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 번 사는 프로듀서-529화 (530/601)

떡밥 (5)

“밥 먹자.”

“응.”

유나희의 말에 부엌으로 향했다.

식탁에 차려져 있는 음식은 김치찌개.

참고로 말하자면, 이건 배달시킨 것이다.

유나희의 요리는….

어….

음….

여기까지.

가끔 그녀와 결혼하면 어떨까 상상하긴 하는데, 아마 요리는 내가 하든가, 아니면 사람을 불러야하지 않을까 싶긴 하다.

“잘 먹을게.”

배달은 그녀가 시켰다.

“많이 먹어.”

데이트할 때 비용은 어쩌다보니, 유나희가 쓰는 금액이 더 많긴 하다.

사실, 금전적으로는 나도 어지간하면 꿇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유나희는 무슨 음원 수익으로만 매달 내 연봉을 벌고 있으니, 백기를 들었다.

그녀가 무언가를 살 때 미안해하기보다는 고마워하고 있다.

물론, 그렇다고 매번 얻어먹는 건 아니고 한 6 대 4 정도?

칼칼한 김치찌개 국물을 한 수저 떠서 마셨다.

뜨끈하니, 몸이 풀리는 느낌이다.

국물과 함께 고기도 한 점 떠서 먹으려는데.

“오빠.”

“응?”

“그래서 주아린 섭외할 거야?”

“컥!”

국물이 목에 갑자기 걸렸다.

“콜록, 콜록!”

유나희는 황급히 티슈를 뽑아 건네며 물을 한 잔 떠왔다.

“괜찮아?”

“어, 갑자기 사레가 들렸네.”

적당히 대답하고는 어색하게 웃었다.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아하니, 대답하지 않고 넘어가기엔 글렀다.

“주아린?”

“아니, 하지 말라는 건 아니고.”

유나희는 머리칼을 넘기며 태연하게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그냥 궁금해서 묻는 거야, 궁금해서.”

…그러면 밥 먹고 이야기하지.

“섭외하지 말까?”

“아니, 해도 된다니까.”

음.

이건 하면 안 된다는 소리다.

“그래, 알았어. 생각해보고 할지 안 할지 말해줄게.”

끄덕.

그제야 유나희는 수저를 들어올렸다.

“그건 그렇고, 나희야.”

“응?”

“주아린이랑 왜 사이가 안 좋지?”

앙숙이라는 건 알고 있었는데 그 이유는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

“이야기하자면 긴데.”

“그러면 안 해도 되는….”

“발단은 내가 신인 시절에 있었어.”

유나희는 태연하게 말을 시작했다.

“정확히는 내가 걸그룹 해체하고 솔로 데뷔했을 때.”

“주아린은 처음부터 솔로였지?”

“맞아.”

그래서 초반에 라이벌 구도도 형성됐었지.

“그룹 데뷔는 내가 더 빠르잖아?”

“그렇지.”

“근데 주아린은 내가 솔로 데뷔만 생각하고 지가 선배인 줄 안 거야.”

“아, 그래?”

“응. 왜 인사 안 하냐고 한소리하더라고.”

아이고….

천하의 유나희한테 그런 짓을 했다니.

“난 그렇게 말하길래 내가 후배인 줄 알고 죄송하다 했지.”

확실히 유나희도 신인 때는 성격을 죽이긴 했나 보다.

“근데 나중에 시간이 흐르면서 방송에서 밝혀진 거야. 내가 선배고, 걔가 후배라는 게.”

“그러면 사과 받아야지.”

“그럴 줄 알았는데, 그냥 모르는 척하는 거야.”

“…그래?”

주아린도 한 성격한다고 듣긴 했는데.

장난 아니긴 하다.

“그때부터 사이가 틀어졌지. 그러다가 우연히 예능에서 만났는데.”

그녀는 피식 웃었다.

“상대 팀으로 만나서 씨름을 하는 거였어.”

“아이돌 체육 대회 같은 거구나.”

“맞아. 근데도 거기서 모른 체 하길래 내가 확 넘겨버렸지. 그러다가 일부러 한 건 아닌데, 주아린 머리가 찝힌 거야.”

“…….”

“한 움큼 빠졌더라고.”

맙소사.

듣기만 해도 벌써 아프다.

“그래서 그때 머리채 잡고 싸운 거지.”

“아….”

그러니 사이가 좋을 리가 있나.

당연히 그 이후에도 서로 사과할 리는 없었겠지.

둘의 성격만 보더라도, 그 이후에 다시 만나서 쌍욕하지만 않았어도 다행일 터.

“근데 그것도 옛날이야기지.”

그녀는 여유롭게 코웃음 쳤다.

“지금은 너무 갭이 벌어졌잖아.”

“그건 맞지.”

주아린은 국내에서 잘나가는 여배우지만.

유나희는 지금 세계에서 알아주는 톱스타니까.

“맨날 앨범 내도 나랑 비교당하니까 쪽팔려서 배우로 전향했을걸?”

그건 맞는지 모르겠다만….

