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눈앞에 우르르 나타난 각성 알림 창에 당황했지만 나는 곧 침착을 되찾았다. 그리고 환호성을 질렀다.
각성이라니, 이 내가 각성을 했다니!!
각성이란, 헌터가 되기 위한 초능력이 생기는 현상을 통칭한다.
각성의 정확한 조건은 알려지지 않았다. 그냥 집에서 누워 있다가 각성했다는 사람도 있는가 하면, 목숨의 위기를 겪었을 때나 어떤 행동을 했을 때 일어나는 경우도 있다.
아무튼 중요한 것은, 각성을 하면 그 능력치로 큰돈을 벌 수 있다는 사실이다.
물론 난 각성했다고 해서 던전에 들어가 몬스터와 싸울 생각 따위 조금도 없었다. 나는 절대 내 발로는 던전에 들어가지 않을 작정이었다.
모든 헌터는 각성자지만 모든 각성자가 헌터인 건 아니다. 직접 던전에서 몬스터와 싸우지 않아도 각성했다는 사실만으로 돈을 벌 방법은 무궁무진했다.
특히 아이템 제작 계열이라면, 길드 안에서 아이템을 만드는 것만으로도 큰돈을 벌 수 있었다.
역시 회귀는 하고 볼 일이다. 이렇게 좋은 일이 일어나다니!
힘을 숨긴 카페 주인. 삭막한 헌터계를 등지고 던전 앞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고독한 각성자.
생각만 해도 멋지다. 각성자로서 적게 일하고 많이 버는 미래를 상상하며 분홍빛 꿈에 젖어 있는데, 미음이가 근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진정하고 스테이터스를 확인해 보아라. 야옹.”
고양이한테 잔소리를 들었다.
하지만 각성했는데 그런 사소한 게 문제겠는가. 잔소리 정도는 얼마든지 들어 줄 수 있었다. 나는 이제 각성자니까.
‘스테이터스.’
두근두근하며 스테이터스 화면을 띄워 보았다. 눈앞의 빈 허공을 보면서 속으로 생각하는 것만으로 반투명한 창이 나타났다.
그런데…….
이름: 권리을
클래스: 카페 주인(F) (Lv.1)
체력 100/100, 기력 100/100
힘: 8, 지력: 11, 민첩: 9, 운: 12
“이게 뭔데에에에…….”
정말 놀라울 정도로 별것 없었다.
일반인 성인 평균 스테이터스가 10이었다. 그러니까 힘과 민첩은 평균 이하, 지력과 운은 평균보다는 살짝 높지만 그래 봤자 일반인 수준이었다.
형편없는 F급 물 몸인 건 그렇다 쳐도, ‘클래스: 카페 주인’은 또 뭐람.
힘을 숨긴 카페 주인이 되고 싶댔지 그냥 카페 주인이 되고 싶다곤 안 했다. 좋다 말았네.
“정말 너무한 거 아냐?!”
머리를 움켜쥐고 소리를 지르는데 옆에서 미음이가 동그란 앞발로 나를 툭툭 쳤다.
“진정하고, 배가 고프다. 밥을 좀 다오.”
“지금 진정하게 됐어? 기껏 각성한 능력은 별것도 없고, 이런 이상한 곳에 갇혔는데! 역시 이런 데 들어오는 게 아니었어. 어떻게 나가야……. 잠깐, 미음아, 어디 가?”
내 말을 듣다 말고 미음이가 몸을 홱 돌려 걷기 시작했다. 허둥지둥 미음이의 뒤를 쫓아갔더니, 방금까지 아무것도 없던 허공에 문이 나타났다. 미음이가 내게 앞발을 휘둘렀다.
“안 올 거면 두고 가겠다.”
“자, 잠깐만 같이 가!”
문을 통과하자마자 번쩍이는 빛이 주위를 감싸더니 가게로 돌아왔다. 벽에는 여전히 푸른빛이 새어 나오는 문이 있는 것으로 보아 꿈이 아니었다.
“야오오옹. 오랫동안 잠을 잤더니 배가 고프다. 먹을 것 좀 없느냐.”
마치 제집이라도 되는 것처럼 테이블 아래에 식빵 모양으로 앉은 미음이가 길게 울면서 물었다.
나도 하루 종일 청소만 했더니 슬슬 배가 고팠다.
