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밀하게 위대하게 (6)
일망타진.
그 사자성어가 완벽하게 어울리는 상황이었다.
박재필을 비롯해 그와 손을 잡았던 이들을 단 한 명도 빠짐없이 모두 체포하는 데 성공했다.
검거까지 모두 끝나고 나서야 알게 된 사실인데.
박재필은 한국에서 태어나 북한의 사상에 세뇌된 인물이었으나.
그와 관련해 이번에 체포된 이들 중 50% 이상이 북한의 간첩이었다.
이번 일을 위해 나에게 계약금 100억 중 선수금으로 지급한 30억도 국내 출신의 내통자가 사업을 통해 마련한 돈이었다.
우스운 일이지.
근데 더 재미있는 건.
이 자식들이 원래부터 최종적으로 나머지 70억을 줄 생각이 없었다는 것이다.
애초에 자금력도 그걸 나에게 줄 만큼 여유롭지가 않았다고 한다.
“안 봐도 뻔하지.”
송재훈 PD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이미 찍고 나서 넷플릭트로 공개가 되고 나서 준다고 했잖아?”
“응.”
“공개가 되어버리면, 결국 너도 그쪽과 손을 잡은 사람이 된 거잖아. 그거 가지고 협박해서 넘어갈 생각이었던 거겠지.”
어느 정도 예상은 했다만, 실제로 그럴 생각이었다고 들으니 헛웃음이 났다.
“그러면 단순히 이번 건만 하고 넘어가진 않았겠네.”
“당연하지. 30억이나 투자했잖아?”
그는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앞으로 네가 만드는 모든 작품에 관여하면서 자신들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폭로하겠다고 협박하려 했겠지.”
“그렇게 치면 싸게 먹힌 거겠네.”
“대충 조사해보다 보니까 단순히 TV프로그램 외에도 SNS나 큐튜브 같은 플랫폼에서 영향력을 꽤 끼쳤다나 봐.”
“진짜 무서운 놈들이네.”
북한 놈들이 현실 사회에 만연하게 퍼져서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는 게 소름 돋았다.
“다들 처음엔 돈에 눈이 멀어서 손을 잡았다가, 시간이 흐르면 그들과 공범으로 엮여서 돈이 아니어도 어쩔 수 없이 요구를 들어줬던 것 같더라.”
하긴.
어지간한 사람들이면, 북한 측에서 저렇게 가족들까지 거론하며 협박을 하는데, 어떻게 버티겠는가?
“여하튼 고생했어. 고맙다.”
“아니야. 검찰분들이 고생하셨지.”
송재훈 PD는 웃으며 말했다.
“참, 편집은 바로 내일부터 시작하려고.”
“그렇게나 빨리?”
“응. 안 그래도 이번 건에 벌써부터 기자들이 붙었더라고.”
“진짜 빠르네.”
“원래 이런 사건일수록 외부로 빨리 퍼지잖아.”
“검찰 측에는 내가 따로 부탁해봐야겠네.”
“응. 당분간 엠바고 해달라고 정리 좀 해줘.”
“그렇게 할게.”
최소한 다큐멘터리 공개시기까지는 언론으로 새어나가면 안 되니까.
최서준 검사에게 말하면, 문제없이 처리해 줄 것이다.
“편집하는 덴 얼마나 걸리겠어?”
“길어도 2주 안에 처리할게.”
“방영일도 바로 잡을 수 있나?”
“응. 이 정도 건이면, 특별 편성까지 해줄 만하지.”
그는 걱정하지 말라는 듯 가슴을 탕탕 쳤다.
“내가 국장님 멱살을 잡아서라도 늦지 않게 편성할 테니까 걱정 마.”
“하하핫. 그래, 그건 네가 좀 수고해줘.”
* * *
영화 크랭크인까지 열흘을 남겼을 무렵.
KTS 방송국을 통해 다큐멘터리가 공개되었다.
그것도 무려 황금 시간대인 토요일 오후 10시에 말이다.
평소 같으면 드라마가 방영될 시간이었으나.
운이 좋게도 드라마가 결방이 되었고, 송재훈 PD의 활약으로 치고 들어가는 데 성공했다.
“그러니까 이게 오빠가 며칠 동안 피곤해했던 이유라는 거지?”
“응.”
“이상한 것만 아니면 돼.”
유나희는 팔짱을 낀 채 소파에 몸을 묻었다.
그녀는 이번 사건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었다.
알려주면 괜히 불안해하고 걱정할 것 같아서 모르는 게 나을 것 같다고 판단했으니까.
“뭐라도 시킬까?”
그녀가 휴대폰을 들어 배달 어플을 켜기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먹으면서 볼 만한 내용은 아니야.”
“그래?”
오래 지나지 않아, 광고가 끝나고 다큐멘터리가 방송되었다.
-간첩 : 미디어를 통한 침투.