배우로 전향했던 시기가 얼추 유나희가 완전 가수로서 톱을 등극했을 때긴 하지.

그래서 배우 데뷔는 유나희가 조금 늦긴 했고.

“근데 생각해보면.”

유나희는 또다시 수저를 내려놓고 말했다.

“난 꿇릴 거 없으니까 섭외해도 돼.”

“응?”

“내가 더 잘나가잖아.”

“그래, 맞지.”

이야기하다보니 혼자서 몰입한 것 같은데.

“그리고….”

유나희는 갑자기 눈을 반짝거렸다.

“오히려 오히려 섭외하면 재미있을걸?”

“그게 무슨 소리야?”

흠칫하며 그녀를 바라보았는데, 예상외로 들뜬 표정을 하고 있었다.

“으흐흫.”

유나희는 낮게 웃음을 흘리고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섭외해도 돼.”

이래 놓고 섭외하면 욕할 것 같은데.

“그냥 하는 소리 아니야. 진짜로.”

그녀는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

“비꼬는 거 아니고, 정말로 걔 섭외하면 좋겠는데?”

“…그래?”

***

“선배님.”

박호중 PD는 서류를 들고서 감독실로 들어왔다.

“소속사에 물어봤는데 진희성 씨는 스케줄 된다고 하시더라고요.”

“오, 그래?”

“예. 다만, 아직 진희성 씨에게 시나리오가 넘어가지는 않은 상태입니다. 일정만 물어봤어요. 어떻게 할까요?”

“한 번 보고 검토해 달라고 해.”

“되면 바로 캐스팅하는 걸로요?”

“응. 보안만 확실하게 부탁하고.”

“네. 다른 배우들은 못 보도록 확실하게 단속해 둘게요.”

우선, 남자 배우는 후보가 정해졌다.

1순위가 진희성.

데뷔한 지 4, 5년 정도 된 배우인데, 성격도 좋고 연기도 베테랑 못지않아서 한창 주가가 뜨거운 인물.

“네. 그러면 진희성 씨는 말씀하신 대로 진행하고… 문제는 이제 여자 주연들인데.”

우선, 가리키기 편하게 생존자 1, 2, 3으로 명칭해 두었다.

“1번은 일단 보류. 어느 정도 인지도가 있는 톱스타가 필요하니까 마지막에 선발하자.”

“예. 그러면 2번은요?”

“2번째는 오디션이 낫지 않을까?”

“괜찮을까요?”

박호중 PD는 걱정스레 턱을 매만졌다.

“보안 유지가 쉽지 않을 텐데요.”

“그렇지만 2번 배역은 최소한 연기를 한 번은 봐야 돼. 그리고 기존에 활동을 많이 하지 않은 뉴페이스여야 몰입도도 좋을 거고.”

배역의 특성상 ‘연기를 잘하는 신인’이 나와야 시청자들이 실감나게 볼 수 있을 테니까.

“다른 주조연은 전부 직접 캐스팅으로 가고, 이 배역만 오디션으로 가보자고.”

“예. 감독명이나 제목, 전부 코드명으로 바꿀게요.”

“그래. 오디션 보안 관련해서는 내가 더 생각해볼게.”

“알겠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주연 3번이 문제인데….”

“선배님.”

그는 내 앞에 앉으며 슬쩍 목소리를 낮췄다.

“제가 알아보긴 했는데, 주아린 씨가 일정이 따로 정해진 게 없더라고요.”

“…그래?”

“예. 섭외하면 진짜 기똥찰 것 같긴 한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박호중 PD는 주변을 살펴 문이 닫힌 걸 확인하고는 덧붙였다.

“형수님께 한 번 물어보시긴 했어요?”

“너 진짜 그 놈의 형수님….”

“아, 죄송해요. 버릇이 되어서.”

몇 번이나 말했다고 입에 붙어?

“일단 나희는 괜찮다고 하는데….”

마지막에 태도를 바꾼 걸 보면 진짜 섭외하길 바라는 것 같기도 하고.

“한 번 간만 봐 볼까?”

“그럴까요?”

하나, 마음에 걸렸다.

“근데 그러다가 괜히 소문 이상하게 나면 어떻게 하려고?”

“괜찮아요. 저 주아린 씨랑 친분이 좀 있거든요.”

“너는 어떻게 연예계에 모르는 사람이 없냐.”

어째 나보다 인맥이 몇 배는 더 넓은 것 같다.

“한 번 얼굴 보면 다 연락처 교환하고 그러는 거죠, 뭐.”

박호중 PD는 실실 웃으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게다가 선배님이랑 일하다 보면 이렇게 인맥 늘리는 재미도 있더라고요.”

“그래서 이번 작품까지 서포트한다는 거야?”

“겸사겸사죠.”

그는 클클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 번 염탐만 해볼게요.”

“그래. 조심스럽게 움직여, 알았지?”

“예,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 녀석, 저렇게 능글맞게 웃으면 영 불안하다니까.

***

시간은 쏜살같이 흘러갔다.

