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4화 (44/192)

44화

“어? 라임이? 아, 요 앞에서 주웠어.”

사실은 튜토리얼 던전에서 우연히 만난 슬라임이지만 약간 각색해서 말했다.

“그렇구나. 나도 슬라임 키우고 싶어서 물어봤어.”

“하나 분양받는 건 어때?”

헌터들 사이에서 반려 몬스터로 슬라임을 키우는 것은 그렇게 드문 일이 아니었다.

비교적 길들이기 쉽고 무해한 데다가, 일단 귀여우니까. 슬라임 ASMR 영상도 유행했고, 어느 헌터의 슬라임은 유튜브에서 인기를 얻어 굿즈도 나올 정도였다.

분양받는 방법도 간단한 편이다. 테이머 직군의 헌터에게 돈을 내고 분양해 달라고 하면 된다.

그러나 최이찬은 애매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으음……. 그것도 한번 알아보긴 했는데.”

“왜?”

테이머에게 슬라임을 분양받고 싶어 하는 사람은 아주 많다.

오래 기다려야 하는 건 괜찮다. 번호표를 뽑고 기다리다 보면 언젠가는 순번이 오니까.

문제는 테이머들이 사람을 가려 받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대형 길드 출신이거나, 유명 헌터거나, 그도 아니면 등급이 높은 헌터들만 슬라임을 분양받을 수 있었다.

현재 최이찬의 헌터 등급은 E등급. 입구 컷이었다고 한다.

요약하자면.

“개치사하다…….”

“아하하…….”

등급이 깡패라지만 슬라임 한 마리 분양받는 데까지 차별하다니 정말 쩨쩨하기 짝이 없다.

어깨를 축 늘어뜨리며 최이찬이 중얼거렸다.

“헌터 대신 다른 일이나 찾아볼까 봐.”

“어…… 왜?”

“그냥, 각성자라고 해도 E급밖에 안 되고. 별로 잘할 수 있을 것 같지도 않고…….”

“……이찬아.”

“아하하! 농담, 농담이야! 그냥 한 말!”

말과는 달리 웃음기로 채 다 지우지 못한 낙담이 느껴졌다.

<헌터 마켓>에서 홀대받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도 비슷한 일을 겪은 걸까.

“그럼 우리 가게에서 아르바이트할래?”

반쯤 농담이었는데 최이찬은 크게 웃었다.

“어, 좋지! 꼭 하게 해 줘.”

하지만 내가 아는 한 최이찬만큼 헌터에 어울리는 사람은 없다.

그러니까…….

마침 딱 커피 젤리가 굳었을 시각이었다.

나는 냉장고를 열고 유리컵을 꺼냈다. 스푼으로 살짝 젤리를 눌러 보자 탱글, 하고 탄력이 느껴졌다.

됐다, 잘 굳었다.

위에 휘핑크림이나 연유를 뿌려 먹어도 맛있겠지만, 이번에는 생략했다. 지금 바로 먹을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젤라틴 양을 줄여 물컹하게 만든 젤리를 차가운 음료에 넣어 먹는 것도 괜찮겠다. 다음에 시도해 볼까.

[아이템: 커피 젤리(★★☆☆☆)

상태: 매우 진함

효과: 섭취 시 한 방에 카페인 중독에 걸립니다.

※ 섭취에 주의하세요.]

레시피 이름을 입력하자 곧장 아이템 창이 떴다. 됐다, 제대로 ‘한 방에 카페인 중독’ 효과가 쓰여 있었다.

전에 살펴본 최이찬의 미습득 스킬 중 S랭크는 두 개.

펜던트와 이 커피 젤리가 있으면 그 ‘어둠을 비추는 빛(S)’과 ‘커피는 나의 힘(S)’을 얻을 수 있다.

스테이터스의 합으로 결정되는 등급과 스킬 등급은 별개다. 하지만 S급 스킬을 두 개나 얻으면 최이찬이 E급이라고 해도 예전처럼 무시할 수는 없을 테다. 아무리 쩨쩨하고 치사한 테이머라도 그때는 슬라임을 분양해 주겠지.

나는 커피 젤리를 봉투에 잘 싸서 최이찬에게 내밀었다.

“이찬아, 이건……. 나중에, 나중에 말이야.”

“응?”

호의적인 미소를 띤 얼굴이 나를 보았다.

“나중에…….”

“…….”

“나중에, 던전에 들어가게 되면 말인데.”

“던전? 에이, 나는 길드 소속도 아닌데 무슨…….”

“그래도! 들어갈 수도 있잖아. 갑자기 균열에 휘말릴 수도 있고. 아무튼, 위험한 세상이잖아.”

“……어어.”

“그때, 던전에 들어가면 이걸 꼭 바로 먹어. 설탕 많이 넣었으니까 먹기 편할 거야. 그때 먹으면…… 너한테 도움이 될 거야.”

사실은 안 갔으면 좋겠다.

눈 오는 날 수원에서 던전이 발생하건, 그 때문에 사람들이 위험에 빠지건 어쨌건.

