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5화 (55/192)

55화

나는 유리컵에 갓 짠 짭레몬즙을 담았다.

다음으로 레몬청, 탄산수를 붓고 적당량의 얼음을 채우면 끝이었다. 레몬청 담그기가 번거로울 뿐 만드는 과정은 간단한 음료다.

[아이템: 레몬에이드(★★★☆☆)

상태: 좋음 (남은 시간: 00:30:00)

효과: 정신을 정화합니다.]

정화목의 열매로 만들어서 그런지 정화 관련 효과가 떴다.

그런데 이 레몬 없는 레몬에이드를 내밀자 손님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레몬에이드가 나올 줄 예상 못 한 건가.

“이런 거 말고, 주기로 한 거 있지 않소.”

“네?”

그런 게 있었나?

“이게 오늘 드리기로 했던 신메뉴인데요.”

손님은 갑갑한지 확 목소리를 높였다.

“이런 음료수 말고! 오늘 긴꼬리불사조를 거래하는 거 아니었나?”

“긴꼬리불사조가…… 뭔데요?”

이름으로 봐선 몬스터 같은데. 희귀한 몬스터인가?

“시치미 떼지 마! 당신, 밀거래 일당하고 닿아 있는 거 다 알고 왔어!”

“알긴 뭘 알고 왔단 거예요? 밀거래라니 무서운 소리 하지 마세요! 여긴 평범한 카페인데요!”

“평범한 카페가 왜 이런 데 있나?”

…….

그렇게 말하면 할 말 없긴 한데…….

어째서인지는 몰라도 이 손님은 단단히 오해를 한 것 같다. 오해를 풀기 위해 나는 다시 설명했다.

“그…… 그래도 여긴 그냥 카페예요.”

“그럼 긴꼬리불사조는 어디 있지?”

“그런 몬스터는 본 적도 없어요. 여기 있는 건 고양이랑 슬라임 한 마리뿐인데요.”

“이야오옹.”

“뀨우웃!”

“……!”

손님이 얼굴을 확 일그러뜨리더니 더 이상 볼일은 없다는 양 황급히 가게를 떠나려 했다.

하지만 나는 다급히 손을 뻗어 손님을 붙잡았다.

어딜 가요. 이걸 마시게 해야 퀘스트가 완료된단 말야. 내 황금 뽑기 티켓!

“손님, 이왕 만든 거니까 이거 드시고 가세요.”

“필요 없어!”

“한 입만이라도 드셔 보세요.”

“이런 음료수가 대체 뭐라고……!”

하지만 내가 계속 강하게 권유하자 손님은 결국 레몬에이드 잔을 손에 들었다. 벌컥, 한 모금을 마신다.

움찔. 놀란 표정으로 레몬에이드를 다시 쳐다보더니.

벌컥, 벌컥…….

남은 레몬에이드를 전부 다 비웠다.

머리 위로는 만족도 게이지가 빛으로 차오르기 시작했다. 묻지 않아도 감상을 짐작할 수 있을 만큼 분명하게 불꽃이 튀었다.

신맛, 그리고 진한 단맛, 탄산수의 톡톡 튀는 맛까지. 산뜻한 맛의 폭풍에 감싸여 손님은 무척 감격한 표정이었다.

[대상이 당신의 음료를 아주 좋아합니다. 음료로 깊은 인연을 맺었습니다.]

[축하합니다! ‘서브 퀘스트: 손님을 만족시켜라’를 완료했습니다.

보상을 수령해 주세요.]

[경험치: 100exp를 획득했습니다.]

[황금 뽑기 티켓 1장을 획득했습니다.]

[명성: 5 / 인기: 10을 획득했습니다.]

[<카페 리을>의 현재 등급: F]

때마침 울리는 퀘스트 완료 메시지.

됐다. 그럼 오해도 풀렸고 얼른 가 보시라고 말하려 했다.

“나는…… 나는 인생을 잘못 살았네.”

네?

“처음에는 나름 뜻이 있었어. 언론의 길에서 헌터로서의 뜻을 펼치려 했지. 하지만 어그로를 끌어서 조회 수가 잘 나올수록 돈이 되더군.”

이 손님의 이야기는 계속 이어졌다.

“그때부터 나는 어그로의 노예가 되었어. 낚시기사, 가십, 광고기사……. 나는 기레기가 되고 만 거야.”