아무래도 드라마 준비와 예능 촬영을 병행하다보니, 눈앞에 닥친 일을 정신없이 쳐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으니까.

그리고 마침내 맞이한 ‘무엇이든 합니다’의 시즌 마지막 녹화 당일.

“이야, 오늘은 대체 어디로 가길래 따뜻하게 입고 오라고 몇 번이나 말씀을 하셨을까요?”

“그러니까 말이에요. 완전 걱정이에요.”

물론, 출연진들은 딱히 티를 내지 않았다.

완전 종영도 아니고, 시즌 마무리였고.

어차피 마지막 날 회식을 하며 추억을 되새길 시간은 따로 있으니까.

게다가 프로그램이 망해서 종영하는 것도 아니고.

정상의 자리에서 잠깐의 재충전을 위해 휴식하는 명분이었기에 오히려 다들 힘찬 얼굴이었지.

“그래서 감독님, 목적지가 어디예요?”

“이제 좀 알려주시죠.”

출연진의 촉구에도 나는 냉정하게 말을 아꼈다.

“목적지는 비밀입니다.”

“그래도 비행기 티켓 보면 다 나올 텐데.”

“오늘은 경유를 해야 합니다.”

“경유까지 한다고요?”

서혜나는 눈을 꿈뻑이며 되물었다.

“보통 먼 곳이 아닌가 본데….”

아니나 다를까, 출연진들의 얼굴에도 불안감이 깃들기 시작했다.

“혹시나 해서 여쭙는데 경유는 한 번이죠?”

“두 번입니다.”

“…아니, 대체 어딜 가는 거예요?”

“설마 아마존 같은 데 가는 건 아니죠?”

“아닙니다. 문명 도시예요.”

허나, 위로가 되지 않는 듯 그들은 다급하게 회의를 했다.

“감독님에게 독침을 놓고 도망갈까요?”

“어차피 마지막 회니까 나쁘지 않은 것 같아요.”

오늘은 다들 예능감이 좋네.

하나 같이 나를 음침하게 바라보기에 결국 힌트를 줬다.

“첫 경유지는 시애틀입니다.”

“오, 그래요?”

출연진들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우선, 미국을 찍는다는 건 긍정적인 모양.

우리의 최종 목적지는 그린란드의 수도라고 볼 수 있는 행정중심지 ‘누크’다.

제작진들의 절반 이상이 생소한 이름이라고 했는데.

한 마디로 말하면 완전히 얼음밭이라는 뜻이다.

극지방이지.

혹시 몰라서 출연진들이 입을 여벌의 옷은 각자의 매니저들을 통해 따로 챙겨오게 만들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얼굴로 해맑게 웃는 그들을 데리고 공항에서 하차했다.

“일단 비행기 타러 가볼까요?”

“예.”

약 10시간 뒤.

시애틀 공항에서 내린 4명의 출연진들은 싱글벙글하며 내게 물었다.

“아, 우리 이제 어디로 가요?”

“2시간만 쉬었다가 레이캬비크로 향하는 비행기를 탈 겁니다.”

“레이캬비크요?”

이름을 듣자마자 김노민의 안색이 나빠졌다.

“그게 어딘데요?”

그 물음엔 이소현이 대답했다.

“아이슬란드 수도잖아요.”

그제야 김노민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아, 거기 정도면 괜찮지. 문명도시잖아.”

“아니죠.”

서혜나는 냉정하게 고개를 저었다.

“거기서 한 번 더 가잖아요.”

“…맞네. 대체 어디를 가는 거야?”

“이거 마지막이라고 감독님이 우리를 죽일 생각인가 본데요?”

“독침 준비하자니까요.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요.”

“하하하, 다들 다음 비행기 준비하세요.”

그리고 두 번의 경유를 통해 최종적으로 도착한 그린란드.

공항에 나오자마자 다들 세상을 잃은 눈으로 허망하게 입을 열었다.

“부, 북극 특집이라고요?”

리액션 좋고.

“아니, 여기 영하 20도 넘는 것 같은데.”

빙고.

지금 영하 25도다.

일부러 한창 추울 때 왔지.

“많이 내려갈 때는 영하 30도 간대요. 이 정도면 양호한 겁니다.”

서혜나가 눈을 부릅뜨며 날 바라보았다.

“감독님, 지금 저희 놀리는 거죠?”

“예, 맞습니다.”

“아, 진짜!”

다들 멘탈이 붕괴됐는지 초연한 표정을 짓고있던 그때.

“오, 대박!”

다른 멤버들과는 반대로 김노민이 환호성을 내질렀다.

“저 얼마 전에 북극에서 살아남기 읽었어요!”

“…….”

그는 씨익 웃으며 가슴을 탕탕 두드렸다.

“이번엔 제가 기똥차게 활약하겠습니다. 기. 똥. 차. 게!”

쟤 좀 불안한데….

김노민이 이렇게 나올 때 결과는 딱 반반이다.

방송을 혼자 캐리하거나.

아무것도 못하고 망하거나.

…이번 촬영 괜찮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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