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 사는 프로듀서 (4)
“프러포즈.”
탁.
“여자에게 고백하는 법.”
타닥.
“여자가 받고 싶은 청혼.”
네이버 검색창에 열심히 입력하고 있었으나.
-아무리 멋있게 고백해도 남자가 잘생기지 않으면 끝입니다.
-준비물 : 얼굴.
-님이 잘생겼으면 뭘 하든 받아줌.
-이거 지식인에 물어보면서 검색하고 있는 거 보니까 님은 안 될 듯 ㅋㅋ
“에라이.”
나는 결국 검색창을 닫았다.
“뭔 놈의 되도 않는 소리만 하고 있어.”
그래.
애초에 인터넷에 청혼 방법을 검색하는 것부터가 문제지.
“어휴….”
짙은 한숨이 푹 새어나왔다.
문제는 어떻게 청혼을 해야 할지 감이 오지 않는다는 것.
최고급 레스토랑에서 담백하게 반지를 하나 꺼낼까.
놀이공원을 통째로 빌려서 화려하게 불꽃놀이를 해볼까.
그것도 아니면, 유람선을 하나 대여해서 드론으로 유나희의 이름을 밤하늘에 수놓을까.
온갖 생각을 해봤지만, 유나희가 확 끌려할 만한 프러포즈는 떠오르지 않았다.
“대체 뭘 해야 하지?”
인생에 단 한 번뿐인 청혼이다.
유나희에게도 기억이 남으면 좋겠지만.
더불어 나에게도 인상적인 프러포즈이길 바라고 있었으니까.
‘뭐 좋은 거 없나?’
한창 머리를 쥐어짜고 있던 그때.
똑똑.
문이 빼꼼 열리며 어윤중 본부장이 고개를 내밀었다.
“강 PD. 바빠?”
“아니요, 들어오세요.”
그는 염려스런 얼굴로 재차 물었다.
“바쁜 거 아니지?”
“놀고 있었어요. 무슨 일이신데요?”
“아니, 이번에 내가 이번에 작품 하나를 대차게 깠거든.”
“공모전에 들어온 거요?”
“응. 근데 그게 우리 사모님이 쓴 거더라고요.”
“…사장님 아내분이요?”
“맞아.”
그는 헛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개연성, 캐릭터성, 스토리 다 엉망이라고 깠는데, 어쩐지 사장님 표정이 안 좋으시더라고.”
“어유, 불똥 떨어지겠는데요?”
“나 찾는다고 하시길래 도망왔다.”
“하하하하. 여기서 좀 쉬다가 가세요.”
“그래.”
그는 소파에 앉았고.
나는 컴퓨터 의자에 앉은 채 대화를 이어갔다.
“본부장님, 저 하나만 여쭤봐도 됩니까?”
“뭔데?”
“본부장님은 프러포즈 어떻게 하셨어요?”
“나 그냥 단출하게 꽃다발 하나 사고 무릎 꿇고 반지 줬는데?”
“형수님께서 좋아하셨죠?”
“응. 둘 다 가난할 때라서 매번 아껴 쓰다가 처음으로 꽃 선물한 거거든. 완전 좋아서 방방 뛰더라.”
“아아, 그렇군요.”
“왜, 너도 이제 청혼하려고?”
“생각 중이에요.”
“하긴, 너도 할 때 됐지.”
나는 끄덕이다가 문득 궁금증에 물었다.
“근데 결혼하는 게 맞겠죠?”
“갑자기 왜?”
그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너 지금 행복하지 않아?”
“행복하죠. 나희랑도 엄청 잘 맞고요. 그 누구와 만나도 지금보다 좋을 수는 없지 않을까, 싶어요.”
“그런데 뭐가 걱정이야?”
“저는 나희랑 결혼을 하고 싶고, 또 하면 잘 살 것 같기도 한데….”
솔직하게 말했다.
“요즘 주변에서 이혼을 너무 많이 하니까요. 주변에서 이혼한 감독님들도 꽤 봤고요. 이게 결혼하면 뭔가 달라지나 해서요.”
“달라지긴 하는데, 중요한 건 따로 있어.”
“예?”
어윤중 본부장은 피식 웃더니.
“무엇보다도 그분들은 유나희랑 결혼한 게 아니잖아.”
“…아!”
한 마디로 이해가 되어버렸다.
상대는 유나희다.
“허튼 생각 말고 빨리 잡기나 해.”
“그래야겠네요.”
***
“크흡!”
“풉!”
고등학교 동창 놈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무슨 프로포즈를 인터넷에 검색해서 하고 있어?”
“한심하다, 한심해.”
“야, 우리가 놀릴 때가 아니야.”
“왜?”
한 친구 놈은 날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저런 놈도 유나희 씨랑 만나서 연애하는데… 나는 언제 내 짝 만나냐?”
이번엔 내가 웃었다.
간만에 동창들을 만나서 또 프로포즈에 대한 고민을 하니, 이렇게 놀리고 있다.
“아니, 그래서.”
