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9화 (49/192)

49화

“……!”

손님은 잠시 놀란 표정을 짓더니, 신중한 투로 대답했다.

“그런 건 아니오.”

그러나 여전히 컵에는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절반 가까이 남아 있었고, 머리 위의 막대도 전부 차오르지 않았다.

“입에 맞지 않으시면, 다른 메뉴를 드릴까 하고요.”

재차 묻자, 손님이 설명을 덧붙였다.

“이 메뉴는 아주 맛있군요. 다만 나는 원래 커피를 잘 못 마신다오.”

……아. 느린 깨달음이 머리를 스쳤다.

커피를 못 마시는구나.

이 손님이 매일 같은 메뉴를 시킨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어차피 메뉴판에 있는 것이라곤 커피뿐이었으니 말이다.

아무리 ‘내 손안의 카페’ 스킬로 특별한 커피를 만들더라도, 기호와 체질만큼은 어찌할 수 없는 법이다.

혹자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진짜 맛있는 커피를 못 마셔 봐서 그래!’

아니, 그 ‘진짜 맛있는 커피’의 맛이 취향이 아니라니까.

카페라면 커피를 못 마시는 손님을 위해서 커피가 아닌 메뉴도 갖춰야 하는 법이거늘. 퀘스트에 있는 메뉴를 만드는 데 바빠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어쨌거나 이 손님은 불만 없이 주문을 하고 있지만, 차오르다 만 빛의 막대가 눈에 거슬렸다.

그래, 결심했다. 논커피 메뉴를 만들자.

“다음에……. 커피가 아닌 새 메뉴를 만들 예정인데, 다음에 다시 오시면 드실 수 있으실 거예요.”

“……!”

갑자기 새로운 메뉴 이야기를 꺼냈기 때문인가, 손님이 화들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언제쯤 오면 되겠습니까?”

어, 언제? 날짜까지는 생각 못했는데…….

며칠 뒤 정도면 괜찮겠지. 다음 주 중 적당한 날짜를 짚으니 손님이 신중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 오겠다며 손님이 가게 문을 나선 순간, 눈앞에 시스템 알림이 떴다.

[퀘스트가 발생했습니다.]

[퀘스트: 논커피 메뉴 완성하기(0/1)를 시작합니다.]

* * *

“으핫…… 으하하하……!”

<카페 리을>의 문을 나서자마자 김태운은 기쁨을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됐다. 며칠 동안이나 평범한 손님인 척 카페에 들락거린 보람이 있었다.

같은 시각에 같은 메뉴를 시키길 여러 번. 드디어 불법 몬스터 비밀 거래의 실마리를 붙잡았다.

며칠 뒤 놈들의 아지트에서 큰 거래가 있을 거다.

바로 희귀한 몬스터, 긴꼬리불사조의 밀거래.

적잖은 돈과 술과 밥을 먹인 김태운의 비밀 정보통이 전한 소식이었다.

그러나 그저 그뿐, 정확히 어떻게 거래가 이뤄지는지는 알아낼 수 없었다.

유일한 단서는 이곳 <카페 리을>뿐이었다. 분명 이곳에, 그 거래에 참여할 수 있는 실마리가 있을 터였다.

며칠 동안 아무리 동향을 살펴도 성과가 없었지만 김태운은 굴하지 않았다. 진정한 기자라면 자기만의 번쩍이는 감과 끈기가 있어야 하는 법.

그렇게 자신의 감을 믿고 매일 버터 쿠키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먹었다.

그리고 드디어 오늘.

S급 헌터 최이찬이 자리를 비운 때에 은밀하게, 카페 주인이 처음으로 메뉴가 입에 맞지 않냐고 말을 걸었다.

김태운은 놀랐지만 곧 침착을 되찾았다.

이 질문이 거래를 위한 테스트인 것이 분명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왜 뜬금없이 메뉴가 어떻냐며 말을 걸겠는가. 그는 커피를 좋아하지 않지만, 이제껏 의심을 피하기 위해 전부 다 마셨는데 말이다.

조심스럽게 말을 골라 침착하게 대답했다.

“그런 건 아니오.”

“……!”

퍼뜩 놀란 표정을 지은 카페 주인이 다시 방문해 달라고 말했다.

그녀가 지정한 날짜는 바로…… 비밀 정보통이 말한 밀거래 날짜와 동일했다.

됐다. 드디어 실마리를 찾았다. 이 건만 제대로 파헤치면 특종을 낼 수 있다.

그렇게 김태운은 가벼운 발걸음으로 <카페 리을>을 나섰다. 자신이 터무니없는 오해를 했다는 사실은 꿈에도 모른 채로.