쏟아지는 tmi의 향연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요약하면, 이 손님은 <헌터 스코프>의 김태운 기자. 조회 수를 벌기 위해 저급기사를 써 대는, 다른 말로 하면 기레기.

불법 몬스터 밀거래 현장을 취재하다가 여기 오게 되었다고 한다.

그렇게 한참을 혼자 떠들어 대다가 고개를 든 손님의 얼굴은 너무도 맑았다.

부담스러울 정도로 반짝거리는 눈동자. 그릇된 욕망은 모두 떨쳐 낸 편안한 표정. 선의로 가득한 미소.

기가 참 맑아 보이시네요…….

“내 생각이 틀렸어! 진정한 저널리즘은 그런 게 아니야!”

아까와는 너무도 달라진 태도다. 이게 무슨 일이지.

나는 레몬에이드의 상태 창을 다시 확인했다.

‘정신을 정화합니다’라는 다소 모호한 표현이 눈에 들어왔다.

설마…… 레몬에이드가 기자 아저씨의 정신을 정화해 버린 건가?

티 없이 맑은 눈동자로 기자 아저씨가 외쳤다.

“고맙소! 당신이 내 눈을 뜨게 해 주었어. 이제 진정한 저널리즘의 길을 걷겠어!”

뭐, 기레기 짓을 계속 하는 것보다는 잘된 건가?

“그…… 힘내세요. 네.”

그렇게 기자 아저씨를 다독여 주는 순간.

카페 문이 열리고 기유현이 나타났다.

“걱정이 되어서 와 봤더니.”

차분한 눈빛이 나와, 티 없이 맑은 눈빛의 기자 아저씨를 향했다.

“이건 대체 무슨 상황입니까?”

그건 저도 모르겠는데요…….

[업적: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흐트러진 사람의 마음을 정화했습니다.

그의 마음은 이제 순수의 퓨어(pure).

다시는 마음이 어둠에 물들지 않을 것입니다.

보상: 에테르-위키 업데이트]

어, 이렇게까지?

너무 거창해서 민망하게까지 느껴지는 업적이 뜨는 것과 거의 동시였다.

“……!”

티 없이 맑은 얼굴로 진정한 저널리즘의 길을 설파하던 기자 아저씨와 기유현의 눈이 마주쳤다.

“헉, 다, 당신은……!”

“기억하시는군요. 오랜만입니다.”

부드러운 목소리에 미소 짓는 입가.

그러나 기자 아저씨의 얼굴은 창백하게 질렸다. 그뿐만 아니라 몸까지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꼭 기유현을 무서워하기라도 하는 것 같았다.

“여기서 뵐 줄은 몰랐군요.”

“오늘, 오늘은 우연히……. 그냥, 우연일세! 절대 일부러 온 것이 아닙니다! 그럼 나는 이만 가 보겠네!”

뒷말은 알아듣기 힘들 정도로 떨렸다. 기자 아저씨는 후다닥 가방을 챙기더니 가게를 떠났다.

이대로 계속 쏟아지는 tmi를 듣고 있어야 하나 했는데, 다행이라면 다행인가.

“저 아저씨랑 아는 사이였어요?”

“예전에 취재 때문에 부딪친 적이 있었습니다.”

“그래요?”

“저분이 소속된 <헌터 스코프>가 조금, 유명한 곳이어서요. 안 좋은 쪽으로.”

그러고 보니 읽은 기억이 난다. 모 헌터의 은밀한 사생활이 어떻다거나, 모 길드에는 뒤에 거물이 있다거나 운운. 근거라고는 없는 허황된 이니셜 기사였지.

“많이 끈질긴 바람에 접근금지신청을 했었죠.”

“헤에……. 취재 내용은 뭐였는데요?”

“…….”

“유현 씨?”

“리을 씨는 별일 없으셔서 다행입니다.”

안쓰러울 정도로 티 나게 말을 돌린다. 으음, 걱정되어서 여기까지 왔다고 하니까 넘어가 줄까.

“그래도 이제 괜찮을 거예요.”

기자 아저씨는 레몬에이드의 힘으로 완전히 정화되어 버렸으니까. 두려운 효과였다.

뭐…… 아무튼 힘내시길. 나는 그렇게 속으로 기자 아저씨의 앞날에 건투를 빌어 주었다.

그나저나 방금 업적 보상으로 에테르-위키가 업데이트되었지.

