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괜찮으신가요?”
입구로 들어선 것은 껑충 큰 키의 남자였다.
부스스하게 긴 머리카락이 이마를 덮고 안경을 써 얼굴은 또렷하게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가슴팍에 헌터임을 나타내는 표식만큼은 분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헌터다.
이제 살았다.
안도감과 함께 의식을 잃기 직전인 제임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부상자가……. 여기 부상자가 있어요!”
“밖으로 옮기죠. 곧 다른 사람들이 올 겁니다.”
헌터라 힘이 센 건지, 그가 커다란 제임스를 번쩍 짊어지더니 바깥으로 날랐다.
바깥은 엉망진창이었다. 구급차가 줄지어 도착했고, 뉴스 리포터와 카메라가 여럿, 주변을 정리하는 공무원이 여럿.
주변에서 몬스터의 잔해를 정리하는 공무원들이 하는 말을 주워들은 바에 따르면 상황은 이랬다.
제때 균열을 처리하지 못했을 때 균열 안에서 몬스터가 튀어나오는 것을 ‘던전 브레이크’라고 부른다.
끝없이 쏟아져 인간을 공격하는 몬스터들은 그야말로 재앙이다. 15년 전 발생한 던전 브레이크는 도시 하나를 괴멸시켰다고 할 정도.
그런데 그 던전 브레이크가 일개 균열이 아니라 대던전 《어비스》에서 일어난다면?
아직 완전히 공략하지 못한 무한의 던전에서 몬스터가 쏟아져 나온다면…….
당연히 대비상사태.
마침 며칠 전 익명의 신고로 주변을 살피던 헌터들이 긴장하던 와중.
‘이건 내가 한 신고 얘기겠지…….’
갑자기 쏟아져 나오던 몬스터들이 재가 되어 사라져 버렸다고 한다.
동굴흑곰이 죽었을 때와 똑같다.
설마 그, 아까 들었던 묘한 목소리가 한 걸까.
확실한 건 아직 알 수 없지만 불행 중 다행이다.
당혹스러운 와중에도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헌터들이 바쁘게 움직였다.
“부상자가 있습니다!”
“빨리 이쪽에 눕히세요!”
우르르 나타난 헌터들이 제임스의 상처를 살피고 부서진 가게 안을 확인하느라 순식간에 주변이 분주해졌다.
그때였다. 헌터들이 입은 점퍼를 보고 나는 깜짝 놀랐다. 거기엔 푸른색 실로 커다랗게 ‘청라’라고 쓰여 있었다.
<청라 길드>가 왜 여기에 있지?
<청라 길드>는 한국 최상위 3개 길드, 속칭 빅3 길드 중 한 곳이었다.
그러나 빅3 중 기업형 길드인 <씨앤엘 코퍼레이션>, 가족 길드인 <로열 길드>와는 달리 상세가 베일에 싸여 있었다.
먼저 대외적인 활동이 많지 않았다. 방송 등에 출연하는 일도 거의 없고, 활동 내역도 묵묵히 던전을 공략하는 것이 다였다.
대외적인 활동은 거의 없는 소규모 길드. 여러 사업으로 몸집을 불리고 있는 <씨앤엘>과는 극과 극인 셈이다.
하지만 <청라 길드>가 빅3 중 한 축이라는 것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다.
최소 인원으로 최고의 공략 효율을 보이기 때문이다.
현재까지 공략 중 사망자 0명.
길드원 평균 등급 B+ 이상. 균열 처리 효율 1위. 대던전 《어비스》의 공략 진척도 1위.
그중 ‘푸른 덩굴’ 어쩌고라고 불리는 주력 파티에 속한 헌터 7인은 특히 유명했다. 각 멤버가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으니까.
‘탱만 똑바로 했어도.’, ‘힐러 힐하다 졸았냐.’, ‘그 딜량 보고 잠이 옵니까.’ 따위의 생각을 한 번쯤 해 보았을 헌터라면 알 테다. 제 할 일 잘하는 파티원이 얼마나 소중하며, 또 얼마나 만나기 힘든지.
한마디로 센 놈들끼리 모여서 열일하는 곳. 헌터들 사이에서도 거의 환상의 먼치킨 길드 취급이다.
그리고 그 <청라 길드>를 이끄는 사람이 바로…….
길드장, 국내 헌터 랭킹 1위 ‘무원’이다.
현재 랭킹 1위는 이름도 나이도 주소도 모든 것이 불명이다. 그래서 그는 이름 대신 헌터 명부에 등록된 칭호 ‘무원’으로 대신 불렸다.
