를 저었다.

“별거 아니야.”

백민아 때문에 골치가 아파서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지난번의 엄포만 놓았던 기자와 달리, 백민아는 성격상 정말로 본인이 알고 있는 모든 걸 터뜨릴 가능성이 훨씬 높아보였으니까.

허나, 일단은 고개를 저어 그녀에 대한 생각을 털어냈다.

어차피 주사위는 던져졌다.

이제 와서 백민아를 붙잡고 이러쿵저러쿵 이야기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구태여 앞으로 벌어질 일에 대해 걱정할 필요는 없을 터.

예능 쪽도 슬슬 촬영재개 일정이 다가오고 있기에, 여기에 집중하는 게 맞겠지.

“무슨 일인데?”

“저번에 말씀하셨던 출연진 섭외 건 관련해서요.”

“응. 만나 봤어?”

“예. 박도진 씨와 도상원 씨 두 분 모두 미팅을 마쳤는데, 걱정과 달리, 두 분 모두 출연에 호의적이더라고요.”

“오, 그래?”

듣던 중 반가운 소리다.

“그런데 박도진 씨는 적극적으로 출연 의사를 밝히셨는데, 도상원 씨는 군장수 PD가 신비주의인 건 알지만, 출연하려면 그래도 메인 PD와 한 번 만나보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하시거든요.”

“최종 출연 결정이면 당연히 내가 만나봐야지.”

정식 방송 전에는 박호중 PD가 본인을 메인 PD로 소개했기에 이러지 않아도 괜찮았지만.

방영 중인 현재 상황에서는 메인 PD도 만나보지 않고, 서브 PD와의 미팅만으로 출연을 결정하는 건 당연히 연예인에게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는 일이니까.

“그래, 내가 직접 만나봐야지. 둘 다 미팅 잡아.”

“예, 그러실 것 같아서 대충 일정은 잡아놨습니다. 우선, 이틀 뒤에…….”

* * *

똑똑.

노크소리를 내며 식당의 프라이빗룸 안으로 들어갔다.

문을 열기 무섭게.

“안녕하십니까, 감독님!”

깍듯한 인사 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형님을 반기듯 인사를 하네.

어색하게 그들을 따라 고개를 꾸벅였다.

“네. 반갑습니다.”

고개를 숙이고 있는 인물은 오늘 첫 미팅 대상인 박도진.

옆에는 그의 매니저로 보이는 인물이 함께 서서 인사를 하고 있었다.

둘은 접었던 허리를 펴다가 나와 시선을 마주치고는.

“……어?”

묘한 탄성을 내며 엉거주춤 멈춰섰다.

“강준수 감독님?”

“예.”

“방 잘못 찾으신 것 같은데요.”

박도진의 매니저는 민망하게 머리를 긁적였다.

“저희 오늘 군장수 PD님과 미팅이…….”

그는 말하다가 무언가를 깨달은 듯 멈칫하더니.

“……어?”

매니저와 박도진은 서로 눈을 마주치더니.

의미심장한 목소리로 물었다.

“설마 군장수 PD님이 강준수 감독님이신가요?”

나는 민망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맞습니다.”

“……헐.”

“대박.”

박도진과 그 매니저 모두 반응이 똑같다.

둘이 같은 99년생 친구들이라고 들었는데…….

왠지 엉뚱한 게 김노민과 비슷한 과인 것 같기도 하고.

“일단 앉을까요?”

“예, 예!”

그들의 손짓에 얼떨결에 내가 상석으로 향했다.

“아니, 그냥 맞은편에 편하게 앉으면 되는데.”

혹시나 오해할까 봐 싶어서 말했다.

“이건 섭외하는 미팅이 아니고, 가볍게 서로 인사하는 자리예요.”

“아니요. 저희는 이게 편해요.”

내가 불편해서 그래.

“그나저나 감독님. 혹시 하나만 여쭤봐도 돼요?”

박도진은 눈을 또랑또랑하게 뜨며 물었다.

“말씀하세요.”

“그러면 ‘태릉에서 돌아왔습니다.’도 감독님 작품인가요?”

“아니요. 그건 태화운 감독님이잖아요.”

“아, 그렇죠?”

“네.”

“왠지 그거 보면서 코드가 강준수 감독님 예능 같다고 느꼈거든요.”

