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과 불행은 (6)
박호중 PD는 사색이 된 채로 입을 열었다.
“일단 사인은 교통사고라고 하네요.”
“사망자는?”
나는 붕괴되는 멘탈을 부여잡고 물었다.
“누가 죽은 건데?”
그게 가장 중요했다.
“지금 확인된 바에 의하면…….”
그는 기자들의 메시지를 살피며 답했다.
“주아린 씨가 사망했다고 합니다.”
“…….”
나는 이마를 감쌌다.
“……대체 어쩌다가?”
“경기도 외곽의 시골길에서 주아린 씨가 과속을 했는데, 앞에 야생동물이 등장한 것 같아요. 그걸 피하려다가 가드레일을 밖으로 튕겨나간 것 같습니다.”
“…….”
“병원으로 황급히 이송이 되었으나, 응급실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사망한 상태셨다고 하네요.”
눈앞이 어질했다.
분명, 일본에 출국할 때만 해도 멀쩡하게 이야기했던 기억이 선명한데…….
“선배님.”
박호중 PD는 휴대폰을 내게 보여 주려다가 멈칫했다.
“사고 현장 사진이 올라와있긴 한데…… 안 보시는 게 좋을 것 같아서요.”
고개를 끄덕였다.
“못 보겠다.”
“예.”
그는 다시금 휴대폰을 거두었다.
“그래서 사고가 언제 일어난 건데?”
“어젯밤이라고 하네요. 오후 10시 경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그러면 바로 내일이 발인이겠네.”
“예.”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외투를 챙겼다.
“오늘 급한 업무는 캔슬해 줘. 그쪽으로 가 봐야겠다.”
“알겠습니다.”
***
주아린의 분향소는 평택에 차려졌다.
그녀의 부모님이 계시는 장소여서 그쪽으로 결정되었다고 한다.
“……하아.”
가는 내내 마음이 착잡했다.
주아린…….
하루아침에 사람 운명이 이렇게 되어버릴 줄이야.
그녀의 죽음이 안타까운 건 두말하면 잔소리였다.
하지만 단순히 내가 아는 사람이, 혹은 내 작품에 출연했던 배우가 세상을 등졌기 때문이 아니었다.
‘내가 아는 미래에서 주아린은…….’
그녀는 내가 회귀하기 전인 2030년까지 멀쩡하게 살아있었다.
전생에서는 내가 현생에서 얼마 전에 만났던 배우, 최진묵이 들어갈 예정이라던 그 영화에도 출연을 했으니까.
그런데 이번 생에서는 2027년인 현재 사망을 해버리고 말았다.
내가 아니었으면 그녀는…….
살았을 것이다.
아니, 살아있어야 했다.
그 생각에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았다.
나 때문인 건가…….
나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러한 사고가 머리를 잠식하자, 자꾸만 손이 떨려왔다.
내가 직접적인 원인을 제공한 건 아니라지만.
어쨌거나 나의 회귀로 인해 그녀의 수명이 단축된 건 맞으니까.
‘그러고 보니, 내 작품을 하고 나서 스케줄 쉬는 동안에 면허를 딴 것 같기도 하고…….’
내가 아니었으면, 2030년까지 행복하게 살면서 다른 영화까지 잘 찍었을 텐데.
-경로를 이탈하였습니다.
내비게이션 소리에 사념에서 깨어났다.
딴생각에 빠진 탓에 또 길을 잘못 들었다.
정신 차리자.
장례식장도 거의 다 왔는데, 내가 흐트러진 모습 보이면 안 되지.
지이잉-.
그때 휴대폰에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발신인은 다름 아닌, 한시아.
“네, 강준수입니다.”
-감독님, 통화 가능하세요?
“말씀하세요.”
-혹시 아린 언니 소식 들으셨나 해서요.
그녀의 목소리에서도 착잡한 기운이 전해져왔다.
“예. 안 그래도 지금 장례식장 가는 중입니다.”
-아아, 저도 가고 있어요. 혹시 언제쯤 도착하세요?
“저는 10분쯤이면 갈 것 같은데, 시아 씨는요?”
-저도 그 정도 걸릴 것 같아요. 괜찮으시면 같이 들어갈까요?
“그렇게 하시죠.”
-도착해서 전화드릴게요.
“그래요.”
전화를 끊고 고개를 휘휘 저어 잡념을 털어냈다.
일단은 눈앞에 펼쳐진 일부터 처리하자.
***
“안녕하세요, 시아 씨.”
“오랜만이에요.”
한시아와는 건조하게 인사를 나눴다.
아무리 그녀라도 오늘 같은 날은 정숙하는 게 맞으니까.
“혼자 오셨네요?”
“네.”
유나희에 대해 묻는 것 같았다.
“아무래도 나희 씨는 아린 씨랑 사이가 좋지 않으셨다 보니까…….”
“아, 그렇겠네요.”
둘이 얼굴을 본 적이야 있다지만.
