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4화 (64/192)

64화

이야기를 들어 보니 즉, 이랬다.

한국 일짱 랭킹 1위 무원이 모습을 감춘 지 벌써 오래되었다.

압도적인 힘, 그에 비해 조용한 행적. 이따금 심각한 균열을 혼자서 슥샥하고 사라진다.

아무리 파헤쳐도 나오지 않는 과거, 조금의 관종질도 하지 않는 장막 뒤의 헌터.

무원이 한국 헌터계에 끼친 영향은 어마어마했다.

문제는 그를 동경해 힘숨찐 짓을 따라 하는 헌터들이 늘어났다는 사실이다.

A급만 되어도 <던전관리청>에 등록하는 대신 어비스의 그늘에서 암약하는 다크 히어로가 되겠다느니 떠들어 댄다.

유튜브에서 조회 수를 노리고 짭무원 행세를 하려는 헌터들이 적지 않은 바람에, 속칭 힘숨찐 방지법까지 신설될 정도.

이 짧은 설명만으로도 그간 어떤 진상을 상대해 왔는지 짐작이 갔다.

그런데 수원 던전을 클리어하면서 화려하게 뉴스를 탄 신규 S급, 최이찬이 랭킹을 측정하지도 헌터 등록을 갱신하지도 않고 그대로 잠적했다.

서류상으로는 E급, 그러나 실제로는 S급.

수많은 힘숨찐망생들에게 시달린 강현우의 힘숨찐 레이더가 발동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곧장 1급 관리 대상으로 지정하고 팀장인 강현우 본인이 직접 움직였다.

가공할 만한 <던전관리청>의 행정력으로 어떻게 최이찬의 행방을 파악했지만 곧장 찾아오지 않은 것은, 섣불리 접근했다가 최이찬이 튀기라도 하면 곤란했기 때문이다. 작정하고 잠적한 S급을 찾기란 힘들 테니.

대신 최이찬을 원만히 회유하기 위해 S급으로 헌터 등록 갱신 시 보상안까지 완벽하게 마련했다.

드디어 오늘 최이찬을 잡으러, 아니 등록을 권유하러 왔는데.

“언제쯤 떠나신 건가요?”

얼어붙은 강현우 대신 지나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대충 한 시간쯤 전……?”

“이럴 수가…….”

털썩.

딱 하루만, 아니 몇 시간만 일찍 왔었어도……. 공무원들이 좌절했다.

돌아오면 꼭 연락 달라며 직통 연락처까지 남기고 공무원 둘은 돌아갔다.

안타까운 마음으로 배웅을 한 뒤 빈 잔을 치우려는데, 미음이와 라임이가 웬 종이를 가지고 놀고 있었다.

“뀨우웃!”

“냐아아아(그걸 내놔라, 점액질 녀석아)!”

“뀨우, 뀨우우!”

파바밧. 앞발을 날리는 미음이와 통통거리며 피하는 라임이의 공방이 이어졌다. 결과는 완벽한 회피기를 선보인 라임이의 승.

“그건 뭐야?”

나는 두 동물들에게 다가가 홱, 종이를 빼앗았다.

“왜우웅(아까 온 인간들이 떨어뜨리고 간 거다)!”

“이런 걸 주웠으면 바로 돌려줘야지. ……음?”

종이는 사람을 찾는 전단지였다. 길에서 마주쳐도 금방 까먹을 것 같은 평범한 인상의 젊은 남자 사진이 실려 있었다. 이름은 김지훈.

이런 이름을 들어 본 적은 없다. 그런데…….

“……어디서 본 것 같지 않아?”

“뀨우우!”

“그걸 내가 어떻게 아느냐! 나는 데려가 주지도 않으면서! 캬갸옭!”

미음이가 삐진 티를 확 내면서 고개를 돌렸다. 라임이도 옆에서 동조하는 울음소리를 낸다.

이 동물들은 내가 푸른 세라에노꽃을 살리기 위해 농원에 갔던 일로 삐진 상태다. 그런 재미있는 일을 어떻게 혼자만 하러 갈 수 있느냐는 거다.

그게 재미있나? 더군다나 나 거기서 죽을 뻔했는데……?

“별빛을 머금은 꽃을 보고 싶었단 말이다, 왜옭!”

“미음이 네가 캐리어에 들어가기 싫다고 했잖아.”

“꽃 주인에게 말해서 보여 달라고 하면 안 되느냐.”

“안 돼.”

“캬갸갸옭!”

미음이가 벌떡 일어나더니 냥냥 펀치를 날렸다. 정말 꽃이 보고 싶은 모양이다. 하지만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다.

‘최세드릭 연락처를 받아 두긴 했지만, 비밀로 하자…….’