그런 일은 <던전관리청>이나 빅3 길드, 더 강한 헌터들에게 맡기고 최이찬은 안전한 곳에 있으면 좋겠다.

시스템의 방해만 없었다면 지금이라도 던전에 들어가면 안 된다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설령 내가 알고 있는 미래의 일을 전한다고 해도 최이찬은 같은 선택을 하겠지. 그는 착하고 다정한 성격이니까. 던전에 휘말린 아이들을 모른 척할 수 없을 테다.

결국 회귀까지 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펜던트와 이 젤리를 주는 것뿐이었다.

“그래, 알았어. 잘 먹을게.”

이번에도 최이찬은 아무것도 묻지 않고, 커피 젤리를 받아들었다.

‘다음에도 꼭 도와주러 올게.’라는 말을 덧붙이는 것도 잊지 않았다.

* * *

[축하합니다! 간판을 설치하여 카페의 이름을 널리 알렸습니다.

드디어 카페를 오픈할 준비가 되었습니다.

시스템 업데이트가 시작됩니다.

1, 5, 10……. 100% 완료.]

갑자기 나타난 시스템 업데이트 알림에 당황한 것도 잠시.

[이름: 카페 리을

등급: F

명성: 0, 인기: 0]

새로 나타난 창은 카페의 스테이터스가 추가되었을 뿐 특별한 내용은 없었다.

최이찬에게 펜던트도 건넸고, 카페 오픈 준비도 다 되었다.

앞으로는 생명의 위기를 겪을 일도 없고, 좋은 일만 있으면 좋겠는데.

처음 목표대로 한적한 카페 경영을 해 나가야지.

적게 일하고 많이 쉬는 삶. 초심을 잃지 않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카페 등급이 F라는 것이 좀 불만스럽기는 하지만…… 드디어 카페를 오픈했다.

그때 띠링, 하고 알림 창이 떴다.

[퀘스트가 발생했습니다.]

[퀘스트: F급 카페의 비애를 시작합니다.]

[메인 퀘스트: F급 카페의 비애

드디어 나만의 카페를 손에 넣으셨군요.

그러나 아직은 F급. 이 카페의 존재를 아는 사람은 극소수입니다.

손님을 모아 등급을 올려, 명성을 떨칩시다.

손님 10명 만나기: 0/10

보상: 경험치(200exp), 황금 티켓 1장, ???]

아니, 등급 안 올릴 거라니까?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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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랭킹, 길드 추노 금지. 현피는 던전에서

[뉴스] 청계3가 공방 화재 ‘방화 용의자 포착’ 수사 급물살 (39)

추천: 5 / 비추: 1

작성자: 펌글봇

청계3가 공방거리에서 방화로 추정되는 화재가 발생해 경찰이 수사하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지난 27일 오후 7시 15분께 청계3가 공방거리의 공방에서 불이 났다. 공방 건물 한 채가 불에 탔으며, 70대 한 명이 중상을 입은 것으로 집계…….

(중략)

경찰과 던전관리청은 계획적 방화로 보고 용의자를 특정하여 수사 진행 중이다.

다만 수사당국은 용의자가 헌터인지 여부는 아직 밝힐 수 없다고 답변했다.

메추리: 이런거 여기 왜올림?

└펌글봇: 왱??? 무슨 문제있음?

└메추리: 헌챈 뉴스게시판에는 헌터 관련 뉴스만 올려아되는거 모름? 아무거나 쳐올리지말고;

 └힝행홍: 엥,,? 헌터 뉴스 맞잖아 웬 고나리,,,?

 └메추리: 불난 뉴스가 왜 헌터 뉴스임? 그런 뉴스 보려고 헌챈들어오는거 아님

dta***: 윗댓 뭔 난리인가 했더니 설마 청계3가에 뭐 있는지 모르나ㅋㅋㅋㅋㅋㅋ

피즈치자: 나 저번주에 각성한 뉴비인데 뭐 있는데? 알려주십쇼

└dta***: 청계3가 공방 거리

└10년차헌터: 청계3가 공방 거리 요새는 잘 모르나?ㅋㅋㅋ 라떼는 헌터 마켓보다 청계천 공방이 일타였음..,,ㅋ 저녁8시 넘어서 청계천 고개도로 밑에 가면 포션 땡처리 개꿀이었슴ㅋㅋㅋ

 └테이머구함: 아재 고가도로 없어진지가 언젠데 그런 얘기하심;; 틀딱내나요;;;

red***: 청계천 거기 희귀템 많이 팔았음ㅇㅇ 헌터마켓 수수료가 에바라 직거래 많이함ㅇㅇ 인기있는 공방은 아이템 나오는 시간에 줄도 섰음

└레전드12: A급 황금삼각뿔소 새끼도 팔았다는거 찐인가?

