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화
“굳이 여기서 아르바이트를 하려는 이유가 있어? 다른 곳에도 자리는 있을 텐데.”
그러나 아스는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다른 곳은 없어. ……아무 데도.”
마침 아스의 빠른 손길 덕분에 잠시 쉴 틈이 생겼다. 나는 어제 아스가 맛있게 마신 카페모카를 한 잔 더 타서 건넨 뒤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아스, 나한테 미안해서 그런 말 한 거면 그럴 필요 없어.”
불안을 머금은 시선이 내게 닿았다.
“오늘 내가 바빠 보여서 걱정했구나. 아스는 착하기도 하지.”
“누, 누구 멋대로! 착하다니 그런 심한 말을! 세계의 황혼을 불러들이는 마왕 아스모데우스를 모욕하려는 거냐!”
으, 응……? 칭찬받으니 민망한가 보구나…….
“어제 너를 여기서 재운 건 그냥 몸이 안 좋아 보였기 때문이지, 일을 시키려는 게 아니야. 여기 더 있어도 되니까 신경 쓰지 말고, 편하게 있어. 응?”
“그게 아니라, 그……!”
“그?”
아스가 부루퉁한 표정으로 시선을 피했다. 정말 예민한 나이구나.
“커.”
“커?”
“커피가…….”
“아, 맛있었어? 얼마든지 또 만들어 줄게.”
“그게 아니라, 아르바이트를 하고 싶다.”
“아르바이트는…… 일단 이런 서류가 있어야 가능해.”
아르바이트를 향한 아스의 의지는 굳건했다. 나는 종이에 필요한 서류를 간략하게 적어 주었다.
“……쳇.”
“어, 아스! 어디 가!”
서류 목록을 잡아챈 아스가 몸을 일으키더니 홱, 밖으로 달려 나갔다.
마음을 상하게 한 걸까. 정말 어려운 나이구나.
* * *
싸늘하게 굳은 표정으로 아스는 생각에 잠겼다.
마력 회복의 원천이 되는 커피.
이 커피를 계속 마시기 위해서는 의심받지 않고 카페에 잠입할 필요가 있었다.
다운로드 받은 인간계 지식을 통해 ‘아르바이트’란 것으로 잠입하면 된다는 결론을 내렸다.
마침 이 인간도 아르바이트란 것을 찾고 있으니 상황은 완벽하다.
그런데 한 가지 예상치 못한 난관이 있었다.
바로 서류다.
“아르바이트는…… 일단 이런 서류가 있어야 가능해.”
낯선 단어의 향연.
‘천 년 전과는 많이 달라졌군.’
천 년 전에는 적당히 메테오 한번 쏴 주면 인간들이 알아서 필요한 것을 갖다 바쳤는데.
하지만 마력 부족으로 대부분의 마법은 봉인된 상태. 그 서류란 것을 만들 다른 방법을 찾기 위해 아스는 밖으로 나왔다.
그때.
“으, 으아아악!”
거리에서 한 노인이 아스를 보고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깡마른 몸에 알록달록한 조끼를 걸친 자였다.
공포에 질린 창백한 얼굴, 부들부들 떨리는 몸. 그리고 경이를 목도하고 환희에 찬 눈동자.
“너, 나를 아는가?”
“서…… 서, 서서, 설마, 마왕 아스모데우스 님이십니까?”
끄덕.
가벼운 동작에 노인은 숨을 헐떡이며 기도를 올렸다.
“오오, 오…… 오오! 마왕 아스모데우스시여…….”
“눈썰미가 좋은 인간이군.”
노인의 경배에 흡족해진 아스가 픽 웃음을 흘렸다.
“부디! 부디…… 저의 동료들이 모인 곳이 있습니다. 위대하신 마왕께는 숭배자가 필요한 법입니다. 저희의 숭배를 받아 주십시오.”
“좋다.”
이제야 자신의 힘에 걸맞은 대접을 하는 자를 만났다. 아스는 노인의 뒤를 따라가 보았다.
