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화
* * *
[업적: 최고의 콤보를 찾아서
최고의 커피에는 최고의 디저트.
적절한 조합으로 콤보 보너스를 획득했습니다.
보상: 시스템 업데이트]
눈앞에 알림 창이 깜빡거렸다.
난 잠이 덜 깨서 멍한 상태로 창을 바라보았다.
어제 암흑 에테르 아이템에 대한 정보를 얻는 데 실패하고, 다시 두꺼운 『던전생태백과』를 펼친 것까진 기억났다.
그리고…….
…….
그대로 잠들었나 보다.
“으윽…….”
불편한 자세로 잠을 잤더니 목이 뻐근했다. 스트레칭을 하니 목에서 뚜둑, 소리가 났다.
업적 달성이라니. 하지만 지나가 돌아가고도 벌써 하루가 지났다. 왜 지금에서야?
시스템이 너무 느리지 않나? 귀찮은 일을 시킬 때면 재깍 알림을 띄워 대면서, 보상 알림만 늦게 띄우다니 태업이다.
[서비스 지연으로 불편을 끼쳐 드려 죄송합니다.]
어, 그래…….
평소와 시스템의 말투가 살짝 다르다.
미심쩍었지만 그게 중요한 상황은 아니었다. 나는 뻐근한 목덜미를 문지르면서 보상 수령을 선택했다.
[드디어 카페 주인으로 성장할 준비가 된 적격자여.
시스템 업데이트가 시작됩니다.
1, 5, 10……. 100% 완료.
차원의 상점 기능이 해금되었습니다.]
으음? 이게 뭐지?
“드디어 그 기능을 해금했구나! 왜웅!”
잠이 덜 깬 멍한 머리로 알림 창을 보며 눈만 끔뻑이는데 미음이가 끼어들었다.
“이 차원의 상점이란 게 뭔데?”
“위대하신 시스템 □□ □□□가 특별히 준비한 차원을 초월한 상점이다. 쉽게 손에 넣을 수 없는 물건을 시스템을 통해 살 수 있느니라.”
“흐음…….”
“왜오오옭!”
미음이가 벌떡 앞발을 들더니 내게 냥냥 펀치를 날렸다.
“반응이 미적지근하다! 좀 더 열렬하게 반응하거라!”
“와.아.아.”
“영혼이 담겨 있지 않다!”
“하지만 지금은 딱히 갖고 싶은 물건도 없고…….”
파바밧. 미음이의 앞발이 내 등을 다시 가격했다. 마구 덤벼드는 미음이를 떼어 놓다가 나는 멈칫했다.
잠깐, 쉽게 손에 넣을 수 없는 아이템이라고?
이 타이밍에 이런 상점 기능이라니, 어쩌면 암흑 에테르 아이템이 거기에 있을지도 모른다.
시스템 녀석, 도움이 될 때도 있구나. 그동안 불평불만만 쏟아 냈는데 좀 미안해지는군.
잠이 확 달아났다. 나는 당장 이 신기능에 접속해 보았다.
‘차원의 상점.’
[차원의 상점
어서 오세요! 이곳은 다차원의 틈새를 잇는 상점.
적격자님이 필요하신 아이템을 구입할 수 있습니다.
아이템 갱신 시각: 24:00:00 남음]
설레는 설명을 넘기며 아이템 리스트를 확인했다.
“으음, 신선한 우유 1루비……?”
[신선한 우유: 1루비
고소한 생크림: 2루비
초코 소스: 5루비
시나몬 가루: 3루비
…….]
그런데 암흑 에테르 아이템은커녕 식재료, 그것도 커피 음료 재료밖에 없었다.
쉽게 손에 넣을 수 없는 아이템이라며?
“왜 이런 것밖에 없어?”
파바밧. 미음이가 다시 내게 앞발을 날렸지만 이번에는 몸을 옆으로 돌려 피했다.
“‘이런 것밖에’라니! 적격자에게 맞는 아이템을 선별한 것이다!”
“……이게?”
“키야옹, 카페 주인에게 맞는 아이템이 무엇이겠느냐. 음료 재료가 아니냐.”
하지만 우유는 슈퍼에서도 팔잖아.
관심을 잃고 상점 창을 끄려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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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물이 날 정도로 절실한 영업이다.
그래, 뭐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나는 아이템의 상세 화면을 확인해 보았다.
[아이템: 신선한 우유(★★☆☆☆)
희귀한 A급 황금삼각뿔소에게서 얻은 우유.
