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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화 (42/192)

42화

어제, 펜던트를 내게 건넨 다음 할머니는 일단 병원으로 돌아가셨다.

기유현 역시 할 일이 있다며 가 보겠다고 말했다.

“할 일이요? 지금요?”

“네, 급하게 처리해야 할 일이 있어서요.”

그렇게 말하는 눈빛은 조금의 웃음기도 없이 날카로웠다. ‘처리’라는 게 우체국 가기나 은행 이체 같은 일은 아닌 모양이다.

하지만 그도 나도 하룻밤을 꼬박 새운 상태다. 피곤하지도 않나. 사람이 제때 잠을 자야 하는 법인데.

측은한 마음에 그에게 권했다.

“가게에서 커피라도 드시고 가실래요?”

“마음은 정말 그러고 싶지만, 다음에 들르겠습니다.”

음, 그럼 별수 없지.

그렇게 기유현과 헤어져 가게로 돌아오니 어느새 정오에 가까운 시각이었다.

하룻밤을 꼬박 새웠지만, 기유현이 준 고급 포션 덕분인지 피곤하지는 않았다. 드디어 암흑 에테르 아이템을 구했다는 기쁨에 발걸음은 오히려 가벼웠다.

“나 왔어.”

우선 미음이와 라임이에게 밥을 주고, 최이찬에게 연락해서 펜던트를 건네야겠다.

“집 잘 지키고 있었어?”

그런데 안에서 미음이와 라임이의 대답이 들리지 않았다.

……설마!

나는 가장 먼저 바닥을 확인했다.

그러나 바닥은 깨끗하기만 하다. 다행히 지난번처럼 발자국 도장으로 가게를 엉망진창으로 만든 건 아니었다.

그럼 어디서 뭘 하고 있는 거지?

“미음아? 라임아? 왜 그래, 아직 자는 거야?”

아, 저기 있네.

“……왜옹.”

구석에서 슬그머니 미음이가 나타났다.

그런데 곧장 가까이 다가오는 대신 멀리서 앞발을 이상하게 휘저었다.

“응? 뭐라고?”

“왜옹…….”

안 들린다.

“뭔데 그래? 미음아, 이리 와서 말로 하라니까?”

대답은 미음이가 아닌 다른 쪽에서 들려왔다.

“빨리 오는구나.”

“으, 으악!”

불쑥 끼어든 서늘한 목소리에 깜짝 놀랐다.

의자에 앉아 있던 인영이 몸을 일으켰다. 그 바람에 그의 무릎 위에 있던 라임이가 통, 하고 바닥으로 몸을 튕겼다.

목소리의 주인은 권지운이었다.

까, 깜짝 놀랐네. 도둑이라도 든 줄 알았다. 권지운이 대체 왜 이 시간에 여기 있는 거지?

“키야오옹(어딜 갔었던 거냐! 오늘 아침에 갑자기 저 인간이 왔단 말이다)!”

불만이 많이 쌓였는지 미음이가 내게 마구 앞발을 날렸다.

미음이의 말에 따르면, 오늘 아침에 갑자기 권지운이 찾아왔다고 한다. 그리고 내가 없다는 사실을 알고 이제껏 기다렸다는 것이다. 아무런 말도 없이, 가만히.

마음껏 뛰어놀고 싶은 미음이로서는 굉장히 신경 쓰이는 상황.

“왜우웅(저 인간하고 우리만 남겨 놓다니 무책임하다)!”

‘나도 사정이 있었다고.’

마구 투덜거리는 미음이의 턱을 살살 쓰다듬어 주면서, 권지운에게 물었다.

“갑자기 무슨 일이야? 바쁘지 않아?”

아무리 생각해도 갑자기 권지운이 나를 찾아올 만한 용건은 없었다.

길드 일로 바쁠 텐데 왜 여기서 몇 시간이나 나를 기다린 거지.

“…….”

“…….”

움찔. 눈이 흔들렸다. 권지운은 굳은 표정으로 잠시 대답 없이 입술만 달싹였다.

나는 인내심을 갖고 그의 말을 기다렸다. 한참 만에 나온 말은 뜻밖의 내용이었다.

“이걸 돌려주러 온 것뿐이다.”

탁.

권지운이 스테인리스 스틸 보온병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아. 지난번에 보온병에 아메리카노를 담아서 줬었지. 완전히 까먹고 있었다.

하지만…… 꼭 직접 전달해야 하는 물건도 아닌데. 사촌이랍시고 자주 만나던 사이도 아니고.

“다른 사람 시키면 되잖아.”

“뀨우…….”

기분 탓인가, 말도 안 통하는 라임이의 울음소리가 나를 질책하는 것처럼 들린 건.

“아니면 그냥 놓고 가지.”

“왜우웅…….”

이번에는 미음이가 내게 눈짓했다.

아니, 왜, 뭐. 왜 내가 눈치 없는 소리를 했단 표정으로 보는 건데. 내가 이상한 소리 했어?

“이야옹(아니, 됐다)…….”

이 고양이한테 이런 취급을 받으니 기분이 이상해지는군.

