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6화 (46/192)

46화

이건 할머니께 드리려던 건데……. 그렇게 말하려 했지만.

“일단 마시게.”

꿀꺽. 차갑고 달콤한 맛이 입안으로 들어오니 겨우 마음이 차분해졌다.

“좀 진정되었는가?”

“네, 감사해요……. 아! 뉴스를 봐야겠어요.”

당장 텔레비전 앞으로 가서 전원을 켰다.

모든 채널에서 수원의 던전에 대해 보도 중이었다. 굳은 표정의 앵커가 스튜디오에서 던전 발생 소식을 전했고, 곧 화면이 현장으로 연결되었다.

-수원에 취재기자 연결해서 피해 상황 확인해 보겠습니다. 최세라 기자! 현장 상황 어떻습니까?

-네, 제 옆으로 지금 보시는 것처럼 이곳은 던전 발생 충격이 상당히 큰 상황입니다. A급 암흑 속성 던전으로 변이하면서, 이 일대는 말 그대로 초토화되었습니다.

화면 너머는 혼돈이었다.

완전히 무너진 건물, 부상을 입은 사람들, 급히 사람들을 대피시키는 헌터들, 그리고…… 공간이 일그러진 것처럼 보이는 던전의 입구.

-지금 일대를 봉쇄하고 주민 대피를 진행하고 있지만 불규칙적인 충격파 발생으로 말 그대로 아수라장으로 변한 상황입니다.

-던전관리청 브리핑에 따르면, 초등학생을 포함한 다수의 민간인이 균열에 휘말렸다고 합니다. 최세라 기자, 구출 계획은 어떻게 됩니까?

-네, 생존자의 말을 들어 보면 균열이 발생했을 때 다수의 초등학생이 휘말렸고, 구출을 위해 헌터 한 명이 곧장 진입했다고 합니다. 그 헌터가 누구인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으나, E급으로 추정됩니다.

-현재 긴급 구출 파티가 꾸려졌고, 충격파가 잦아드는 즉시 돌입 예정입니다. 하지만 위험성이 높은 암흑 던전인 만큼 철저한 대비가 필요한 상황입니다.

거기서 화면은 다시 뉴스 스튜디오로 돌아왔다. 앵커가 암흑 속성 던전의 위험성에 대해 설명했지만 하나도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다.

초조하게 뉴스 화면을 노려보기만을 한참. 앵커가 다급한 표정으로 소식을 전했다.

-어, 지금! 지금 속보가 들어왔습니다. 곧장 현장 연결하겠습니다. 최세라 기자!

-네, 이곳 수원시 던전 발생 현장에서 방금 놀라운 소식이……. 네? 그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진정하시고 말씀해 주세요. 현장 상황 어떻습니까?

대답 대신, 카메라가 푸른빛을 뿜어내는 던전의 입구를 비추었다.

“……!”

그 틈새로 부슬부슬한 금빛 머리카락과 익숙한 푸른색 트레이닝복이 보였다.

다행이다. 최이찬은 무사하다.

겨우 안심하는 순간, 화면 너머에서 흥분한 표정으로 기자가 외쳤다.

-S급! 새로운 S급 헌터가 탄생했습니다.

……어?

* * *

우연히 지나가던 길, 눈앞에서 균열이 터진 순간 최이찬은 주저하지 않고 안으로 뛰어들었다. 고민할 시간조차 아까웠다.

게이트 안으로 뛰어든 순간 최이찬을 맞이한 것은 습하고 매캐한 공기였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불쾌한 냄새가 폐부를 가득 채웠고, 내쉴 때는 머리가 지끈거렸다.

유일한 무기, 단검을 꺼내들었지만 손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이 불쾌한 공기 때문이다. 호흡에 섞여 들어온 검고 끈적한 것이 폐에 가득 들어차 몸을 무겁게 만드는 것만 같았다.

“……하아.”

이마의 땀을 손등으로 슥 닦아 내고 다시 단검을 고쳐 잡는 순간.

끼에에에!

검고 광택이 도는 껍질을 두른 곤충형의 몬스터가 나타나더니 최이찬을 공격했다.

휙!

최이찬은 옆으로 몸을 굴렸다. 방금까지 그가 있던 자리의 잔디가 몬스터의 날카로운 앞발에 잘려 나갔다.

조금만 늦었다간 잘린 것은 잔디가 아니라 그의 발목이었을 것이다.

“윽…….”

후드득 쏟아진 땀이 눈으로 들어가 따끔거렸다.

정신을 차려야 한다.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자신도, 아이들도…….

휙!

다시 몬스터가 달려들었다.

