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 번 사는 프로듀서-556화 (557/601)

관심 (2)

얼어붙은 호수에 빠진 뒤 돌아온 숙소 안.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고 나왔음에도.

“푸에취!”

재채기가 연신 터져 나왔다.

“괜찮으세요?”

“아니요.”

나는 도끼눈으로 한시아를 바라봤다.

“감기 걸린 것 같아요.”

“그럴 리가 없어요.”

그녀는 장난스레 웃었다.

“몸이 잠깐 놀란 것뿐이에요.”

병간호를 해주러 온 건지, 놀리러 온 건지, 원.

“그리고 여기서는 감기 안 걸려요.”

“왜요?”

“너무 추워서 감기 바이러스가 없대요.”

“…….”

차게 식은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자, 한시아는 억울하다는 듯이 말했다.

“진짠데. 바이러스가 다 죽는다고 했어요.”

“엣취!”

또다시 재채기가 나왔다.

“그렇다기엔 지금 너무 추운데요.”

오들오들 몸이 떨렸다.

“그래요?”

한시아는 장난기가 다분한 표정을 짓더니.

“아, 어쩔 수 없네.”

방문을 닫고는 갑자기 외투를 벗었다.

“왜, 왜요?”

“그거 몰라요?”

내가 흠칫했으나, 그녀는 태연하게 어깨를 으쓱였다.

“추울 땐 신체끼리 맞부딪쳐서 온도를 공유해야 된다던데.”

“…….”

나는 이불을 덮어썼다.

“저 괜찮은 것 같아요.”

그녀는 반쯤 벗은 외투를 팔에 걸친 채 물었다.

“진짜요?”

“네.”

“다 나았어요?”

“예.”

그녀는 놀리듯 눈웃음을 지었다.

“내가 만병통치약이네!”

“…….”

진짜 요망하다, 요망해.

“근데 아까 열은 있지 않았어요?”

“괜찮다니까요.”

“아니, 장난 안 칠게요.”

“…….”

한시아는 손등을 내 이마에 가져다 댔다.

“음, 잘 모르겠는데.”

그녀는 잠시 고민하더니.

불쑥.

갑자기 다가와 자신의 이마를 내 이마에 가져다댔다.

“살짝 뜨거운 것 같기도 하고.”

화들짝 놀라, 나는 뒤로 고개를 떼어냈다.

나도 모르게 얼굴이 확 붉어졌다.

“열나시는 것 같은데요?”

“아니에요.”

“진짜 괜찮아요?”

“네.”

괜한 민망함에 고개를 돌렸다.

“저 좀 쉴게요.”

“필요한 거 있으면 불러요. 아프면 말하고.”

“그럴게요.”

“아파도 혼자 끙끙 앓지 말고요. 밑에 상비약 많으니까.”

한시아는 신신당부를 하며 방에서 빠져나갔다.

“후아.”

그녀가 가자마자 나는 숨을 몰아쉬었다.

한동안 뜸하나 싶더니만, 요즘 들어 또 훅 들어오는 느낌이다.

나는 고개를 휘휘 저어 사념을 털어내고 휴대폰을 바라보았다.

갤러리에 들어가자, 유나희와 함께 찍은 사진이 큼지막하게 날 반겼다.

그래.

나한텐 유나희뿐이지.

***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촬영 캠프에 추가 배우진이 합류했다.

단순히 배우들이 온 것도 반가운 일이지만, 그보다 더 반가운 건.

“이게 ‘스페이스링크’라는 거예요.”

데이터 팀 스태프가 한국에서 직접 공수해왔다고 하는데, 태어나서 처음 보는 물건이었다.

“TV수신기처럼 생겼는데?”

“비슷해요. 이것도 인공위성에서 전파를 수신하는 거니까.”

“설마 이거 인터넷 되는 거야?”

“예, 맞습니다.”

“……세상 많이 좋아졌네.”

저거 하나만 달아 두면, 지구에선 어디든지 인터넷 사용이 가능하다고 한다.

“이건 얼마나 하는데?”

“수신기는 한 100만 원 정도 하는데, 한 달 이용료는 10만 원 정도요.”

개인이 사용하기에는 비싸지만.

우리 같은 단체가 사용하기에는 크게 부담이 없지.

박호중 PD는 눈을 빛내며 함박미소를 지었다.

“드디어 그 지겨운 고스톱에서 벗어나겠네요.”

“맞아요. 얼마나 할 게 없었으면…….”

이소현은 짠한 눈으로 날 바라봤다.

“가위바위보로 얼음물에 입수하는 내기를 했겠어요?”

나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많이 추웠어요.”

잡담도 잠시.

“어, 된다.”

휴대폰에 와이파이가 잡히기 시작했다.

“……진짜 되네.”

지이잉-.

징-.

지잉-.

그동안 쌓였던 알림이 몰아서 오기 시작했다.

