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화 (11/192)

11화

조금이나마 의식이 남아 있는지 다행히 제임스는 믹스커피를 뱉어내지 않고 다 마셨다.

난 종이컵이 비자마자 권지운에게 눈짓했다.

권지운이 빠르게 치유 스킬을 사용했다.

치유의 빛이 제임스의 몸으로 흡수되는 것을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지켜보았다.

제발.

몇 번인가 속으로 중얼거렸을 때.

“쿨럭, 쿨럭!”

제임스가 기침을 토해 내면서 눈을 떴다. 거무튀튀하던 안색도 점차 정상으로 되돌아왔다.

다행이다. 이제 살았다.

“으으……. 여기는……?”

“정신이 들어요?”

아직 완전히 몸을 일으키지는 못했지만 의식이 돌아왔으니 이제 괜찮다고 했다.

“아까 무얼 먹인 겁니까?”

제임스가 병원으로 옮겨진 뒤, 한이성 헌터가 내게 물었다. 대체 뭘 먹어서 정신을 차렸나 궁금하겠지.

“그건…….”

영영 비밀로 할 생각은 아니었지만, 아직 내가 각성했고 커피에 그런 효과가 있다고 밝히기는 저어되었다.

헌터 알못인 나도 ‘내 손안의 카페’가 꽤 좋은 스킬이라는 건 알았다.

커피에 효과를 부여할 수 있는 건 나밖에 없다고 미음이가 말했으니까.

그러나 내 몸은 F급.

지금 스킬에 대해 알렸다가 주목을 끄는 것은 부담스럽다.

내 목표는 어디까지나 한적한 곳의 한가한 카페 주인이다.

나는 권지운이 힐러로 각성한 직후 얼마나 관심에 시달렸는지 알고 있다. 내가 다니는 학교까지 기자가 찾아올 정도였다니까. 그런 신세는 사양이다.

각성한 사실도, 스킬에 대한 것도 언젠가는 권지운에게 밝혀야겠지만…….

아무튼 그때가 지금은 아니다. 나중에 생각하자.

“아, 저기……. 제임스 헌터가 맡긴 포션이에요.”

거짓말을 하자니 약간 양심에 찔렸다.

다행히 한이성 헌터는 별 의심 없이 내 말을 믿었다. 믹스커피를 마셨다는 사실보다는 제임스가 저주 해제 포션을 들고 있었다는 쪽이 있을 법하니까.

이어 내 상처까지 치료받고 나자 겨우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실감이 났다. 눈앞에서 사람이 죽을 뻔한 일은 처음 겪었다. 진정하려고 했지만 떨림이 멎지 않았다.

“하아……. 후우…….”

심호흡을 하면서 쿵쾅거리는 가슴을 진정시켰다.

그래도 살아났다.

죽지 않았다. 나도, 회귀 전 과거에 몬스터에게 죽었던 제임스도.

어떻게든 한 가지 미래를 바꾼 걸까.

속으로 안도하는 그때, 눈앞에 알림 창이 나타났다.

[업적: ‘첫 번째 죽음의 위기를 회피함’을 달성했습니다. 보상을 수령해 주세요.]

어라?

대체 뭐지? 업적을 달성했다고?

“권리을, 왜 그래?”

치료를 받은 내가 딱딱한 표정으로 허공을 응시하자 권지운이 물었다.

“아니, 그냥 좀……. 피곤해서 그런가 봐.”

“입원 안 해도 되겠어?”

“괜찮아. 방금 치료 받았잖아.”

괜찮다, 아픈 데 없다, 다 나았다는 말을 다섯 번쯤 더 한 뒤에야 순순히 권지운이 물러났다. 그 사이 눈에 띄지 않는 구석으로 이동해서 상세 화면을 열어 보았다.

[업적: 첫 번째 죽음의 위기를 회피함

축하드립니다.

죽음의 위기를 무사히 회피했습니다.

생명을 소중하게 여깁시다.

보상: 위그드라실의 가지 x1]

어딘가 찜찜한 내용이었다.

먼저 ‘첫 번째 죽음의 위기’라는 표현이 거슬렸다.

첫 번째라고? 그럼 두 번째, 세 번째도 있다는 건가. 또 이런 일을 겪는다니 생각하고 싶지도 않다. 뭐 이런 불길한 단어가 다 있지.

더군다나 보상 항목에 적힌 것은 처음 들어 보는 물건이었다.

위그드라실? 혹시 내가 모르는 고가의 아이템인가 하고 핸드폰으로 검색해 보았지만 관련 없는 게임 아이템만 나왔다.

이게 뭔지 물어볼 미음이도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아무튼 다른 사람들이 있는 이곳에서 보상을 꺼낼 수도 없으니 일단 나중에 알아보자.

나는 알림 창을 끈 뒤 몸을 일으키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까 도와주러 온 헌터에게 감사 인사를 하고 싶었다.

