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3화 (33/192)

33화

“거기서 뭘 하고 있었어?”

“뀨우! 뀨우우.”

열심히 라임이가 몸을 움직이며 뭐라고 말했다.

음, 전혀 모르겠다……. 그나마 라임이의 말을 잘 알아맞히는 미음이를 데려올 걸 그랬다. 대체 어떻게 저 ‘뀨우우’를 해석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슬라임어 번역기 같은 건 없어?”

“있긴 하지만…….”

“하지만?”

“모르는 게 좋은 일도 있는 법이다, 왜옹!”

왜, 뭔데, 저 뀨우웃 소리에 무슨 비밀이 있는 건데. 슬라임어 번역기를 구하거든 한번 써 보자…….

“뀨, 뀨웃.”

잠시 다른 생각에 빠진 나를 라임이가 불렀다. 그리고 몸을 통통 튕기면서 어느 한곳을 가리켰다.

“저거 말야?”

“뀨우우!”

라임이가 가리킨 방향에는 다른 가지보다 유난히 열매가 많이 열린 가지가 있었다.

빛깔이 짙다. 열매가 아주 잘 익어서 금방이라도 후드득 떨어져 내릴 것 같았다. 저 열매가 먹고 싶단 건가?

“저게 먹고 싶어?”

“뀻…… 뀨우!”

“알았어. 내가 따 줄게.”

나는 가지를 향해 손을 뻗었다. 하지만 손이 닿을 듯 말 듯해서 잘 딸 수가 없었다.

“으음, 조금만 더…….”

나는 가지가 난 방향으로 몸을 기울이고 나무 둥치에 매달렸다. 아슬아슬하게 열매를 따는 순간 주르륵 손이 미끄러졌다.

“……!”

이어 땅 위로 솟아오른 뿌리에 발이 걸리면서 몸이 중심을 잃었다.

어, 잠깐. 여기 이런 비탈길이 있었던가?

안개가 짙게 깔린 숲에 둘러싸인 이공간 한쪽 구석, 절묘하게 가려져 밖에서 보이지 않는 곳에 가파른 비탈길이 숨겨져 있었다.

하필이면 내 몸은 그곳을 향해 데굴데굴 굴러갔다.

“뀨우우우!”

놀란 라임이가 쫓아왔지만, 손이 없는 슬라임이 나를 붙잡을 수는 없었다.

이어질 아픔을 예상하고 입술을 꽉 깨무는 순간, 주위가 멎었다. 꼭 시간이 멈춘 것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시스템 창이 나타났다.

[커피로 깊은 인연을 맺었습니다.]

[스킬: 커피 한 잔의 인연(B)을 획득했습니다.]

[위기 상황! ‘커피 한 잔의 인연’이 발동됩니다.]

[스킬 Lv.1: 발동 시간 00:05:00 / 쿨타임 24:00:00]

[대상: ‘최이찬’이 선택됩니다.]

뭐라고?

놀란 내 앞에 다시 시스템 창이 떴다.

[주의! 기력 소모량이 큰 스킬입니다.]

[스킬: 방어는 최고의 방어(C)를 사용합니다.]

[5분 간 방어력이 500% 상승됩니다.]

시간이 멈춘 것만 같던 주위가 다시 움직였다.

나는 절벽 아래로 떨어지는 중이었고, 지면은 이미 가까웠다.

윽, 부딪친다!

그런데 바닥에 닿기 직전 몸이 둥글게 말리더니 완벽한 낙법 자세를 취했다.

이런 걸 배운 적은 없다. 그러나 내 몸은 마치 처음부터 알고 있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움직였다.

쾅!

“으, 아아…….”

세게 부딪친 부분을 손으로 문지르며 몸을 일으킨 나는 깜짝 놀랐다.

“……어?”

안 아프다.

방금 엄청난 소리가 났는데도 고통은 느껴지지 않았다. 꼼짝없이 어디 한 군데는 부러지겠다고 생각했는데, 몸은 멀쩡하기만 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뀨우우…….”