자칫하다간 고등학교 졸업 사진은 물론이고, 헌터가 되기 전 SNS에 남긴 ‘나는 꼭 짱이 돼야지.’, ‘크크큭……. 어둠이 내 몸을 잠식한다.’ 따위의 글도 다 털리는 시대에 드문 일이다.
그의 신상을 파헤치려는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모두 실패로 끝났다.
유난히 집착이 심했던 헌터 파파라치 신문 ‘헌터 스코프’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사이트 메인 페이지에 다시는 ‘무원’의 파파라치 취재를 하지 않겠다는 사과문을 올리기까지 했다.
성격이 더럽다거나, 사실 진짜 ‘무원’은 죽었고 지금 있는 사람은 가짜라거나, 버추얼 헌터라거나, 사실은 비밀 조직이 만든 최종 병기라느니 하는 소문은 돌아다녔지만 그다지 신빙성은 없었다.
이 정도로 신비주의를 유지하면 진짜 강한 거 맞느냐는 의문이 제기될 법도 하다.
그러나 ‘무원’이 단신으로 A급 던전을 클리어하면서 그런 소리가 싹 사라졌다.
<씨앤엘 코퍼레이션>의 1군 파티가 공략을 포기한 던전이었으니까. ‘무원’이 없었다면 한국은 큰 피해를 당했을 테다.
‘무원’의 스킬 사용 모습이 담긴 영상은 화질이 엉망인데도 불구하고 조회 수가 몇 억이랬더라…….
요약하면 엄청나게 센 한국 일짱.
그러나 무슨 이유에서인지 모습을 거의 드러내지 않는, 그늘 속의 랭킹 1위.
그나마 <청라 길드>의 부길드장 정도나 미디어에 얼굴을 비췄던가.
분명 이름이……. 이름이 뭐였더라. 들어 본 적이 있는데. 생각날 듯 말 듯하면서 팍 떠오르지 않는 이름에 가슴이 갑갑해졌다.
“권리을 씨 맞으시죠?”
“네?”
고개를 돌리자 사람 좋아 보이는 인상의 남자가 앞에 있었다.
“한이성이라고 합니다. <청라 길드> 부길드장을 맡고 있습니다.”
맞다. 한이성. 생각났다. 맞아, 그런 이름이었지.
30대 중반쯤일까. 마지막으로 뉴스에서 봤을 때보다 살짝 젊어 보인다. 정장에 넥타이까지 매고 있어 헌터라기보다는 사무직 같은 분위기를 풍겼다.
워낙 유명인이니 뉴스에서 본 적이 있지만, 이 사람은 나를 어떻게 아는 거지. 나는 뉴스에도 나온 적이 없는데.
“저를 아세요?”
“<백은 길드>의 권지운 헌터 사촌이시지요?”
“아.”
권지운과 아는 사이구나. 하긴 같은 헌터끼리니까 면식이 있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한이성 헌터가 사교성 좋은 얼굴에 쓴웃음을 띠고는 말했다.
“이야기 많이 들었습니다. 권지운 헌터하고는 많이 다르시군요.”
그런 말 많이 들었다.
권지운의 눈에 띄는 외모에 비해 나는 흔한 인상이니까.
나란히 놓고 보면 한쪽은 중요 인물이고 한쪽은 지나가는 사람 A라는 느낌. RPG 게임이라면 주인공 용사 파티를 배웅하는 초보자 마을 여관 주인 정도?
유명 헌터의 일반인 가족이란 게 대체로 그런 취급이지. 일단 각성을 하긴 했지만 F급 카페 주인이라 일반인이나 마찬가지고.
자연히 대답이 딱딱해졌다.
“안 닮았나요?”
“아니요, 외모 이야기가 아니라, 권지운 헌터는…….”
화들짝 놀라 손을 내젓던 한이성이 적당한 단어를 고르지 못했는지 말끝을 흐렸다.
“……권리을.”
그때, 주변 사람들을 헤치고 권지운이 나타났다.
피에 젖어 엉망진창인 내 모습을 보고 놀랐는지, 어두운 눈빛이 더욱 짙게 가라앉았다. 권지운이 왜 여기 있지?
아, 비상 상황이라 힐러로 차출된 건가.
“다친 건가. 그래서 이런 곳에서 가게는 그만두라고 했는데…….”
“…….”
뒤따르는 무거운 한숨.
“치료해 줄 테니까 이리 와.”
“난 괜찮아.”
“권리을.”
하지만 내게 묻은 피는 모두 제임스가 흘린 것이고, 나는 찰과상 정도였다. 나는 간이 침상에 눕혀진 제임스를 가리키며 말했다.
“나보다 제임스…… 저 헌터를 먼저 봐 줘. 많이 다쳤어.”
