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3화 (63/192)

63화

“냐아아아(너무 감동적인 이야기다)!”

“고양아, 행복해야 해, 흑…….”

“이 멍청아! 해피엔딩인 게 당연하잖아!”

“누구보고 멍청이래, 이 멍청이가!”

텔레비전을 보며 투닥거리는 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에이,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했네. 거물이 이런 곳에 왜 있겠어.

아, 가게 영업에 대해서 말하자면 여전하다. 어제 손님이 몇 명 왔더라…….

아무튼 한 명이지만 손님이 오기는 했다.

헌터였는데, 언뜻 보니 커피를 마시면서 헌터 채널을 하는 것 같았다. 후기라도 좋게 적어 주면 좋겠는데.

그 손님 덕분에 겨우 손님 10명 모으기 퀘스트를 달성할 수 있었다.

[축하합니다! ‘메인 퀘스트: F급 카페의 비애’를 완료했습니다.

보상을 수령해 주세요.]

[메인 퀘스트: F급 카페의 비애

드디어 나만의 카페를 손에 넣으셨군요.

그러나 아직은 F급. 이 카페의 존재를 아는 사람은 극소수입니다.

손님을 모아 등급을 올려, 명성을 떨칩시다.

손님 10명 만나기: 10/10

보상: 경험치(200exp), 황금 티켓 1장, ???]

[경험치: 200exp를 획득했습니다.]

[레벨이 11이 되었습니다.]

[황금 티켓을 1장 획득했습니다.]

[에테르-위키가 업데이트 되었습니다.]

[위대한 자가 당신에게 흥미를 느낍니다.]

[<카페 리을>의 이름이 여러 사람들에게 전해졌습니다.]

[획득한 인지도를 명성으로 환산합니다. ……완료]

[카페의 등급이 E가 되었습니다.]

[E 등급 보상으로 카페의 분위기가 좋아집니다. 더 많은 사람이 카페를 주목합니다.]

[E 등급 보상으로 이공간에 새로운 구역이 열렸습니다.]

[이름: 카페 리을

등급: E

명성: 20, 인기: 25]

주르륵 시스템 알림이 떴지만 누적 손님은 10명, 등급은 고작 E.

뭐, 내가 처음부터 원한 건 이런 카페였으니까.

최세드릭의 아픈 동생을 구할 꽃도 살렸겠다, 이제 던전에 들어갈 일도 없으니 평화롭기만 하겠지.

“이대로 평화로웠으면…….”

헉!

무심코 중얼거린 말에 나는 깜짝 놀랐다.

금지 대사를 말해 버렸다.

자고로, 소설이나 만화에서 주인공이 ‘이제 평화롭겠지.’ 같은 말을 하면 반드시 평화롭지 않은 사건이 일어나는 법이다.

“고향에 돌아가면 약혼자와 결혼할 거야.”

“이 일만 끝나면 손을 씻을 거야.”

……와 함께 절대 말하면 안 되는 말 TOP3에 선정되었다.

뭐…… 괜찮겠지?

괜찮……겠지?

* * *

눈이 퉁퉁 부은 쌍둥이와 기유현이 돌아간 다음. 나는 시계를 확인했다.

슬슬 최이찬이 올 시각이 다 되었는데도 소식이 없었기 때문이다.

무슨 일이라도 생겼나? 전화를 걸어 볼까.

아, 맞다. 최이찬 아직 핸드폰을 정지한 상태였지.

“……어?”

그때, 테이블 한쪽에 쪽지가 한 장 놓여 있는 것을 발견했다. 커피 잔으로 눌러 놓은 까닭에 바로 눈에 띄지 않는 위치였다.

이게 뭐지?

나는 쪽지를 펴 보았다.

쪽지는 최이찬이 쓴 것이었다. 안부 인사부터 시작해 빼곡하게 적힌 글의 마지막 문장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내 부족함을 깨달았어.

더 강해져서 돌아올게.

- 최이찬]

……뭐?

* * *

이걸로 된 걸까.

점점 느려지던 걸음이 이윽고 완전히 멈췄다. 최이찬은 몇 번이고 뒤를 돌아보았다.

붉은 벽돌로 된 카페 건물은 이제 S급의 뛰어난 신체 능력으로도 손톱만 하게 보일 정도로 작아졌다.

【후회하는가?】

잠시 그 카페를 바라보며 멈춰 서자 어김없이 목소리가 뇌리를 파고든다. 최이찬은 시선은 그대로 둔 채 속으로 대답했다.

‘아니.’

【표정은 그렇지 않은데.】

‘시끄러워.’

【까다로운 계약자 같으니.】

머릿속에서 이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한 것은 수원 던전에서 돌아온 이후였다. 힘이 필요하냐고 묻던 기이한 목소리.