절벽 위쪽에서 후다닥 라임이가 몸을 튕기며 내려왔다. 나를 걱정했는지 주위를 빙빙 돌았다.

잠시 라임이의 말랑한 몸을 만지며 겨우 마음을 진정한 나는 방금 나타난 시스템 메시지를 다시 확인했다.

분명 스킬을 새로 얻었다고 했지.

‘스킬.’

스킬 창에 낯선 스킬이 있었다. 나는 곧장 상세 화면을 열었다.

[커피 한 잔의 인연(B)

상세: (Lv.1) 궁극의 커피를 마신 상대의 스킬을 복사할 수 있다. (00:05:00)

쿨 타임: 24:00:00

사용 가능 대상: 최이찬]

상대의 스킬을 복사할 수 있다고?

이런 엄청난 효과를 지닌 스킬은 이제껏 들어 본 적이 없다.

자고로 복사, 반사, 무효화란 판타지 소설 주인공만 얻을 수 있는 사기 스킬이 아닌가.

만약 헌터 채널에 ‘난 남의 스킬 복사 가능함ㅋ’ 같은 글을 썼다간 순식간에 알못이 헌터를 웹소설로 배웠냐는 악플을 받고 삭제될 것이 틀림없다.

궁극의 커피를 마시게 해야 한다는 불명확한 제한 조건, 24시간이라는 쿨 타임을 고려해도 고작 B급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는 스킬이었다.

가만, 최이찬에게 아이스크림 커피를 마시게 했을 때 이상한 알림이 떴었지.

[대상이 당신의 커피를 아주 좋아합니다.

커피로 깊은 인연을 맺었습니다.]

그 메시지가 스킬을 복사할 수 있다는 뜻이었구나.

그럼 여러 헌터에게 자기 취향의 커피를 마구 마시게 하면, 더 많은 대상을 복사할 수 있지 않을까?

헉, 이러다가 S급 스킬도 복사해서 내가 팡팡 쓸 수 있는 거 아닌가?

“대박…….”

‘스킬 복사로 꿀빰’의 황금빛 미래가 눈앞에 펼쳐지는 듯했다.

잠깐, 아직은 야망에 불탈 때가 아니다.

우선 최이찬의 스킬을 먼저 확인해 보자. 어쩌면 앞으로 그에게 예정된 비극을 피할 힌트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커피 한 잔의 인연.’

나는 당장 다시 스킬을 사용해 보았다.

[쿨 타임이 지나지 않아 스킬 사용이 불가능합니다.

해제까지 남은 시간 23:50:16]

[주의하세요! 기력 소모량이 많은 스킬입니다. 남은 기력이 10 미만일 시 상태 이상이 발생합니다.]

[대상: ‘최이찬’을 선택합니다.]

쿨 타임 때문에 사용은 불가능했지만 복사 대상인 스킬을 볼 수는 있었다.

주르륵 문자의 향연이 이어졌다.

[더블 슬래셔(F)

(Lv.1) 일정 확률(0.05%)로 일반 공격 시 공격이 2회 발생한다.]

[밀어내기(E)

(Lv.1) 일정 확률(0.1%)로 방어 시 적을 밀어낸다.]

확률이 개쩨쩨한 애매한 전투 스킬이 두 개뿐. 특별한 내용은 없는 것 같은데…….

어라. 스킬 리스트에는 감춰진 다음 페이지가 있었다. 페이지를 넘기니 ‘미습득’ 이라는 붉은 글씨가 깜빡거렸다.

[방어는 최고의 방어(C) /미습득/

(Lv.1) 5분 동안 방어력이 500% 상승한다.

※ 아직 습득하지 않은 스킬입니다.

습득 방법: 방패로 방어를 100회 성공한다.]

[일격 필살(A) /미습득/

다음 공격에 100% 확률로 크리티컬이 발생한다.

※ 아직 습득하지 않은 스킬입니다.

습득 방법: 무기로 몬스터를 200회 공격한다.]

[커피는 나의 힘(S) /미습득/

(Lv.1) 카페인 중독 상태일 때 공격력이 800% 상승한다.

※ 아직 습득하지 않은 스킬입니다.

