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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화 (58/192)

58화

“뭐가?”

“가족은? 오빠나 동생은 없냐?”

하필이면 여기서 가족 얘기라니, 제일 생각하기 싫은 걸 꺼낸다.

분위기 전환 겸 스몰토크용 화제였겠지만 별로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 나는 모호하게 말끝을 흐렸다.

“어……. 뭐.”

그러나 최세드릭은 그다지 눈치가 좋은 편은 아닌 듯했다.

하긴 S급이 눈치가 좋을 필요는 없지. 오히려 주변 사람들이 눈치를 보기 바빴을 테니까.

내 은근한 눈치를 전혀 알아듣지 못한 최세드릭이 당당하게 말했다.

“친하게 지내. 가족은 하나뿐이니까.”

“헐, 나보다 어리면서 설교하는 거?”

“무슨 소리야. 내가 왜 너보다 어린…….”

손을 들어 눈앞의 S급과 나를 번갈아 가리켰다.

“너 스물둘. 나 스물셋.”

“뭐라고……?”

고작 한 살 차이지만 내가 연상일 가능성은 생각하지 못했는지 최세드릭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 놀란 낯에 대고 나는 부루퉁하게 물었다.

“내가 그러니까 남의 가족도 비슷하다고 생각하는 거야?”

“그건 아닌데…….”

“가족이라도 사이가 나쁠 수도 있고, 안 맞을 수도 있잖아. 그런데도 친하게 지내라는 게 더 심한 말 아냐?”

자기 동생 자랑 한번 했다가 듣는 말로는 퍽 뜬금없을 테다. 그런데도 최세드릭은 진지한 표정으로 내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알아. 분명 없는 게 나은 가족도 있겠지.”

……우리 대표네 가족처럼.

입속으로만 중얼거린 말은 아주 작게 들렸다.

“그런데?”

“하지만 하나뿐인 가족인 건 사실이잖아. 어떻게 결론을 내리건, 그 전에 할 수 있는 건 해 봐야지. 후회 안 하게.”

“…….”

“왜 그래?”

“…….”

으음…….

맞는 말을 하니까 할 말이 없다.

사실 요즘 계속 생각하는 일이 하나 있다. 바로 권지운에 대한 거다.

회귀 전에 어떻게 지냈는지 떠올리자면…….

그냥, 모른 척하며 살았다. 길드에 찾아갔다가 몇 번 마찰을 빚은 이후로 쭉.

‘그래, 나라고 헌터 친척 덕 볼 생각은 없거든?’

그런 오기도 있어서, 같이 살던 집을 나온 후로는 그냥 데면데면. 부딪치지 않으면 감정 상할 일도 없으니까, 그게 제일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회귀한 지금.

원래는 전처럼 데면데면하게, 부딪치지 않고 지낼 생각이었지만.

터무니없는 오해를 하는 거 하며 얼마 전 찾아와서 이상하게 굴던 거 하며 신경이 안 쓰일 수가 없었다.

‘각성한 것도 언제까지 감출 수는 없는 일이고…….’

터놓고 이야기해서 그래도 안 되면 어쩔 수 없다.

하지만 그 전에 한 번은 터놓고 이야기해 봐야 한다.

맞는 말이다. 맞는 말이긴 한데, 그렇긴 한데…….

맞는 말이라고 곧장 실천했으면 여름방학 숙제를 한 번도 밀리지 않는 사람이었겠지. 그리고 나는 매번 방학 마지막 날에 한 달 치 일기를 다 썼다.

“아무튼! 여기서 나간 다음에 생각해야지!”

최세드릭도 내 말에는 동의한 듯 곧장 몸을 일으켰다.

컵에 남은 커피를 마저 입에 털어 넣고 방어막을 접었다.

주위를 붕붕 날아다니는 벌레형 몬스터를 한 손으로 해치우고 다시 걸음을 옮기려는 순간.

쿵, 쿵, 쿵.