미운 정이 들 만한 사이가 아니라, 서로에 대해 좋지 않은 감정을 품고 있었으니, 구태여 장례식에 참석하진 않기로 했다.
결국 남남이니까.
“저희 둘이 같이 들어가도 괜찮겠죠?”
“예. 문제없을 겁니다.”
다른 일로 단 둘이 다닌다면 문제가 되겠지만.
주아린과 함께 ‘멸망한 세계의 생존자’에서 한시아와 내가 작업을 했던 이력이 있기에 기자들이 이상한 기사를 쓰지는 않을 테지.
“들어가시죠.”
“네.”
내부는 여느 장례식장과 다를 게 없었다.
특이한 점이라고는 기자들이 줄을 지어있다는 것 정도.
그러나 장례식장이었기에 그들도 과하게 취재를 한다거나 선을 넘는 행위는 하지 않았기에 문제없이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상주는 주아린의 여동생이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감사합니다.”
“아린 씨 좋은 곳으로 가셨을 거예요.”
“부모님께서도 인사드려야 되는데…….”
주아린의 여동생은 송구스런 얼굴로 말했다.
“어머니 상태가 많이 좋지 않아서 안에 계시거든요.”
“괜찮습니다. 신경 쓰지 마시고 부모님 위로해 주세요.”
“감사합니다.”
나는 인사만 하고는 밖으로 나왔다.
식사를 하고 가라는 말을 들었으나.
그곳에 앉아 있지 못할 것 같아서 정중하게 사양했다.
한시아도 마찬가지였는지, 조심히 내 뒤를 따라 나왔다.
장례식장 건물의 뒤편.
다행히 이곳에는 기자들이 없었다.
“하아아.”
짙은 한숨을 토해내며 화단 벽돌에 엉덩이를 걸터앉았다.
한시아도 씁쓸한 얼굴로 내 옆에 섰다.
“기분이 너무 이상해요.”
“그러게요.”
이렇게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도 없이 한 사람을 떠나보낸다는 게 참으로 애석하고도 허무한 일이었다.
“주아린 씨 여동생 보셨죠?”
내가 무슨 말을 할지 알 것 같다는 듯 그녀는 고개를 푹 숙였다.
“아린 씨랑 똑 닮았으셨더라고요.”
상주를 볼 때마다 촬영장에서의 주아린 얼굴이 겹쳐지는 것 같아서 안에 오래 있지 못하고 나온 것이다.
“…….”
“…….”
무거운 침묵이 어깨를 짓눌렀다.
한참동안 정적이 이어졌다.
그러나 둘 모두 쉽게 입을 열지 못했다.
머리는 멍했다.
이전까지는 온갖 사념에 근심이 가득했다면.
지금은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시아야.”
그때 한시아의 매니저가 조심스레 다가왔다.
“다음 스케줄 가려면, 이제 슬슬 출발해야 되거든?”
나는 한시아를 바라보며 몸을 일으켰다.
“일어나죠.”
“네.”
한시아는 차분하게 내 뒤를 따랐다.
주차장에서 그녀는 차에 오르기 전, 문득 입을 열었다.
“한국 들어오면 얼굴 한 번 보자고 했는데, 이렇게 먼저 만나게 될 줄은 몰랐네요.”
“그러게 말이에요.”
나는 씁쓸함을 삼켰다.
“그나저나 무슨 일 때문에 보자고 한 거였어요?”
“중요한 건 아니니까 그건 다음에 이야기할게요.”
“그래요.”
“서울 조심히 올라가요.”
“시아 씨도요.”
한시아의 차가 먼저 떠난 뒤.
나 또한, 주차장을 나서려 했다.
그런데 그때.
“……어?”
저 멀리 택시에서 낯익은 얼굴이 장례식장으로 들어가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이소현?”
***
묘한 기운에 나는 장례식장을 떠나는 대신 차에 남아서 한참을 기다렸다.
그리고 한 시간쯤 뒤.
이소현이 빈소에서 한참의 시간을 보낸 뒤에야, 밖으로 빠져나왔다.
나는 곧장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휴대폰을 확인한 이소현은 자리에 선 채로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소현 씨, 저 강준수입니다.”
-네. 무슨 일이세요?
“저도 지금 장례식장에 와 있거든요.”
-……정말요?
그녀는 흠칫하더니,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7시 방향에 있는 검은색 SUV입니다.”
내 차를 발견한 그녀는 눈을 크게 뜨며 다가왔다.
나는 창문을 내리며 물었다.
“바쁘신 거 아니죠?”
“네.”
“잠깐 타셔도 돼요?”
끄덕.
그녀는 조수석에 탑승했다.
“김 실장님은 어쩌고 혼자 오셨어요?”
“아, 제가 소식을 듣자마자 급하게 택시를 타고 오는 바람에…….”
실제로 그런 것 같았다.
따로 메이크업이나 준비를 하고 온 게 아니라, 부랴부랴 왔다는 티가 낫다.
그녀는 어색하게 얼굴을 가렸다.
“괜찮아요.”
“제가 불편해서…….”