여기까지 왔는데 용건 끝났으면 냉큼 가라고 하기도 그렇고. 무엇보다 미음이와 라임이가 보낸 무언의 압박에 떠밀리듯 그에게 커피를 권했다.

“뭐, 이왕 왔으니 커피라도 한잔하고 갈래?”

그냥 해 본 말이다. 예의상 한번 물어본 것이다.

당연히 권지운이 거절하리라 생각했다. 전에 저 보온병에 커피를 담아 줬을 때도 반기지 않는 반응이었으니까.

“그래, 그렇게 할까.”

“어……. 길드 일은 안 바빠?”

“그렇게 항상 바쁘지는 않다.”

으음, 뭐 그렇다면야.

그렇게 된 김에 퀘스트 메뉴인 바닐라라테와 캐러멜마키아토를 만들기로 했다.

나는 차원의 상점에서 구입한 바닐라 파우더와 캐러멜시럽을 꺼냈다.

바닐라라테는 카페라테와 만드는 법이 비슷했다. 먼저, 잔에 바닐라 파우더를 담은 뒤 에스프레소를 부어 잘 녹여 주었다. 다음으로 부드럽게 거품을 올린 스팀 밀크를 잔에 부어 주면 끝이었다.

[아이템:바닐라라테(★★★☆☆)

상태: 좋음 (남은 시간: 00:30:00)

효과: 스킬 사용 시 1회 동안 100% 확률로 크리티컬이 발생한다.]

캐러멜마키아토도 어렵지는 않지만 잔에 넣는 순서가 달랐다.

잔에 캐러멜시럽을 담은 뒤 스팀 우유를 먼저 붓는다. 다음으로 에스프레소를 부으면, 음료의 표면에 갈색 점 모양으로 자국이 남는다.

마지막으로 벌집 모양으로 캐러멜 드리즐을 뿌리면 완성이었다.

[아이템:캐러멜마키아토(★★★☆☆)

상태: 좋음 (남은 시간: 00:30:00)

효과: 상태 이상을 무작위로 하나 해제합니다.]

두 잔 다 꽤 좋은 효과가 붙어 있다.

바닐라라테는 내 몫으로 두고, 권지운에게는 캐러멜마키아토를 건넸다.

“…….”

“…….”

꿀꺽.

상대가 내 커피를 한 모금 마시는 순간.

이 순간은 항상 긴장된다.

특히 권지운은 더 그렇다. 사촌인데도 멀게 느껴져서일까.

캐러멜마키아토를 마신 권지운은 한참 말이 없었다. 손가락 끝으로 살짝 컵을 어루만질 뿐. 표정 역시 차가운 무표정인 채라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도무지 짐작이 가지 않는다.

“……이상하게도.”

“어, 뭐, 뭐가?”

나지막이 들려온 목소리에 나도 모르게 긴장했다.

“네가 주는 커피를 마실 때마다 몸 상태가 좋아지는 것 같구나. 포션 중독이 어느새 풀려 있어.”

“아하하, 우연인가 봐.”

얼버무리면서도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내가 만든 커피가 제대로 효능을 발휘했다는 사실이 기뻐서였다.

머리 위에 나타난 빛의 막대가 천천히 차오른다. 만족도가 충분조건이 아닌지 ‘커피로 깊은 인연을 맺었다.’는 알림은 뜨지 않았지만, 그래도 뿌듯했다.

“……권리을.”

“어, 어어.”

“전에 우리 길드 1층으로 카페를 옮기라고 했던 이야기 말인데.”

……꿀꺽.

“없던 일로 하지.”

“카페는 안 옮긴다니까…… 어? 진짜?”

“너는 할머님을 잘 따랐으니, 이렇게 된 게 당연한 걸지도 모르겠네.”

작게 읊조린 그 말이 씁쓸하게 들린 것은 착각이었을까.

“잘해 봐.”

그 말만 남긴 후, 캐러멜마키아토를 다 마시고 권지운은 돌아갔다.

인정…… 받은 건가?

요리 만화에서처럼 커피 한 잔을 마시고 감격해서, ‘너라면 이곳에서도 잘 해낼 수 있어!’ 하는 그런 상황?

어안이 벙벙한 내 앞에 시스템 알림이 떴다.

[축하합니다! ‘메인 퀘스트: 바리스타의 길 (2)’를 완료했습니다.

보상을 수령해 주세요.]

[메인 퀘스트: 바리스타의 길 (2)

당신도 이제 당당한 바리스타.

카페 기본 5종 메뉴(카페라테, 카푸치노, 카페모카, 바닐라라테, 캐러멜마키아토)를 완성하여 판매 메뉴를 늘려 보세요.

카페 기본 5종 메뉴 완성하기: 5/5]

보상: 경험치(200exp), 랜덤 레시피, ???]

퀘스트 완료 보상 중 경험치와 레시피 외의 항목은 ‘???’가 전부였다. 그러니까 제발 저 ???가 좋은 거면 좋겠는데.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나는 보상 수령을 선택했다.