이어지는 공격을 아슬아슬하게 피해 내고 팔을 크게 휘둘렀다.

푹, 하는 불쾌한 감촉과 함께 몬스터의 껍질이 갈라졌다.

“으윽……!”

팔이 덜덜 떨릴 정도로 세게 단검을 내리눌렀다. 한참을 찌르자 겨우 핵이 파괴되었다.

“하아, 하아…….”

격전 끝에 몬스터를 해치웠지만 팔에 상처를 입었다. 상처에서 흐른 피는 공기에 닿는 순간 검게 변해 기이한 냄새를 풍겼다.

아까부터 그를 괴롭히던 두통은 점점 더 심해져 이제는 몸을 가누기 힘들 정도였다. 몬스터가 또 나타나면 이제는 승리를 장담할 수 없을 테다.

먼저 휘말린 아이들은 어디에 있는지 보이지 않는다.

빨리 찾아서 탈출해야 할 텐데…….

무거운 몸을 이끌며 최이찬은 낮게 읊조렸다.

‘나는 왜 이렇게 약할까.’

최이찬은 히어로가 되고 싶었다.

어린 시절 그는 집 근처에서 발생한 균열에 휘말렸다. 꼼짝없이 죽었다 싶은 순간 단신으로 균열에 뛰어든 어느 헌터가 그를 구해 주었다.

그는 자신을 구해 준 그 헌터처럼 다른 사람을 구해 주고 싶다고 생각했다. 주변에 어려운 사람이 있으면 망설임 없이 힘을 보탰다. 허나 평범한 인간인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몇 없었다.

그래서 각성을 했을 때는 기뻤다.

몇 번이나 이 순간을 꿈꿨던가. 오직 자신의 힘으로 자신과 같은 처지의 아이들을 구할 수 있는 순간을.

하지만 여전히 무력한 채다.

최이찬은 무심코 목에 매달린 펜던트를 손으로 만지작거렸다. 꼭 몸에서 떼어 놓지 말라는 말대로 계속 목에 건 상태였다.

그녀가 준 선물이라면 길가의 돌멩이라도 기쁘게 간직하겠지만.

리을에게 다른 뜻이 없는 것은 자신이 제일 잘 안다. 그런데도 재회 기념 선물이라는 말은 마음에 깊게 남았다.

최이찬은 리을의 카페를 떠올렸다. 아직은 손이 많이 가지만, 아늑한 분위기의 공간. 다음에도 그곳에서 일을 도와주기로 약속했다.

그러니까…….

아이들을 구하고 돌아가야 한다. 돌아가서 다시 그녀가 만들어 주는 달콤한 커피를 마시고 싶었다.

그렇게 마음을 다잡으니, 상황에 맞지 않게 배가 고파 왔다.

‘맞다, 권리가 뭘 줬었는데…….’

던전에 들어가면 꼭 먹으라고 했던가.

거듭 당부하는 그녀의 표정이 마음에 걸려 챙겨 두고 있었다.

최이찬은 권리을에게서 받은 봉투를 열었다. 안에는 꼼꼼하게 포장된 검은색 젤리와 숟가락이 들어 있었다.

숟가락으로 젤리를 떠먹자 강렬한 커피 맛과 단맛이 함께 느껴졌다. 독특하지만 맛있다.

“윽…….”

젤리를 다 먹고 나자, 두통이 더 심해지고 심장이 쿵쿵 뛰었다.

후들거리는 무릎이 꺾여 바닥에 닿는 순간.

……목소리가 들렸다.

【힘이 필요한가?】

‘어디서 들리는 목소리지?’

주위는 삭막한 들판이었고 아직은 몬스터도, 다른 생존자의 모습도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목소리는 또렷하게 귀를 파고들었다. 아니, 청각이 아닌 다른 감각을 통해 말을 거는 것 같다.

“누구……. 누구야? 숨어 있으면 나와라!”

문득 최이찬은 목 언저리에서 뜨거운 감각을 느끼고 손을 뻗었다.

손끝에 자그마한 검은 돌이 잡혔다. 리을에게서 받은 펜던트였다.

펜던트가 빛나고 있었다.

검은빛이 그에게 속삭였다.

【힘이 필요한가?】

다시 한번 목소리가 들린다.

처음에는 놀랐고, 다음으로는 의심이 들었다.

어째서 이런 이상한 목소리가 들린단 말인가. 균열에 휘말린 뒤 시간이 꽤 지났다. 극도의 긴장 상태로 헛것을 들은 게 아닐까.

그러나 다시금 펜던트를 손에 쥐는 순간 사고보다 감각이 먼저 깨닫는다.

