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화 (7/192)

7화

‘한 번만 더 마셔 보면 알 것 같은데.’

다음 날, 지나는 당장 그 카페가 있던 곳을 향했다.

정말 카페에서 커피를 마신 게 맞을까. 워낙 몽롱하고 멍했던 탓에 기억이 희미했다.

지나의 걱정과 달리 카페는 어제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꿈이 아니었어…….’

간판은 아직 없다.

하지만 깨끗하게 청소된 그 건물은 멀리서도 눈에 띄었다. 복고풍의 붉은 벽돌 건물은 주인이 정성을 다해 가꾼 티가 났다.

낡았지만 아늑한 공간, 어디선가 달콤한 커피 냄새가 날아왔다. 지나는 커피 냄새에 이끌리듯이 스르륵 안으로 들어갔다.

“야오오옹!”

바닥에 식빵 모양으로 배를 깔고 앉아 있던 삼색 고양이가 지나를 보고 울었다. 살이 투실투실하게 올랐고 배가 말랑해 보이는 고양이였다.

‘한 번만 만져 보고 싶다.’

지나는 무심코 고양이의 배를 쓰다듬으려 했다.

“키야오옹!”

고양이가 소리를 지르며 손길을 피하더니 착, 하고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뒤뚱대며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미음아, 왜 그래?”

어제 만난 카페 주인이 안에서 시리얼 상자를 들고 나오다가 지나를 발견했다.

“지나 씨, 어제는 잘 들어갔어요?”

“아, 네, 네!”

카페 주인이 그릇에 시리얼을 붓더니 고양이 앞에 놓아 주었다. 고양이가 찹찹거리면서 시리얼을 먹어 치우기 시작했다.

‘고양이가 시리얼을 먹나?’

그러나 중요한 건 그런 것이 아니었다. 지나는 용기를 내어 말을 걸었다.

“저어, 어제 주신 커피 말인데요…….”

“아, 한잔 드릴까요?”

리을은 금방 믹스커피를 타서 지나에게 건넸다. 종이컵의 온기가 지나의 손을 부드럽게 감쌌다. 지나는 견디지 못하고 곧장 한 모금을 삼켰다.

……꿀꺽.

다시 한 모금.

단맛과 풍부한 우유의 맛, 쌉싸름한 커피 향이 입 안에서 황금비를 이루었다.

그리고 컵을 전부 비운 순간.

머리가 개운해지면서 몸에 힘이 넘치기 시작했다. 어깨도 가벼웠고, 근원 모를 행복감에 기분까지 좋아졌다.

역시 이 커피다. 이 커피가 지나에게 힘을 준 것이다.

“정말…… 정말로 엄청난 맛이에요! 어떻게 커피에서 이런 맛이 날 수가 있죠? 거기다, 커피 한 잔을 마셨을 뿐인데 머리도 개운하고 몸에 힘이 넘쳐요! 세상에, 이런 커피는 처음 먹어 봐요.”

리을은 가만히 웃으며 지나의 말을 듣고 있었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지나는 혼자 너무 떠들어 댄 나머지 민망함을 느꼈다. 작게 헛기침을 하고는 뒷말을 이었다.

“꼭, 어디서 살 수 있는지 알려 주세요!”

“그냥 믹스커피인데요.”

“하지만……. 이렇게 맛있고 효과도 엄청난 걸요! 무슨 특별한 비법이라도 있는 건가요?”

“비법 같은 건 아니지만……. 오시면 얼마든지 타 드릴 테니 자주 오세요.”

……천사인가?

후일 지나는 이 일을 이렇게 회상했다.

그날 직장인을 수호하는 천사를 만났다고.

몇 년 뒤, 지나가 던전관리청장에 취임했을 때의 인터뷰에서였다.

* * *

“감사해요. 오늘도 너무 맛있어요.”

지나는 믹스커피가 든 컵을 받으면서 꾸벅 고개를 숙였다. 나 역시 눈앞에 나타난 퀘스트 창을 보며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튜토리얼 퀘스트: 커피는 나의 꿈

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

가장 간단한 커피부터 스킬 사용을 익혀 봅시다.

믹스커피 100잔 타기: 79/100]

지나가 커피를 다 마시는 순간 숫자가 80으로 바뀌었다.

드디어 80.

매일 커피를 마시러 오는 지나 덕분에 퀘스트 횟수가 많이 찼다.

이대로라면 며칠 안에 퀘스트를 깰 수 있을 테다. 500만 원을 받을 생각을 하자 자연히 얼굴에 웃음이 피어올랐다.

“……냐오옹(침 흐른다).”

미음이의 속삭임에 화들짝 턱을 닦았지만 깨끗하기만 했다. 나는 미음이를 노려봐 주었다.

‘그런데 미음이 너, 복화술도 할 수 있어?’

분명히 입으로는 고양이 울음소리를 내는데 머릿속으로 목소리가 들렸다.

“왜옹, 왜오오옹(복화술이라니! 그런 잡기랑 비교하지 말거라! 특수한 파장으로 직접 말을 전하는 능력이니라)!”

‘그런데 왜 울음소리를 내는 건데?’

텔레파시 같은 거라 이거지. 그러면 고양이 소리를 낼 필요는 없는 거 아닌가?

“왜우웅(그건……. 아직 익숙하지가 않아서…….)”

‘저런…….’

아무튼.

500만 원도 물론 중요하지만 아메리카노 레시피를 빨리 얻고 싶기도 했다.

아메리카노 하면,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메뉴이자 포션이 아닌가. 카페에서 제일 잘 나가는 메뉴기도 하니, 앞으로 카페를 열기 위해서는 아메리카노를 익히는 것이 필수적일 테다.