최이찬은 처음에 이 목소리를 무시했다.

【계약자여.】

“……권리, 나 마라톤 좀 하고 올게!”

“응?! 아까 40㎞ 뛰고 왔다고 안 했어?”

“40㎞ 더 뛰려고!”

“뭐?!”

운동을 덜 해서 헛것이 들리는 게 틀림없다. 다 기가 허해서 그래.

【이제 슬슬 대답해 줄 때도 되지 않았나?】

소리가 들릴 때마다 뛰고 또 뛰었다.

S급이 된 이후로 몸을 아무리 움직여도 지치지 않았다. 오히려 힘 조절을 못해 컵을 깨곤 했으니까 달리기는 딱 좋은 운동이 되어 주었다.

【계약을 통해 힘은 얻어 갔으면서 내 말은 무시하다니. 이걸 인간들 용어로 먹튀라고 한다더군.】

“스쿼트하고 올게!”

“이찬아, 또?”

【계약자여, 나를 먹튀하는 거냐.】

“헉, 헉…….”

【…….】

그렇지 않아도 S급이 된 후 주변이 복잡한데, 머릿속의 이상한 목소리까지 그를 괴롭힌다.

다 기가 허해서 그렇다며 프로틴을 챙겨 먹으며 운동, 또 운동.

그러자 이 목소리는 미래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내년 2월, 지리산에서 균열이 발생할 거다.】

【불사조는 길을 잃었지.】

【저 사람은 병에 걸렸어.】

굵직한 사건부터 지나가는 사람의 미래까지도. 듣고 싶지 않은 말들을 꿋꿋이 무시했지만.

【네 친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 궁금하지 않니?】

“뭐라고?”

그러나 친구 권리을에 대해 하는 말은 더는 무시할 수 없었다. 더군다나 그 내용이…….

……그녀가 죽는다고?

심장이 크게 쿵쾅거렸다. 항상 서글서글하게 잘 웃는 리을의 모습이 머릿속을 스쳐갔다.

그녀를 다시 만나고 얼마나 기뻤던가.

생각하기도 싫은 미래였다.

“그게 무슨 소리야? 허튼소리면 가만두지 않겠어.”

목에 건 검은색 펜던트가 뜨겁게 달아올랐다. 최이찬은 이것이 이 정체불명의 목소리가 웃는 방식임을 안다.

한참을 웃어 댄 뒤 말을 잇는다.

【너는 내게 힘이 필요하다고 대답했다. 그래서 나는 힘을 주었다.】

【그러나 계약자여, 모든 것을 구할 수는 없단다.】

“헛소리하지 말고 어떻게 하면 되는지 말해.”

【네 친구를 구하려면 포기해야 하는 것도 있는 법이야.】

“아니, 나는 모든 걸 구하길 원해.”

그렇게 말하는 목소리에 흔들림은 없었다. 다시 펜던트가 뜨겁게 달아올랐다.

【역시, 먹튀당한 기분인데.】

“…….”

【좋아. 계약자여, 네게 사명을 주마.】

띠링.

[퀘스트: 황색 왕의 시련을 시작합니다.]

【시련의 끝에 네가 원하는 힘을 손에 넣을 수 있을 거다.】

그렇다면 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최이찬은 쪽지를 남겨 놓고 <카페 리을>을 떠났다. 그는 거짓말을 잘 못 한다. 얼굴을 보면 분명, 들킬 테니까.

“어디로 가야 하지?”

【우선은…… 저곳, 어비스로 가자꾸나.】

목소리는 눈앞에 자리한 거대한 던전을 가리켰다.

【나는 이름을 부를 수 없는 자라고 한다. 기억해 두렴.】

“무슨 볼드모트도 아니고.”

【…….】

【노란 옷의 왕 □□□라고 부르렴.】

“진작 그렇게 말할 것이지.”

【…….】

* * *

갑자기 최이찬이 왜 떠난 거지? 부족함을 깨달았다는 건 또 뭐고?

최이찬이 남긴 쪽지를 보고 나는 충격에 빠졌다. 도무지 그가 갑자기 떠날 만한 이유가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동안 최이찬이 있어서 좋았는데, 쓸쓸한 마음이 느껴졌다.

“계십니까.”

망연자실한 그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네! 들어오세요.”

“안녕하십니까. 저는 <던전관리청> 긴급 던전 대책 팀장을 맡고 있는 강현우라고 합니다.”

“리을 씨, 오랜만이에요!”

문 앞에 정장 차림의 공무원이 서 있었다. 옆에는 지나까지.

