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화 (14/192)

14화

카페 건물 주위로 흩뿌려 둔 엷은 빛의 그물을 거둬들이는 순간.

“으아앗, 대체 어디 가셨던 겁니까!”

“이런 데 계실 줄은 몰랐어요.”

기유현을 쫓던 사람들이 멀리서 그를 발견하고 달려왔다.

똑같은 모양의 점퍼를 걸친 남녀 쌍둥이였다. 그들은 혹시 기유현이 다시 도망치기라도 할까 봐 바짝 옆으로 붙어 섰다.

“저희가 길드장님 얼마나 찾았는지 아십니까?”

“부길드장님이 길드장님 꼭 모셔 오라고 했단 말이에요!”

“밖에서 길드장이라고 부르지 말라고 했을 텐데.”

쌍둥이가 새하얗게 질려 고개를 꾸벅 숙였다. 또 혼나겠다며 바짝 긴장한 모습이었다.

이름은 주신우, 주신희.

각성한 지 아직 몇 달 되지 않았지만 <청라 길드>의 1군 파티에 들어갈 정도로 유능한 헌터들이었다.

그들은 오늘 길드장을 수행하는 역할을 맡았다.

중요한 역할이라며 두근댄 것도 잠시. 금방 모습을 감춘 길드장 때문에 곤란에 빠졌다. 주위를 헤매다 겨우 찾아낸 차다.

한국 최초이자 최강의 S급.

‘무원’이라는 이명으로 널리 알려졌다.

실제로 처음 보는 그는 친절한 데다 웃는 얼굴도 부드러웠지만 쉽게 대하기 힘든 위압감이 느껴졌다. 지금도 그렇다. 조금도 화를 내지 않았는데 등줄기에 쭈뼛 소름이 돋았으니까.

“어떠셨어요?”

쌍둥이 중 여자 쪽, 주신희가 뒤로 보이는 카페를 눈짓하며 물었다.

“이상한 점은 없었어. 에테르 반응도 느껴지지 않아.”

“하지만…… 신경 쓰이는 점이 있어서 확인하러 가신 것 아니었습니까?”

“그래, 그랬었지.”

기유현은 멀리 보이는 붉은 벽돌 건물을 바라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안을 살펴봤지만 이상한 점은 느껴지지 않았다. 작위적일 정도로 말이다.

이상한 점이 있다면 오히려…… 그 여자일까.

기유현은 그녀의 짙은 밤색 머리카락과 놀라서 동그랗게 뜬 눈을 떠올렸다.

“이 옷 말인데.”

“네.”

기유현은 코트 끝자락에 미량의 에테르를 주입했다. 푸른 덩굴 마크가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비각성자도 마크를 확인하는 게 가능한가?”

“아니요, 당연히 안 됩니다. 에테르에만 반응하는 마크인걸요.”

주신우가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저었다.

“무슨 문제라도 있으셨어요?”

“아니, 그냥 궁금해서.”

“길드 제복인걸요. 마크를 활성화하는 것도, 확인하는 것도 각성자만 가능한 물건이에요.”

그런데 그 여자는 어떻게 알아봤을까. 설마 헌터인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타당하겠지만……. 여전히 의문점은 남았다.

여자에게서는 조금도 에테르가 느껴지지 않았다. 겉으로 보기에는 일반인이나 마찬가지였다.

설마 내 앞에서 힘을 감춘 건가?

말도 안 된다.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오싹 소름이 돋았다.

이계의 신, 위대한 자와 계약을 맺은 순간부터 기유현은 공간의 에테르를 자유롭게 감지하고 다룰 수 있었다.

그런 그 앞에서 힘을 감출 수 있다면…….

결단코 평범한 헌터 수준이 아닐 것이다. 허술해 보이는 모습조차 위장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 시계.

기유현은 소매를 걷고 자신의 손목을 내려다보았다.

손목을 감싼 은빛 시계의 숫자판 안쪽에는 특수한 기술로 새긴 문자가 있었다.

기유현 (S Class)

Rank No.1

S급 헌터 전용으로 특별히 제작되는 헌터 증명서는 각 헌터의 랭킹에 맞추어 다른 디자인을 하고 있다.

기유현의 경우는 이 은빛 시계로, 에테르를 주입하면 랭킹을 나타내는 문자와 특수한 마크가 나타났다.

그러나 랭킹 1위의 증명이 시계 형태라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길드 내부에서도 일부 몇 명 정도.