* * *

[서브 퀘스트: 손님을 만족시켜라

사람의 입맛은 제각각.

커피를 좋아하지 않는 손님도 만족하는 특별한 논커피 메뉴를 완성하세요.

손님에게 논커피 메뉴 전달하기: 0/1

보상: 경험치(100exp), 황금 티켓 1장, 명성(5), 인기(10)]

새로 나타난 퀘스트를 읽어 보니 딱히 어려운 내용은 아니었다.

핫초코, 홍차, 과일 주스 등등.

커피가 아닌 카페 음료도 여러 종류가 있으니까. 그 중 하나를 완성하면 되겠지.

그런데 퀘스트 창 아래에 3pt 크기로 작게 쓰인 글씨가 눈에 들어왔다.

“으음…….”

[※ 주의: 평범한 음료로는 안 됩니다. 레시피에 따른 특별한 음료를 완성하세요.]

…….

그럼 그렇지.

이 시스템이란 것은 내가 편한 모습을 두고 보지 못하는 것이 분명했다. 뭐 하나 쉽게 되는 게 없었다.

문제는 현재 얻은 레시피가 모두 커피뿐이라는 것이다. 새로운 레시피를 얻을 수 있는 퀘스트도 딱히 없는 상황. 나는 새로운 정보가 없나 하고 레시피 창을 띄워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그때.

[높은 탐구심으로 새로운 레시피에 대한 정보를 획득했습니다.]

[새로운 레시피 레몬에이드를 획득했습니다.]

“어?”

아무것도 안 했는데 갑자기 레시피를 얻었다?!

뭐 이런 시스템이 다 있어…….

갑자기 레시피를 주니까 찜찜하긴 했다.

하지만 지금 이런 알림을 띄운다는 건 레몬에이드를 만들어야 퀘스트를 클리어할 수 있단 뜻이겠지.

그런데 레시피 상세 내용에 이해할 수 없는 단어가 적혀 있었다.

[레시피: 레몬에이드

재료: 정화목의 열매, 마법 설탕, 탄산수]

“……?”

레몬이 안 들어가는 음료를 레몬에이드라고 불러도 되나……?

레몬에이드의 본질에 대한 의문은 차치하더라도, 정화목이란 건 대체 뭐지. 이름으로 봐서는 나무인 모양인데.

“부정한 것을 정화하는 힘을 지닌 나무이니라, 야옹! 그 열매는 아주 상큼하지.”

“그래? 그럼 그 정화목이란 건 어디서 구해?”

“그건, 왜오오옹…….”

괜히 물어봤다. 내 안쓰러워하는 시선을 느꼈는지 미음이가 꼬리의 털을 펑, 하고 부풀리면서 앞발을 마구 날렸다. 이번에는 얌전히 맞아 주었다.

“내가 백과사전인 줄 아느냐! 백과사전을 찾아보면 될 거 아니냐! 왜옭!”

“백과사전?”

그런 게 있었나?

“설마 까먹은 거냐! 왜옭!”

맞다. 그러고 보니 시스템에 백과사전 기능이 있었지. 별로 쓸모가 없어서 완전히 잊고 있었다.

나는 파바밧, 하고 날아오는 미음이의 냥냥 펀치를 피하고 에테르-위키에 접속했다.

[자격을 확인 중입니다. ……완료.]

[적격자: 권리을 확인되었……]

‘건너뛰기.’

주르륵 나열되는 문자열을 스킵하고, ‘정화목의 열매’ 항목을 검색했다.

《정화목의 열매》

종류: 식물>열매

설명: 부정한 것을 정화하는 힘을 지닌 정화목의 가지에서 열리는 열매. 시고 상큼한 맛이 난다.

얻는 법 :

■■■ ■■■■ ■■ ■…….

다행히 항목이 열려 있었지만, 정작 얻는 법 부분은 검은 칠이 되어 읽을 수가 없었다. 그럼 어디서 정보를 얻어야 한담. 또 무작정 주변 사람에게 하나씩 물어봐야 하나.

뭐 이런 귀찮은 퀘스트가 다 있어. 그냥 그만둘까.

고민에 잠기는 그때, 최이찬이 돌아왔다.

“이찬아, 조금 늦었네. ……어, 그건 뭐야?”

달리기로 힘을 빼고 온다던 최이찬의 손에 커다란 비닐봉지가 들려 있었다.

“하하……. 오다가 샀어.”

안을 열어 보니 과일이었다. 사과와 배, 바나나가 가득 들어서 상당한 양이었다.

“오다가? 어디서?”

편의점조차 없는 이 던전게이트3가 근처에 과일 가게가 있을 리 만무하다.

“그건, 하하…… 어쩌다 보니.”