[경험치: 200exp를 획득했습니다.]

[레벨이 6이 되었습니다.]

[새로운 레시피 아이스 5종 메뉴를 획득했습니다.]

쿵!

이어 묵직한 소리가 바닥을 두들겼다.

[보상의 부피가 커 인벤토리로 수령이 불가능합니다.]

[자동으로 보상이 인벤토리 바깥에 생성됩니다.]

“어…….”

이러면 그야 기대를 품을 수밖에 없다.

크다고 꼭 다 좋다는 법은 없지만, 대체 얼마나 크기에 인벤토리에 들어가지도 않는단 말인가.

가구일까?

왜, 카페 경영 게임에는 항상 인테리어 꾸미기 요소가 들어가 있잖아. 마침 저쪽 빈 곳에 가구를 하나 놓으면 좋을 것 같았는데.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보상을 확인했는데…….

그래서 나타난 게 이 간판이다.

“……지렁이?”

“왜우웅(지렁이네)…….”

“뀨우우…….”

미음이와 라임이의 울음소리가 구슬프게 느껴졌다.

간판에는 구불구불한 선이 하나 그어졌다. 좋게 말하면 전위적인 디자인이라고 할까.

설마, 믿고 싶지 않지만…… 카페 이름이 <카페 리을>이라고 ‘ㄹ’ 모양을 형상화한 건가?

…….

…….

음, 이대로 창고에 처박아 둘까. 꼭 이걸 벽에 걸라는 법은 없잖아.

간판을 질질 끌어 창고로 옮기려는데, 다시 시스템 알림이 떴다.

[간판을 설치 시 특수 효과가 적용됩니다.]

[아이템: <카페 리을>의 간판(★★☆☆☆)]

종류: 간판

<카페 리을>의 간판. 카페의 이름을 심플하면서도 화려하고, 익숙하면서도 유니크한, 고전적이면서 모던한 터치로 완성했다.

비고: 설치 시 손님의 눈길을 끄는 효과가 있습니다. 더 많은 손님이 카페를 주목합니다.]

…….

성능이냐 룩이냐의 갈림길인가.

안 예쁘고 성능이 좋은 아이템과 예쁜 쓰레기 중 뭘 고를지 고민해 본 적은 다들 있을 테다.

손님의 눈길을 끄는 효과는 탐이 났지만, 벽에 이런 간판을 달고 싶지는 않았다.

“고민이 될 때 해결 방법은 한 가지지.”

“뀨웃?”

“그게 뭐냐!”

“일단 미룬다.”

나는 곧장 간판을 구석에 처박아 두었다. 이대로 한동안 방치해 둘 생각이었다.

그리고 남은 시스템 알림을 하나 더 확인했다.

[업적: ‘두 번째 죽음의 위기를 회피함’을 달성했습니다. 보상을 수령해 주세요.]

김덕이 할머니의 공방에 불이 났을 때, 이런 알림이 떴다.

저번에 이어 두 번째 위기라니, 대체 몇 번째까지 있는 거지. 카페를 운영하는 것뿐인데 왜 죽음의 위기를 겪어야 하냐고.

굉장히 찜찜한 기분이 드는 것은 차치하고.

보상은 바로 ‘랜덤 스킬 포인트 1’이었다. 즉, 랜덤으로 스킬 레벨을 하나 올려 준다는 뜻일 테다.

랜덤이라는 말에는 그다지 좋은 기억이 없다. 나는 보상을 수령하기 전, 스킬 리스트를 확인해 보았다. 그동안 새로 얻은 스킬도 있어, 스킬은 총 여섯 개였다.

내 손안의 카페(C)

상세: (Lv.1) 가게 안에서 음료 제조 시 완성도가 높아진다.

바닥이 반짝반짝(E)

상세: (Lv.1) 화장실 청소를 빠르게 할 수 있다.

스마일(C)

상세: (Lv.1) 웃으면 기분이 좋아져요.

바리스타의 추출(D)

상세: (Lv.2) 혼합된 물질에서 원하는 물질만 추출한다.

바리스타의 눈(D)

상세: (Lv.1) 재료를 발견할 수 있다.

커피 한 잔의 인연(B)

상세: (Lv.1) 궁극의 커피를 마신 상대의 스킬을 복사할 수 있다.

음, 이 중에서 랜덤으로 레벨이 올라간다 이거지.

‘스마일’과 ‘바닥이 반짝반짝’만 아니면 된다. 다른 네 개의 스킬은 레벨을 올리면 유용하게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여섯 개 중에 네 개. 확률로 따지면 약 66%. 제법 높은 확률이다.

‘보상 수령.’

그런 기대를 한 게 문제였을까.

띠링, 하는 소리와 함께 나타난 결과는 기대를 크게 벗어났다.

[랜덤 스킬 포인트 1을 획득했습니다.]

[바닥이 반짝반짝(E)의 레벨이 2로 올랐습니다.]

[바닥이 반짝반짝(E)

상세: (Lv.2) 바닥 청소를 빠르게 할 수 있다.]

…….

윽, 무서운 욕망 센서 같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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