그 여자는 어떻게 시계에 대해 알고 있는 걸까.

기유현은 과거, 아니 어쩌면 미래일 기억을 떠올렸다.

그는 3년 후의 미래에서 과거로 회귀했다. 다만 과거 회귀라니,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는 알 수 없었다.

3년 후의 미래. 기유현은 각 길드의 최상위권 헌터를 모아 공략팀을 구성했다.

마신을 추앙하는 교단이 끝내 마신 □□□□를 부활시키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대던전 《어비스》의 최상층, 《궁극의 문》 너머에 잠든 최악의 마신. 부활하는 순간 세계에 종말을 불러오는 심연.

기유현은 완벽한 준비를 했다고 생각한다.

믿을 수 있고 강한 동료들을 모았고, 충분한 장비를 갖춘 뒤 도전했다. 가히 인류의 총력을 다했다고 해도 좋을 정도였다.

그러나 그의 파티는 마지막 층에서 패배했다.

마신이 잠든 《궁극의 문》 앞에 당도했을 때, 머릿속에서 어떤 목소리가 들렸다. 시스템 메시지와 비슷하면서도 훨씬 낮게 울리는…… 섬뜩한 목소리였다.

【열쇠가 준비되지 않았다.】

【네게는 아직 문을 열 자격이 없다.】

이어 마신의 눈을 마주 보는 순간, 예상했던 고통 대신 섬뜩한 감각이 몸을 뒤덮었다.

그의 기억은 여기서 끊긴다. 곧 의식을 잃었고 눈을 뜨자 3년 전으로 돌아와 있었다.

다시 한번 기회가 주어졌다.

그렇게 3년 후의 결전에 대비해 힘을 모으던 중.

그가 기억하는 과거와 다른 일이 일어났다.

바로 미국 출신 헌터 제임스 잭 스미스의 사망이다.

1회차와 똑같이 2회차에서도 제임스는 몬스터의 공격을 받았다.

다만 이번에는 살아남았다.

분명히 똑같이 흘러가야 할 미래가 기억과 달라졌다.

‘왜 미래가 달라졌지?’

그런 의문을 느꼈을 때 1회차와 달라진 점이 기유현의 눈에 들어왔다. 바로 황량한 던전게이트 앞에 위치한 자그마한 카페였다.

분명히 1회차 때는 없었던 곳이다. 무슨 비밀이 있다면 저곳일 터.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 찾아간 오늘, 가게에는 평범한 카페 주인만 있을 뿐이었다.

기유현은 방금 만난 서글서글한 인상의 여자를 떠올렸다.

‘처리해야 할까.’

미래에 지장을 끼친다면, 그것이 무엇일지라도 처리할 생각이었다.

1회차의 실패를 반복할 수는 없었으니까.

‘아니, 아직은 좀 더 두고 볼까.’

미심쩍은 부분은 있지만, 아직 그 여자가 수상하다고 판단을 내리기는 이르다.

기유현은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아무튼…… 앞으로 주시해야겠어.’

자그마한 붉은 벽돌 건물을 보며 그렇게 결론을 내렸다.

“그런데 나에 대해 무슨 소문이 도는 게 있나?”

“소문이요?”

“예를 들어…….”

“그렇죠. 못생겨서 정체를 숨긴 거라는 소문도 있던데, 그건 아닌 거 같…….”

그 목소리가 귓가에 아른거렸다.

“아무것도 아니야. 돌아가자.”

카페 주인의 말이 매우 신경 쓰였지만, 아직은 자신의 정체를 드러낼 때가 아니었다.

대신 기유현은 조금 전에 마신 커피를 떠올렸다.

평범한 믹스커피인가 했는데 그렇지 않았다.

달콤함과 부드러움이 완벽한 균형을 이루었고, 고소한 커피 향이 마음을 편안하게 했다. 더군다나 커피를 마신 이후로 몸에는 따뜻한 기운이 감돌았다.

가능하다면…….

‘다시 한번 마시고 싶군.’

* * *

드디어.

드디어 이 순간이 왔다.

“우후후후후후…….”

“그렇게 웃으니 악당 같구나.”

미음이의 핀잔을 무시하고, 눈앞에서 깜빡거리는 시스템 알림을 쳐다보았다.

갑자기 시스템이 먹통이 되어 무슨 문제라도 생겼나 했지만, 이제 괜찮은 모양이다.