“그 친구가 예전에 제 서브로 있었거든요.”

“어쩐지!”

박도진은 아깝다는 듯 손가락을 퉁겼다.

“예전에 제가 또…….”

대화는 끊기지 않고 이어졌다.

활발하고 재미있긴 하다.

예능에서도 구김살 없이 잘 치고 들어올 것 같기도 하고.

다만, 문제는 특별하게 딱 ‘이 사람이다!’처럼 꽂히는 게 없다는 것.

게다가 조금 엉뚱한 면이 은근히 김노민과 겹치는 거 같기도 하고.

음…….

조금 더 고민해봐야겠는걸?

* * *

감독실.

똑똑.

노크소리와 함께 입장한 도상원은 나를 보고는 반갑게 인사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감독님. 도상원입니다.”

“강준수예요. 반가워요.”

또 지난번과 비슷한 상황을 겪고 싶지 않았기에 일부러 박호중 PD에게 미리 전달해두라고 했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외부로 새어나가지 않도록 미팅 1시간 전에 일러준 것에 불과했지만, 호들갑을 떨거나 그렇지는 않았다.

“앉으시죠.”

“예.”

미리 말해준 덕분인지, 그는 나에 대한 호기심보다 프로그램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꺼냈다.

“제가 ‘무엇이든 합니다’의 애청자였는데 미팅 요청이 들어와서 정말 놀랐습니다.”

“아, 그런가요?”

“네. 굉장히 재미있게 보고 있어요.”

“어유, 감사합니다.”

“아직 확정된 건 아니겠지만, 그래도 후보로 고려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도상원은 똘망똘망한 눈으로 입을 열었다.

“제가 이 프로그램에 도움이 될까 싶어서 고민을 해봤는데…….”

몇 마디 나눠보자, 바로 캐릭터를 알 수 있었다.

시쳇말로 ‘진지충.’

“또한, 제 관점에서 ‘무엇이든 합니다’에 출연할 경우에 서로 낼 수 있는 시너지와 장단점에 대해서도 분석을 해보았습니다. 그 결과에 의하면…….”

정말 진지했다.

한 마디 한 마디는 물론이고.

굳은 분위기를 풀기 위해서.

“항상 미안한 동물이 뭔지 아세요?”

농담을 던져도.

“글쎄요. 아무래도 악어가 아닐까요?”

“악어요?”

“네. 육식동물로서 많은 동물들을 잡아먹기 때문에…….”

“아니, 그런 게 아니라…… ‘오소리’거든요. 오, 쏘리!”

“오, 정말 그렇군요.”

정말 진지하게 받았다.

“너무 신기한데요?”

그는 두 손의 엄지까지 척 치켜들었다.

아재개그를 이렇게 받는 건 처음 겪어본다.

그 외에도.

“저는 예능 프로그램을 촬영함에도 한 편의 작품으로서 생각을 하며, 또…….”

그냥 매사에 진지했다.

사실, 편하게 대화하기에는 조금 부담스러운 면이 없다고는 하지 못했으나.

또 이게 예능에서는 굳이 캐릭터를 만들어줄 필요가 없을 정도로 기가 막힌 콘셉트가 잡힌다는 게 아주 큰 장점이지.

“예능은 이번이 몇 번째죠?”

“게스트로는 꽤 나가봤고, 고정으로는 이제 두 번째입니다.”

“예능 나가서 본인과 비슷한 사람 본 적 없죠?”

“음…….”

그는 골몰히 생각하더니 찬찬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예, 그런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다른 캐릭터와 겹치지 않는다는 점.

김노민과는 근본부터가 다른 사람인 것과 더불어.

이전까지 출연했던 미카엘과도 전혀 달랐기에 꽤 신선한 그림을 만들어줄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

일단은 박도진보다는 도상원 쪽으로 더 관심이 가긴 하는데…….

“감독님.”

“예?”

“저 하나 궁금한 점이 있어서요.”

“말씀하세요.”

“제가 감독님 예능과 드라마, 영화는 빠짐없이 전부 챙겨봤는데요. 보다 보니 의문점이 하나 생겨서요.”

“어떤 점이죠?”