나는 자세를 고쳐 잡으며 물었다.
“프로포즈 어떻게 해야 되냐고.”
“뭘 그런 걸 고민하고 있어?”
친구들 중에서 가장 연애를 많이 하고.
결혼도 제일 먼저 해서 잘 살고 있는 김태현이 말했다.
“그런 건 마음 가는대로 하면 되는 거야.”
“그걸 잘 모르겠다니까.”
“그러면 특별한 이벤트를 해주지 마.”
그는 어려울 것 없다는 듯 툭 내뱉었다.
“너가 하고 싶은 대로 해. 늘 집 데이트한다며. 거기서 결혼하자고 해.”
“…너무 평범하잖아.”
“뭐 어때? 서로 좋으면 됐지.”
“…그런가?”
“그래. 집 데이트를 매일하니까 오히려 집이 특별한 장소가 되는 거지.”
듣고 보니 일리가 있는 것 같기도 하고.
“검색창에서도 그랬다며. 프로포즈는 상황이 중요한 게 아니라, 사람이 중요한 거라니까.”
그것도 맞는 이야기다.
“그리고 나희 씨가 화려한 거 좋아하겠어?”
“맞아. 제수씨는 하고 싶은 거 다 해보셨을 거 아니야?”
친구놈들도 맞장구를 쳤다.
“그렇다고 해서 집에서 편하게 다 늘어난 추리닝 입고서 결혼하잔 소리하지는 말고.”
“내가 그 정도로 바보는 아니다, 인마.”
“연애에 있어서는 부정하지 마라.”
“…….”
이 녀석들, 촌철살인 하네.
“반지는?”
“그냥 다이아몬드로 했어. 너무 크지 않은 걸로.”
“잘했다.”
“아니, 근데….”
조금 전에 솔로라고 하소연하던 친구 놈이 눈을 반짝였다.
“둘이 결혼하면… 결혼식장에 나희 씨 친구 분들도 많이 오겠지?”
“그렇겠지?”
“원래 그런 곳에서 또 인연이 되잖아. 준수야. 혹시 너 제수씨 친구 분들 우리한테 소개 좀 해주면 안 되냐? 친구 분들도 다 예쁠 거 아니야?”
“절대 안 돼.”
“아, 왜?”
“연예인이 너희들한테 관심을 갖겠니?”
“…맞네.”
그리고 하나 더.
실은 유나희….
친구가 별로 없다.
말로만 하는 건 줄 알았는데.
간혹 지인들의 결혼식에 참여할 일이 있어서 같이 가다보면.
‘나 결혼식 때 완전 썰렁할 것 같은데.’라며 온갖 걱정을 할 정도니까.
물론, 이건 친구들한테 이야기하진 않았다.
“여하튼 그건 중요한 게 아니고.”
나는 다시금 본론으로 돌아왔다.
“프로포즈는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된다는 거지?”
“그래. 자연스러운 상황으로 가면 돼. 막 평소랑 다르게 티내지 말고.”
“…그게 나아?”
“당연하지. 조금만 이상해져도 바로 티 난다. 특히 준수 너는 더 그렇고.”
“…….”
“담백하게 청혼해. 제수씨도 그걸 좋아할 거야.”
“그랬으면 좋겠다.”
***
어슬렁어슬렁.
식탁 주위를 돌아다니고 있는데, 유나희가 나를 보며 물었다.
“왜 자꾸 서성거려?”
“…어?”
“아까부터 똥마려운 강아지마냥 부엌을 뱅뱅 맴돌잖아. 무언가 하는 것도 아니고.”
“…내가 그랬어?”
“30분째거든?”
“…….”
나 진짜 최대한 평소처럼 하고 있는데….
“뭐 잃어버린 거 있어?”
“아니야.”
“오빠 나한테 뭐 숨기는 거 있지?”
“아닌데.”
“흐으음….”
유나희는 눈을 가늘게 뜨며 나를 째려봤다.
나는 어색하게 머리를 긁적였다.
“아무것도 아니라니까.”
“그럼 그냥 와서 앉아.”
“…그래.”
나는 유나희의 옆에 가서 착석했다.
앉았음에도 그녀는 물끄러미 날 바라봤다.
“왜?”
“주머니에 뭐 있어?”
뜨끔.
“있긴 뭐가 있어.”
나는 주머니에서 손을 뺐다.
“오늘 이상한데.”
“아니라니까.”
자연스레 유나희의 어깨를 감쌌다.
“영화나 보자.”
“그래.”
로맨스 영화를 틀었으나.
집중이 되지 않았다.
실은, 아까부터 고장나있었다.
유나희가 귀신같이 캐치했다.
그도 그럴 것이 내 오른쪽 주머니에는 반지케이스가 들어있었다.
오늘 그녀에게 청혼할 생각이었으니까.
아무래도 유나희가 워낙 유명인이기도 하고.
나 또한 최근에 얼굴이 많이 알려진 탓에.