평범한 우유와는 다른 풍부한 맛.
음료의 품질을 좋게 만들어 줍니다.]
다른 아이템도 비슷했다. 하나같이 음료의 품질이 좋아진다는 설명이 붙어 있었다.
지난번 퀘스트에서 얻은 루비도 있으니까, 조금만 살까. 일단 우유는 꼭 필요하고, 또…….
테이블 위로 산더미 같이 재료가 쌓였다.
[20루비가 결제되었습니다.]
헉, 정신을 차리고 보니 과소비를 해 버렸다.
후회를 해도 이미 20루비는 재료로 바뀐 다음이었다. 화면을 아무리 살펴보아도 환불 버튼은 보이지 않는다.
이거 악덕 상점 아닌가…….
처음에는 자책했지만, 카페 재료를 시스템으로 구입할 수 있는 것은 꽤 편리한 기능이었다. 음료의 품질이 좋아진다는 건 더 좋은 효과가 나온다는 뜻이니까.
그래. 다 필요해서 산 거다. 나는 빠르게 합리화를 마쳤다.
[메인 퀘스트: 바리스타의 길 (2)
당신도 이제 당당한 바리스타.
카페 기본 5종 메뉴(카페라테, 카푸치노, 카페모카, 바닐라라테, 캐러멜마키아토)를 완성하여 판매 메뉴를 늘려 보세요.
카페 기본 5종 메뉴 완성하기: 0/5]
보상: 경험치(200exp), 랜덤 레시피, ???]
재료를 산 김에 나는 그동안 미뤄 둔 음료 5종 퀘스트를 하기로 했다.
하염없이 『던전관리백과』를 뒤지는 것은 지루해서 못 해 먹겠다. 손을 움직이다 보면 아이템 찾기에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를지도 모른다.
나는 퀘스트 보상 란의 ‘???’를 주목했다.
예고 없이 차원의 상점이 업데이트된 것처럼 시스템에는 아직 숨겨진 부분이 있을 테다. 퀘스트가 의외로 힌트가 될 수도 있고, 어쪄면 저 ???가 좋은 아이템일 가능성도 있었다.
그래, 책을 붙잡고 고민하느니, 할 수 있는 일부터 하자.
열심히 일하기는 싫지만, 최이찬을 살릴 방법을 찾는 것은 별개다.
이 문제만 해결되면 진짜 느긋하게 카페 운영을 해야지.
커피 원두가 잔뜩 있는 데다 다른 재료도 갖춰졌으니 이제 던전에 들어갈 일도 없다. 느긋하고 자유분방한 카페 오픈까지 앞으로 한 걸음이었다.
그 전에…….
“밥, 밥을 달라! 왜웅!”
“뀨웃!”
빈 밥그릇을 긁으며 미음이가 울었다. 미음이가 울자 라임이도 그냥 따라서 울었다.
“인간, 배가 고프다!”
“뀨우우!”
“그래, 그래…….”
미음이의 닦달에 못 이겨 찬장을 살펴보았는데 하필이면 시리얼이 다 떨어졌다.
책을 베고 잠든 탓에 목도 뻐근한 참이다. 좀 멀지만 편의점에 먹을 걸 사러 다녀오기로 했다.
“금방 갔다 올 테니까 기다리고 있어.”
“밥을 달라! 왜웅!”
“뀨!”
동물들의 재촉에 내쫓기든 밖으로 나왔다.
많은 건 바라지 않는다. 던전 게이트 앞에 편의점만 하나 생기면 좋겠다. 서울 시내에 편의점이 없는 곳은 여기뿐일 거다. 이왕이면 치킨집도 하나.
이런 허황된 생각이나 하면서 걸음을 옮겼다.
10월 하순. 부쩍 차가워진 오전의 공기가 기분 좋게 느껴졌다.
한참을 걸어 도착한 편의점에서 시리얼과 내가 먹을 김밥 따위를 사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나는 대던전 《어비스》의 끝없이 위로 이어지는 석벽을 보며 서서 기지개도 켜고 스트레칭도 했다. 아프던 어깨가 조금 풀렸다.
그때 바로 지척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누구지?’
나는 소리가 난 쪽을 돌아보았다.
인기척의 주인은 바로 기유현과 한이성이었다.
아는 척을 할까 했지만, 둘은 심각한 분위기로 이야기를 하는 중이었다. 그 바람에 얼결에 몸을 숨기고 말았다. 자리를 피해 주고 싶지만, 가게로 돌아가려면 그들 앞의 길을 지나가야 했다.
