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0화 (50/192)

50화

최이찬은 달리기를 하던 중 어느 노점에서 과일을 샀다고 했다. 다행히 광고지를 받아 두었다며 내게 건넸다.

[해피 그린 라이프 과일 가게

산지직송/택배가능

※ 3만 원 이상 무료 배송

010-xxxx-xxxx]

이름이 다소 특이할 뿐, 평범한 과일 가게 광고지로 보이는데…….

이런 곳에 그 정화목이란 게 있다는 건가? 한번 찾아가 볼까.

시스템이 틈만 나면 나를 던전에 처넣고 싶어 했던 것으로 봐서 당연히 던전에서 자라는 나무일 줄 알았는데, 사실 과일 가게에서도 살 수 있는 거였나.

그런데 이면지를 재활용해서 광고지를 찍었는지, 뒷면에는 전혀 다른 내용이 인쇄되어 있었다.

전화번호만 메모하고 광고지를 접어 버리려던 나는 뒷면을 보고 흠칫 놀랐다.

[해피 그린 라이프 던전 농원

던전 식물 재배/판매 전문

※ 던전관리청 공인 지정업체

※ 던전 식물학 박사학위 취득

※ 던전 식물 체험 농장 운영합니다.

010-xxxx-xxxx]

그래, 이 농원에도 같이 가 봐야겠다.

농원의 이름을 보는 순간 문득, 회귀 전에 있었던 어떤 일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바로 어느 텔레비전 방송에 나온 사연이었다.

던전의 식물 생태계에 매료된 어느 식물학자의 이야기다. 각성 후 모든 걸 내던지고 오직 던전 식물 연구에만 빠져들었다고 한다.

이렇게 말하면 어딘가 아련하게 느껴질지도 모르겠지만, 실제 방송은 그를 ‘화성인’이나 ‘금성인’처럼 다뤘다.

한마디로 괴짜 취급이었다 이 말이다.

별로 관심 있는 소재는 아니었지만 적절한 예고편 낚시와 자극적인 편집으로 빨려 들어가 끝까지 시청했다.

대충 이런 내용이었지…….

[▶▶]

수많은 아이템이 거래되는 이곳 <헌터 마켓> 위탁 상점 구역.

저렴한 가격에 아이템을 사려는 헌터들로 붐비지만, 금성인의 관심사는 다른 곳에 있는데.

주변을 빠르게 스캔하던 금성인, 한곳에서 걸음을 멈춘다.

“이거 얼마예요?”

금성인이 가리킨 것은 바로…… 씨앗?

“방금 산 게 뭐예요?”

“던전 칡넝쿨하고, 초록 에테르 이빨당근 씨앗이에요.”

“그거…… 식물계 몬스터 아닌가요?”

“아니요. 몬스터라고 오해를 많이 하는데, 전부 평범한 식물입니다.”

날카로운 이빨이 달린 당근을 평범한 식물이라고 하는 금성인.

몬스터의 씨앗을 들고 향한 곳은 금성인의 서식지.

“이 몬스터 씨앗으로 뭘 하는 겁니까?”

“그야 물론 재배를 할 생각이죠.”

식물계 몬스터를 키운다고?

금성인은 경악한 김PD를 온실로 데려가는데.

“던전 내부와 같은 에테르, 온도, 습도를 갖추었어요. 여기서라면 어떤 던전 식물이건 완벽하게 자라날 수 있습니다.”

이빨당근과 면도칼이 달린 난이 가득하다.

“이렇게 보니까 너무 징그러운데요?”

“후후, 귀엽지 않나요?”

“이건 키우면 무슨 효능이 있나요?”

혹시 무슨 특별한 효과가 있는 걸까. 요즘 연이은 야근으로 건강이 좋지 않다는 김PD가 관심을 보이지만.

“네? 그냥 키우는데요? 귀엽잖아요.”

“……무서운데요?”

화분에 에테르수를 부어 정성껏 돌보는 금성인.

그중 하나가 드디어 꽃을 피웠다는데.

“제가 이걸 키우려고 진짜 고생 많이 했거든요.”

으윽, 이게 꽃이라고?

“사람 머리……를 닮은 거 같은데요.”

“머리꽃이라는 거예요. 보세요, 예쁘죠? 만져 보세요.”

조심스럽게 손을 뻗는 김PD.

콱!

“으악! 으아아악! 물었어!”

콰지직!

“으아아악! 이, 이거 놔! 사람 살려!”

[▶∥]

…….

사람 머리를 닮은 꽃에게 손을 물린 채 도망치는 PD의 모습이 마지막 장면이었다.

그런 다음 던전 농원 홍보를 하는 바람에 욕을 많이 먹었고, 결국 이색 헌터를 소개하는 ‘금성인의 비밀’ 프로가 종영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 <해피 그린 라이프 던전 농원>이 그 방송에 나온 곳이 분명했다.

