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 번 사는 프로듀서-570화 (571/601)

인간관계라는 건 (7)

띵동-.

초인종을 누르자마자 긴장감이 격하게 몰려왔다.

“크흠흠.”

지난번에 봤을 때는 유나희와 사귀던 시절이 아니었기에 크게 부담이 없었는데.

정식으로 교제하면서 진지한 관계가 되어버리니 괜히 어려운 상대라는 느낌이 들었다.

……잘 보이고 싶기도 하고.

또로롱.

도어락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며 등장한 인물은 다름 아닌.

“안녕하세요!”

유소희였다.

초장부터 당황스러웠다.

아니, 유나희가 맞이할 줄 알았는데.

“오랜만이에요.”

나는 어색하게 인사했다.

“잘 지냈어요?”

“그럼요!”

그녀는 해맑게 손짓했다.

“들어오세요.”

“예.”

“아, 근데요.”

유소희는 히쭉 웃으며 날 올려다봤다.

“말 놓으셔도 돼요, 형부.”

……형부.

기분이 묘했다.

저런 호칭 듣는 게 처음이었으니까.

“그, 그래.”

어색하게 대답하며 안으로 들어갔다.

평소에 뻔질나게 드나들던 곳인데 유나희의 동생이 있으니 왠지 모르게 낯선 느낌이었다.

“오빠 왔어?”

유나희는 앞치마를 두른 채로 부엌에서 고개를 내밀었다.

“응.”

아니, 잠깐만.

앞치마?

“얼른 와. 요리 다 됐어.”

왜?

이런 특별한 날인데 왜 네가 요리를 하는 거니.

그냥 시켜먹어도 될 것 같은데.

“형부.”

유소희는 슬쩍 내게 다가오며 속삭였다.

“형부 온다고 아침부터 요리 큐튜브 보고 장난 아니었어요.”

“……그래?”

“그래도 맛은 장담 못 해요.”

어, 나도 알아.

유나희 손맛이 참 기가 막히거든.

“그나저나 그건 뭐예요?”

그녀는 내 손에 들려있는 쇼핑백을 바라봤다.

“아, 이거.”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그녀에게 건넸다.

“오면서 선물 하나 샀어.”

“선물요?”

그래도 여자친구 가족이니 환심을 사보려고 백화점까지 들렀다.

“뭐예요?”

“그냥 가방이야.”

“헐, 대박.”

유소희는 환하게 웃으며 쇼핑백을 품에 안았다.

“풀어 봐도 돼요?”

“응.”

그녀가 쇼핑백을 열려는 찰나.

“유소희!”

유나희가 동생을 불렀다.

“이따가 확인해.”

“……알았어.”

유소희는 입술을 삐죽 내밀며 부엌으로 들어갔다.

유나희는 다그치듯 날 바라봤다.

“빈손으로 와도 된다니까 뭐 하러 사왔어?”

“……오다가 주운 거야.”

“오빠는 샤넬백을 길에서 줍니?”

“……그럴 수 있지.”

“앉기나 해.”

“넵.”

식탁 맞은편에 앉은 유소희는 안쓰러운 표정으로 날 바라봤다.

“형부 잡혀 사는 거예요?”

“아니야.”

“그런 것 같은데.”

“내가 확 잡고 있어.”

“…….”

전혀 안 믿는 눈치다.

유소희 얘도 유나희랑 비슷한 과인가 봐.

“참, 소희야.”

“처제라고 해요.”

“……그래.”

입에 안 붙기는 한데.

익숙해져야지.

“처제는 웹툰 그린다며?”

“아, 네. 맞아요.”

“제목이 뭐야? 엄청 잘나가던데.”

“그게…….”

그녀는 부끄러운 듯 민망한 표정을 지었다.

“왜?”

“제목이 조금 민망해서요.”

“뭐 어때.”

“‘이혼 후 로또 1등 감독님’이요.”

“……응?”

“요즘은 이런 제목이 대세예요.”

“하긴 직관적으로 보여야 독자들이 클릭하니까.”

유나희는 한심한 눈으로 유소희를 바라봤다.

“연애도 한 번 안 해본 애가 이혼은 무슨.”

“뭐가 어때서.”

“밥이나 먹자.”

유나희는 메인 디쉬를 식탁에 차려왔다.

걱정했던 것과 달리, 식사는 꽤나 그럴 듯했다.

파스타와 새우감바스.

그리고 레드 와인.

“처제도 술 마시나?”

“그럼요.”

“일단 건배 한 번 할까?”

“네!”

짠-.

와인글라스가 부딪치며 청량한 소리가 울렸다.

기대 반, 걱정 반으로 포크를 들어 새우 감바스를 하나 먹어보았다.

“이거 괜찮은데?”

“당연하지.”

유나희는 우쭐하게 어깨를 폈다.

“누가 했는데.”

“큐튜브 보고 요리했다는 소문이 있던데.”

