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정말? 어떻게?”
“내가 누군지 아느냐.”
나는 미음이를 보았다. 번지르르한 삼색 털, 쫑긋거리는 귀와 긴 수염, 동그란 발에 분홍빛 젤리까지.
“고양이잖아.”
그러나 원하는 답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곧장 냥냥 펀치가 날아왔다.
“보통 고양이가 아니다! 나는 시스템을 집행하는 일곱 번째 에이전트다.”
“와, 대단해. 멋져.”
“이제 알았느냐.”
“진짜 멋지다. 엄청나다. 와.”
사실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서 조금의 영혼도 담지 않고 칭찬했다.
턱을 살살 긁어 주자 표정이 나른해진다. 영락없이 고양이다.
“에헴.”
“미음이는 어려운 말도 다 아네. 훌륭해.”
“이야오옹! 나를 놀리는 거냐!”
들켰다.
고양이를 달래기 위해 시리얼 한 그릇을 더 줘야만 했다.
배가 볼록해진 데다 입가에는 시리얼 부스러기를 붙인 채 미음이가 말했다.
“아무튼, 나는 너를 도와주기 위해 왔다. 시스템이 주는 퀘스트를 깨면 좋은 보상을 받을 수 있을 거다.”
“응? 퀘스트?”
그런 게 있었나?
그 말을 듣고 보니 스테이터스 창 한쪽에 퀘스트 표시가 있었다. 나는 퀘스트 창을 열어 보았다.
[튜토리얼 퀘스트: 커피는 나의 꿈
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
가장 간단한 커피부터 스킬 사용을 익혀 봅시다.
믹스커피 100잔 타기: 0/100
보상: 경험치(100 exp), 50루비, 아메리카노 레시피, ???]
어, 믹스커피 타기라고? 그 믹스커피? 맥모골?
내키지 않았다.
회사에 다닐 때 지긋지긋하게 먹은 믹스커피를 또 100잔이나 타야 한다니.
나는 내키지 않는 표정으로 보상 항목에 눈을 돌렸다. 경험치와 루비, 레시피 외의 항목은 ‘???’로 떠서 보이지 않았다.
경험치는 알겠고, 루비는 <헌터 마켓>에서 사용하는 돈이다. 하지만 조금 전까지 일반인이었으니 <헌터 마켓>에서 50루비가 얼마쯤 되는지는 모르겠다.
“50루비면 얼마야?”
“1루비 당 10만 원이다.”
나는 머릿속으로 곱셈을 해 보았다. 1 루비에 10만 원인데, 50루비면……. 500만 원이다.
500만 원이라고?
갑자기 눈이 번쩍 뜨이고 의욕이 샘솟았다.
당분간 생활비로 쓸 만큼의 돈은 통장에 있었지만 결코 넉넉하지 않았다.
그런데 믹스커피 100잔을 타고 500만 원을 벌 수 있다니.
단순 계산으로 한 잔당 5만 원. 빅3 길드 앞에서 커피를 팔아도 이런 폭리를 취하기란 불가능할 테다.
한마디로 개이득.
나는 당장 창고를 뒤져 필요한 물건을 찾았다. 다행히 전기 포트와 종이컵, 상자 밑바닥에 몇 개 남은 믹스커피를 발견할 수 있었다.
당장 퀘스트 조건을 채울 생각으로 커피를 타려 하는데 미음이가 말을 걸었다.
“잠깐만, 그대로 타지 말고 스킬을 써서 타라.”
“응? 스킬을 쓰라고?”
이 ‘내 손안의 카페’라는 스킬을 말하는 거겠지.
하지만 믹스커피는 그냥 뜨거운 물만 부으면 끝이다. 굳이 스킬을 쓰면서 탈 필요가 있을까?
“일단 해 봐라, 야옹.”
“……알았어.”
그래, 이 퀘스트에는 500만 원이 걸려 있다. 500만 원을 위해서라면 의아해도 일단 따르고 볼 일.
‘내 손안의 카페.’
반투명한 홀로그램 창에 나타난 레시피 리스트에서 믹스커피를 골랐다. 레시피 순서대로 은은한 빛이 반짝였다. 그 빛을 따라 자연스럽게 손이 움직였다.
“자, 다 됐어.”
“그 커피를 한번 살펴봐라.”
“응? 그냥 믹스커피잖아.”
