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화
* * *
적막한 길 위에 세워진 붉은 벽돌 건물.
대던전 《어비스》의 던전게이트 앞 3분 거리에 있는 그 카페를 지켜보는 한 남자가 있었다.
나이는 40대 초반. 주머니가 여럿 달린 조끼에는 녹음기와 카메라를 감추었다. 가방 안에는 대포폰과 위조 신분증.
잦은 야근으로 눈 밑은 거뭇하고 턱은 수염이 삐죽 자라났다. 이마에 난 흉터 정도가 특이점일까.
그러나 눈만은 형형한 안광을 띠고 주위를 살폈다.
‘저기가 틀림없어.’
남자의 이름은 김태운. 42세 독신. 직업은 주간지 <헌터 스코프>의 취재기자다.
<헌터 스코프>는 헌터 파파라치, 근거 없는 소문, 시시껄렁한 가십을 싣기로 유명한, 입이 찢어져도 양질이라고 말할 수 없는 주간지다.
김태운 역시 그런 시시껄렁한 소문을 취재하는 걸로 돈을 벌었다. 돈을 받고 의뢰주가 원하는 기사를 써 주기도 한다. 표준적이고 모범적인 기레기라고 할까. 돈만 되면 언론인의 윤리 따위는 고려하지 않는다.
그런데 얼마 전, 흉흉한 소문이 김태운의 귀에 들어왔다. 바로 어떤 길드들이 던전에서 얻은 특수한 몬스터를 밀거래한다는 것이다.
그 순간 기자의 촉이 빛났다. 이건 큰 건이다. 이걸 제대로 파 보면 황색 언론 기자라는 오명을 벗을 수 있겠지.
……아니면, 입막음 조로 넉넉한 돈을 뜯어 낼 수 있거나.
그렇게 하나씩 소문의 끄트머리부터 조사해 나가던 중 들린 소식.
바로 새로운 S급 헌터의 탄생이다.
모두가 이 신성 S급에 대해 궁금해하는 지금. 취재는 속도 경쟁이다. 김태운은 당장 최이찬에 대해 ‘온갖 수단으로’ 조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가 매일 저 던전게이트 앞 카페를 드나든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파파라치, 아니, 현장 조사를 통한 성과였다.
‘크흠, 뒤를 밟은 보람이 있군.’
아무튼.
S급 헌터가 갑자기 다른 일도 아닌 카페 알바를 하는 점이 수상한 냄새가 풀풀 났다.
S급! 한국에서 채 열 명도 되지 않는 S급 헌터다. 뭘 하든 그보다는 돈을 많이 벌 수 있을 테다.
돈도 권력도 원하지 않는 S급의 헌터?
‘그런 게 있을 리가 없지. 틀림없이 뒤로는 구린 짓을 할 거다.’
김태운 자신도 F급의 헌터다. 헌터 업계의 명암은 깊이 겪었다. 또 오랜 기자 생활로 사람의 선의를 믿지 않는 냉소적인 성격이 되고 말았다.
오래 벼려진 날카로운 기자의 감이 빛을 발했다.
그러고 보니 밀거래 일당이 카페나 상점 등을 아지트로 이용한다는 제보가 있었지. 꽤 고위 헌터가 뒤에 있어서 쉽사리 파헤치지 못한다는 정보도. 최이찬의 뒤를 밟던 중 수상한 사람을 발견한 적도 있었다. 아쉽게 놓쳐 버렸지만.
얼핏 동떨어져 보이는 각각의 정보.
그러나 나란히 놓고 보면 한 가지 답을 가리켰다.
S급 헌터가 직접 움직일 정도의 건이라면 역시 희귀 몬스터, ‘긴꼬리불사조’의 밀거래 쯤은 되어야겠지.
그래, 저곳이 바로 밀거래 일당의 아지트가 분명하다.
그래서 김태운은 현재, <카페 리을>의 근처에서 잠입 취재를 하는 중이었다.
마침 최이찬이 카페 안으로 들어갔다. 역시 저곳에 뭔가 있는 게 분명하다.
‘젠장……. 안에서 뭘 하는지 보이지가 않아.’
아슬아슬한 위치에 몸을 숨겼지만 절묘한 각도로 가려서 최이찬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취재용 아티팩트인 비밀 카메라와 녹음기는 꼭 이럴 때 먹통이다.
“…….”
“…….”
한참 기다려도 안에선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꿀꺽.
김태운은 몸은 일으켰다.
특종을 잡기 위해서는 이런 아티팩트에만 의지할 수 없다. 기자란 직접 발로 뛰는 존재.