“아픈 동생을 치료하는 약이라는데 어떻게 보여 달라고 그래?”

“…….”

그런데 미음이가 대답이 없었다.

다시 삐진 건가 싶어 들여다보는데 불쑥 말이 이어졌다.

“그건 이상한 이야기구나.”

“응?”

“푸른 세라에노꽃은 세라에노의 별빛을 받아 피어난 것. 병을 치료하는 약이 아니다.”

“하지만 꽃을 삼킨 몬스터지옥은 부활했는데?”

“그건 □□□ 세라에노 □□의 영향 때문이다! 그 □□□는 마법적 힘으로 몬스터를 재생시키는…….”

[Warning: 비정상적인 접근입니다.]

[System Error: —. —.—]

미음이의 목소리가 지직거리며 멀어지기 시작하더니 어김없이 붉은색 경고 창이 떴다.

지긋지긋한 시스템 창 같으니!

“왜오옭! 빨리 레벨 업을 하란 말이다!”

“갑자기?!”

그래도 이제 레벨이 11이나 되어서 지금 스테이터스는 이 정도다.

이름: 권리을

클래스: 카페 주인(F) (Lv.11)

체력 110/110, 기력 110/110

힘: 22(+10), 지력: 14, 민첩: 13, 운: 14

아주 조금이지만 강해졌는데 미음이의 성에는 차지 않았던 모양이다.

“네가 약한 탓에 말을 못 하잖느냐! 나, 시스템을 집행하는 일곱 번째 에이전트의 힘을 끌어내기 위해서는 인간 네가 강해져야 한다, 왜옹!”

파바밧.

어김없이 날아오르는 앞발을 피한 뒤 미음이를 바라보았다. 입가에 시리얼 부스러기가 묻어 있다.

아침에는 텔레비전 앞을 차지하고 드라마를 봤고, 5분 전까지는 종이를 찢으며 놀았다. 라임이와 투닥거리는 건 덤.

‘완전 재밌게 즐기고 있는데……?’

일곱 번째 에이전트 운운을 완전히 까먹고 고양이의 삶을 즐기고 있었으면서 아닌 척하는 모습이 뻔뻔했다.

“냐아오옹! 나를 빈둥거리면서 놀던 주제에 말만 잘한다는 눈으로 보지 마라!”

“아, 들켰다.”

“캬갸갸옭!”

시스템의 방해를 이리저리 피해 가면서 미음이가 말하기를, 그 꽃이 유해한 것은 아니라고 한다.

그러고 보니 약이 아니라 정확히는 ‘고통을 덜어 준다.’고 했었지.

‘어쨌건 안 아프면 좋겠네…….’

아무튼.

나는 다시 전단지를 들여다보았다.

“으-음.”

그냥 기분 탓인가. 워낙 흔한 인상이니 본 것 같다고 착각한 모양이다.

전단지를 서랍에 챙겨 두려 하는데 벌컥, 가게 문이 열렸다.

방금 돌아갔던 지나가 앞에 있었다. 뛰어왔는지 얼굴이 빨갛고 가쁜 숨을 쉰다.

“지나 씨, 왜 그러세요?”

“혹시 제가 여기 뭐 놓고 가지 않았나요?”

“이건가요?”

“아!”

지나가 빠른 걸음으로 다가와 전단지를 받았다.

“네, 이거 맞아요. 감사합니다.”

“그런데 그거 누구인가요?”

“그건…….”

지나가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내리깐 눈에서 언뜻 물기가 비친 것 같았다. 그때 문밖에서 기다리던 강현우가 지나를 불렀다.

“아직 확실하지 않아서…… 다음에 말씀드릴게요.”

꾸벅, 고개를 숙이고 지나가 돌아갔다.

무슨 일이 있는 걸까. 지나의 안색이 창백했다.

* * *

폭포수를 맞으며 무술 수련이라도 하려는 듯한 쪽지를 남기고 떠난 최이찬.

나는 결국 그를 응원하기로 했다.

임시 아르바이트생 겸 동물들과 놀아 주기 담당이 떠난 것은 아쉽지만.

걱정은 되지만, S급이 된 뒤 여러 불편한 일이 많았으니까. 뭘 하려는 건지는 몰라도 갑자기 떠난 데는 이유가 있겠지.

그렇게 생각했지만…….

“이게 무슨 일이지…….”

뜻대로는 되지 않았다. 무슨 연유인지 며칠 전부터 갑자기 손님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스킬: 내 손안의 카페 (C)를 사용합니다.

레시피: 카페라테]

테이크아웃용 컵에 카페라테를 담아 손님에게 내밀었다. 숨 돌릴 틈도 없이 다음 주문이 들어왔다.