일단 미음이의 말대로 믹스커피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러자 믹스커피의 상태창이 눈앞에 나타났다.
[레시피: 믹스커피를 완성했습니다.]
[아이템: 믹스커피(★★★☆☆)
상태: 좋음 (남은 시간: 00:03:00)
효과: 회복 속도가 100% 빨라집니다. (01:00:00)]
“어, 이건…….”
3성 믹스커피 설명 아래에 특이한 문구가 있었다.
“스킬을 써서 만들면 음료에 특별한 효과를 부여할 수 있다. 그게 네 스킬의 진짜 힘이다.”
포션도 아니고 커피에 효과를 부여한다니, 그런 얘기는…….
“……처음 듣는데.”
“왜오옭! 당연하지! 너밖에 할 수 없으니까!”
그럼 꽤 좋은 스킬인가? 그런 생각도 잠시.
[상태: 좋음 (남은 시간: 00:02:59)]
[상태: 좋음 (남은 시간: 00:02:58)]
[상태: 좋음 (남은 시간: 00:02:57)]
…….
상태창의 남은 시간이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기껏 만들었는데 상태가 나빠지게 두기는 아깝지. 나는 커피가 식기 전에 종이컵을 입으로 가져갔다.
어, 믹스커피가 이렇게 맛있었던가……?
씁쓸한 커피맛과 단맛이 입안에서 부드럽게 뒤섞였다. 마지막 한 방울까지도 아쉬워 전부 입안에 털어 넣는 순간 알림이 울렸다.
[믹스커피 100잔 타기: 1/100]
알림을 보니 예전에 하던 카페 경영 게임이 생각났다.
몬스터를 잡아 재료를 얻은 뒤, 레시피대로 메뉴를 만들어 돈을 벌고, 그 돈으로 새로운 레시피를 얻는 방식이었다. 가게도 꾸미고 아르바이트생도 고용하고, 꽤 재밌었지.
무과금이었지만 정말 열심히 해서 랭킹 1위까지 찍었다.
그러나 해킹을 당하는 바람에 결국 접었다. 소중한 내 캐릭터가 텅 빈 가게에서 팬티만 입고 나를 맞이했을 때의 충격이란.
“왜 그러느냐? 꼭 속으로 욕이라도 하는 표정인데.”
“……아무것도 아니야.”
나는 잠시 속으로 해킹범의 앞날이 평탄치 않기를 빌어 주었다.
아무튼 이 시스템이 하는 일은 카페 경영 게임을 많이 연상시켰다. 헌터들이 시스템을 게임과 비슷하다고 말하던데, 이런 느낌인 건가.
퀘스트를 깨고, 다음 퀘스트를 받고 그때마다 루비, 즉 현금을 받는다.
알지, 알지.
어떤 느낌인지 알고말고.
첫 번째 퀘스트부터 500만 원이니 다음 퀘스트에는 금액이 더 올라갈 테다. 그러면…….
이거, 금방 부자 되는 거 아니야?
나는 황금빛 미래를 상상하며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꼈다.
좋아, 믹스커피 100잔을 타는 거야 일도 아니다. 팍팍 타서 얼른 500만 원을 받고, 다음 퀘스트를 받아서 부자가 되어야지.
“으하하하…….”
우선 창고에서 찾은 믹스커피 열 봉을 전부 사용하기로 마음먹었다.
‘내 손안의 카페!’
‘내 손안의 카페!’
종이컵에 척척 커피믹스를 붓자 옆에서 미음이가 참견했다.
“그렇게 많이 만들지 않는 게 좋을걸.”
“왜? 퀘스트를 빨리 깨면 좋잖아.”
미음이의 경고를 들은 체도 않고, 황금색 빛이 반짝거리는 순간에 맞추어 뜨거운 물을 부었다.
그러나 일은 내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 * *
심장이 쿵쿵 뛰고 머리가 지끈거렸다.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썼지만 잠은 오지 않고 정신은 또렷하기만 했다.
나는 눈앞에 나타난 알림창의 내용을 빤히 바라보았다.
[상태 이상: 카페인 중독
너무 많은 카페인을 섭취했습니다.
커피는 계획적으로 이용합시다.
해제까지 남은 시간 02:58:34]
[해제까지 남은 시간 02:58:33]
…….
[해제까지 남은 시간 02:58:21]
살려 줘.
