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9화 (69/192)

69화

* * *

예상치 못하게 갑자기 카페에 손님이 느는 바람에 요 며칠은 허덕허덕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후후, 이 완벽한 준비를 보라.

잔뜩 로스팅한 원두도 딱 맞게 숙성되었고, 차원의 상점에서 부재료도 싹 쓸어 담았다. 레몬청도 잔뜩 만들었다. 김덕이 할머니에게 가서 테이크아웃용 컵도 많이 사 왔다.

이만한 양이면 한동안은 가게를 운영하는 데 문제가 없겠지.

복장 OK, 청소 OK, 머신 세팅 OK. 음, 완벽하다. 재오픈 준비 완료.

그동안 가게에는 한 가지 변화가 있었다.

“뭘 하는 거지?”

“곧 카페를 오픈할 테니까 준비 중이야.”

“……흐음.”

부루퉁한 목소리에 시니컬한 표정이다. 이래서 예민한 나이의 애들이란.

어제 가게 문 앞에서 이 소년이 쓰러진 것을 발견했다.

지나도 그렇고 왜 다들 이 가게 앞에서 픽픽 쓰러지는 거지. 여기가 무슨 쓰러짐 핫스팟인가?

아무튼 나는 소년을 일단 안으로 데리고 왔다. 아주 마르고 허약해 보이는 체구에 낯빛이 창백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불안정한 태도에다가, 경찰 신고를 꺼렸다.

왜지?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하도 처연하고 구슬프게 말하는 통에 내일 좀 더 살펴보고 신고 여부를 정하기로 했다.

아무튼 이미 밤이 늦었는데 저렇게 연약한 아이를 밖에 내보낼 수는 없었다. 또 쓰러지기라도 하면 어떡해. 일단 하루는 아이를 1층의 빈 방에 재워 주기로 했다.

“얘, 이름이 뭐니?”

조심스럽게 물은 말에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한낱 인간이 내 이름을 칭할 자격을 얻을 수 있을 줄 아느냐.”

으, 응……?

설정 뭐 그런 건가?

“말하고 싶지 않은 모양이구나. 그래도 야, 너, 거기 하고 부를 수는 없으니까……. 그러면 내가 임시로 하나 지어 줄게.”

창백한 낯의 소년이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

“왜오오옹(좋은 생각이 아닌 것 같다)!”

“뀨우웃!”

미음이와 라임이의 항의는 무시했다.

“비읍이 어때?”

“……!”

소년의 낯이 확 일그러졌다. 그리고 낮고 빠른 말투로 말을 쏟아 내었다.

“원시의 혼돈에서 끓어오르는 무한한 악, 심연에 있는 그분의 마력을 나누어 받은 화신체. 세계에 황혼을 불러들이는 마왕, 아스모데우스를 뭐라고 생각하는 거냐! 인간이 함부로 발음할 수 없는 이름이다!”

어, 응……?

황혼…… 뭐?

말로만 듣던 중2병? 왼팔의 흑염룡 같은 건가?

“그래, 발음이 안 되니까 그럼 비읍이.”

“……!”

찌릿. 소년이 나를 노려보더니 뇌까렸다.

“아스모데우스다.”

“아스모…… 뭐? 너무 긴데.”

“하아……. 칫, 좋을 대로 불러라.”

그래서 결국 아스라고 부르기로 했다.

아무리 들어도 본명은 아니었지만. 섬세하고 예민한 나이대니까, 내가 세계관에 맞춰 줘야지.

“그래, 욕실은 저쪽에 있어. 그 왼팔에 붕대는 다친 거니?”

“……! 손대지 마라. 이 팔의 붕대는 풀 수 없다. 심연의 마력이 잠들어 있어서 말이지.”

“그게 뭔데?”

“마력안을 가지지 않은 자는 모르겠지. 심연에 있는 그분과 나를 연결하는 화신체의 각인이다.”

“…….”

알겠다. 얘는 ‘진짜’다.

너무나도 찐의 표정과 말투였다.

그래, 어른스럽게 아스의 설정을 존중해 주자.

“어…… 어. 그렇게 중요한 거면 건드리지 않을게.”

“훗……. 이 각인의 가치를 알아보다니, 인간치고는 제법이군. 어둠에 삼켜지리라.”

칭찬……인 거겠지?

그렇게 이 특이한 아스를 재우고 다음 날 아침인 지금.

간단하게 아침밥을 먹은 뒤 달콤한 커피를 한 잔 줬더니 아스는 잘 먹었다. 표정은 세상 맛없는 것처럼 부루퉁한데도 머리 위의 만족도 막대는 솔직하게 차오르는 것이 뿌듯했다.

“곧 카페를 열 시각이거든. 있고 싶은 만큼 있어도 되니까, 저기 안쪽 방에서 얘들이랑 편하게 놀고 있어.”

“왜오옹(우리가 애 보기 담당인 줄 아느냐)!”

꼬리를 쭈뼛 세우면서 미음이가 항의했다.

“뀨우우!”

옆에서 동의하는 슬라임도 한 마리.

정말, 예민한 애 상처받게 뭐 하는 거람. 너희 이제 여기 오래 있었다고 어린애 상대로 텃세 부리는 거야?

‘왜, 나이대도 비슷하고 딱 맞…… 아, 아야야야!’

아스를 신경 쓰느라 그만 정면에서 날아오는 냥냥 펀치를 피하지 못했다.

미음이 녀석, 밥을 잘 먹여서 그런가 점점 앞발이 매워지는 느낌이다.

“……뭘 하는 거야?”

시니컬한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아스가 세상 한심한 것을 보는 눈길로 나와 동물들을 번갈아 보았다.