“바닐라라테 두 잔 주세요.”

“네, 지금 갑니다!”

“저 혹시 단체 주문도 되나요?”

계산하랴 음료 만들랴 설거지하랴 눈이 핑핑 돌았다.

‘이찬아, 제발 돌아와 줘…….’

지금 절실하게 아르바이트생의 필요성이 느껴졌다.

[황금 뽑기 티켓을 1장 획득했습니다.]

[황금 뽑기 티켓을 1장 획득했습니다.]

[황금 뽑기 티켓을 1장 획득했습니다.]

장사가 갑자기 잘되는 통에, 시스템 창에는 끊임없이 알림이 뜨는 중이었다.

[퀘스트가 발생했습니다.]

[서브 퀘스트: 카페 부흥의 꿈

SSS급 카페를 향한 첫 걸음.

메뉴를 판매하여 돈을 벌어 보세요.

루비: 100/100

보상: ???]

[차원의 상점이 업그레이드되었습니다. 더 다양한 물건을 구입할 수 있습니다.]

[업적: ‘어딜 보시죠? 그건 제 잔상입니다만’을 달성했습니다. 보상을 수령해 주세요.]

[업적: ‘내가 이 구역의 루비 부자’를 달성했습니다. 보상을 수령해 주세요.]

[업적: 어딜 보시죠? 그건 제 잔상입니다만

믿을 수 없는 빠르기!

눈부신 속도로 쏟아지는 주문을 처리했습니다.

보상: 민첩 10 상승]

[업적: 내가 이 구역의 루비 부자

카페 영업을 통해 루비를 누적 300개 벌었습니다.

더욱 더 부자가 되어 보세요.

보상: 편안한 카페 테이블(★★☆☆☆)

[황금 뽑기 티켓을 1장 획득했습니다.]

[황금 뽑기 티켓을 1장 획득했습니다.]

[새로운 레시피 아인슈페너를 획득했습니다.]

[새로운 레시피 카페 로마노를 획득했습니다.]

등등…….

퀘스트가 발생하자마자 클리어되었고, 새로운 레시피와 황금 뽑기 티켓이 인벤토리에 쌓였다.

하지만 내용을 자세히 살필 틈도 없었다. 끊임없이 몰려드는 손님들이 커피 주문을 해 댔기 때문이다.

[주의: 기력이 고갈되었습니다. (0/110) 스킬 사용 시 상태 이상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한참 스킬을 써서 커피를 만들다 보니 기력이 다 떨어졌다. 기력 소모를 없애 주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쭉 마신 뒤 다시 남은 주문을 처리했다.

집에 가고 싶다.

문제는 여기가 집이라는 거다.

그동안 거의 손님이 없다시피 했으니 손님이 많아진 것은 좋은 일이다.

“세상에, 커피에서 이런 맛이 나다니……!”

“이거 한 잔 더 주세요!”

맛있다며 기뻐하는 손님들의 모습을 보니 뿌듯한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갑자기 손님이 늘어난 건 대체 왜지?

“냐오옹(손님이 적으면 적어서 싫다, 많으면 많아서 싫다니 정말 제멋대로구나).”

‘시끄러워.’

나는 테이크아웃용 잔에 커피를 담으면서 미음이를 노려봐 주었다.

원래 사람 마음이 그런 거다. 장사가 안 되면 안 되는 대로 슬프지만, 바빠지면 바쁜 대로 싫은 법.

“왜우웅(인간이란)…….”

‘내 넷플릭스 아이디 쓰면서 할 말은 아니잖아.’

너만큼 여기서 인세에 완벽하게 적응한 동물은 없을걸.

그때 막 커피를 받아 든 손님들이 하는 말이 언뜻 들려왔다.

“여기가 그 특수 효과를 준다는 커피 파는 데 맞지?”

“어쩐지 좀 강해진 기분인데?!”

“거기다 맛있어!”

……뭐?

어쩌다 이 커피에 특수 효과가 있다는 소문이 난 거지. 도망치고 싶다…….

띠링.

그때 다시 시스템 알림이 울렸다.

[퀘스트가 발생했습니다.]

[서브 퀘스트: 던전 산책 한 바퀴

일에 지친 당신이여, 떠나라.

던전을 한 바퀴 돌며 건강도 챙기고 기분 전환합시다.

임의의 던전에 입장하기: 0/1

보상: 경험치(500exp), 100루비, 랜덤 레시피]

무슨 말을 못 하겠다.

마음을 읽기라도 한 것처럼 뜨는 퀘스트에 소름이 돋았다.

이 시스템은 나한테 왜 이러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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