* * *
할머니의 가게에서 미음이를 만나 각성하고도 사흘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나는 퀘스트 창을 열어서 내용을 확인했다.
[튜토리얼 퀘스트: 커피는 나의 꿈
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 가장 간단한 커피부터 스킬 사용을 익혀 봅시다.
믹스커피 100잔 타기: 10/100
보상: 경험치(100exp), 50루비, 아메리카노 레시피, ???]
당장 퀘스트를 깨고 500만 원을 받겠다는 포부와는 달리 퀘스트 진척은 지지부진했다. 원인은 바로 끔찍한 카페인 중독 때문이다.
“하아…….”
이 시스템은 믹스커피를 타는 순간이 아니라 전부 마신 이후에 횟수를 셌다. 즉, 100잔을 타서 다 마셔야 클리어가 가능했다.
‘좀 많긴 하지만 까짓것 한 번에 다 마셔 버리지 뭐.’
그렇게 생각한 나는 첫날, 열 개의 믹스커피를 전부 다 탔다. 그리고 하나씩 입에 털어 넣었다.
한 잔, 두 잔, 세 잔…….
세 잔까지는 아무 일이 없었다. 그저 달달한 맛이 감돌고 기력이 회복될 뿐. 그러나 네 잔을 마시는 바로 그 순간이었다.
“……쿨럭, 쿨럭?!”
이상한 느낌에 입 안에 든 커피를 뱉어 냈다.
[상태 이상: 카페인 중독이 발생했습니다.]
윽, 이거 뭐야. 속이 쓰리고 머리가 지끈거리는 데다 손이 덜덜 떨렸다. 괴로워하며 의자 위에 늘어지자 옆에서 미음이가 핀잔을 주었다.
“카페인 중독이다. 그러게 많이 만들지 말라고 하지 않았느냐.”
“윽……. 말을 하지.”
“했는데 네가 안 들은 거다.”
“으으…….”
할 말 없다.
카페인 중독이라고 우습게 볼 일이 아니었다. 지끈거리는 고통에 몸을 꼼짝도 하기 힘든 데다, 잠도 오지 않았다.
결국 다섯 시간 뒤 상태 이상이 풀릴 때까지 꼼짝없이 잠을 설칠 수밖에 없었다.
“으으윽…….”
즉, 하루에 세 잔 넘게 커피를 마시면 상태 이상이 걸렸다. 그런 끔찍한 일은 다시는 겪고 싶지 않다. 절대 사양이다.
문제는 하루에 세 잔까지밖에 먹을 수 없으니 퀘스트 달성에 시간이 걸린다는 것이었다. 단순 계산으로 하루에 세 잔씩 100잔을 채우려면 약 한 달이 걸린다.
한 달 동안 믹스커피만 타야 한다고?
나는 게임을 할 때도 스토리는 물론이고 스킬 연출도 스킵하며 빠른 플레이를 추구했다. 고작 튜토리얼 퀘스트를 한 달이나 끌다니 견딜 수 없다. K-게이머의 혼이 들끓는다고.
카페인 중독을 해제해 주는 회복약을 살까도 생각해 봤다. 그런데 권지운에게 슬쩍 물어보자…….
“상태 이상 회복약? 물론 있지. 가격? 음……. 요즘은 가격이 좀 내려서, 한 병 100만 원쯤 하는데.”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권리을, 왜 그래? 필요해?”
“아니, 아, 아니야. 그냥 궁금해서. 다음에 또 전화할게.”
“무슨 문제 생긴 건 아니지? 무슨 일 있으면 바로 얘기해.”
“아하하……. 진짜 아무 일도 아니라니까.”
퀘스트 보상 500만 원을 받으려고 이 짓을 하고 있는데 100만 원짜리 회복약을 마실 수는 없는 일이다.
더군다나 스킬 ‘내 손안의 카페’의 효과는 ‘가게 안에서 음료 제조 시 완성도가 높아진다.’이다. 즉, 이 가게를 벗어나면 무효에 보존 시간도 짧다. 그러니 멀리 있는 사람에게 커피를 먹이기도 힘들었다.
남은 방법은 이 가게에 온 누군가가 내가 만든 믹스커피를 마셔 주는 것뿐이었다.
이 아무도 지나다니지 않는 대던전 앞 던전 게이트3가 16로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