아스는 알지 못했지만 이 노인의 정체는 마왕 숭배교 ‘황혼’의 교주.
오랫동안 마왕의 부활을 기다려왔고 직접 소환술을 사용해 본 적도 있다.
그러나 소환술은 실패. 아무리 기다려도 마왕은 부활하지 않았고, 동료들은 하나둘 떠나갔다.
현재의 주요 활동 내용은…….
‘마왕 진짜 계심’
‘숭배하라! 곧 마왕 부활 예정’
따위의 불법 포스터를 거리 곳곳에 붙이는 일이었다.
주1회 번화가 지하철역 앞에서 피켓을 흔드는 일과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마왕을 믿으십니까?’ 하고 묻는 일도 했다.
다른 유사 종교에 신도를 빼앗기기만 했지만…….
그러나 고난의 시간은 끝났다. 존버 필승. 존버는 승리한다.
“내 너에게 시킬 일이 있다.”
“여, 여부가 있겠습니까.”
오랫동안 마왕을 숭배해 온 노인은 본능적으로 알아차렸다.
겉모습은 허름한 옷을 입은 가냘픈 소년이지만, 이분이 그가 기다리던 마왕이 맞는다고.
저 냉소적인 눈빛에 차가운 목소리. 숭배자들의 앞에서 다짜고짜 명령을 내리는 엄격함은 결단코 범인의 것이 아니었다.
첫 번째 명령은 대체 무엇일까.
산 제물을 바치는 것? 아니면 인류를 향한 저주? 마왕 숭배자의 피? 어쩌면…… 금지된 저주 말뚝의 사용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어진 말에는 노인도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아르바이트용 서류를 만들어라.”
“네, 여부가 있겠습……. 네?”
“못 들었나? 서류 말이다.”
* * *
서류가 필요하단 말에 아스가 가게를 뛰쳐나가고 한 시간이 지난 후였다.
“이제 됐지?!”
돌아온 아스가 탁, 서류가 든 봉투를 내려놓았다. 안을 보니 보건증을 비롯해서 필요한 것은 전부 있었다.
혹시나 해서 꼼꼼히 살펴봤는데 위조는 아니었다. 보호자 동의서는 ‘종교 재단 황혼’이라는 곳에서 운영하는 아동 보호시설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무슨 사정이 있는 걸까. 여기서 아르바이트를 해야 하는 이유가 있나 보다.
이름: 김아스
나이: 17세
아스라는 이름, 본명이었구나…….
“좋아.”
어차피 아르바이트를 구해야 하는 상황이었고, 아스의 사정도 신경 쓰였으니까.
“……!”
깜짝 놀라 고개를 든다. 얼굴에 채 다 감추지 못한 기쁨이 드러난다.
“후훗……. 어둠에 삼켜지리라.”
기뻐하는 거 맛지……? 아무튼, 무슨 사정인지는 몰라도 기운 내면 좋겠네.
“앞으로 잘 부탁해.”
띠링.
[축하합니다! ‘메인 퀘스트: 아르바이트생 구하기를 완료했습니다.
보상을 수령해 주세요.]
[경험치: 100exp를 회득했습니다.]
[명성: 10 / 인기: 10을 획득했습니다.]
[<카페 리을>의 현재 등급: E]
[보유 스킬 포인트: 1]
[레벨 업을 할 스킬을 선택해 주세요.]
곧장 퀘스트 완료 알림이 울리면서 스킬 포인트가 들어왔다.
으음, 무슨 스킬을 올리는 게 좋을까…….
고민 끝에 내가 고른 스킬은 바로 이것이다.
‘내 손안의 카페.’
급격히 장사가 잘 되면서 이 스킬을 쓰는 빈도가 엄청나게 늘어났다.
‘바닥이 반짝반짝’을 레벨 업했더니 놀라운 사기 효과가 붙어 있었던 것처럼, 레벨 업하면 무슨 좋은 효과가 생기겠지 하는 기대에서였다.