펜던트에 담긴 암흑 에테르를 매개로 우주의 신격과 연결된 거다.

【정답. 그래서 대답은? 네가 원한다면 바람을 이룰 수 있는 힘을.】

최이찬은 그 목소리에 이끌리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 * *

잘못 들은 게 아니었다.

뉴스 화면 속의 기자는 분명히 최이찬을 보고 ‘S급 헌터’라고 말했다.

최이찬이 S급이 되었다고?

던전에서 무슨 일이 있었기에 갑자기 S급이 되었다는 거지?

한번 각성한 헌터의 등급이 올라가는 경우는 흔치 않다. 올린다고 해도 겨우 한 단계 정도나 올라갈까 말까.

예상대로라면 내가 준 펜던트와 커피 젤리를 통해 S급 스킬을 얻었을 테다. 그렇다고 해도 단번에 E급에서 S급이라니?

최이찬의 뒤로 아이들이 게이트를 빠져나왔다. 조금 다치기는 했지만 모두 무사하다.

최이찬이 게이트석을 손에 쥐더니 푸른빛을 뿜어내는 던전 입구에 박아 넣었다. 불길한 푸른빛이 잠잠해지면서 금방이라도 몬스터를 쏟아 낼 것 같던 입구가 진정되었다.

-와아아!

그 순간, 엄청난 환호성과 박수가 터져 나왔다. 현장은 방금까지의 긴장감을 잊고 축제 분위기였다.

환호성에 중계가 제대로 이어지지 않아 급히 화면이 뉴스 스튜디오로 돌아왔지만, 별 차이는 없었다. 스튜디오의 아나운서도 눈물을 흘리면서 기립 박수를 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행이군.”

“네, 정말……. 정말로요.”

이 축제 분위기는 충분히 이해 가는 일이다. 그도 그럴 것이 A급 던전에서 사망자가 없기란 불가능에 가까웠으니까.

더군다나 어찌된 일인지 최이찬은 게이트석까지 손에 넣었다.

흔히 혼용해서 사용되지만 ‘균열’과 ‘게이트’는 엄밀히 말하자면 다른 개념이다.

먼저, 현실 세계에 ‘균열’과 함께 던전이 발생한다. 이 균열은 아주 불안정해서 주변 사물을 빨아들이며, 반대로 몬스터를 토해 내기도 한다.

던전 안의 보스를 잡으면 ‘게이트석’이란 아이템을 얻을 수 있다. 이 아이템을 균열에 박아 넣으면 균열은 게이트로 변모하며, 이후 몬스터가 튀어나올 위험 없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던전이 발생하면 네 가지 단계로 나누어 공략이 진행된다.

1. 균열에 빨려 들어간 피해자를 구출한다.

2. 공략 파티를 구성해서 던전 보스를 처치 후 게이트석을 손에 넣는다.

3. 이후, 안정화된 던전에 헌터가 출입하며 아이템 파밍, 던전 조사 등을 진행한다.

4. 충분히 조사가 완료되면 던전을 폐쇄한다.

……라고, 지나에게 빌린 책에 나와 있었다.

그런데 최이찬이 게이트석을 들고 나왔다는 건 한 번에 2단계까지 해치웠다는 뜻이다. 그것도 A급 암흑 던전.

이는 기적이나 마찬가지였다.

뉴스는 계속 이어졌다. <던전관리청>의 공무원들이 최이찬에게 달려가고, 흥분된 빠른 어조로 뭐라 말하는 것이 그대로 뉴스에 나왔다.

상황이 조금 진정된 다음에는 인터뷰가 시작되었다.

현장에 있던 모든 뉴스 및 신문, 길드 관계자들까지 최이찬에게 마이크를 들이밀었다.

찰칵, 찰칵, 찰칵!

-헌터 님! 이쪽! 이쪽 좀 봐 주세요!

-거 여기 아까부터 자리 잡고 있던 거 안 보입니꺼. 새치기 좀 하지 마십쇼.

-무슨 여기 자릿세 냈어요?

-<헌터 스코프>는 뒤로 빠지세요!

열렬한 인터뷰 분위기에 잠깐 소요가 발생하기도 했다. 오랜만에 탄생한 새로운 S급 헌터의 첫 마디에 모두의 관심이 집중되었다.

정작 수십 개의 카메라와 마이크를 앞에 둔 최이찬은 얼떨떨한 표정이었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직 이해하지 못한 것처럼 보였다.

하하, 인기인이네.

최이찬이 살아난 것만으로도 기쁜데, 거기에 더해 S급 헌터가 되다니…….

기분이 이상하면서도 감격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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