‘사람 머리꽃을 키우는 곳인데, 정화목이 있어도 이상하진 않군.’

그런데 이 농원, 나중에 폐업한 기억이 나는데……. 그것도 무슨 큰 사건이어서 화제가 되었던 것 같은데 뭐였더라.

음, 폐업 이유까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어쨌건 아직은 영업하는 모양이고, 모처럼 힌트도 얻었으니 다녀와 볼까.

* * *

어느 평범한 아파트 단지 앞. <해피 그린 라이프 과일 가게>는 그곳에 있었다.

“여기 사과 한 바구니 얼마예요?”

“만5천 원.”

노점은 퇴근길에 과일을 사 가려는 손님으로 제법 붐볐다. 나는 무심한 표정으로 비닐봉지에 과일을 담고 있는 주인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저, <해피 그린 라이프 던전 농원>으로 가려면 어디로 가야 하나요?”

도무지 과일 노점 주변으로 농원 같은 것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광고지에 적힌 주소지는 여기가 확실한데…….

“그건 저쪽으로 가 봐.”

과일 가게 주인이 어느 한 곳을 손끝으로 가리켰다. 별 특이한 인간 다 보겠네, 하는 시선은 덤이었다.

손끝을 따라 고개를 돌리니 뒷산으로 이어지는 좁은 오솔길 옆, 수풀에 덮여 보일 듯 말 듯한 위치에 ‘농원’이라는 간판이 보였다.

“윽…….”

드디어 찾았다는 기쁨도 잠시.

오솔길에 들어서자마자 훅 더운 공기가 느껴졌다. 거기다 이빨당근과 면도칼란(蘭)이 양옆으로 빼곡하게 자라 있어 퍽 으스스한 분위기였다.

슈슉, 슉, 슈슈슉, 슉…….

어디선가 이상한 소리도 나는 것 같고…….

이럴 줄 알았다면 최이찬하고 같이 올 걸 그랬나. 헛걸음을 할 수도 있으니 혼자 다녀오겠다고 말한 게 뒤늦게 후회되었다.

삐걱거리는 계단을 딛고 올라가 농원의 안으로 들어갔다. 텁텁한 공기에 독특한 냄새, 수상쩍은 식물이 가득했지만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는다.

“저어, 계세요?”

대답은 없다.

“아무도 안 계세요? 뭘 좀 사려고 하는데요.”

아무도 없나? 낙담한 채 돌아가야 하나 고민하는 바로 그 순간.

우당탕!

안에서 뭔가가 무너지는 소리가 나더니 후다닥 사람이 뛰쳐나왔다.

“어, 네, 헉, 무슨 일이시죠! 전기세 체납분은 저번 주에 냈는데요. 전기는 진짜 끊기면 안 되는데 며칠만 더 기다려 주시면……. 전기세 받으러 오신 분 아니세요?”

“네, 묘목을 좀 알아보려고 하는데요.”

“헉, 설마 손님? 손님이세요? 그 성질 더러운 헌터 말고 손님이 오다니……. 한 달 만에 처음, 아니, 두 달 만에 처음인가? 일단 이쪽, 이쪽으로 오세요!”

농원 주인은 회귀 전 방송으로 봤던 모습과 거의 비슷했다.

긴 머리카락의 아랫부분만 초록색으로 염색했고, 연두색 셔츠에 초록색 공단 스커트 위로 초록색 재킷을 걸쳤다. 거기에 초록색 뿔테 안경을 했다. 콘셉트 확실한 차림이라고 할까.

분명 이름은…….

“제가 여기 주인 이초록이라고 합니다. 이래 봬도 식물학자랍니다. 무얼 찾으시나요?”

그래, 이초록이었다. 이름까지 깔맞춤이군.

“저희는 유사 업체와는 달라요. 박사학위 소지자가 과학적인 방식을 통해 직접 추천해 주는, 내게 딱 맞는 던전 식물을 선택하실 수 있으세요. 믿고 맡겨 주시면 최선을 다해 모시겠습니다.”

이초록이 건넨 전단지에는 ‘혈액형 타입별 던전 식물 추천’, ‘오늘의 운세 UP 별자리별 행운의 컬러 식물’이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과학하고는 하나도 상관없잖아…….

그런데 방금 한 말로는 두 달 동안 손님이라곤 없었던 것 같은데, 여기 진짜 괜찮은 건가.

아무튼. 나는 유사 과학 전단지를 돌려준 뒤, 주머니에서 과일과 함께 들어 있었던 정화목의 잎을 꺼냈다.

“이 나무를 찾는데요.”

이초록은 잎을 보자마자 무엇인지 알아봤다.

“아! 정화목이군요. 요즘 미세먼지가 심하잖아요. 정화목은 이름 그대로 공기를 정화하는 효능이 있어서, 가정용 원예 식물로 추천드립니다. 마침, C급 던전에서 힘들게 공수해 온 묘목이 있는데 어디…… 보여 드릴까요?”