 └red***: ㅇㅇ진짜임 그런데 공방거리는 아니고 그 옆에 몬스터 상가임ㅋㅋㅋ 공방거리 좌판에서 성검 팔렸다는 소문 들어본 적은 있음

└마켓추천인좀: 근데 지금은 왜 없어진거임? 나 ㄹㅇ 오늘 첨 들음

 └플라이트: 소형 공방이 대형 공방으로 많이 합병함. 헌터마켓 수수료 좀 내더라도 대형 공방이 제작 스킬 수련하기도 재료 수급도 쉬운 편이라서. 그래도 몇군데 남아있긴 함

펌글봇: 메추리땜에 글망함ㅡㅡ ㅅㅂ틀딱집합소됨ㅋㅋㅋㅋㅋㅋㅋㅋ

└ㅇㅇ: 메추리 회정 따보니까 등업한지 한달도 안됐더라 원래 뉴비때 제일 시끄러움ㅋ

└메추리: 회원정보 추노하는거 룰 위반이거든요 신고했습니다

 └ㅇㅇ: 머래;ㅋㅋㅋ 헌챈 고나리 할 시간에 던전이나 한바퀴 더 돌아라ㅋㅋㅋ

 └10년차헌터: ㄱㅊㄱㅊ 원래 뉴비때 흑역사 생기기도 하는거지ㅋㅋㅋㅋㅋ 모르는거 있으면 쪽지하셈

 └힝행홍: 뭔데 갑자기 훈훈하고 난리ㅋㅋ

제주길드1짱: 불난 데가 김덕이 공방이라는 얘기가 있던데 찐임?

└골렘샀음: 엥..? 그런 얘기는 어디서 들음;

└제주길드1짱: 아까 자게에서 누가 자기 관계자라고 올리고 빛삭함;

 └rtj***: ㅋㅋㅋㅋ그걸믿냐 그럼 나는 은랑임ㅋㅋ

 └힐러구함: 폰관계자겠지 ㅋㅋㅋ

1l1I1llI: 근데 만약 진짜면 어떡함? 짐 사진 검색해보니 위치 근처 맞는거 같은데 [링크]

└gotohell: 어쩌긴 뭘 어째 청부 헌터 고용해서 조져버려야지

 └ㅁㅁ: 영어닉님 여기서 왜갑자기 급발진하셈;;;

피즈치자: 김덕이가 누군데???

└펌글봇: 야 빨리 댓글삭제해라 위에 틀딱들 몰려온다ㅡㅡ

└플라이트: 한국 최고의 제작계 헌터임 활동 접고 은거한지 좀 오래됐긴한데, 장인 칭호 받은거 이분밖에 없음 몇년 전에 마켓 경매에서 최고가 찍은 크리티컬 99짜리 5성 성검도 이분이 만들었을걸 은퇴할 때 청장도 말렸다고 하던데, 그래도 얄짤없으심 ㅠ

 └ttl***: 김덕이 요새 활동도 안하잖아 왤케 급발진함

 └힐러구함: 알못새끼 거기 바닥에 굴러다니는 템 하나만 주워도 최소 3성부터 시작한다

 └red***: 사진 보니까 그 공방 다 탄거 같은데 헐;;

 └ㅠㅠ: 헐,, 옛날에 장인 공방에서 대기타면 계피사탕 한개씩 나눠주셨는데,, 어떤 미친새끼가 거길 노림 ㅠㅠㅠㅠㅠ

ㅎㅎ: 계자피셜 범인 헌터인거 확실한가봄; 본청에서 조사한다고 들음 피해자도 김덕이 장인 맞음 병원에서 본 사람 있다더라 10분 있다 펑함

└gotohell: 청부 헌터 고용할 돈 모으자 헌터뱅크에 모금 계좌 개설했음 [링크]

 └ㅁㅁ: 아니 영어닉님 급발진좀 하지마셈;;;

* * *

불행 중 다행으로, 김덕이 할머니는 이틀 뒤 바로 퇴원할 수 있었다.

기유현이 바로 포션을 쓴 덕분에 외상이 금방 나아서 가능한 일이었다. 사실은 입원할 필요도 없었지만, 이왕 병원에 간 김에 건강검진을 풀패키지로 받으셨다나.

그러나 불에 탄 공방은 완전히 복구되지 못했다.

건물은 현재 <던전관리청>에서 복구공사 중이었지만, 그곳에 있던 수많은 아이템을 되돌릴 수는 없었다.

“……별수 없는 일이지.”

할머니가 씁쓸하게 웃었다.

건강하신 것은 다행이지만, 역시 범인을 생각하면 화가 치밀어 오른다. 어떻게 이런 친절하신 할머니에게 그런 끔찍한 짓을 저지를 수 있는 거지.

범인은 아직 잡히지 않았다. 하지만 신상을 어느 정도 파악했으니 잡히는 것은 시간문제일 거라고 수사 담당자가 말했다. 현장에 당당하게 할머니를 찌른 흉기를 버려두고 갔단다.

붙잡히기만 하면 가만 안 둘 테다. 그런 악독한 일을 저지른 걸 후회하게 해 주겠어.

“이야오옹(인간, 표정이 무섭다)!”

큼, 크흠.

아무튼.

오늘 퇴원하신 할머니는 우리 카페가 궁금하다며 보러 오셨다.

빈손으로 오셔도 된다고, 된다고 거듭 말했는데도, 할머니는 들어오자마자 웬 커다란 봉투를 내게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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