하지만 이곳은 일단 서울 시내이기는 하지만 대던전 《어비스》 앞이다. 식당도 편의점도 주위에 없어서 먹을 걸 사 오려면 한 시간은 걸릴 테다. 배달을 시키려 해도 던전 게이트3가는 배달 제외 지역이었다.
“뭐!”
먹을 게 없다고 말하자 미음이가 귀를 쫑긋거리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 적격자는 나를 굶겨 죽일 셈이냐!”
“그 적격자라는 게 대체 뭔데?”
“밥! 배가 고파서 말을 못 하겠다.”
미음이는 밥을 주지 않으면 아무런 말도 하지 않겠다며 바닥에 배를 깔고 누웠다.
귀여워서 내가 참는다.
근엄한 표정을 지으려던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식빵 모양으로 앉아 밥을 달라고 우는 고양이는 아무리 봐도 귀여웠다.
다행히 1층의 창고에서 시리얼 한 상자를 찾아냈다. 상자에 유통기한이 지워져 있는 게 불안했지만, 설마 먹었다고 죽기야 하겠어. 일단 이걸로 배를 채우기로 했다.
우유가 없는 게 아쉽군. 적당한 그릇을 찾아 미음이에게도 시리얼을 부어 주었다.
“흠, 이런 허접한 걸 먹으란 말이냐.”
“싫으면 도로 줘.”
나는 시리얼을 수북하게 부은 그릇을 치우려 했다. 그러자 미음이가 황급히 앞발로 내 손에 매달렸다.
“아니, 특별히 이 몸이 맛을 봐 주마.”
“허접하다며?”
“크흠, 허접하지만 이번만 특별히 이걸로 참겠다.”
말과는 달리 미음이는 그릇에 고개를 파묻고 순식간에 시리얼을 전부 먹어 치웠다.
“우물우물……. 이거 더 없느냐.”
얼마나 그릇에 고개를 깊게 처박았는지 시리얼 부스러기가 미음이의 얼굴에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자.”
와르르 시리얼을 접시에 더 부었다.
미음이가 바스락대며 시리얼을 먹어 치우는 동안 다시 한번 스테이터스 창을 확인했다.
어쩌면 아까는 당황해서 숫자를 잘못 본 걸지도 모르잖아. 예를 들어 숫자에 0을 하나 떼고 읽었다거나. 그래, 각성까지 했는데 어떻게 그런 형편없는 스탯이 나오겠어.
“후우, 하…….”
진정하자. 이번에는 숫자를 제대로 읽어야지.
그런 희망을 품고 화면을 바라보았지만.
이름: 권리을
클래스: 카페 주인(F) (Lv.1)
체력 100/100, 기력 100/100
힘: 8, 지력: 11, 민첩: 9, 운: 12
변한 것은 없었다. 나는 머리를 싸매고 중얼거렸다.
“기껏 각성했는데 이렇게 허접할 줄은 몰랐는데…….”
“네가 고른 거잖아, 왜옭.”
옆에서 미음이가 참견했다.
두 그릇이나 시리얼을 먹어 치우고 배가 부른 고양이가 골골 소리를 냈다. 앞발에 붙은 시리얼 부스러기까지 깨끗하게 핥아먹은 뒤였다.
“잠깐, 내가 골랐다고?”
“네 각성 능력은 시스템의 테스트 결과를 기반으로 형성된 능력이거든.”
“테스트? 그런 거 한 적 없는데……. 설마 아까 그 심리 테스트?”
“키야오옹!”
털을 쭈뼛 세우면서 미음이가 날카롭게 울었다. 앞발을 휘둘러 내게 주먹을 날린다.
“심리 테스트라니! 적격자에게 맞는 각성 능력을 확인하기 위한 전통 있는 테스트다!”
‘그게 심리 테스트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미음이에게 더 설명을 들어야 했으니 일단 달래 주었다.
“미음아, 착하지.”
“내가 보통 고양이인 줄 아느냐! ……야오옹.”
손으로 턱 밑을 살살 긁어 주자 미음이가 나른한 표정을 지었다. 좀 더 만지작거리자 골골거리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그러더니 거만한 목소리로 설명했다.
세상에는 ‘에테르’라고 불리는 특별한 에너지가 있다.
에테르는 나도 들어 본 적이 있다. 헌터용품이나 무기엔 전부 에테르가 담겨 있는데, 에테르가 많이 담길수록 엄청나게 비쌌다.