‘저곳은 카페……. 그렇다면.’
손님인 척 접근하면 자연스럽겠지.
김태운은 짐짓 평범한 손님인 척 카페로 다가갔다.
딸랑. 문에 매달린 종이 울리며 방문을 알린다.
“…….”
그런데 그가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어색한 정적이 깔렸다. 조심스러운 시선이 그를 훑었다.
‘빙고.’
역시. 평범한 카페인 척 꾸며 놓았지만 페이크다. 다른 목적이 있는 공간이기 때문에 이렇게 경계를 하는 거겠지.
때로는 진실보다 거짓이 그럴듯한 법이다. 김태운은 자신이 개업식 날 온 (지인이 아닌) 첫 손님이기 때문에 권리을이 감격했을 뿐이라는 진실은 조금도 짐작하지 못했다.
자연스러운 걸음으로 문을 열고 들어가 메뉴판을 훑어보았다.
“아, 어서 오세요!”
후다닥, 카페 주인이 카운터로 다가왔다. 서글서글한 인상에 평범한 분위기의 여성이었다.
이런 사람이 뒤에서 불법 몬스터 밀거래에 가담했단 말이지. 김태운의 눈이 날카로워졌다.
“주문하시겠어요?”
“그럼 이걸로 주십시오.”
김태운은 메뉴판에서 아무 메뉴나 하나 짚었다.
특이한 점은 가격이 루비로 책정되어 있다는 것이다. 무슨 암구호인 걸지도 모르지.
S급 헌터, 최이찬은 카운터 근처의 자리에 혼자 앉아 있었다. 김태운은 그쪽을 주의 깊게 바라보았다. 평범한 손님인 척하면서 그에 대해 조사할 작정이었다.
두말없이 2루비를 지불하고 자리에 앉으니 곧 메뉴가 나왔다.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쿠키였다.
그다지 먹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지만, 뒤에서 주인의 시선이 느껴졌다.
“……!”
눈이 마주치자 고개를 홱 돌리고 피했다. 아무리 봐도 이쪽을 의심하는 기색이다. 먹지 않으면 의심을 사겠지.
“흠…….”
김태운은 먼저 버터 쿠키를 손에 들었다. 설탕과 버터의 달콤한 냄새에 위장이 공복을 호소했다. 그러고 보니 점심도 걸렀군. 냄새에 이끌리듯 한 입, 쿠키를 베어 물었다.
바삭.
설탕과 버터가 충분히 들어간 쿠키가 입 안에서 부드럽게 허물어졌다.
한 번 먹으니 손을 멈출 수가 없었다. 달콤함이 입 안을 가득 메울 때쯤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한 모금 마셨다. 원래 커피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지만, 이 쿠키와 함께 먹으니 잘 어울렸다.
쿠키를 한 입, 다시 커피를 한 입.
헛헛하던 속이 채워지며 머리가 차분해진다. 늘 그를 괴롭히던 편두통이 어느새 가라앉았다. 쿠키 접시가 비는 것을 아쉽게 느끼며 고개를 들었다.
“……!”
어느새 최이찬은 사라지고 없었다. 인기척도 없이 떠나다니 역시 주도면밀하다.
‘칫, 놓쳤나.’
허탈함에 속으로 혀를 차면서 김태운은 생각했다.
그럼 내일 다시 한번 와야겠군.
허탕을 친 데 대한 아쉬움과 이 쿠키를 다시 먹을 수 있다는 기쁨 중 어느 쪽이 컸는지는 스스로도 알 수 없었다.
* * *
<카페 리을>의 첫날, 무척 기쁜 일이 있었다.
바로 손님이 온 것이다.
그러니까 나와 아는 사이인 사람이 아닌 ‘진짜 손님’ 말이다.
낚시용 조끼를 입고 위에 야상 점퍼를 걸친 40대쯤 되어 보이는 남자였다. 누가 봐도 지나가다가 ‘어? 이런 데 카페가 있네? 잠깐 쉬었다 갈까?’ 하고 들른 손님이다.
역시 간판을 설치한 덕분에 카페가 눈에 띈 모양이다.
드디어 첫 손님이라는 생각에 나는 들떴다.
“왜오오옭(언제는 열심히 일할 생각이 없다더니)?”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지.’
열심히 일할 생각은 없지만, 기껏 개업한 가게에 손님이 한 명도 없는 것도 좀…… 쓸쓸하잖아.
손님이 들어오는 것을 본 최이찬은 슬그머니 몸을 일으켜 구석진 자리에 앉았다. 눈에 띄고 싶지 않아 하는 그의 모습이 안타깝게 느껴졌다.