하긴.
거의 쌩얼일 테니까.
“마스크 같은 거 없나요?”
“거기 글러브박스에 있긴 한데…….”
“하나만 쓸게요.”
그녀는 마스크를 착용하고 나서야 마음이 놓였는지 고개를 들었다.
“참, 매니저님한테 연락은 아직 안 하셨죠?”
“네. 막 하려던 찰나였는데…….”
“어차피 서울 가실 거면 이거 타고 가실래요?”
“안 그러셔도 돼요.”
“아니에요. 저도 지금 올라가는 길이라서요.”
나는 옅게 미소 지으며 턱짓했다.
“안전벨트 매세요.”
“……아, 그러면 신세 좀 질게요.”
장례식장을 나와 서울로 출발했다.
나는 흘긋 이소현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나저나 안색이 좋아지신 것 같은데요.”
사실, 조금 전에 택시에서 내릴 때만 해도, 창백하고 경직되어 있는 것 같아서 굉장히 걱정했었다.
“여기 오실 줄도 몰랐어요.”
“…….”
그녀는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더니.
“감독님.”
어렵게 입을 열었다.
“혹시 바쁘신 거 아니면, 한 곳만 들러도 될까요?”
***
우리가 도착한 곳은.
“……여기였군요.”
주아린의 사고현장이었다.
다행히 어느 정도 수습이 되었는지, 피가 낭자하다거나 차량의 파편이 남아있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가드레일은 여전히 뜯겨나가 있었다.
사고 상황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주아린은 아마 여기서…….
“실은요.”
이소현은 가드레일 아래의 숲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제가 올 수 있을 줄 몰랐어요.”
“그래요?”
“네.”
이소현은 창밖을 바라보며 허심탄회하게 말했다.
“어젯밤에도 또 그랬거든요.”
여전히 배역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다는 말일 터.
“꿈에서 무당에 빙의되고…… 모르는 사람의 삶을 살아가고, 이게 꿈인지 현실인지도 잘 모르겠고.”
그녀는 마스크를 벗으며 숨을 깊이 내뱉었다.
그리고는 하염없이 펼쳐진 숲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저번 주에 주아린 선배님이랑 통화를 했어요.”
나는 듣고 있다는 의미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본인도 비슷한 경험을 해봤고, 어려웠지만 극복해냈다고요.”
“…….”
“그래서 저도 멋지게 딛고 일어날 거라 믿는다고 했어요.”
이소현은 입술을 꾹 깨물며 말했다.
“그렇게 몰입한 건, 제가 그만큼 연기를 사랑했다는 증거니까. 그러니까 저는 극복할 수 있을 거라고 응원해줬거든요.”
그녀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쉽지 않을 거라고 했어요. 저도 불가능하다고 생각했고요.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홀로 심연 같은 늪으로 계속 빠져다는 느낌이었으니까.”
이전에 이소현이 어떠했는지 알기에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있었다.
게다가 나 또한 회귀 전에 지독한 슬럼프를 겪어 봤기에 어떤 심리인지도 알 것 같았다.
“근데…….”
이소현은 주먹을 꽉 쥐고 고개를 들었다.
“딛고 일어나 보려고요.”
이전과 달리, 그녀의 눈빛에는 어느새 생기가 돌아와 있었다.
“주아린 선배님이 해주신 말 중에 제일 인상에 깊었던 말이 있거든요.”
그녀는 목이 메는 듯 눈을 꽉 감았다.
“여기서 무너진다고 해서 이소현이 끝나는 건 아니다. 인생이 쫑나는 것도 아니고, 연기가 아니더라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건 많고, 갈 수 있는 길도 많다. 그러니까 너무 버겁게 생각하지 마라. 하지만…….”
이소현은 힘껏 눈을 떴다.
“네 꿈을 이루려면 딛고 일어나라.”
그녀는 어금니를 깨물고서 말을 이었다.
“그 말을 들었던 당시에는 그걸 받아들이지 못했어요.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도…… 아니, 아침에 눈뜨는 것도 버거웠으니까. 그런데…….”
이소현의 표정에서는 다채로운 감정이 전해져 왔다.
“이젠 알 것 같아요.”
그녀의 목소리에서는 어딘가 비장함까지 느껴졌다.
“그러니까 어떻게든 딛고 일어나 보려고요.”
이소현의 꼭 쥔 손을 보고 알 수 있었다.
오래지 않아 그녀는 극복해내리라는 것을.
“감독님.”
이소현은 고개를 돌려 날 바라봤다.
“감독님께서도 고민이 있으시죠?”
“……티 났나요?”
끄덕.
“무슨 고민하고 계시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녀는 진중하게 말했다.
“주아린 선배님은 본인 때문에 감독님이 우울해하시는 걸 보고 싶어 하지 않으실 거예요.”
“정말 그럴까요?”
“네.”
진심이라는 듯 이소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주아린 선배님은 그런 분이셨으니까요.”
“…….”
“그러니까 감독님도 어깨 펴기로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