일부러 엿들으려는 건 아니었다. 인기척이라도 내야 하나.
하지만 여기서,
‘크흠, 흠, 오랜만이네요.’
하면서 슬쩍 모습을 드러내면 엄청나게 어색하지 않을까. 누가 봐도 수상한 사람이다.
어떡하면 최대한 어색하지 않게 등장할 수 있을까 고민하는데, 말소리가 들려왔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였다.
“또 그놈들인가. 귀찮은 짓을 벌이는군.”
“교단이 개입했을 가능성은…….”
“교단은 그때 전부 파괴…….”
“아직 잔당이 살아있을…….”
“오늘 안에 찾을 수 있……. 찾으면 어떻게……. 관리청에 넘겨서…….”
“당장 처리해야…….”
처리? 뭐를 처리?
뒷말은 다 들리지 않았지만, ‘처리한다’는 말의 어감이 상당히 섬뜩했다. 절대 쓰레기 처리나 은행 자동이체 따위를 말하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
이미 자연스럽게 등장하기는 늦은 상황이 되어 버렸다. 일단 뒤로 물러날까. 빙 둘러서 가도 되니까.
꿀꺽, 마른침을 삼키고 뒤로 슬그머니 몸을 물리는 순간이었다.
펑!
“으, 으악!”
내가 몸을 숨기고 있던 콘크리트 벽돌 담장이 터졌다. 그 단단한 벽돌이 순식간에 가루가 되었다.
옆으로 두 발짝만 더 갔다간 터진 것은 벽돌이 아니라 내 머리통이었을 것이다.
“누구지?”
차가운 목소리가 머리 위에서 들렸다.
“……히끅.”
나는 입을 틀어막았다. 너무 놀란 탓에 딸꾹질이 나왔다. 주저앉은 것도 아니고 선 것도 아닌 어중간한 자세로 담장 바깥으로 몸을 내밀었다.
나를 내려다보는 얼어붙은 시선이 느껴졌다. 약간 어이없어하는 목소리로 기유현이 말했다.
“거기서 뭘 하는 겁니까?”
“히끅, 끅……. 끕.”
딸꾹질을 하느라 말이 나오지 않는다. 숨을 참아 봤지만 딸꾹질은 계속 나를 괴롭혔다. 나는 한 손으로 입을 틀어막은 채 다른 한 손으로 가게가 있는 방향을 가리켰다.
“……네?”
“으, 히끅.”
우리 가게 앞이니까 여기 있지, 당신이야말로 여기서 뭘 하냐는 뜻이다. 말 대신 딸꾹질로 튀어나왔을 뿐이다.
그러나 분위기는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날카로운 눈빛이 나를 훑었다.
가만 있자, 이럴 때 쓸 수 있는 스킬이…….
‘스마일.’
[스킬 ‘스마일’을 실행합니다.]
입꼬리가 완만한 호선을 그리며 완벽한 영업용 미소를 지었다.
“…….”
“…….”
그러나 여전히 정적. 효과가 있는 건지 어떤지 모르겠다. 다시 한 번 더.
‘스마일.’
[스킬 ‘스마일’을 실행합니다.]
천천히 기유현이 표정을 누그러뜨렸다.
약간의 웃음기만으로 분위기가 크게 달라졌다. 잘 뻗은 눈매가 완만한 곡선을 그렸고, 오전의 햇볓을 받은 속눈썹이 그림자를 드리웠다.
눈을 마주치기 힘들 정도로 아름다운 얼굴이었다. 방금은 진짜 무서웠지만.
“미안합니다, 놀라게 했군요.”
놀래킨 게 아니라 머리를 터뜨리려고 한 건 아닐까? 그런 의심이 들었지만 일단 그의 사과를 받아들였다.
“크, 크흠. 괜찮아요. 앞으로 조심하세요.”
그때 나와 기유현을 신중한 표정으로 번갈아 보던 한이성이 고개를 꾸벅 숙이고 인사를 했다.
“하하, 오랜만입니다…….”
동굴흑곰이 나타난 사건 이후 처음이었으니 한이성 헌터를 만나는 것은 꽤 오랜만이었다.
“여기에 무슨 볼일이라도 있으셨어요?”
생긋, 기유현이 부드러운 웃음을 지었다.
“그렇지 않아도 이따 카페에 들르려던 참이었습니다.”
방금 명백하게 대답을 피한 것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