그때, 와이파이를 설치해준 스태프 하나가 내게 다가왔다.

“참, 감독님.”

“응?”

“한예린 팀장님이 연락 한 번 달라고 하셨어요.”

“한 팀장님이?”

“네.”

“그래, 알았어.”

무슨 일이지?

어차피 지금 당장 촬영에 들어가는 것도 아니기에, 곧장 자리를 옮겨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수신음이 한참 울린 뒤에야 한예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안녕하세요, 감독님!

“네, 팀장님. 잘 지내셨죠?”

-그럼요.

“연락 달라고 하셨다고 들어서요.”

-맞아요. 전해드릴 사안이 몇 가지 있어서요. 조금 길어질 수 있는데 통화 괜찮으세요?

“예. 시간 많습니다.”

-네, 먼저 ‘뉴 패밀리’의 메인 PD 변경 관해서 말씀드릴게요.

“……잠깐만요. ‘뉴 패밀리’요?”

그건 이수정 PD가 담당하는 건데.

“수정이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겼나요?”

-이수정 PD님이 퇴사하셨어요.

“……네?”

당황스러웠다.

예상치도 못한 일인데.

“혹시 트러블이 있었던 겁니까?”

-아니요. 좋은 스카우트 제안이 왔다고 하시더라고요.

“……아.”

-오래도록 고민하다가 결론을 내리셨는데, 그래도 저보다 강준수 감독님께 먼저 이야기드리고 싶다고 하셨거든요. 그런데 감독님께 연락이 안 되는 시점이라…….

“예, 어쩔 수 없죠.”

특정인과의 연락이 문제가 아니라, 통신 자체가 불가능했기에 불가항력이었다.

-한참 기다리시다가 결국 얼마 전에 사표 내시고, 이직하셨습니다.

“어디로 옮긴다고 하던가요?”

-‘투유차이나’라고, 중국계 회사입니다.

한국에 있을 때, 그쪽 자본이 물밀 듯이 밀려온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이수정 PD도 그러한 제안을 받았던 모양이다.

-그래서 강준수 감독님께 죄송하다고, 한국 오면 꼭 연락 좀 부탁드린다고 전달해달라고 하시더라고요.

“알겠습니다. 조만간 연락 한 번 해봐야겠네요.”

-예. 그래서 이수정 PD의 추천을 받아 제가 오현민 PD를 메인 담당으로 올려뒀습니다. 아무래도 같은 ‘뉴 패밀리’에 있었던지라, 프로그램에 대해 잘 아실 것 같아서요.

“잘하셨습니다.”

폐지하는 것보다는 그게 낫지.

-그 외에는 추가적으로 감독님의 영화 판권이…….

***

“컷, 오케이!”

나는 박수를 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주아린 씨 완전 물올랐는데요?”

“감사합니다.”

그녀는 부끄러운 듯 고개를 꾸벅였다.

주아린의 연기는 날이 갈수록 좋아지고 있었다.

매일 같이 고점을 갱신하고 있는 수준이니 더 말할 것도 없지.

작은 문제가 있다면, 이소현의 상태가 살짝 불안하다는 점 정도?

스케줄을 조정할까 했으나, 본인의 의지도 강했고.

다행히 촬영을 마치고 나면 어느 정도 컨디션 회복도 되기에 쉬엄쉬엄 진행을 하고 있었다.

“요 며칠 동안은 날씨도 잘 따라주네요.”

“그러게요.”

여전히 기온은 영하 20도를 하회했으나, 바람이 세차게 불지 않아 체감 온도로는 버틸 만했다.

게다가 적당히 눈송이가 떨어지는 기상 덕분에 촬영하기엔 최적화된 날씨라고 봐도 무방하지.

“요즘은 좀 평화롭네요.”

박호중 PD는 내 옆에 다가와 의자를 정리하며 말했다.

“처음에 러시아 왔을 때만 해도 엄청 정신없었잖아요.”

“그렇지.”

주아린과 한시아의 트러블도 심했고.

추운 날씨에 적응하는 것부터.

매일 같이 오는 눈보라로 촬영도 취소되었고.

심지어 나는 조난까지 당했으니까.

“그래도 계절이 바뀌니까 날씨가 풀리는 건가 봐.”

“그게 아니라, 저희 작품이 성공할 기우인 걸로 하죠.”

나는 헛웃음을 흘렸다.

그러나 박호중 PD는 뻔뻔하게 말을 이었다.

“하늘도 저희의 노력을 보고 인정해주는 겁니다.”

“……너 종교 믿냐?”

“무교예요.”

녀석은 히죽대며 허리를 폈다.

“그것보다 슬슬 한국에서도 선배님에 대해 궁금해하는 것 같더라고요.”

“나는 왜?”

“강준수라는 사람 자체가 열심히하는 건 연예계뿐만 아니라, 일반인들한테도 다 알려져 있잖아요.”