묵직한 소리와 함께 바닥이 꿀렁꿀렁 움직이기 시작했다.

근처에서 솟아 나온 덩굴이 내 발목에 감기더니 세게 잡아당겼다. 주르륵 몸이 경사로를 타고 아래로 미끄러진다.

“으아아악!”

“어, 야, 거기서!”

스르릉.

최세드릭이 검으로 내 발목에 감긴 줄기를 잘라 냈다.

공중에 몸이 매달려 있을 때 줄기를 잘라 내면 어떻게 될까.

퍽!

“윽, 아야야…….”

당연히 그대로 바닥에 처박힌다. 하마터면 보스를 만나기도 전에 골로 갈 뻔했다.

하지만 불만을 말할 틈은 없었다.

훅 진한 풀잎 냄새가 끼치더니 동시에 느껴지는 압박감.

[몬스터지옥(B)이 나타났습니다.]

[몬스터지옥은 현재 굶주린 상태입니다.]

던전의 보스, 몬스터지옥이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 * *

파사삭!

온실 유리가 산산조각 난다.

굵은 뿌리가 바닥을 가르고, 길쭉한 가지가 천장까지 뻗었다.

“으아아, 안 돼, 내 온실이!”

그리고 그 중심부에 푸른빛이 일렁인다.

[몬스터지옥이 개화합니다. 던전: 몬스터지옥이 활성화됩니다.]

[몬스터지옥의 식사 시간 동안 보호 결계: 밥 먹을 때는 몬스터도 안 건드린다가 발현합니다. 몬스터지옥의 식사를 방해하지 않도록 주의하세요.]

이초록이 정신을 차렸을 때, 방금까지 여기 있던 두 사람은 이미 균열에 빨려 든 다음이었다.

“말도, ……말도 안 돼.”

이초록은 덜덜 떨리는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이 씨앗을 얻었을 때는 이렇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며칠 전 자주 들르는 청계천의 상가에서였다.

아슬아슬하게 합법과 위법 사이에 걸쳐 있는 청계3가 몬스터 상가. 주 취급 품목은 동물형 몬스터지만 이따금 던전 식물을 파는 상점도 있었다.

‘이런 데야말로 진짜배기 희귀 템이 나오는 법이지.’

희귀한 긴꼬리불사조가 여기서 거래되었다는 소문도 있을 정도니까.

이초록은 매의 눈으로 떨이 판매 할인 매대를 뒤졌다. 그때 그녀에게 말을 거는 사람이 있었다.

“던전 식물을 찾으시나 봐요.”

“네? 그걸 어떻게 아시죠?”

이초록은 경계심 가득한 눈으로 소리가 난 쪽을 돌아보았다. 이곳에서 먼저 말을 거는 사람은 높은 확률로 사기꾼이었기 때문이다.

구석의 한 상점. 어쩐지 생기가 느껴지지 않는 사람이 거기 있었다. 눈은 유리 안구를 박아 넣은 것처럼 무표정하다.

‘……!’

이초록은 꺼림칙함을 느끼고 뒤로 물러서려 했다. 그러나 상점 주인이 뒤이어 꺼낸 말에 발이 멈춘다.

“저 기억 안 나세요?”

“글쎄요, 당신 같은 사람 처음 보는…… 아.”

그 순간 머릿속을 스치는 낯선 기억.

갑자기 눈앞의 상점 주인이 무척 친근하게 느껴졌다.

“만난 적 없…… 아, 아아, 아! 전에 봤었죠!.”

“기억해 내신 모양이군요.”

왜 잊어버렸을까? 분명 몇 번이나 들른 단골 상점이었는데.

상점 주인은 괜찮다며 웃고는 상자를 하나 꺼냈다.

“아주 희귀한 물건이 들어왔는데, 어떠세요?”

주먹 반 개 크기의 씨앗이었다. 손을 가져다 대니 안쪽에서 쿵, 쿵 박동이 느껴졌다.