그러나 아무리 주위를 보아도 그 헌터는 보이지 않았다. 다른 사람보다 머리 하나는 위로 솟아서 금방 찾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한이성 헌터에게 물어볼까.

그때 지나가 나를 발견하고 후다닥 달려왔다.

“리을 씨, 괜찮아요? 미안해요, 나 혼자서 나간 사이에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

“아니에요. 지나 씨야말로 무사해서 다행이에요.”

정말이다. 만약 지나가 동굴흑곰에게 공격당했다면 크게 다쳤을지도 모른다.

“더 일찍 오려고 했는데…….”

지나가 어두운 표정으로 시선을 늘어뜨렸다.

C급 화염너구리가 나타나자마자 지나는 <던전관리청> 소속 헌터에게 지원을 요청했다.

하지만 <던전관리청>의 헌터들은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늦장을 부렸다. C급 화염너구리는 헌터 입장에서 강한 몬스터가 아니다. 보수도 적을 테니 서로 네가 가라, 전에 내가 가지 않았냐 미뤄 댔다고 한다.

기가 막혔다. 자기들이 죽는 거 아니라 이거지.

그때 다행히 <청라 길드>에서 지원을 해 주었다. 의문은 풀렸지만 기분은 착잡했다.

회귀 전, 회사에 다닐 때 꼭 서로 자기 일이 아니라고 미뤄 대던 사람들 사이에 끼었을 때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여기 들고 갔더니 저기 가라고 하고, 저기 들고 갔더니 여기 들고 가란다.

급기야 다 큰 어른들이 프린터에 종이를 누가 채워 넣는지로 멱살 잡고 싸워 댔다.

그럴 시간에 일 좀 처리해 주면 안 되나요.

헌터들도 그런 인간이 있었구나.

어쨌건 몬스터 때문에 부서진 가게 내부는 <던전관리청>이 수리를 해 주고 보상금까지 지급한다고 했다.

이런 일이 많아서인지 절차가 간편하게 되어 있어, 간단한 서류에 사인만 하니 끝이었다.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하고 오늘은 푹 쉬세요.”

더군다나 지나는 가게가 부서진 내게 임시 숙소로 꽤 비싼 호텔까지 잡아 주었다.

권지운은 당장 갈 데가 없으면 자기 집으로 오라고 했지만 나는 호텔을 택했다. 시스템 알림 창의 보상을 제대로 확인하려면 혼자 있는 편이 나을 것 같아서였다.

굳이 집에서까지 권지운 얼굴을 볼 이유도 없고.

권지운도 그렇게 권하기는 했어도 진심은 아니었을 테다.

호텔에서 자 보고 싶은 마음이 더 컸던 것은 비밀이다.

조식 뷔페도 준다고 하잖아. 회귀 전 삶에서 매번 블로그 포스팅으로 봤던 그 호화로운 조식 뷔페 말이다.

설레는 마음에 나는 핸드폰으로 조식 뷔페 포스팅을 검색했다.

와, 시리얼 코너도 종류가 엄청 많네. 미음이가 좋아하겠다.

“미음아!”

그러나 미음이가 어디에도 없었다.

그러고 보니 아까 몬스터를 보고 이상한 말을 한 이후로 계속 보이지 않았다. 부르지 않아도 늘 발치에 앉아서 밥 달라고 바닥을 긁어 댔는데.

어디로 갔지?

설마 무섭다고 혼자서 도망친 건 아니지? 미음이가 그렇게 치사한 고양이는 아니리라 믿는다.

몬스터도 해치웠으니 혼자 있어도 괜찮겠지만…….

미음아, 네가 같이 안 간 거야. 나는 불렀다고. 나중에 딴말하기 없기다.

* * *

[튜토리얼 퀘스트: 커피는 나의 꿈

가장 간단한 커피부터 스킬 사용을 익혀 봅시다.

믹스커피 100잔 타기: 99/100

보상: 경험치(100exp), 50루비, 아메리카노 레시피, ???]

나는 종이컵에 탄 믹스커피를 들고 퀘스트 화면을 확인했다. 선명하게 ‘99’라고 적힌 숫자가 눈에 들어왔다.

드디어 마지막이다.

기나긴 튜토리얼 퀘스트의 마지막 잔이 내 손안에 있다. 이 한 잔만 마시면 드디어 믹스커피 100잔 타기가 끝이 난다.

제일 처음 주는 튜토리얼 퀘스트부터 이렇게 노가다라니, 만약 이 시스템이 요즘 게임이었으면 금방 망했을 것이 틀림없다.

요즘 게이머는 처음부터 팍팍 퍼 주지 않으면 금방 이탈한다고요.

그러니까 보상 항목의 ‘???’가 제발 좋은 거면 좋겠는데.

이 마지막 믹스커피를 손에 들고 있으려니 지난 며칠간의 일들이 떠올랐다.

