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9화 (39/192)

39화

* * *

“여기도 없네.”

“여기도…….”

가게로 돌아온 나는 손거울을 찾기 위해 창고를 뒤지기 시작했다.

한참이나 잡동사니 더미를 확인하는데, 문득 머릿속에서 기유현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다행입니다.”

“으아아악!”

“무슨 일이냐! 키야오옹!”

“뀨우우!”

“벌써 몇 번째냐!”

옆에서 미음이와 라임이가 나를 타박했다. 그러나 그럴수록 기억은 선명해지기만 했다.

그림자를 늘어뜨린 긴 속눈썹, 완만한 곡선을 그리는 입술, 하얀 뺨과 말간 눈동자.

가까이서 보는 기유현의 얼굴은 너무나도 파괴력이 컸다. 자주 봐서 그 얼굴에 조금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머리카락에 닿는 손가락이 간지러웠다.

머리핀을 꽂아주는 데 걸린 시간은 잠깐이었을 텐데 아주 길게 느껴졌다. 그동안 나는 긴장에 몸을 꼼짝도 하지 못했다.

이윽고 손가락이 떨어진 순간, 엷은 웃음이 입가를 스쳤다.

그리고 귓가에 살짝 닿는 목소리.

“다행입니다.”

“으아악!”

“왜오옹! 이 인간, 자꾸 놀라게 할 거냐!”

다시 비명을 지르자, 옆에서 미음이가 앞발을 파바밧 날렸다.

하지만…… 잊으려 하면 할수록 그 묘한 말이 자꾸만 머릿속을 떠돌았다. 미남 면역이 없는 나에게는 지나치게 자극이 컸다고. 누구라도 바로 코앞에서 그런 목소리를 들으면 계속 생각날걸.

게다가 대체 뭐가 다행이란 건데? 주어, 목적어 생략하기 금지!

안 돼, 진정하자. 아마 별 뜻 없는 말이었겠지. 원래 좀 특이한 사람이니까.

나는 애써 생각을 쫓아내고 물건 찾기에 집중하기로 했다.

창고는 아주 넓고 복잡했다. 지난번에 청소를 한번 하기는 했지만, 이 많은 물건을 전부 정리하기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쓰지 않는 가게 집기며 여러 잡동사니, 할머니의 유품 등이 안에 가득했다. 믹스커피며 비닐 시트 등, 여러 필요한 물건을 찾은 곳도 이곳이었지.

10년 전의 신문과 잡지도 상자에 가득 쌓여 있었다.

흠, 유명 헌터의 결혼 소식이 실려 있군. 이 카페 타이쿤 게임 열심히 했었는데……. 이때 나왔었구나.

헉, 무심코 잡지를 정독할 뻔했다. 왠지 청소하다가 책을 발견하면 꼭 읽게 된단 말이지.

잡지를 내려놓고 다시 수색에 열중했지만 손거울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캘록, 캘록!”

더군다나 먼지가 많아서 자꾸 기침이 나왔다.

“키야오옹! 이거 언제까지 해야 하느냐!”

“뀨우우웃!”

옆에서 함께 안을 뒤지던 미음이와 라임이가 항의했다.

“찾을 때까지.”

“말도 안 된다! 왜옭!”

“뀨웃!”

나는 둘의 항의를 무시하고 구석진 곳의 상자를 가리켰다.

“거기. 저 상자 안에 한번 봐.”

“거울은 없다. 왜웅…….”

그러더니 미음이가 슬그머니 창고를 빠져나가려 했다.

“어딜 가려고!”

“키야옭?!”

나는 미음이의 꼬리를 붙잡았다. 라임이는 이미 도망쳤는지 어느새 보이지도 않았다. 라임이 너마저…….

자꾸만 탈주하려는 미음이를 데리고 계속해서 창고를 뒤졌지만, 손거울은 찾을 수 없었다.

먼지를 뒤집어써 회색 털 뭉치가 된 미음이가 투덜거렸다.

“몇 년이나 지난 물건을 돌려달라는 쪽이 양심 없다. 시효 지났다고 해라!”

“으음, 그치만…….”

김덕이 할머니는 손거울을 찾지 못하면 포기하겠다고 말했지만, 나는 할머니의 표정이 마음에 걸렸다.

굉장히 애틋하면서도 쓸쓸한, 무언가를 그리워하는 표정이었다.

아주 중요한 물건 같으니까 꼭 찾아서 돌려주고 싶었다.

그러나…….

“헉, 헉……. 캘록, 캘록!”

아무리 찾아도…….

“그 슬라임 녀석, 혼자만 도망치고……. 왜옭!”

성과는 제로였다.

산더미 같이 쌓인 잡동사니만 보고 또 봤을 뿐이다.