아무튼, 이 기념비적인 첫 번째 손님은 무뚝뚝한 표정으로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버터 쿠키 세트’를 시켰다.
그래, 스트레스가 감소하는 콤보 효과가 붙어 있으니까, 피곤한 사람에게 제격인 메뉴지.
재빨리 메뉴를 만들어 손님에게 건네주었다. 그리고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손님이 메뉴를 먹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
아, 눈이 마주쳤다. 나는 머쓱한 마음에 재빨리 시선을 피했다. 감상이 궁금했지만 너무 빤히 쳐다보면 실례지.
그 손님은 다음날에도 카페에 왔다.
다음날에도, 또 그 다음날에도…….
[누적 매상: 12루비]
덕분에 매상도 차곡차곡 모이고 있었다.
단골손님이 생겨서 기뻐한 것도 잠시.
“으으음…….”
“키야옹, 왜 그러느냐!”
“으으으음…….”
나는 새로운 고민이 하나 생겼다. 바로 문제의 그 단골손님 때문이다.
“그 남자, 다른 목적이 있는 게 분명하다. 왜옹.”
“뀨우웃!”
뜬금없는 미음이의 말에 라임이가 동의의 울음을 보탰다.
“왜우웅, 매일 같은 시간에 와서 같은 메뉴를 시키다니, 수상하잖느냐!”
“뀨웃, 뀨우!”
“그냥 버터 쿠키를 아주 좋아하는 사람일 수도 있잖아.”
“왜오오옭!”
파바밧.
미음이가 번쩍 앞발을 들더니 내게 펀치를 날렸다. 하하, 하지만 이제 이쯤은 안 보고도 피할 수 있다. 허공에 헛발질을 한 미음이가 다시 말했다.
“버터 쿠키를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이런 던전게이트 앞까지 매일 온단 말이냐, 왜옭! 다른 뜻이 있으니까 오는 걸 테지.”
그건 그렇긴 한데…….
“다른 뜻이라니, 어떤 거?”
“그 남자는 던전 밀거래 조직의 일원이 분명하다, 키야옹! 다른 사람의 눈을 피해 거래를 할 장소로 이곳을 고른 거지. 하지만 거래하기로 했던 상대방은 이미 그를 배신한 다음. 그 사실을 모른 채로 매일, 매일 이곳에 오는 거다, 왜우웅…….”
“증거는?”
“이 몸의 감이다!”
……괜히 물어봤네.
어쩐지 어제 밤늦게까지 ‘심야 미스터리 드라마, 사라진 헌터의 행방은’을 열심히 보더라니. 그 드라마 스토리였군.
나는 앞으로 이 상상력이 풍부한 고양이에게 드라마 시청을 자제시켜야겠단 생각을 하면서 오븐을 열었다. 달콤하고 고소한 냄새가 확 풍겨 나왔다. 새로 막 구운 버터 쿠키를 접시 위로 옮겨 담는 바로 그때.
딸랑, 하고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아, 어서 오세요!”
“이걸로 주십시오.”
오늘도 같은 시각에 이 손님이 와서 같은 메뉴를 시킨 뒤 같은 자리에 앉았다.
최이찬은 오늘 컵을 하나 깬 뒤, 힘을 빼고 오겠다며 나간 상태다. 손님은 평소에 최이찬이 있던 자리를 슬쩍 살피기는 했지만 별다른 말은 없이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버터 쿠키를 받아들었다.
손님이 쿠키를 한 입 먹고 커피를 마시자 머리 위로 반짝이는 막대가 나타났다.
막대가 빛으로 차오르다가…… 멈췄다.
‘오늘도 똑같아…….’
내 고민은 바로 이것이다.
이 손님의 머리 위로 차오르는 만족도를 나타내는 빛의 막대. 눈대중으로 봐서 대충 60%쯤 될까. 약간씩 차이만 있을 뿐 매일 비슷한 수치에서 멈췄다.
즉, 이 손님은 이 메뉴에 완전히 만족하지 않은 상태다.
설마 커피에 맛이 없나?
아니, 그럴 리가.
잠시 그런 의심이 들었지만 가능성은 낮다.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버터 쿠키는 오늘도 완벽한 상태로 만들어졌다.
그러면 대체 이 메뉴의 어떤 점이 불만족스러운 걸까.
손님은 어쩐지 다가가기 힘든 분위기에다 ‘말 걸지 마쇼.’ 하는 표정이었지만, 오늘은 용기를 내기로 했다.
“실례합니다. 손님, 혹시…… 메뉴가 입에 맞지 않으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