그리고 각성자는 이 에테르를 자기 몸에 저장해서 스킬을 사용할 수 있다. 즉, 에테르 친화력이 있는 사람만 각성자가 된다.
그러나 예외가 있었다.
“그게 뭔데?”
시스템이 직접 선택한 각성자를 적격자라고 한다. 이들은 아주 희소하며, 직접 시스템에게 특별한 능력을 부여받는다.
미음이는 내가 바로 그 적격자라고 말했다.
설명만 들어선 무척 대단한 것 같지만……. 정작 얻은 스탯이 이따위라니. 실망하는 내게 미음이가 덧붙였다.
“너, 권리을의 선택에 따른 능력이란다.”
“뭐라고?”
그러니까 아까 텔레비전에 나타난 이상한 질문이 내 각성 능력을 고르는 과정이었다 이 말이다.
그게 그런 건 줄 알았다면 그렇게 대답을 안 했지. 자기소개서를 쓸 때처럼 진취적이고 열정적이며 경력 있는 신입 같은 대답을 했을 텐데.
“안 돼, 다시 해! 다시 고를 테니까 새로 하자고!”
나는 텔레비전을 붙잡고 짤짤 흔들었다. 그러나 화면은 다시 켜지지 않는다. 최후의 수단으로 텔레비전 뒤를 퍽, 하고 내리쳤지만 내 손만 아팠다.
한심하다는 듯 나를 쳐다보던 미음이가 다시 말했다.
“쯔쯔쯔, 이미 결정되었으니 바꿀 수 없어. 스킬이나 확인해 보아라.”
“……스킬?”
“그래, 아까 스킬을 얻었다는 알림이 뜨지 않았느냐. 시스템이 부여한 전용 스킬이야말로 각성자의 진짜 능력이다.”
맞아, 아까 자세히는 못 봤지만 스킬이 세 개나 떴다. 스테이터스는 이 모양 이 꼴이지만 스킬은 좋을 수도 있다.
스테이터스는 일반인 수준이라도 좋은 스킬이 있어서 그걸로 먹고 사는 헌터도 많았다. 외국에 분명, F급이지만 스킬은 A급으로 유명한 헌터도 있었으니까.
스킬만 잘 떠도 충분히 대박이다.
나는 기대를 품은 채 스킬 창을 열었다. 반투명한 창에 세 개의 스킬이 나타났는데, 각각 내 손안의 카페(C), 바닥이 반짝반짝(E), 스마일(C)이었다. 하나씩 상세 설명을 눌러 보았다.
내 손안의 카페(C)
상세: (Lv.1) 가게 안에서 음료 제조 시 완성도가 높아진다.
보유 레시피: 믹스커피
바닥이 반짝반짝(E)
상세: (Lv.1) 화장실 청소를 빠르게 할 수 있다.
스마일(C)
상세: (Lv.1) 웃으면 기분이 좋아져요.
정말 이게 끝인가?
대체 왜 이 모양인데……. 나도 모르게 한숨이 새어 나왔다.
그 흔한 자가 회복이나 보조 스킬 하나도 없다니!
카페를 열 생각이니까 ‘내 손안의 카페’ 스킬은 괜찮다. 하지만 음료 제조 스킬인데 레시피가 믹스커피밖에 없는 건 뭐람.
그건 그렇다 치더라도, 화장실 청소도 스킬이 있었단 말인가. 굳이 스킬까지 사용해서 화장실 청소를 빠르게 해서 좋은 점이 뭘까.
마지막은 스마일 스킬이라니, 이건 어디다 쓰는 거지. 무슨 숨겨진 능력이 있는 건 아닐까?
‘……스마일.’
나는 스마일 스킬을 실행해 보았다.
생긋.
입술 끝이 자연스럽게 당겨지며 부드러운 호선을 그렸다. 완벽한 영업용 미소다.
“…….”
그리고 그게 끝이었다.
그냥 웃기만 하고 끝. 기분은 전혀 좋아지지 않았다.
뭐 이런 쓸모없는 스킬이 다 있어.
젠장, 테스트에 너무 솔직하게 대답한 대가가 쓰디썼다.
안녕, 날로 먹는 인생……. 내가 그러면 그렇지. 각성했다고 그렇게 쉽게 풀리지 않는 모양이다.
“걱정 말거라. 다 방법이 있으니까.”
좌절하는 나를 미음이가 앞발로 툭툭 건드리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