외부에서 진행하는 화려한 프러포즈보다는, 집에서 담백하게 청혼하는 게 더 낫다고 생각했으니까.
다만, 문제는 멘트였다.
‘나랑 결혼해줄래?’
‘결혼하자.’
‘평생 함께할래?’
‘여자친구 말고 아내 해라!’
등등 온갖 후보가 나왔지만.
썩 마음에 드는 게 없었다.
청혼 날짜는 잡았지만, 막상 하려니 어떻게 포문을 열어야 될지도 감이 오지 않았다.
‘이러다가 오늘 못 하는 거 아닌가 몰라.’
괜한 답답함에 주머니에 있는 애꿎은 반지만 만지작거렸다.
그렇게 한창 영화를 보며 언제 타이밍을 잡아야 되나 고민하고 있던 도중.
문득 유나희가 입을 열었다.
“안되겠다.”
“…뭐가?”
영화를 보면서 하는 소리인 줄 알았는데, 문득 나를 불렀다.
“오빠.”
“응?”
“우리 결혼할까?”
그녀의 입에서 예상치도 못한 말이 튀어나왔다.
내가 잘못 들은 걸까 싶어서 그대로 멈춰버렸다.
“…어?”
유나희는 그제야 영화에서 시선을 떼어내 나를 바라보았다.
“나랑 결혼하자.”
내가 멀뚱하니 눈을 꿈뻑거리자, 유나희는 무심하게 피식 웃었다.
“어차피 오빠는 나랑 결혼할 거잖아. 그러면 시간 끌지 말고 얼른 해버리자.”
“…….”
프러포즈는 내가 하려고 했는데, 유나희가 예고도 없이 들어와 버렸다.
그래서인지 말문이 막혀서 어떻게 반응해야 될지 감도 오지 않았다.
“나 아니면, 누가 데리고 살겠냐고.”
유나희는 태연하게 말을 이었다.
“내가 인심 써서 결혼해준다.”
“…….”
“내가 오빠 받아준다.”
굉장히 무덤덤한 목소리였다.
하나, 내가 유나희를 모를 수가 없었다.
그녀의 목소리가 묘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사람이 말을 하는데 왜 대답이 없어.”
유나희는 쀼루퉁 입술을 내밀며 다시 영화로 시선을 돌렸다.
“천하의 유나희가 불쌍한 강준수를 거둬준다잖아.”
내가 대답을 하지 않아서 걱정이 되는 모양.
“아, 빨리 대답 안 해?!”
그녀는 눈을 부릅뜨며 날 노려봤다.
“나 그거 쓸 거야.”
“…뭐?”
“소원권.”
지난 영화의 주연으로 누군가가 들어올지, 안 들어올지를 걸고 소원권 내기를 했었는데.
그걸 이제 쓴다는 것이다.
“오빠 오늘은 거절할 수 없어. 이게 내 소원이야.”
“…….”
청혼인지, 떼를 쓰는 건지 헷갈리지만.
실로 유나희다운 프러포즈라는 건 확실했다.
피식.
“왜 웃어?”
“내일 대답해야겠다.”
“…뭐?!”
유나희의 동공이 지진하기 시작했다.
“양아치야?”
“농담이야.”
나는 웃으며 그녀를 바라봤다.
“너 소원권 낭비했네.”
“뭐가?”
“어차피 수락할 건데.”
화악-.
순식간에 그녀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하자, 결혼.”
그제야 나 또한 주머니에 있던 반지케이스를 꺼냈다.
유나희는 흠칫하며 그것을 바라봤다.
“…그게 뭐야?”
“나도 오늘 청혼하려고 했거든.”
그녀는 눈을 크게 뜨더니.
“그래서 아까부터….”
“눈치는 기가 막히게 빠르더라.”
“오빠가 티 나는 거거든.”
나는 웃으며 반지케이스를 열었다.
유나희의 왼손이 달싹거렸다.
“떨리니?”
“아닌데?”
그녀의 왼손을 잡아 내 무릎위에 얹었다.
반지케이스에서 꺼낸 반지를 그녀의 약지에 끼워주었다.
“…딱 맞네.”
유나희는 손을 들어올려 제대로 반지를 확인했다.
“예쁘다.”
“다행이네.”
그녀는 수줍은 목소리로 날 바라봤다.
“…고마워.”
유나희는 어색하게 웃음을 흘렸다.
“프러포즈는 내가 했는데, 반지는 오빠가 준비했네.”
“그만큼 우리가 잘 맞는다는 거 아닐까?”
“오늘은 그렇다고 해준다.”
유나희는 해맑게 웃었다.
“으히히.”
오늘따라 더 귀엽네.
“오빠.”
“왜?”
“그냥 불러봤어.”
그녀의 바알간 입술이 탐스러워 보였다.
오른손으로 유나희의 머리를 감쌌다.
천천히 그녀에게 다가갔다.
“나희야.”
“응.”
“사랑해.”
“나도 사랑해.”
둘의 입술이 겹쳐졌다.
달콤한 향이 은은하게 퍼져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