내가 직접 인정하긴 부끄럽지만, 사실이긴 하다.

군장수로 활동하기 전까지, 거의 7년 가까이 공백 기간이 한 달을 넘지 않았으니까.

“그런데 워낙 활동을 안 하니까, 슬슬 의구심을 품는 것 같더라고요.”

“하긴, 최근 들어서는 아예 한국에서 모습까지 안 보이니까 더 그렇겠네.”

“예, 맞아요.”

“이번 작품 공개한 뒤에, 슬슬 이름을 밝혀야겠다고 생각은 했는데…….”

“조금 당겨야 되실 수도 있어요.”

“응.”

기왕이면 누군가에 의해 들키는 것보단, 내 입으로 직접 밝히는 게 나으니까.

“한국 가면 더 분주하게 움직여야겠다.”

내가 직접 밝히냐.

아니면, 기자가 파내느냐.

잘하면 촉각을 다투는 문제가 될 수도 있겠는걸?

“최대한 서포트하겠습니다.”

“그래, 고맙다.”

촬영장엔 활기가 돋아났다.

새로운 배우들이 함께 참전을 하기도 했고.

아무래도 인터넷을 통해 외부와 소통이 되며 세상 돌아가는 소식을 듣다 보니, 문명 있는 사회에 사는 느낌이었으니까.

물론, 그만큼 외부에서 더 많은 연락도 오기 시작했다.

그 중에서도 제일 반가운 건 역시나.

-왜 연락 안 했어?!

유나희였다.

특유의 카랑한 목소리에도 웃음이 날 지경.

“못 한 거지.”

-아니, 그거 말고.

그녀는 따지듯 물었다.

-조난당했었다며. 왜 이야기 안 한 거야?

“나희, 네가 걱정할까 봐 안 했지.”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나 완전 멀쩡해. 건강하다니까.”

-그런 이야기는 해줘야지.

유나희의 볼멘소리가 전해져왔다.

-서운해.

“미안해.”

하긴, 내 입장에서도 유나희가 타지에 촬영 가서 다쳤다는 소식을 본인에게 듣지 못하면 섭섭할 것 같다.

“다음부터는 바로바로 연락할게.”

-그래, 한 번만 봐준다.

직접 보지 않아도 유나희의 입술이 뾰로통하게 나와 있는 게 상상이 가서 피식 미소가 났다.

-아, 그리고 하나 더.

“뭔데?”

-내가 왜 내 남자친구 사진을 다른 여자 SNS에서 봐야 되는데!

“그게 무슨 소리야?”

-한시아! SNS! 팔찌!

“아아.”

무슨 이야기인가 했네.

“팔찌는 저번에 이야기했잖아.”

-그렇긴 하지만! 어쨌든!

……귀엽다.

분명 앙칼진 목소리인데, 질투하는 것 같아서 미소가 나왔다.

-지금 웃고 있지?

“어?”

-안 봐도 뻔해. 또 헤벌쭉 웃고 있겠네.

……어떻게 알았지.

-안 되겠어. 나 갈 거야.

“어딜 나가?”

-아니, 내가 간다고.

“……응?”

-나 러시아 간다고.

유나희는 대뜸 선언했다.

-내일 출국할 거야.

“진심이야?”

-응.

이렇게 갑자기 온다고?

“앨범 준비는 어쩌고?”

-이미 다 끝났어. 날짜만 정하면 돼.

“…….”

-촬영 방해 안 할 거니까 일정대로 해.

“아니, 네가 일정을 잘 모르잖아.

-다 알지. 박호중 PD님한테 촬영 스케줄표 받았어.

이 프락치 자식이?

“근데 갑자기 무슨 핑계 대고 오려고? 여기 사람들 중에 너랑 나랑 사귀는 건 한시아랑 박호중 PD밖에 모르는데.”

-그냥 적당히 근처 지나가다가 들렀다고 하면 되지.

“아니, 무슨 러시아를…….”

-아, 몰라.

유나희는 짜증 섞인 목소리를 냈다.

-보고 싶은데 어떻게 하라고!

분명 목소리 톤은 화를 내고 있는데, 기분은 좋네.

“……그래서 진짜 온다고?”

-응. 핑계는 내가 알아서 댈 거니까 오빠는 그냥 가만히 있어.

이 정도면, 유나희는 다른 사람이 말려도 무조건 올 사람이다.

-어쨌든 조만간 보러 갈 거니까 얌전하게 기다리고 있어. 알았지?

뚝.

……이거 진심인 것 같은데.

늘 느끼는 것이지만.

한 번씩 엄청나게 저돌적이라니까.

전화를 끊고 나서도 다시금 미소가 피식 새어나왔다.

갑자기 찾아오는 건 조금 민망스럽긴 하지만.

간만에 얼굴 볼 생각하니 반갑네.

언제 도착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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