그녀의 시선이 유소희에게로 쏘아졌다.

유소희는 모른 척 와인만 마시며 슬쩍 덧붙였다.

“감바스야 뭐 대충 새우에 올리브오일만 때려 넣으면 되는 거 아닌가?”

“너는 조용히 해.”

대화하는 거 보니까 찐 자매 맞네.

“파스타도 먹어볼게.”

나는 포크로 돌돌 말아 토마토 파스타를 한 입에 넣었다.

이게 쉬워 보이는데도 참 어렵다.

시판소스에 볶기만 하면 된다지만, 그러면 맛이 부족하니까.

그런데.

“……어?”

굉장한 감칠맛이 혀를 감쌌다.

“맛있는데?”

그윽한 토마토 향까지 입안을 채우고 있었다.

“깊은 맛이 나.”

그 말을 하기 무섭게.

“파스타는 배달시켜서 다시 담…… 읍읍!”

유나희가 급하게 유소희의 입을 막았다.

“조용히 해.”

…….

어쩐지 맛있더라.

내가 아는 유나희가 이렇게 요리를 잘할 리 없지.

유나희는 벌게진 얼굴로 토라지듯 말했다.

“가, 감바스는 내가 한 거야.”

“감바스가 제일 맛있어.”

유소희는 흐흐 웃으며 우리를 번갈아봤다.

“어쩐지 잘 어울리네요.”

“괜히 만나게 한 것 같아.”

유나희는 푸념 섞인 한숨을 내뱉으며 와인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밥 먹고 가라.”

“싫어.”

유소희는 클클대며 깐족거렸다.

“오늘 밤새도록 이야기하고 가야지.”

***

와인을 한잔한 뒤.

우리는 거실에 모여앉아 TV를 켜놓고 과일을 먹기 시작했다.

물론, TV에 나오는 프로그램에는 크게 관심이 없고.

세 명 모두 대화에 더 집중하고 있었다.

“헐, 그러면 그렇게 해서 만나게 된 거예요?”

“응.”

“대박.”

유소희는 감탄하며 입을 틀어막았다.

“그렇게 오래 되었을 줄이야.”

“꽤 됐지.”

정확히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녀에게 이성으로서의 감정을 품기 시작한 지는 꽤 되었으니까.

“저는 저희 언니 혼자 짝사랑한 줄 알았거든요.”

유소희는 엉덩이까지 들썩거리며 말했다.

“진짜 불쌍할 정도였다니까요?”

“……내가 언제.”

“한 번은 그런 적도 있어요. 저희 엄마까지 셋이서 있었는데, 언니가 혼자 술 마시다가 취해가지고 주절주절대고 주정부리는데…… 와, 저랑 엄마는 나희 언니가 대차게 차인 줄 알았다니까요?”

“나 그런 적 없거든.”

그녀는 언니의 말은 들은 체도 하지 않고 신나서 말을 이었다.

“두 분이 사귀기 전까지는 언니 혼자 상사병 걸린 줄 알았어요.”

“내가 언제!”

“그때 내가 웃겨서 찍어놓은 거 있는데 보여드릴까?”

“……그냥 가만히 있어.”

유나희는 어색하게 시선을 피했다.

“맞다. 형부. 그것도 있어요.”

“또 뭔데?!”

“아, 언니는 좀 가만히 있으라니까.”

유소희는 내 옆으로 바짝 붙었다.

“이거 보여드릴게요.”

그녀는 갑자기 유나희와 나눈 메시지 목록을 내게 보여주었다.

-언니 : 소희야.

-언니 : 남자가 크리스마스에 만나자고 하면 청신호지?

-유소희 : 이브? 아니면 25일?

-언니 : 25일.

-언니 : 그것도 중요해?

-유소희 : 이브에 누구 만나고 오겠네.

-언니 : 미친.

-언니 : 나쁜 새끼.

“……나희야, 이날 나랑 만났지 않아?”

내 기억으로는 크리스마스이브가 우리 1일이었는데.

“뒷 내용도 있어요.”

-언니 : 어, 아니다.

-언니 : 내가 요일 착각했네. 24일 맞네. ㅎㅎ.

-언니 : (오리가 웃는 이모티콘)

“……푸훕.”

“웃지 마라, 진짜.”

유나희의 얼굴은 부끄러움에 달아오르다 못해 귀까지 빨개져있었다.

“그만 보여줘!”

“알았어, 으히히.”

대화하는 내내 웃음이 가시질 않았다.

아, 물론 유나희만 빼고.

확실히 부모님을 만나는 것과 애인의 자매를 만나는 건 분위기 자체가 달랐다.

뭐라고 해야 할까.

말괄량이 여동생이 하나 늘어난 기분이랄까.

“맞다.”

“또 뭐?”

“아니, 그냥 궁금해서 뭐 하나 물어보려고.”