유나희는 흠칫하며 날 바라봤다.
“제목이 이상한데?”
“일단 한 번 봐봐.”
다큐멘터리는 장장 1시간 30분 동안 방영되었다.
허나, 중간 광고가 없는 데다가 숨 막히는 장면이 연신 이어졌던 덕분에 집중도가 높아서 자리에서 일어설 시간이 없었다.
마침내 다큐멘터리가 마무리되고, 프로그램이 종영되었다.
“어땠어?”
유나희에게 물으며 그녀를 바라보다가, 나도 모르게 흠칫했다.
“뭐야?”
나는 잘못 봤나 싶었지만, 다시 봐도 유나희의 볼에는 눈물이 맺혀있었다.
“왜, 왜 울어?”
당황스러웠다.
이 다큐는 굳이 따지자면 첩보 장르에 가깝지, 감동이나 신파와는 전혀 궤를 달리했으니까.
나는 급하게 티슈를 뽑아 그녀에게 건넸다.
“아잇….”
유나희는 티슈를 꾹 눌러 눈물을 닦아내고는 앙칼진 눈으로 날 바라봤다.
“뭐야, 대체?”
…내가 뭔가 잘못한 건가?
오해할 만한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닐 텐데.
괜히 죄인이 된 느낌이다.
“혹시 내가 실수한 거 있어?”
일단 사과부터 해야 되나, 고민하고 있는데.
“아니, 왜 말 안 했어?”
“…응?”
유나희는 새빨개진 눈으로 내 눈을 응시했다.
“이런 일 있었으면 미리 말해야 될 거 아니야?”
“아니, 나는 나희 네가 걱정할까 봐….”
“걱정을 해도 같이 해야지.”
그녀는 똑 부러진 목소리로 말했다.
“이렇게 오빠 혼자 전전긍긍하면서 마음고생 하다가 해결되고 알려주면 내가 좋아할 것 같아?”
“…아.”
그제야 어떤 마음인지 알 것 같았다.
“나한테 말하지도 않고 홀로 얼마나 고생했… 흐이잉.”
그녀는 다시금 울음을 터뜨렸다.
“미안해, 미안해.”
나는 유나희를 품에 안고 토닥였다.
“다음부터는 무슨 일 생기면 다 말할게.”
“…우리가 어린 애도 아니고, 일 생기면 같이 고민해야지.”
“알았어. 그렇게 할게.”
왠지 모르게 마음이 뭉클해졌다.
단순히 나에게 의지하려는 게 아니라.
함께 손을 잡고 나아갈 사람으로 생각해준다는 게 가슴 깊이 와 닿았으니까.
이런 사람이라면, 단순히 연인이 아니라, 평생을 함께 해도 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새삼스럽지만, 여자친구 진짜 잘 만났다니까.
“이제 그만.”
유나희는 조심스레 내 품에서 벗어났다.
눈물을 흘린 게 부끄러운지 고개를 홱 돌렸다.
“나 세수하고 올게.”
“응.”
“이쪽 보지 마.”
“안 봐.”
힐끔.
“부끄러우니까 쳐다보지 말라고!”
유나희는 발끈 소리를 지르고는 화장실로 향했다.
…저러니까 더 귀엽네.
나는 피식 웃으며 휴대폰을 꺼내들었다.
인터넷을 확인하자, 역시나 예상했던 대로 포털 사이트는 기사로 도배가 되어있었다.
방영이 종료됨과 동시에 엠바고로 막아두었던 기자들이 불티나게 기사를 올린 것이지.
당연한 말이지만, 워낙 자극적이고도 현실과 맞닿은 민감한 주제였기에 온갖 커뮤니티는 활활 불타오르고 있었다.
-와, X발. 개쩐다.
-이거 실화 맞음? 페이크 다큐 아니고 진짜임?
-ㄴ 기사 뜬 거 보면 모름? 100% 현실임.
-미친. 강준수 감독한테만 접근한 건 아닐 거 아님?
-ㄴ 검찰 발표에 의하면, 최소 20개 이상 프로그램에 이런 식으로 접근했다고 되어 있음.
-ㄴ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북한 공산주의 사상에 세뇌되고 있던 걸 수도 있다.
-ㄴ 그렇게 생각하니까 소름 돋네요.
-근데 이거 진짜 강준수만이 할 수 있는 것 같음.
-ㄴ ㄹㅇㅋㅋ 어지간한 하꼬 작감이었으면 무서워서 밀렸을 듯.
-ㄴ 맞아요. 마지막에 검거될 때 보셈. 저 브로커 눈 반쯤 돌아가서 사백안으로 지랄하는데 개무서웠음.
-강준수 감독이 진짜 대단하다.
-ㄴ 맞아. 강준수 아니었으면 최소 10개 이상 프로그램은 더 저렇게 사상 주입됐을 듯.