무엇보다 이 믹스커피가 맛있긴 한데 슬슬 다른 메뉴가 먹고 싶었다.

“하아, 살 것 같아요.”

지나는 새로 타 준 믹스커피도 단번에 비웠다.

전보다는 안색이 나아졌지만 여전히 지나는 늦게까지 일을 했다. 지금도 벌써 저녁인데도 커피만 마신 뒤 대던전 《어비스》로 갈 예정이라고 했다.

《어비스》에 무슨 일이라도 있나?

“아, 그건…….”

내 물음에 지나가 어두운 안색으로 대답했다.

“곧 튜토리얼 던전이 열릴 예정이거든요. 튜토리얼이니 위험한 일은 없을 테지만, 그래도 고참 헌터가 함께 참가해요.”

“그래요?”

그해에 새로 각성한 헌터들을 모아 교육하는 것을 ‘튜토리얼 던전’이라고 한다.

교육이라고 해도 수업은 아니고 실전 형식으로 던전을 공략해 보는 정도였는데, 보통 《어비스》 1층에서 이루어진다.

“하지만 다들 하기 싫어하거든요…….”

알 만했다. 고급 보상이 나오는 던전이 아니라 튜토리얼에 가고 싶어 하는 고참 헌터는 얼마 없으니까.

그 때문에 일반인인 지나가 준비로 바쁘다고 했다.

“거기다 이번에는 참관하러 미국에서도 헌터가 오기로 해서 정신이 없네요. 그래도 리을 씨가 주시는 커피 덕분에 힘이 나요.”

“…….”

“리을 씨?”

작은 계기로 잊고 있던 기억이 하나의 실처럼 떠오르는 일이 있지 않은가.

지나의 말을 듣자 퍼뜩 회귀 전에 있었던 사건이 생각났다.

당시에는 하루 종일 뉴스에서 그 얘기만 떠들어 댔는데, 왜 그렇게 큰일을 잊고 있었을까.

회귀 전 튜토리얼 던전을 진행하던 중, 갑자기 몬스터가 던전 밖으로 튀어나온 일이 있었다.

경력 있는 헌터라면 충분히 대처할 만한 급이었지만, 하필이면 튜토리얼 중이라 몬스터를 바로 처치하지 못했다.

그대로 던전 브레이크 발생.

그대로 게이트를 빠져나온 몬스터가 인근의 민가를 습격했고, 마침 한국 방문 중이던 미국 출신 헌터가 사망했다.

그리고 그때 몬스터가 습격한 곳이 바로…….

‘던전 게이트 3가.’

어? 이 가게 바로 앞인데?

설마 인근의 민가라는 게 우리 가게?

“리을 씨, 괜찮아요? 어디 아파요?”

지나가 나를 걱정스레 쳐다보았다.

진정하자. 후우, 하……. 후우, 하…….

사건의 날짜까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을지도 모르니까.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튜토리얼이 언제라고요?”

“사흘 뒤예요.”

얼마 안 남았잖아!

지나가 돌아간 뒤 나는 이마에 손을 짚고 고민에 빠졌다. 사흘 뒤 이 앞에 몬스터가 나타난다니 어떡해야 하지.

저번 생은 균열에 휘말려 죽고 이번 생은 앞마당에 나타난 몬스터와 맞닥뜨릴 운명인가. 카페를 차릴 준비를 하기 전에 굿을 해야 했나 보다.

‘도망칠까?’

각성했다고는 하나 나는 F급에 전투 스킬은 하나도 없는 카페 주인이다. 몬스터와 마주쳤다가는 순식간에 살해당할 것이 틀림없다.

앞으로 일어날 일을 안다고 해서 해결 방법까지 알지는 못한다.

그래, 위험은 피하는 것이 제일이다.

도망치자.

“왜 그러느냐.”

심각한 표정을 하고 있자 바닥에 벌러덩 누워 있던 미음이가 고개만 들고 나를 보았다.

미음이는 내가 회귀했다는 사실을 모른다.

말해도 될까? 황당한 이야기라고 생각하지는 않을까?

잠시 망설였지만 말하기로 마음먹었다. 하긴 말하는 고양이도 있는데 미래에서 과거로 회귀한 것쯤 별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사실 내가…….”

나는 과거 일을 대충 미음이에게 말했다. 회사 노예로 살다 균열에 휘말려 죽었더니 3년 전으로 돌아왔고, 내 기억에 따르면 사흘 뒤에 몬스터가 이 근처로 온다는 사실까지도.

미음이는 내 회귀 사실은 대수롭지 않게 듣더니 뜻밖의 말을 했다.

“왜오옭. 이상하다. 저 게이트로 몬스터가 튀어나오는 건 흔치 않은 일이다.”

“그래?”

“《어비스》는 원래 시스템이 □□□ □□□□…….”

“뭐라고?”

미음이의 목소리가 노이즈가 낀 것처럼 잘 들리지 않았다. 갑갑하다는 듯 털을 쭈뼛 세우더니 미음이가 다시 말했다.

“키야오옹! 내 참, 똑바로 들어라. 《어비스》는 □□□□ □□□□ □□…….”

꼭 누군가가 방해하는 것처럼 중요한 단어만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대체 뭐지?

더군다나 눈앞에 갑자기 시스템 창이 나타났다.

[System Error: —. —.—]

[System Error: —. —.—]

[System Error: —. —.—]

이 창은 빨갛게 깜빡거리며 사라지지도 않았다.

몇 번이나 시스템 창을 열었지만 이런 것은 처음이다. 어쩐지 섬뜩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