여기엔 없는 걸까. 지쳐서 바닥에 주저앉으려는 때, 혼자서 도망쳤던 라임이가 돌아와서는 내 앞에서 통통 몸을 튕겼다.

“뀨우웃!”

“어, 뭐라고?”

“뀨, 뀨웃!”

“헉, 설마 손거울을 찾은 거야?”

“뀨우…….”

무슨 말인지 전혀 모르겠다.

라임이는 자신을 따라오라는 듯 몸을 위 아래로 튕기며 창고 밖을 향했다. 어차피 남은 실마리는 없다. 나는 얼른 라임이의 뒤를 따랐다.

“어, 여기 말이야?”

“뀨!”

라임이가 나를 데려간 곳은 바로 이공간의 입구였다.

에이, 설마 여기는 아니겠지. 우리 할머니는 각성자가 아니었는데. 할머니가 여기에 들어간 적이 있을까?

하지만 창고에도 다른 방에도 손거울은 없었다. 이제 남은 곳은 이곳 이공간뿐이다. 찜찜함을 남기느니 한번 확인해 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공간 안으로 들어섰다.

푸른 하늘과 눈부신 햇빛, 그리고 커다란 위그드라실의 나무가 나를 맞이했다.

한쪽에는 잘 자란 던전 사탕수수가, 반대쪽에는 건조 중인 커피 열매가 있었다.

한 바퀴 둘러보았지만 역시 손거울 같은 건 보이지 않았다. 그럼 그렇지.

낙담을 감추고 다시 나가려는 순간, 라임이가 다시 나를 불렀다.

“뀨, 뀨우, 뀨우우!”

“어, 왜? 뭔데?”

라임이는 이공간의 한쪽 구석을 가리키며 몸을 통통 튀겼다. 라임이가 가리킨 곳은 바로 지난번에 내가 굴러떨어진 절벽이었다.

그때 이 절벽으로 떨어지면서 스킬 ‘커피 한 잔의 인연’을 얻었었지.

“여기 말하는 거야?”

“뀨우우!”

절벽 아래의 빈 땅에 손거울이 숨겨져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라임이가 열심히 몸을 튕기는 만큼 한번 아래를 확인해 보기로 했다.

조심조심 발을 딛고 절벽 아래로 내려갔다. 곧장 동물들도 내 뒤를 따랐다.

“느리다, 인간! 그렇게 몸이 둔해서야.”

“와, 미음이는 절벽도 잘 내려오고 정말 대단해.”

“에헴!”

“그럼 절벽 올라가는 것도 잘하겠다, 그치?”

“당연하지, 왜웅!”

타다닥.

다시 절벽을 끝까지 뛰어 올라간 미음이가 퍼뜩 정신을 차렸다.

“키야오옹! 지금 나를 놀린 거냐!”

아, 들켰다.

절벽 아래는 지난번에 떨어졌을 때와 마찬가지로 아무것도 없는 빈 땅이었다. 바닥에는 잔디가 깔렸고, 아무렇게나 쌓인 돌더미가 앞을 가로막았다.

“……어?”

그러다 나는 뭔가를 발견하고 흠칫 놀랐다.

전에는 알아차리지 못했는데, 돌더미의 틈새에 자그마한 길이 있었다. 돌로 가로막혀 자세히 보지 않으면 발견하기 힘든 위치였다.

저기 뭐가 있나?

나는 얼른 그 돌더미의 틈새로 다가가 보았다.

안쪽에는 생각보다 넓은 공간이 숨겨져 있었다. 그리고 수풀에 덮여 잘 보이지 않는 위치에 작은 오두막이 있었다.

이런 곳에 오두막이라고?

설마 시스템의 보상인가? 하지만 잠시 기다려도 시스템은 묵묵부답이었다.

다행히 문은 잠겨 있지 않았다.

나는 오두막의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알아차렸다.

여긴 할머니가 있던 곳이다.

낡은 겉에 비해 오두막의 안은 아늑한 분위기였다. 바닥에는 두툼한 카펫이 깔렸고, 창에는 커튼이, 그 앞에는 자그마한 테이블까지 있었다.

전부 할머니 취향의 물건이었다. 할머니가 이곳을 꾸며 둔 것이 분명했다.

그런데 어떻게 이공간 안에 이런 오두막이 있는 거지? 설마 우리 할머니가 각성자셨던 걸까?

하지만 더 이상 생각을 이을 틈은 없었다.

“인간, 이걸 봐라!”

“어? ……아.”

오두막 안의 테이블 위에, 자그마한 손거울이 놓여 있었기 때문이다. 동그란 형태에 꽃 모양 장식까지, 김덕이 할머니가 말한 모양과 똑같았다.

“이거다!”

나는 얼른 손거울을 집어 들려 했다. 그런데…….

파삭.