[내 손안의 카페 (C)
상세: (Lv.2) 가게 안에서 음료 제조 시 완성도가 더 높아진다.]
“……엥?”
처음에는 뭐가 달라졌는지 바로 알아차리지 못했다. ‘완성도가 높아진다.’에서 ‘완성도가 더 높아진다.’로 변했을 뿐이니까.
무슨 차이가 있는지는 조금 이따 실험해 보기로 하고…….
그때 띠링, 하는 소리가 다시 울렸다.
[※ 내 손안의 카페(C) 레벨 업 효과로 커피를 마셨을 때 다섯 잔까지는 카페인 중독에 걸리지 않습니다.]
와, 대박.
* * *
권리을이 새로운 아르바이트생과 근로계약서를 쓰는 그때.
그녀의 사촌 권지운은 책상에 머리를 박고 있었다.
쾅!
“…….”
“부길드장님, 방금 큰 소리가 났는데, 무슨 일 있으십니까?”
“……아무것도 아니야.”
“네.”
쾅!
“부길드장님?”
“큼, 크흠, 괜찮아.”
권지운은 머쓱하게 몸을 일으켰다.
그가 이렇게 고민에 빠진 이유는 물론, 사촌 권리을이다.
“오빠, 나 각성했어.”
리을이 각성을 했다고 한다. 아직 어리게만 느껴지는 그의 사촌 동생이.
처음에는 충격이었지만 권지운의 사고는 재빠르게 움직였다.
‘그렇다면 <백은 길드>에 가입해야겠군.’
당연하다. 그가 부길드장을 맡고 있는데다가, 현재 실종 상태인 아버지, 권석민 역시 동의할 테니까.
어느 길드 소속인지는 헌터에게 있어 또 다른 신분 증명이나 마찬가지다.
<백은 길드>는 대형은 아니지만 입지가 좋고 한국의 중요 길드 중 하나다. 리을을 <백은 길드> 소속으로 해 두면 앞으로 무슨 일을 하건 도움이 될 테다.
가입 신청서를 종이가 아닌 전자로 하는 게 간편하겠지. 급발진해서 이런 생각을 하는데 리을이 딱 잘라 선을 그었다.
“절대 오빠네 길드에 가입하고 싶다는 말은 안 할 테니까 안심해.”
마음에 걸리는 말이었다.
“……하아.”
권지운은 시선을 아래로 미끄러뜨렸다. 텅 빈 핸드폰 문자 메시지 작성 창이 눈에 들어왔다. 의미 없는 글자를 몇 자 쓰다가 도로 지워 버렸다.
옆에 놓인 최근의 던전 공략 추이에 대한 보고서가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최근, 몇 주 전부터 <백은 길드>가 진행하는 공략에 <씨앤엘 코퍼레이션>의 개입이 심해지고 있었다.
원칙을 들어 밀어 내려 해도 상대는 빅3 중에서도 최대 규모의 길드다. 물량으로 밀어붙여 마구잡이로 공략 기여도를 뺏어 가는 데는 방법이 없었다.
최근 세 건의 던전 공략에서 모두 같은 일이 일어났다. 이는 다분히 의도적이다.
그뿐만 아니라, <씨앤엘>은 <백은 길드>의 길드원에게 접근해서 이적을 제의했다. 길드 주요 멤버는 그대로이긴 하나, 일부는 이미 이탈한 상태.
이대로라면 <백은 길드>의 세력이 약화될 것은 명약관화하다.
<씨앤엘>은 <백은 길드>를 흡수하려 하고 있었다.
‘도대체 어디서 그렇게 눈 밖에 났는지는 모르겠다만.’
이런 상황에서 동생을 <백은 길드>에 데려오는 것이 맞는 선택일까. 동생과 가깝게 지내면 지낼수록 적은 동생에게 주목할 텐데.
권지운은 잠시 해묵은 과거 기억을 들여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