[에테르-위키에 ‘푸른 세라에노꽃’ 항목이 추가되었습니다.]

업데이트 내용은 예상대로 푸른 세라에노꽃을 살리는 방법이었다. 최세드릭이 살리기 위해 전전긍긍하던 그 꽃.

적재적소에 뜨는 퀘스트, 괴상한 업적, 위키 업데이트까지…….

이 시스템은 기계적으로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꼭 어떤 의도를 품고 있는 것 같다.

나를 부려먹으려는 의도 말이다.

하지만 꽃을 살리는 법을 알려 준 데에는 감사한다.

감사하는데…….

《푸른 세라에노꽃》

종류: 식물>

설명: 세라에노의 별빛을 함유했다고 전해지는 전설의 꽃.

푸른 세라에노꽃을 피우는 법: [계속 읽기

“……!”

에테르-위키를 확인한 나는 깜짝 놀랐다.

기다리던 정보이긴 한데…….

그런데, 어…… 이거 진짜? 진짜 이대로 하면 되는 거 맞아?

사기 아니지?

* * *

다음 날, 나는 다시 <해피 그린 라이프 던전 농원>을 향했다.

목적은 당연히 푸른 세라에노꽃을 살리기 위해서다.

그런데 나를 발견하자마자 이초록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소, 소, 소…… 손님? 무…… 무슨 일로 오셨나요?”

“안녕하세요. 오늘은 좀 여쭤볼 게 있어서…….”

“화, 환불은 안 돼요!”

“……네?”

“정화목이 마음에 안 드셔도 환불해 드릴 순 없어요!”

“그래도 소비자보호법에 따르면 환불되는 거 아닌가요?”

“하지만…… 이, 이미 돈을 다 써서 돌려드리고 싶어도 드릴 돈이 없다고요!”

“50루비를 전부 다요?”

그거 꽤 많은 돈 아닌가?

“그게, 밀린 전기세도 내고 이것저것 처리하다 보니…….”

나는 잠시 농원을 둘러보았다.

이초록이 황급히 한쪽을 가리려 했지만 이미 다 보았다.

전에 왔을 때와는 농원 모습이 꽤 달라져 있었다. 무엇보다 입구에 커다랗게 자리한 식물이 아주 눈에 띄었다.

“이건 뭔가요?”

“아, 역시 손님! 안목이 높으시군요. 이건 플라잉 스파게티 나무예요! 아주 희귀한 아이인데 운 좋게 입찰받을 수 있었어요. 하루에 한 번씩 나폴리탄 괴담을 들려준답니다.”

“……입찰가가 얼마였는데요?”

이초록이 조심스럽게 손가락 다섯 개를 폈다. 그럼 그렇지…….

“환불받으러 온 건 아니에요.”

“손님, 제발 환불만은……. 헉, 그래요? 어휴, 깜짝 놀랐네. 빨리 말씀하시지. 신장이라도 팔아야 하나 하고 있었다고요.”

여기 진짜 괜찮은 건가?

“그럼 어쩐 일로 오셨나요?”

“푸른 세라에노꽃 있죠.”

“아, 네, 네!”

“그걸 살리는 방법을 알아냈거든요.”

“그게 정말인가요?”

이초록은 길게 묻지 않고 당장 나를 온실로 데려갔다.

토양, 물, 온도, 영양……. 그녀가 알고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도 꽃은 살아나지 않았다고 한다.

최세드릭의 재촉은 나날이 심해지고,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 뜬금없는 내 말이라도 믿고 싶은 상황이겠지.

“들어오지 말라고 했잖아!”

오늘도 최세드릭은 온실의 꽃 앞에서 우울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으, 으악! 최세드릭 헌터, 그렇게 화내지 마시고. 손님이 오셨어요.”

“어? 아, 그때 그…… 내 팬?”

“팬 아니라니까.”

이 사람이고 저 사람이고 듣고 싶은 대로만 듣는군.

“전에도 말했지만 나도 사생활이 있는 몸이야. 아무데서나 사인해 달라고 하는 건 곤란……. 어, 팬이 아니라고? 사…… 사람 헷갈리게 굴지 마!”

귓불이 확 새빨갛게 달아오른다.

“그럼 왜 온 거야?”

“그 꽃을 살리는 방법을 알고 있으니까.”

“……! 헛소리 하지 마!”

최세드릭은 표정을 확 일그러뜨렸다.

방금까지 민망해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나를 경계하는 기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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