기대감이 가득한 눈빛과 절실한 영업이었다.

고개를 끄덕이자 이초록은 후다닥 나를 묘목이 있는 곳으로 안내했다.

[아이템: 정화목의 묘목(★☆☆☆☆)

종류: 묘목

어린 정화목의 묘목. 심으면 은은한 꽃향기가 납니다.]

상태 창의 이름도 확실히 정화목이 맞다.

이렇게 간단하게 찾을 줄은 몰랐는데. 이번 퀘스트는 쉽게 끝나리라는 생각에 슬그머니 미소가 지어졌다.

“얼마인가요?”

“지금 마침 세일 기간이거든요! 세일 특가로 단돈 루비 50개에 모십니다.”

“……엑.”

생각보다 비싸다.

나는 인벤토리에 남은 루비를 세어 보았다. 가게 매상을 제외하고, 지난번에 퀘스트로 얻은 100개에서 이런저런 재료를 사느라 쓰고 70개가 남았다. 그 중 50개라니 거의 전 재산이잖아.

“으음…….”

일단 돌아가서 천천히 생각할까. 꼭 지금 사야 한다는 법이 있는 것도 아니고, 잘 하면 다른 데서 구할 수도 있지 않을까.

“더 알아보고 올게요.”

그러나 이 던전 식물학자 이초록은 내가 망설이는 기색이자 잽싸게 옵션을 붙이기 시작했다. 가공할 만한 민첩성이었다.

“손님! 이건 정말 쉽게 구할 수 있는 나무가 아니에요. C급 던전 중 일부 지역에서 흙에 함유된 에테르가 수 속성으로 치우쳤을 때만 생장이 가능하거든요. 공기 정화 능력도 뛰어나고요.”

“그래도 가격이 좀 비싸서…….”

“지금 구입하시면! 빠른 생장에 도움이 되는 에테르-비료 세트와 전용 물뿌리개, 원예용 가위도 덤으로 드립니다!”

“으음…….”

“초등학생도 이해하는 던전 식물 기르기 1, 2권 세트도 포함이에요!”

이빨당근과 머리꽃이 그려진 표지에 ‘저자: 이초록’이라고 적혀 있었다. 자가 출판한 책 같았다.

“이빨당근 두 뿌리도 드릴게요! 완전 특가! 대서비스!”

“아니, 그건 됐어요.”

이빨이 달린 당근이라니 생각만 해도 꿈자리가 사납다.

“은행 대출까지 풀로 땡겨서 이 농원을 개업했는데, 두 달째…… 이상한 헌터 한 명 말곤 손님이라곤 없었어요. 전부 직접 던전에서 공수해서 키운 소중한 나무인데.”

그야…… 나 같은 사정이 있는 사람이 아니고서야 던전 식물을 사지는 않을 테니까.

“몇 달째 전기세랑 수도세까지 밀리고 있어요. 이대로 장사가 안 되면…… 언니가, 아, 요 앞 과일 가게 주인이 언니거든요. 언니가 여길 과일 가게로 만들어 버린다고 했거든요.”

과일 가게 쪽이 장사는 잘될 것 같다.

“아, 이 정화목 묘목이 팔리지 않는다면…… 저는 쓸쓸히 여기서 나무와 함께 먼지처럼 죽어 가겠죠…….”

엄청나게 부담스러운 눈빛이 나를 엄습했다.

마음의 빚을 지우는 스킬이 장난 아니었다. 저 애절한 눈빛과 서글픈 tmi 앞에서 ‘다음에 살게요.’라고 말하기란 정말 힘이 들었다.

뭐, 정화목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고, 덤도 많이 받았으니 그냥 살까.

“그럼……. 살게요, 이거 주세요.”

“제발 살려 준다고 생각하시고, 헉! 네? 저, 정말요? 이런 걸 사신다고요?”

서글픈 표정으로 눈물을 짜내던 이초록이 내 말에 반색했다.

“헉, 잠시만 기다리세요. 맞다! 기다리시는 동안 온실이라도 구경하고 계세요.”

“아니요, 괜찮은데.”

“이쪽이에요! 얼마든지 편하게 보셔도 되니까요.”

이초록은 나를 농원의 온실 안으로 밀어 넣고는 곧 묘목과 잡다한 아이템을 싸 주겠다며 어딘가로 사라졌다.

‘당근은 빼고 주세요.’ 하고 외쳤는데 들리지 않는 모양이다. 기본적으로 남의 말을 잘 듣지 않는 성격 같았다.

눈앞에 괴상하게 생긴 식물이 가득한 온실 풍경이 펼쳐졌다.

조금 무섭긴 하지만…… 모처럼이니 구경이라도 해 볼까.

‘사람 머리꽃에 손만 갖다 대지 않으면 괜찮겠지.’

그러나 나는 곧 이 결정을 후회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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