권지운이 다가가자 제임스의 상태를 살피던 의료진이 자리를 만들어 주었다.
제임스는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한 상태였다. 응급 처치는 했지만 동굴흑곰에게 물어뜯긴 팔은 깊이 파여 있었고, 피가 멎지 않아 옷을 푹 적셨다.
권지운이 곧장 스킬을 사용했고, 손끝에서 생겨난 반짝거리는 빛이 제임스의 몸에 흡수되었다.
천천히 피가 멎고 살이 다시 붙는다. 언제 봐도 놀라운 스킬의 효과다.
그러나 제임스는 여전히 눈을 뜰 기미가 없었다. 아니, 오히려 더 나빠지는 것 같았다. 얼굴은 흙빛에 입술은 거무스름하다. 덩달아 권지운의 표정도 심각해졌다.
“왜…… 왜 그래? 많이 안 좋아?”
“이건…… 어려울지도 모르겠어.”
랭킹 12위의 헌터인 권지운은 동시에 국내 최고의 힐러다. 그의 스킬 ‘치유의 빛’은 숨만 붙어 있으면 아무리 심한 상처도 치료할 수 있는 강력한 힐러 스킬이고.
그런 그가 회의적인 말을 하자 왈칵 겁이 났다. 혹시 제임스가 죽기라도 하면…….
아니, 생각하지 말자. 죽기는 왜 죽어. 어떻게 살아났는데.
옆에서 보던 한이성 헌터가 말을 걸었다.
“리을 씨, 습격한 몬스터가 뭐였습니까?”
“아, 그게…… A급 동굴흑곰이라고 했어요.”
내 말을 듣자마자 한이성 헌터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그런 게 왜 여기에 있지.”
“왜 그러시는데요?”
“A급 동굴흑곰은 원래 B급 이상의 던전에서만 희소하게 발생하는 몬스터입니다. 20년 동안 관측된 적은 손에 꼽힐 정도고요.”
하지만 그 몬스터는 이미 죽었는데, 이들은 왜 이런 표정이지. 제임스는 왜 아직 눈을 못 뜨는 거고.
“동굴흑곰의 발톱에는 저주가 걸려 있습니다. 치유 스킬과는 상극이고요.”
“외상은 다 나았는데, 저주에 잠식당한 부분이 치유의 빛의 효과를 감소시키고 있어. 완전히 치료를 하려면 먼저 저주를 풀어야 하는데…….”
“A급 저주를 풀 수 있는 헌터는 현재 한국에는 없습니다.”
한이성 헌터가 낮은 한숨을 쉬었고, 권지운이 씁쓸하게 눈을 내리깔았다.
뭐야, 왜 둘이서 그런 표정을 짓는 건데요. 설마 방법이 없다는 말을 하려는 것은 아니죠.
“그럼 제임스는…….”
권지운이 내 어깨 위에 손을 올렸다. 그가 느끼는 짙은 낙담이 내게도 전해져 왔다.
“……권리을, 어디 가는 거지?”
무슨 방법이 없을까.
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가게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몬스터가 나타나기 전 제임스는 믹스커피를 두 잔 마셨다. 효과는 회복 속도 100% 증가.
세 번째 잔까지 마시게 하면 회복 효과가 더욱 강해질 지도 모른다.
어처구니없는 생각일지도 모르지만, 효과가 없을지도 모르지만. 그런 희망이라도 품을 수밖에 없었다.
가게 안은 잡동사니와 부서진 테이블 파편으로 엉망진창이었다.
나는 재빨리 안에서 필요한 물건을 찾았다.
다행히 전기 포트는 고장 나지 않았다. 믹스커피 봉지와 종이컵, 티스푼도 찌그러지기는 했지만 남아 있었다. 나는 곧장 물을 끓이면서 스킬을 사용했다.
‘내 손안의 카페’
마음이 급했다. 나는 재빨리 종이컵에 믹스커피를 탔다.
[고도의 집중력으로 음료의 완성도가 상승합니다.]
[아이템: 믹스커피(★★★★★)]
[상태: 완벽…….]
제대로 완성되었는지 시스템 알림을 확인할 틈도 없이 종이컵을 들고 제임스에게로 달려갔다.
“권리을, 그건?”
“한 번만 시험해 보게 해 줘.”
권지운은 말리지 않았다.
효과가 있기를 기대했다기보다는, 그냥 내 마음을 염려한 것 같았다.
쓰러진 사람에게 뜨거운 믹스커피를 먹이기란 힘든 일이다. 나는 커피가 적당히 식기를 기다렸다가 코를 잡고 그대로 들이부었다.
……꿀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