유나희의 흘기는 눈빛을 피해 유소희는 날 바라봤다.

“형부.”

“응?”

“두 분 결혼 언제 하실 거예요?”

쿨럭-!

절로 헛기침이 나왔다.

푸왁-!

유나희는 옆에서 이미 주스를 뿜었다.

“뭐야, 둘이 짜기라도 한 듯이 놀라네.”

유소희는 태연하게 눈을 꿈뻑거렸다.

“형부.”

“응?”

“결혼하실 거죠?”

사실, 나도 나이가 이제 30대 중반에 이르렀기에 결혼을 하긴 해야겠다고 생각이 종종 들긴 했으나.

막상 언제 어떻게 어떤 식으로 해야 할지는 아직 고려해보지 않았으니까.

유나희는 흘긋 내 얼굴을 바라봤다.

내 의견이 궁금한 모양.

“처제네 언니가 해준다고 하면 해야지.”

대답이 만족스러웠는지 유나희는 옅게 미소 지었다.

“와, 근데 하면 재미있겠다.”

유나희는 태연한 얼굴로 물었다.

“뭐가?”

“연예인 결혼식이면 축가도 엄청 화려할 거고, 하객들도 완전 빵빵할 거 아니야?”

소희야.

미안한데 네 언니 친구 별로 없어.

물론, 그렇더라도 참가할 사람은 굉장히 많을 터.

유나희의 지인들도 있을 테지만.

내 손님들도 적지 않을 테니까.

“그래서 언제할 거예요?”

“……응?”

“저도 친구들한테 자랑하고 싶단 말이에요.”

“글쎄.”

민망하게 웃었다.

“때가 되면 하겠지.”

“그래. 우리가 알아서 할 거야. 넌 가만히 있어.”

“알았어.”

유소희는 어깨를 으쓱이며 맹랑하게 과일을 포크로 쿡 찍었다.

“근데 진짜 기대된다.”

***

“오랜만입니다.”

“어, 감독님!”

“선배님 안녕하세요!”

짐을 챙겨 여의도 사무실로 출근했다.

군장수와 SN으로 활동하던 곳이 아니라, 나의 고향과 같은 스튜디오 J로.

정체도 밝힌 만큼, 구태여 사무실을 나눠서 사용할 필요는 없으니까.

물론, 군장수 시절에도 가끔 들르긴 했으나, 완전히 다시 돌아온 건 느낌이 달랐다.

“다들 잘 지냈지?”

“네!”

“이제 계속 여기로 출근할 거니까 다들 열심히 해보자고.”

“알겠습니다!”

나는 웃으며 감독실로 들어갔다.

내가 출근할 걸 알고, 직원들이 청소를 해뒀는지 깔끔하기 그지없었다.

이전 사무실에서 사용하던 짐을 꺼내 정리를 한 뒤.

커다란 의자에 풀썩 기댔다.

“역시 여기가 편해.”

함께하는 직원의 숫자 자체도 이전에 비해 스튜디오 J는 강준수 사단 전체가 있는 만큼 비교할 바가 되지 않았기에 훨씬 더 활기차고 북적이는 느낌이었다.

똑똑-.

노크소리와 함께 들어온 인물은 어윤중 본부장이었다.

“여기서 대화하는 건 간만이네.”

“그러게요. 하핫.”

그는 반갑게 의자에 앉았다.

“더 쉬라니까.”

“충분히 푹 쉬고 왔습니다.”

“난 너처럼 살면 미치지 않을까 싶다.”

어윤중 본부장은 클클대며 물었다.

“그래서 앞으로 계획은 뭔데?”

“당분간 제 작품 구상은 천천히 하고, CP 역할을 좀 충실히 하려고요.”

“그래. 창작의 영역도 좀 쉬어줘야 더 좋은 게 나온다더라.”

“네. 우선은 박호중 PD 새 작품 들어가는 것부터 도와줄 생각입니다.”

“잘 생각했어.”

어윤중 본부장은 안주머니에 손을 넣으며 새로운 화제를 꺼냈다.

“참, 하나 말해 줄 게 있는데.”

“예?”

“너 시상식 초대받았다.”

그는 작은 봉투를 내게 내밀었다.

“넷플릭트 작품도 시상식이 있어요?”

“아니, 그게 아니라.”

어윤중 본부장은 가볍게 입꼬리를 휘었다.

“네 다큐멘터리.”

“……예?”

“네가 얼마 전에 찍었던 그 ‘간첩 : 미디어를 통한 침투’ 말이야.”

그는 고갯짓을 하며 덧붙였다.

“이번에 일본 나고야에서 열리는 시상식에 최우수상 후보로 올랐어.”

어윤중 본부장은 나를 향해 엄지를 치켜올렸다.

“예능, 드라마, 영화에 이어서 이제 다큐멘터리까지 휩쓸겠네. 올라운더 감독 축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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