이 박동이 의미하는 바는…….

‘……!’

이초록은 창백하게 질려서 손을 뗐다. 위험하다. 그러나 상점 주인은 생긋 웃을 뿐이었다.

“몬스터지옥의 씨앗이랍니다.”

“안쪽에서 박동이 뛰는데……. 이, 이건, 설마…….”

“그래요. 균열을 품고, 균열과 일체화되었어요.”

“위험해요.”

“그럴 리가요. 완전히 봉인되어서 깨어날 가능성은 없어요.”

……꿀꺽.

균열을 품은 씨앗은 묘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그 빛은 아주 아름다워 사람을 미혹한다.

결국 이초록은 씨앗을 구입했다.

던전 식물과 균열이 완전히 일체화하는 것은 무척 드문 케이스다. 균열과 던전 식물, 어느 한쪽의 힘이 커져서 조금만 균형을 잃어도 균열이 터지기 때문이다.

식물 오타쿠, 아니, 식물학자로서의 호기심이 씨앗을 외면하지 못했다.

더군다나 상점 주인의 말에서는 어쩐지 거절하기 힘든 힘이 느껴졌다.

그렇게 씨앗을 가지고 돌아와 잘 보관했는데.

“안 터진다더니……!”

푸른 세라에노꽃이 개화하는 순간 무서운 속도로 씨앗이 자라나더니 던전이 발생했다.

당황했지만 안에 있는 사람들의 구조가 먼저였다.

<던전관리청>에 신고를 하자 오래지 않아 공무원 헌터가 파견되었다.

온실의 한가운데 자리 잡은 커다란 식물 던전. 그래도 최세드릭이 안에 있으니 인명 사고는 일어나지 않겠지.

그러나 공무원들이 농원을 살피기 시작하면서 이초록은 안심할 수 없었다.

“선생님, 이 이빨당근은 어디서 사셨죠?”

“그게……. 청계천에서요.”

“청계천 어디시죠? 거래 후 신고 누락하시면 과태료 나옵니다.”

“글쎄요……. 그건 기억이 잘 안 나네요, 하, 하, 하…….”

“이빨당근은 입마개 착용해 주셔야 합니다. 입마개 미착용으로 영업정지 나올 겁니다.”

“하하, 네…….”

“이 던전 식물, 불법 업체를 통해 취득하셨군요.”

“던전 식물이 아니라 플라잉 스파게티 나무예요! 하루에 한 번 나폴리탄 괴담을 들려주는 아주 귀중한……!”

“던전 식물 취급 허가 신청 및 업체 등록도 안 되어 있고. 세금도 내지 않으셨군요.”

“그게…… 죄송합니다.”

“붙여.”

냉정한 공무원의 판단에 여기저기 빨간 딱지가 붙었다. 커다랗게 적힌 ‘압류’ 글자.

“안 돼애애애!”

이초록은 절규했다.

압류 딱지, 과태료, 추징금, 영업 정지…….

던전 사태가 해결되어도 이초록은 꼼짝없이 과일 가게 알바생이 될 처지였다.

던전 식물학 박사까지 따고서 과일 가게 알바생이라니!

그녀의 박사 동기들은 모두 지금 치킨을 튀기고 있으니 흔한 진로이기는 했다.

한 명의 박사가 과일 가게 알바생으로 진로를 변경하는 동안, 부서진 온실 안으로 한 남자가 안으로 급히 뛰어 들어왔다.

창백한 낯에 거친 숨. 연락을 받고 급히 온 듯했다.

이초록은 남자가 누군지 알아보고 깜짝 놀랐다.

‘<백은 길드>의 권지운? 그런 거물이 왜 여기에……?’

“구출은 진행되고 있습니까.”

떨림을 채 다 감추지 못한 서늘한 목소리였다. 불안을 머금은 눈동자가 크게 흔들린다. 권지운이 파견 나온 공무원에게 다급하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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