“감독님께서 트렌드를 선도하시는 게 맞긴 하지만, 뭐라고 해야 할까…… 단순히 선도하는 수준이 아니라, 이미 알고 계시는 느낌 같은 것도 문득 들었거든요.”

……뭐지?

“만약에 감독님이 미래를 알고 계시다면 이렇게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요.”

나도 모르게 목울대가 꿀렁거렸다.

무언가 알고 물어보는 건가?

그럴 리가 없을 텐데.

지금까지 이런 질문을 했던 사람은 없었으니까.

허나, 그의 눈빛은 진지하기 그지없었다.

다만, 문제는 무언가 알고 있기에 진지한 건지.

그냥 묻는 건데 진지한 것인지 구분이 안 된다는 사실.

나는 최대한 태연하게 미소를 지었다.

“제가 미래를 알고 있었다면, 방송을 안 하지 않았을까요?”

“네?”

“주식이나 로또를 사서 집에서 띵가띵가 놀았겠죠.”

“……아!”

그는 깨달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건 또 맞네요.”

사실, 실제로도 대략적인 정보는 알고 있긴 하다.

다만, 주식이나 부동산, 코인 등에 관심이 없기에 세부적인 등락에 대해서 모르기도 하고.

방송에서의 성공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금전적인 여유는 얻었으니까.

무엇보다.

전생에서 실패하고 이번 생에 새로운 기회를 얻은 건.

단순히 돈을 불리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내가 전생에서 이루지 못한 걸 이룰 수 있도록 기회가 주어진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근데 제가 감독님이었다면…….”

이와 관련된 주제는 그닥 달갑지 않았기에 슬쩍 화제를 넘겼다.

“참, 작년에 연기대상에 초대도 받으셨다고 들었는데, 왜 출연 안 하셨어요?”

“어차피 제가 못 받을 게 뻔하니까요.”

“노미네이트 되시지 않았어요?”

“그래도 희망이 없다고 들었거든요.”

그는 대수롭지 않게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리고 별로 안 좋아하는 사람이 있었거든요. MBS 연기대상은 김지산 선배님이 받았잖아요.”

“아니요. 이민웅 선배님인데…….”

김지산은 작년 연기대상에서 후보에 노미네이트도 되지 않았던 인물.

문제는 김지산 배우가 올해 연말에 상을 받을 예정이라는 것이다.

나야 회귀를 해서 알고 있다지만.

……뭐야, 얘?

진짜 무언가 알고 있는 건가?

이거 아무래도 도상원에 대해 좀 더 알아봐야 될 것 같은데.

지이잉-.

그때 휴대폰에 세차게 알림이 울렸다.

박호중 PD의 호출.

미팅 중인 거 알고 있을 텐데 연락을 했다는 건 심상치 않은 안건이라는 듯.

아니나 다를까, 고개를 들자, 감독실 바로 앞에 그가 서있었다.

“상원 씨 잠깐만요.”

“예.”

자리에서 일어나며 감독실의 문을 열었다.

“무슨 일인데?”

앞에서 대기 중이던 박호중 PD는 다급한 어투로 내게 말했다.

“선배님. 지금 바로 확인하셔야 될 것 같아서요.”

그가 들고 있는 태블릿 PC 화면에는 백민아의 SNS 화면이 떠올라 있었다.

이거 굉장히 불길한데.

“줘 봐.”

제일 상단에는 백민아가 수기로 직접 쓴 메모가 캡처되어 업로드 되어 있었다.

-구원(仇怨) : 내게 해를 끼친 나쁜 사람들.

1) 백상윤 의원 : 스폰서.

2) 홍태원 의원 : 뒷돈 받은 사람.

3) 박민홍 사장 : 회사에서 스폰서 소개해 줌.

…….

14) 강준수 감독 : 유나희랑 사귐.

15) 군장수 감독 : 강준수 감독과 동일인물.

백민아가 장문으로 길게 늘어놓은 글을 써두었다.

“이런 미친…….”

나는 이마를 붙잡았다.

언젠간 인터넷에 뿌릴 거라고는 생각했다만……

이렇게 빠르게.

그리고 정치인들과 함께 엮어서 이런 식으로 본인이 직접 리스트까지 만들어서 인터넷에 대놓고 공개를 할 줄이야.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했다.

이거 후폭풍이 꽤나 크게 올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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