설마 강매당한 건 아니겠지…….

어쨌건 신선한 과일이 잔뜩 생겼으니, 퀘스트에 대한 고민은 미뤄 두고 바로 먹어 보기로 했다. 마침 딱 출출할 때였고, 무작정 고민한다고 답이 나오는 것도 아니니까.

“내가 깎을게.”

접시와 과도를 꺼내오더니 최이찬이 먼저 사과를 깎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시도는 곧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아.”

최이찬의 손아귀 안에서 사과가 잘게 부서졌기 때문이다. 나는 최이찬에게서 과도를 뺏어들었다.

“내가 깎을 테니까 기운 내.”

“미안하다, 내가 또…….”

“마침 사과 주스를 먹고 싶었는데, 잘됐지 뭐.”

최이찬은 여전히 힘 조절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전보다는 나아졌지만, 아직 다섯 번에 한 번은 커피 잔을 깼다. S급 헌터도 여러 불편한 점이 있구나.

새로 살 집을 구하는 일도, 보안이 철저한 곳을 구해야 해서 진척이 더디다고 했다.

회귀 전에도 계속 혼자 살았던 나야 이렇게 매일 친구를 만날 수 있어서 좋지만.

나는 사과를 잘라서 접시 위에 놓았다. 한 조각 먹어 보니 잘 익어서 새콤달콤하고 맛이 좋았다. 미음이와 라임이에게도 나눠준 다음, 잠시 다 같이 앉아서 사과를 먹었다.

이렇게 앉아서 사과를 먹고 있으니 문득 옛날 생각이 났다.

회귀 전, 자취를 시작하기 전에는 권지운과 같이 살았다. 권지운은 아직 각성하기 전이었고, 나름 사이가 좋았다.

그때는 내가 사과를 못 깎아서 대신 권지운이 깎아 주곤 했다. 내가 한참을 깎아 대 절반 크기로 줄어든 사과는 권지운의 몫이었다.

‘그런 적도 있었지…….’

권지운이 각성하기 전까지는.

각성한 뒤로는 많은 것이 변했다. 나는 나대로 바뀐 환경에 적응하지 못했고, 갑자기 길드를 이끌게 된 권지운은 권지운대로 많은 일을 겪었으리라 생각한다.

권지운이 바빠지면서 자연히 집에 혼자 있는 시간이 늘어났다. 텅 빈 집에 덩그러니 남아 있다 보면 온갖 부정적인 감정이 몰려왔다. 오빠는 내가 귀찮은 걸까. 부모님은, 할머니는 왜 없는 걸까. 그런 답도 없는 의문들.

차라리 혼자 사는 게 나을 것 같아서, 진학을 계기로 자취를 시작했다. 하지만 이사 당일까지 권지운을 만날 수는 없었다.

“권지운 지금 없어요? 오늘 이사할 예정인데.”

“지금 바쁘세요. 내가 전달해 드릴게요.”

“그래도, 잠깐 이야기라도 하고 가면…….”

“권리을 씨, 지금 제 말이 이해가 안 가세요? 부길드장님 바쁘시다니까요.”

“…….”

그렇게 몇 가지가 어긋난 채 시간만 흐르다…… 끝은 어이없는 죽음.

하지만 이번에는 회귀를 하면서 미래가 여러 가지로 바뀌었다. 과거에는 이미 죽고 없었을 최이찬이 내 앞에서 사과를 먹고 있잖아.

그러면 권지운과의 관계도 바꾸는 게 가능할까.

아니, 그만두자. 이런 생각은 해서 뭘 하겠어. 사촌 오빠와 데면데면한 게 드문 일도 아닌데. 괜히 기분만 칙칙해졌다.

이번에는 배도 하나 깎아 먹어 볼까.

“이찬아, 배도 먹을래?”

“어? 좋지.”

잘 익은 배를 고르기 위해 비닐봉지를 뒤적뒤적하는데 안에서 팔랑, 하고 나뭇잎이 나왔다.

“……? 이게 뭐지.”

겉으로 보기에는 그냥 평범한 초록색 나뭇잎이다.

비닐봉지에 나뭇잎이 섞여 들어간 건가? 손으로 탁, 하고 나뭇잎을 털어 내는데 갑자기 시스템 창이 떴다.

[스킬: 바리스타의 눈(D)을 사용합니다.]

[아이템: 정화목의 잎(★☆☆☆☆)

종류: 잎

정화목의 나뭇잎. 좋은 향기가 나지만 그대로 먹을 수는 없다.]

엥……? 여기서 갑자기요?

“이찬아.”

“어, 왜 그래?”

“이 과일 어디서 샀다고 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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