습득 방법: 카페인 중독 상태에서 공격을 시도한다.]

[어둠을 비추는 빛(S) /미습득/

(Lv.1) 1시간 동안 암흑 속성의 대미지를 무효화한다.

※ 아직 습득하지 않은 스킬입니다.

습득 방법: 암흑 에테르 아이템을 24시간 동안 소지한다.]

최이찬은 대부분의 스킬을 아직 습득하지 않은 상태였다. 하지만 얻기만 하면 E급 헌터라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하나같이 좋은 스킬이다.

스킬 설명의 아래에는 친절하게 습득 방법까지 나와 있었다.

나는 그중 맨 마지막, ‘어둠을 비추는 빛’에 주목했다.

암흑 속성의 대미지를 무효화한다고?

잠깐, 잠깐만…….

회귀 전에 최이찬이 뛰어든 던전은 암흑 속성 던전이다.

그럼 즉, 스킬 습득=암흑 대미지 무효화=살아 돌아옴?

“…….”

심장이 크게 쿵쾅거렸다.

이걸 이용해서 최이찬이 살아 돌아올 수 있다는 희망이 보이자, 기쁨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다만 한편으로 이런 의심도 들었다.

마치 보란 듯이 정보가 주어졌다. 어째서 시스템이 이렇게 내게 필요한 내용을 알려 주는 걸까. 무슨 꿍꿍이라도 있는 건 아닐까.

아니, 하지만 최이찬이 살아날 수만 있다면 꿍꿍이든 뭐든 상관없다.

스킬의 랭킹도 무려 S급인 데다, 친절하게 얻는 방법까지 알려 줬으니까. 일단 최이찬이 스킬을 얻을 수 있게 도와줘야겠다.

문제는 암흑 에테르 아이템이란 걸 어디서 구하냐는 건데.

“뀨우우, 뀨……?”

시스템 창을 쳐다본 채 내가 움직이지 않으니 라임이가 나를 불렀다. 아무래도 어디 다친 줄 아는 것 같다.

“어, 나 괜찮아. 다친 데 없어.”

“뀨웃!”

다행히 위로 올라가는 길은 금방 찾을 수 있었다. 절벽에 발을 디딜 만한 받침대가 있었던 것이다.

나는 카페로 돌아와, 미음이에게 커피 열매를 밥으로 준 뒤 의자에 허리를 걸쳤다. 그리고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헌터 채널에 접속했다.

채널 검색창에 ‘암흑 에테르’, ‘암흑 아이템’, ‘암흑템’ 따위의 관련 있어 보이는 키워드를 여럿 입력했다.

그러나 검색 결과는 많지 않다. 그나마도 전부 이 모양 이 꼴이었다.

[잡담] 암흑 파밍 기도 15일차 (0)

[잡담] 암흑템 순삭이네; (1)

[잡담] 대박ㄷㄷㄷ 암흑 광석…인줄 알았는데 아님 (2)

[이슈] 암흑 에테르 아이템 사기 조심하세요!!! (325)

[잡담] 암템 도시전설 아니냐;; (0)

…….

[잡담] 암흑 파밍 기도 99일차 (0)

“으음…….”

촉이 온다. 굉장히 구하기 힘드리라는 촉이.

암흑 에테르 아이템이 정확히 어떤 것인지는 몰라도, 거의 환상의 아이템 취급이었다. 이래서는 <헌터 마켓>에서도 쉽게 손에 넣기 힘들겠군.

나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헌터 채널에 글을 올려 보았다.

잠시 뒤, 댓글 알림이 울렸다. 나는 얼른 핸드폰으로 헌터 채널에 접속했다.

[잡담] 암흑 에테르 아이템 구합니다. (2)

추천: 0 / 비추: 0

작성자: F급카페주인

암흑 에테르 아이템 구합니다.

등급, 종류 상관 없음 암흑이기만하면 됨

파실 분 연락주세요

하스터: [링크] 여기가보셈

└힐러구함: 이댓글 링크 피싱사이트에요 ㄴㄴ클릭금지

…….

나는 침착하게 글을 삭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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