[축하합니다! ‘튜토리얼 퀘스트: 커피는 나의 꿈’을 완료했습니다.

보상을 수령해 주세요.]

나는 아래에 선명하게 나타난 [보상 수령] 버튼을 선택했다.

[경험치: 100exp를 획득했습니다.]

[레벨이 2가 되었습니다.]

[50루비를 획득했습니다.]

[스킬: 바리스타의 추출(D)를 획득했습니다.]

[새로운 레시피 아메리카노를 획득했습니다.]

띠링띠링 하는 효과음과 함께 눈앞에 우수수 시스템 메시지가 떴다.

나는 들뜬 마음을 품고 하나씩 내용을 확인했다.

제일 먼저 레벨. 처음 스테이터스는 구렸지만 레벨 업을 하면 강해질 수도 있으니까.

이름: 권리을

클래스: 카페 주인(F) (Lv.2)

체력 100/100, 기력 100/100

힘: 8, 지력: 12(+1), 민첩: 9, 운: 12

“…….”

그런 기대는 스테이터스 화면을 확인하자마자 무너졌다.

설마 숫자를 잘못 읽었나 눈을 비비고 다시 읽었지만 변한 점은 없다. 레벨 업의 보상은 지력 1 상승이 끝이었다.

“우와, 진짜 많이 올.려.준.다.”

나는 영혼이 담기지 않은 목소리로 빈정거렸다. 기가 막혔다. 이 시스템은 내 스테이터스가 강해지는 걸 원하지 않는 게 분명했다.

“레벨 업 축하한다, 이야오옹.”

“그냥 차라리 비웃어 줘…….”

“너 정말 약하구나, 아하하.”

“비웃으란다고 진짜 비웃다니.”

“어쩌란 거냐, 키야오옹!”

미음이가 털을 쭈뼛 세우더니 냥냥 펀치를 휘둘렀다.

“‘기운 내. 너는 스테이터스로는 판단할 수 없는 재능이 있는 소중한 사람이니까.’ 이런 말로 위로를 해 줄 수도 있잖아.”

미음이가 대답 없이 바닥에 식빵 모양으로 앉은 채 늘어져라 하품을 했다. 무시한다 이거지.

뭐, 괜찮다. 상처받지 않았다. 어차피 내가 제일 기대한 건 레벨 업이 아니라 소중한 500만 원이니까.

나는 인벤토리에 들어온 붉은색 루비 50개를 보며 미소 지었다. 물론 진짜 보석은 아니고 <헌터 마켓>에서 사용하는 재화였다.

어라, 그러고 보니 이 루비를 어떻게 현금으로 바꾸지?

나는 이제껏 생각하지 못했던 문제에 부딪쳤다.

이 루비를 들고 편의점에 가서 계산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 나한테 필요한 건 헌터용품이 아니라 현금인데 말이다.

“그것도 모르느냐. <헌터 마켓>에 가서 등록하고 환전하면 된다!”

“꼭 가서 해야 해?”

귀찮은데. 그러나 미음이는 고개를 저었다.

“에헴, 귀를 열고 잘 듣거라, 레벨 2짜리 인간아.”

왜 욕을 먹은 기분이지.

아무튼 미음이가 잔뜩 뻐기면서 한 설명에 따르면 이랬다.

헌터용품은 대체로 가격이 비싸다. 하급 포션 세트도 한 달 월급 정도였으니 고등급 아이템은 그야말로 일반인은 꿈도 꾸기 어려운 어마어마한 가격.

그런 <헌터 마켓>의 돈이 마구잡이로 흘러 들어가 물가가 오르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루비의 환전에는 제한이 걸려 있었다.

1억 원 이상을 환전할 때는 미리 신고하고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데……. 고작 500만 원을 환전하려는 나와는 상관없는 이야기였고, 다만 직접 방문해서 마켓에 등록해야 했다.

“우리 미음이는 똑똑하기도 하지.”

“이 정도는 상식이다!”

턱밑을 긁어 주자 콧대가 높아진 미음이가 골골거리는 소리를 냈다.

참 쉬운 고양이다.

여기서 가장 가까운 <헌터 마켓>은 압구정에 있는 지점이었다.

그리고 <헌터 마켓>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먼저 <던전관리청>에서 각성자로 등록해야 했다.

휴, 어쩔 수 없군. 각성자로 등록을 하긴 해야겠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