-님들 그러고 보니, 저 ‘밤낚시 강태공’ 프로그램에서 자막이 뭔가 묘한 거 있었는데 이것도 그거 아님? 사진 올릴게요.
-ㄴ 맞네. 이거 살짝 세뇌 느낌 있음.
-나는 강준수 감독 영화 만드는 줄 알았는데.
-영화 만들기는 만드는 모양임. 그러니까 저렇게 접근했지.
-근데 용기가 진짜 대단하다.
-저 정도 담력은 되어야 글로벌 클래스가 될 수 있는 거구나, 싶기도 하네요.
-강준수 감독 당분간 좀 쉬어야 할 듯.
-나라도 진 빠져서 한 1년은 쉴 것 같음 ㅋㅋ
“뭐 보고 있어?”
어느새 세수를 하고 돌아온 유나희는 내 옆에 찰싹 달라붙어앉았다.
“커뮤니티 반응.”
“장난 아니겠네.”
“응, 한 번 볼래?”
“다 오빠 칭찬이지?”
“거의?”
“잘하긴 했어.”
유나희는 허심탄회하게 말했다.
“진짜 나였어도 무서워서 함부로 못 움직였을 것 같아.”
그녀는 내 머리를 살포시 쓰다듬었다.
“고생했어, 오빠.”
***
“허어….”
“참나.”
“허허허.”
실내에선 한숨과 탄식 그리고 헛웃음이 연신 터져 나왔다.
테이블을 가운데 두고 모여 있는 이들은 평론가들이었다.
이번 다큐멘터리를 본 그들은 대책 회의를 하기 위해 모였지만, 다들 낙담스러운 건 사실이었다.
강준수라는 사람이 몰락하기만을 바라고 있었는데.
오히려 그가 전혀 시도한 적이 없었던 분야인 다큐멘터리로 시청률 22%라는 쾌거를 거뒀고.
그 내용을 통해 대중들은 그를 찬양하고 있었으니까.
이미 국내 다큐멘터리 시상식에서도 수상은 정해져있다는 여론까지 나와 있을 지경.
평론가 하나가 눈치를 보다가 무거운 침묵을 깼다.
“이거 반응을 해야 되지 않습니까?”
“그러면 칭찬을 해야 될 수밖에 없는데요.”
“그렇다고 이번 일로 까내릴 순 없잖습니까?”
“맞아요. 무조건 애국자라며 칭찬은 해야 될 텐데요.”
“논란이 될 만한 여지 자체가 아예 없어서….”
의견이 분분하게 나누었다.
“아예 평론을 쓰지 맙시다.”
“그건 힘들지 않습니까? 이런 일에 입 다물고 있으면 오히려 저희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질 겁니다.”
“맞습니다. 쓰긴 써야 돼요.”
“그러면….”
평론가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미간을 구기며 말했다.
“눈 한 번 딱 감고 좋은 말을 써야 될까요?”
“하아아….”
짙은 한숨이 다시금 실내를 채웠다.
회의는 길어졌지만,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강준수 감독이 워낙 대단한 일을 해내서 까내릴 여지가 없다는 결론에 다다르고 있을 뿐이었다.
결국 참다 못한 평론가 하나가 새로운 의견을 꺼냈다.
“차라리 이렇게 합시다.”
“어떻게요?”
“좋은 말을 쓰기보다는 사실을 그대로 나열합시다.”
“…나라를 위해 고생했다?”
“그러면 너무 거창해보이잖습니까?”
평론가는 고개를 저었다.
“애국을 했다, 이 정도만 합시다.”
“그 정도가 최선이겠네요.”
“어휴, 어쩔 수 없습니다.”
“그러면 그 정도 논조로 사설 써서 올리겠습니다.”
“네. 저도 그 수준으로 다큐멘터리 평론 쓰겠습니다.”
“다들 일어납시다.”
그들은 참담한 심정으로 회의를 마무리했다.
몇 시간 뒤.
인터넷엔 그들의 평론이 올라왔다.
최대한 지양하려 했으나.
결론은 칭찬일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인성이 꼬였어도 평론가가 거짓을 꺼낼 수는 없었으니까.
이 악물고 쓴 듯한 평론을 읽은 강준수는 호탕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하핫.”
그들이 평론을 쓰면서 어떤 심정이었을지 예상이 되었으니까.
‘이거 쓸 때 분명 똥 씹은 표정으로 썼겠는데?’
그 상상을 하니, 입가에 웃음기가 사라지질 않았다.
허나, 그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기왕 이렇게 된 거….’
강준수는 다시금 의지를 다졌다.
‘좀비물까지 연타석으로 대박을 터뜨려보자.’
그 후에 정체를 공개한다?
평론가들은 벙찌다 못해 분해서 이를 빠드득 갈 수밖에 없을 터.
‘그 표정을 한 번 보고 싶네.’
강준수의 입가엔 회심의 미소가 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