손을 대는 순간, 손거울에 금이 갔다.

“어, 안 돼!”

황급히 손을 뗐지만 이미 늦었다. 손거울은 완전히 산산조각이 난 다음이었다.

“…….”

“…….”

굉장히 소중한 물건 같았는데 깨져 버리다니…….

낙담한 내 옆으로 라임이와 미음이가 다가왔다.

“뀨우…….”

“네 탓이 아니다.”

웬일로 고양이가 위로를 해 주었다.

“보아하니 이건 니토크리스의 거울을 본떠 만든 아이템이구나. 다른 세계에 있는 존재를 비추는 도구다.”

뭐, 게다가 평범한 손거울이 아니었다고?

“효능이 다해서 깨진 거다. 그대로 뒀어도 어차피 깨졌을 거다, 왜옹!”

“그래도…….”

“거울이야 다시 붙이면 되지 않느냐!”

그래, 깨진 거라도 돌려드리는 게 낫겠지. 조각을 잘 맞추면 다시 붙일 수 있을지도 모르고.

나는 거울 조각을 잘 모아서 이공간 밖으로 나왔다. 당장 이 손거울을 할머니에게 돌려드리러 갈 생각이었다.

기뻐하시면 좋겠는데.

* * *

창고를 뒤지는 데 꽤 시간이 걸린 통에 어느덧 저녁이 가까운 시각이었다.

늦었으니 공방에는 내일 갈까 잠시 고민했지만 역시 조금이라도 빨리 전해 드리는 게 좋을 것 같았다.

“그럼 나 갔다 올게. 집 잘 지키고 있어.”

미음이와 라임이에게 저녁밥을 넉넉하게 준 다음, 김덕이 할머니의 공방을 향했다.

기유현과 함께 왔을 때는 찾기 쉬웠는데, 혼자 찾아가려니 길이 복잡했다.

기유현더러 같이 오자고 할까 하다가 관뒀다. 할머니에게 용건이 있는 건 나뿐인데 매번 같이 와 달라고 하기도 미안하고.

“다행입니다.”

“으아아악!”

나는 그만 작게 소리를 질렀다. 주위에 아무도 없어서 다행이었다.

아직 그의 부담스럽게 잘생긴 얼굴과 묘한 분위기가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미남 면역이 생기기까지는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한 것 같다.

대신 할머니에게 손거울을 찾았으니 지금 간다고 카톡만 남겨 놓았다.

“으음, 이쪽이 맞겠지…….”

붉게 노을이 깔린 ‘청계3가 공방 거리’는 낮보다 더 음침한 분위기였다.

퇴근 시간의 소란스러움도 이 골목 안까지는 들어오지 않는다. 빛바랜 간판과 굳게 닫힌 셔터가 꼭 공포 영화의 도입부 같았다.

윽, 나는 깜놀계 공포 영화에 약한데…….

이러다가 뒤에서 뭐가 튀어나오는 전개는 사양이다.

“아, 저기다.”

한참을 헤매다가 겨우 할머니의 공방 간판을 발견했다.

그런데 전에 왔을 때와는 분위기가 조금 달랐다.

입구 앞에 놓여 있던 잡동사니의 배치가 바뀌었다. 누가 손으로 헤집기라도 한 것 같았다.

그리고 바닥이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비라도 왔나? 하지만 오늘은 날씨가 맑았는데.

또 어디선가 묘한 냄새가 났다.

‘들어가도 되겠지?’

문을 밀어서 여는 순간 안에서 어떤 사람이 튀어 나왔다.

손님인가?

퍽!

그는 나를 보고 잠깐 멈칫하더니 어깨로 세게 밀쳤다.

“아야……. 저기요!”

화가 나서 불렀지만 그는 이미 저만치 도망친 다음이었다.

별 이상한 사람도 다 있네.

나는 속으로 한숨을 쉬고는 공방 안으로 들어갔다.

그때, 안에서 어떤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얼른 소리가 난 쪽을 향했다.

“할머니, 저 왔어요. 계세요?”

크게 소리를 쳤지만 대답은 없었다.

공방 안은 환하게 전등이 켜진 상태였다.

방금까지 할머니가 여기 계셨는지 테이블 위에 마시다 남은 찻잔이 놓여 있었다. 손을 대어 보니 아직 따뜻하다. 그러나 여전히 할머니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어디 계신 거지?’

안쪽의 방을 향하는데 낮은 신음이 들려왔다.

“으윽…….”

바닥에 할머니가 쓰러져 있었다.

“……할머니!”

나는 얼른 달려가 할머니를 일으켰다.

“괜찮으세요?”

말을 하기 힘드신지 할머니는 가쁜 숨만 내뱉었다.

급히 상태를 살피는데 손에 축축한 것이 닿았다.

……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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