그저 믹스커피를 딱 100잔 만들려던 것뿐인데 너무 많은 일이 일어났다. 돌이켜보니 감회가 새로울 지경이다.

먼저, 가게를 수리하는 동안 지냈던 호텔은 역시 비싼 곳이라 그런지 편안했다.

아주 편안했지만…… 문제는 조식 뷔페를 운영하지 않았다. 며칠 전 근처에서 균열이 발생하면서 호텔 레스토랑이 부서졌기 때문이란다.

내 뷔페!

정말 되는 일이라곤 하나도 없다. 대신 호텔에서 다른 음식을 주기는 했지만, 나는 뷔페가 먹고 싶었다고.

나는 속으로 던전과 몬스터에 대한 욕을 마구 쏟아 냈다.

내가 ‘무원’만큼 강한 헌터였다면 온갖 던전에 다 들어가 몽땅 쓸어버렸을 테다. 국내 랭킹 1위의 S급 헌터라면 던전이고 뭐고 조금도 무섭지 않을 테니까.

그리고 커다랗게 이름이 적힌 옷을 입고 다니면서 길에서 마주치는 모든 사람에게 은근슬쩍 이렇게 말하는 거다.

‘왜요? 제가 국내 랭킹 1위 헌터이자 <청라 길드>의 길드장 무원처럼 보이나요?’

막 편의점에서 삼각김밥 사면서 실수인 척 헌터 신분증명서 꺼내기도 하고. 생각만 해도 기분 좋다.

전 국민이 정체를 궁금해하는 헌터인 건 대체 어떤 기분일까.

그러니까 이런 시답잖은 생각이나 할 정도로 호텔에서 심심했다는 뜻이다.

업적 보상으로 받은 ‘위그드라실의 가지’란 것을 꺼내 봤지만 그냥 이파리가 달린 나무 막대기라 용도를 알 수 없었다. 꽤 싱싱하기는 했다.

[아이템: 위그드라실의 가지(★★★★☆)

세계수 위그드라실에서 잘라 낸 가지. 내추럴한 인테리어에 최적입니다.

종류: 나뭇가지.

비고: 물은 일주일에 한 번만.]

상세 화면에는 쓸데없는 내용밖에 없었다. 인테리어에 최적이라니 이런 나뭇가지를 집에 걸어 두기라도 하란 건가?

결국 나는 나뭇가지를 도로 인벤토리에 처박아 두었다.

인터넷에서는 몬스터가 나타난 사건에 대해 뭐라 뭐라 떠들어 댔는데, 피해가 크지 않아서 특별한 내용은 없었다.

[헌터SCOPE] 제임스 잭 스미스 헌터, 퇴원 후 무사 귀국…… 양손 무거운 귀국길

└ ydh***: 저 노란 박스 대체 뭐임? ㅈㄴ마늠

 └ 던찐: 맥모골 아님?????

  └ 사이버요리왕: 젬스가 맥모골을 왜 사감; 얼탱노;;

   └ilIii1lI: 박스 이거 같은데(사진)

└ Jja***: 맥모골 맞음ㅋㅋㅋㅋㅋㅋㅋ 기사 뜸 [링크]

[헌터TALK★] 미국 랭킹 30위권 헌터 제임스 “마실수록 더 맛있어…… 마약 같은 맛” 믹스커피 사랑 과시

└황금고등어: 사진 표정 봐라 ㄹㄹ 찐이다ㅋㅋㅋㅋㅋㅋ

└민초에치약: 미국인이 마약 같다니까 찐 같다;ㅋㅋ

 └fft***: 해 봤나

└김성현: 회사 뭐함 광고 함 찍자

 └허리펴라: 헌터 선진국 클라스 오지네 미국 30위권 헌터 따위 커피 광고나 찍는데 씀

rho***: 미국 30위면 국내 랭킹 몇 위쯤 됨 무원 쳐바름?

└힝헹: 뭘 발라 새끼야 무원이 쳐바르지 청라 업적 오지는 거 모름???

 └rho***: 왜 급발진함??ㄷㄷ

  └힝헹: 니가 개소리를 쳐하잖아 사대주의에 쳐도른 새끼 어따 30위를 무원에 비빔 한이성 선에서 정리된다고 본다

  └마켓추천rtj: 힝헹 전에 청라 길드 떨어져서 저러는 것임

   └버블버블: 거기 헌터 뽑긴 하냐;

└ 힐러구함: 청라 그냥 무원빨 아님??

 └ddd***: 그건 아님 무원이 넘사벽 클라스라 그렇지 한이성도 보조계 헌터 중에 알아주는 편임. 쉽게 생각하고 비비는데 너네 다 쌉바름;;

  └씨에로: 네다한

  └화염너구리할짝: 근데 진짜 무원은 어디서 뭐함?

음, 평화롭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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