“크흠, 크흠. 그럼 미음아, 라임아, 잘 부탁해.”

“흥.”

“……캬갸옭!”

아스가 미음이의 꼬리를 홱 잡아당겼다. 깜짝 놀란 미음이가 냥냥 펀치를 날렸고, 아스가 여유롭게 피했다.

“뀨웃! 뀨웃!”

어느 쪽을 응원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옆에서 라임이가 부추긴다.

거 봐, 잘 맞네.

* * *

미리 고지한 카페 오픈 시간이 되자마자 손님들이 들이닥쳤다.

“카페라테 하나 테이크아웃이요.”

“저는 아이스 아메리카노 두 잔이요. 맞다, 그리고 카페모카도 하나 추가해 주세요.”

“어, 신메뉴인가요? 그럼 전 이거 아인슈페너 주세요.”

주문 받으랴 음료 만들랴 설거지하랴 엄청나게 바빴다.

사람 살려…….

손님의 행렬이 끝나지 않는다…….

내 느긋하고 게으르고 편안한 회귀 후 힐링 라이프는 어딜 간 거지?

대체 어디서 이 커피에 대한 소문이 난 거지. 방송 출연을 한 것도 아니고, 바이럴 마케팅을 한 것도 아닌데 말이다.

내가 스킬을 통해 커피를 만든다는 사실까지는 알려지지 않은 모양인지, 현재로서는 과로 외에 위험한 일은 없다.

“이 255, 0, 0의 선명한 컬러, 크기, 푹신함! 이 쿠션, 너무나도 익숙하다는……. 리레 슬라임 대형 쿠션 수주 생산 한정판 구판이 틀림없다는……. 이 쿠션은 어디서 사셨냐는…….”

“아, 당근에서 산 건데요.”

그때 라임이가 몸을 통통 튕겨 푹신한 쿠션에 기댔다.

“크흑! 내, 내가 눈물로 떠나보낸 쿠션에 슬라임이……. 리레 슬라임과 리레 슬라임 쿠션의 만남이라니! 영광이라는……. 사진 찍어도 되냐는…….”

“네.”

찰칵, 찰칵, 찰칵!

이리저리 포즈를 취하는 라임이를 모델로 엄청나게 사진을 찍어 댄다.

이렇게, 약간 이상한 손님이 오기는 했지만 그 외에는 평범한 손님들이었다.

밀려드는 주문을 쳐 낸 뒤 잠깐의 틈을 타서 나는 문 앞에 아르바이트 모집 공고를 붙였다.

빨리 아르바이트가 구해져서 이 바쁜 상황을 벗어날 수 있으면 좋겠다.

비록 아직까지는 연락 건수 0건이지만…….

최이찬은 잘 지내고 있는지 모르겠다. 무슨 일인지 몰라도 내게 전화 한 통쯤은 해 줘도 좋을 텐데.

꼭 아르바이트생이 필요해서 그를 떠올린 건 아니고.

그냥…… 며칠 동안 여기서 머무르다시피 하다가 없어지니까 허전하다고 할까.

모집 공고를 붙이고 다시 카운터로 돌아왔더니 잠깐 사이에 몰려든 손님에게 아스가 주문을 받고 있었다.

“아스, 그냥 쉬고 있어. 그런 거 안 해도 돼.”

아무리 바쁘다지만 가출 청소년으로 추정되는 저 연약한 애한테 어떻게 일을 시킬 수 있겠는가. 그냥 있어도 픽 쓰러질 것처럼 가냘픈데.

오늘 아스에게 여기 머물러도 좋다고 한 것은 어디까지나 순수한 마음에서였다.

그러나 아스는 능숙하게 쏟아지는 주문을 받았다.

“아이스 카페라테 둘, 아인슈페너 하나, 바닐라라테 둘, 쿠키 세트 하나. 이렇게 들어왔어.”

“어, 잠깐, 그럼 얼마지…….”

“15루비.”

내가 음료를 만들 때마다 빠르게 서빙하고, 테이블 치우기까지 완벽하게 해치웠다.

“윽!”

“……? 왜 그래?”

“아니, 잠깐 눈이 부셔서.”

이 엄청난 능력은 뭐지…….

시니컬한 표정과 가냘픈 체구로는 상상도 가지 않을 만큼 빠르고 완벽한 움직임.

순식간에 밀린 주문이 처리되고 가게가 정리되었다.

손을 탁 털고는 아스가 불쑥 물었다.

“아르바이트생이라는 걸 찾는 건가? 그걸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띠리링.

[퀘스트가 발생했습니다.]

[메인 퀘스트: 아르바이트생 구하기

손님이 밀물처럼 몰려듭니다.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는 인기!

당신에겐 도움이 필요합니다.

아르바이트생 고용하기: 0/1

보상: 경험치(100exp), 명성(10), 인기(10), 스킬 포인트 1]

아스가 말하자마자 새로운 퀘스트가 떴다.

나는 아스를 다시 보았다. 작은 키에 가냘픈 몸, 냉소적인 표정을 지고 있지만 어린 티가 나는 뺨이 눈에 들어왔다.

“미안해…….”

“뭐가?”

“아르바이트는 만 15살 이상만 가능해.”

내 말에 아스가 불퉁하게 대답했다.

“나를 몇 살로 보는 거야. 그렇게 안 어려.”

“몇 살인데?”

“글쎄, 2000살 이후로는 제대로 세어 본 적이 없어서.”

아, 그런 설정이구나…….

“탈락.”

“……!”

“65세 정년이야.”

장난스럽게 덧붙인 말에 아스는 잠시 망설이다가 중얼거렸다.

“17살이야.”

겉으로 보기엔 15살 미만으로 보이는데, 생각보다는 나이가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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