“여기에 신규 S급 헌터 최이찬 씨가 있다는 정보를 듣고 왔습니다. 만나 볼 수 있겠습니까.”

그게, 원래 여기 있기는 했는데…….

“방금 떠났는데요.”

“그럼 언제쯤 뵐 수 있습니까.”

“글쎄요……?”

나는 최이찬이 남긴 쪽지를 눈앞의 남자에게 건넸다.

“……!”

쪽지를 확인한 두 명의 공무원이 절망했다.

S급이 있었는데요, 없었습니다.

6장. 알바 뛰는 마왕님!(자칭)

“……드세요.”

일단 좌절한 공무원 두 명에게 아메리카노 두 잔을 만들어 주었다.

“이건……! 정말 맛있습니다. 새까맣게 태운 콩으로 쓴맛만 낸 것과 같은 이름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입니다.”

“그렇죠? 제가 리을 씨 커피 맛있다고 말씀드렸잖아요.”

지나가 뿌듯한 표정으로 어깨를 폈다.

그렇게 화기애애한 커피 타임이 잠깐. 아메리카노를 마시는 동안은 공무원들의 표정이 풀렸지만 곧 다시 우중충해졌다.

나는 방금 건네받은 명함을 눈으로 훑었다.

긴급 던전 대책 팀장 강현우 헌터.

유명인이다. 한국의 공무원 헌터 중에서 제일 이미지가 좋았다. 매번 뉴스에서 딱딱한 표정으로 브리핑하던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또 다른 정보는…….’

부모님이 무슨 유명 맛집을 운영한다고 했다. 궁금했는데 늘 붐비는 통에 아직 못 가 봤다.

아니, 이게 중요한 게 아니라.

지나가 강현우 헌터 직속이 되었다는 말은 들었지만, 본인이 직접 여기까지 올 줄은 몰랐다.

깔끔하게 빗어 넘긴 머리에 각이 잡힌 옷차림, 절도 있는 동작, 괜찮다는데도 커피값을 지불하고 영수증을 받아 가는 모습까지. 그야말로 FM의 화신.

그의 어두운 표정에 나까지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혹시 최이찬 헌터의 연락처를 아십니까.”

“알긴 하는데…… 연락 안 될 거예요.”

알려 준 번호로 강현우가 당장 전화를 걸었다. 예상대로 들려오는 것은 ‘연결이 되지 않아…….’ 운운할 뿐이었다.

“왜 떠나신 겁니까.”

촉이 왔다. 이건 정확히 뭔지 몰라도 과태료 각이다.

한국은 각성자 관련 법률이 빡빡한 편이다. 특히 컨트롤되지 않는 힘에 대한 경계가 엄청나다.

매년 5월이면 ‘각성자 랭킹 자진 갱신의 달입니다.’, ‘랭킹 갱신 시 세금 감면 혜택’ 이런 홍보물이 시내 곳곳에 붙곤 했으니까.

그런데 S급으로 재각성 후 핸드폰도 끊어 버리고 이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최이찬.

……너무나도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많았다.

남아 있는 것은 ‘더 강해지겠다.’는 의미 불명의 쪽지 한 장뿐.

이대로면 큰일이 날지도 모른다. 어떻게든 수습을 해야 했다.

최이찬이 걱정된 나는 적당한 대답을 쥐어 짜냈다.

“그…… 진정한 강함이 무엇인지 고민을…… 아, 그거예요. 자기 자신을 찾는 여행 같은 거죠!”

“…….”

전혀 통하지 않았다. 공무원은 이쪽을 의심스러운 눈길로 보고 있다.

권리을은 혼란에 빠졌다!

그 순간.

팔랑.

강현우가 들고 있던 파일에서 종이 한 장이 떨어졌다.

알록달록한 색깔과 20pt의 글씨 크기 때문에 보지 않으려 해도 내용이 눈에 들어왔다.

저작권 문제 때문인지 보노X노가 없는 것이 그나마 다행일까.

디자이너 뒷골을 제법 띵하게 했을 디자인으로 이렇게 적혀 있었다.

이제는 힘을 드러낼 시대입니다.

~힘숨찐 방지법~

헌터 등록을 해 주신 A급 이상 신규 각성 헌터님께는 아래와 같은 혜택이 제공됩니다.

1. 주거 안정 지원 (가족 포함)

2. 힘 조절 걱정 No. 전용 훈련 시설 사용 가능

3. 랭킹과 이름을 넣은 기념품 제작

4. 특별 세제 혜택

강현우 헌터 24시간 상담 가능

(010-xxxx-xxxx / 카카오톡 <던전관리청> 채널 검색)

…….

“크, 크흠.”

강현우가 머쓱한 표정으로 홍보물을 치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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