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화
마지막으로 내 몫으로는 가스버너와 냄비를 놓았다. 이왕 달고나를 만드는 김에 잔뜩 만들어서 보관해 둘 생각이었다.
“왜옹, 왜오오옹(매번 일하기 싫다면서 일거리를 늘리는 건 인간 너 아니냐! 놀고 싶다고 하면서 행동은 다르잖느냐)!”
“뀨우우!”
음. 나도 최근 그런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혹시 내가 문제인가……?
어쩌면 지난 삶의 노동자 DNA가 발휘된 걸지도 모른다. 놀고 싶다고 생각하면서도 무심코 일을 찾아 하게 되는 거다.
윽, 무서운 상상은 그만두자.
‘아니, 아니야. 오픈빨만 가라앉으면 카페는 한가해질 게 틀림없어. 지금은 폭렙 구간이라 바쁜 거고.’
“냐아아아(흐음, 네 뜻대로 되면 좋겠다만)…….”
나는 초를 치는 미음이의 뱃살을 마구 주물러 댄 다음, 테이블 앞으로 돌아왔다.
아무튼, 이제 달고나를 만들 시간이다.
먼저 냄비와 국자에 물 약간과 마법 설탕을 넉넉하게 담은 다음 가스에 불을 켰다.
나를 따라 알코올램프에 불을 켜고 국자를 올린 주신우가 호기심 어린 목소리로 물었다.
“이대로 해요?”
“응, 저으면 안 돼.”
그 말에 쌍둥이와 아스가 자세를 바로 하고 국자를 잡는다.
설탕을 젓지 않고 그대로 녹이는 것이 중요했다. 잠시 그대로 가열하자 설탕이 녹아 투명해지고 보글보글 기포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아직 아니야. 더 기다려야 해.”
확 풍겨 나오는 달착지근한 냄새에 아이들이 들떴다. 알기 쉽게 눈을 반짝이며 볼을 붉히는 애가 있는가 하면,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우리 가게 아르바이트생도 있었다.
설탕물이 졸아들면서 기포가 더 많이 올라오더니 조금씩 갈색빛이 돌았다.
“……지금이야.”
내 말에 아이들이 미리 덜어 둔 베이킹 소다를 넣고 젓기 시작했다.
나 역시 냄비에 베이킹 소다를 두 스푼 넣고 불을 껐다. 불에 올린 채 저으면 온도가 너무 올라가 탈 위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거품기로 빠르게 저어 주니 달고나가 밝은 갈색으로 변하며 몽글몽글 부풀어 올랐다.
충분히 부풀어서 냄비 안이 걸쭉해지면 미리 깔아 둔 시트지에 부어 준다. 굳기 전에 전부 긁어내야 하기 때문에 손을 빠르게 움직여야 한다.
“와아아……!”
쏟아져 내리는 황금빛 덩어리를 보고 주신희가 감탄을 토해 냈다.
옆을 돌아보니 아이들도 자기 앞의 시트지에 달고나를 부었다. 타지 않고 부풀어 올랐다.
“됐어요! 말랑말랑해.”
“내가 더 잘 만들었어요, 언니.”
“……쳇.”
어릴 때는 꼭 굳기 전의 끈적한 상태일 때 참지 못하고 맛을 보다가 혀를 데이곤 했지. 그 사이에 국자를 새까맣게 태워 먹었고…….
“……왜옭?!”
내 그럴 줄 알았다.
나는 아직 뜨거운 달고나 덩어리를 찍어 먹으려는 미음이의 허리를 안아 멀리 떼어 놓았다. 그렇게 불쌍한 척 쳐다봐도 안 돼. 내가 살려 준 거라고.
이 달고나는 음료에 넣을 용도니까 납작하게 누르지 않고 그대로 굳히기로 했다. 부풀어 오른 채로 잠시 내버려 두자 딱 적당하게 단단해졌다.
종이로 감싼 달고나를 손과 숟가락을 이용해 적당한 크기로 부숴서 통에 담으니 완성이다.
남은 과정은 간단하다.
안쪽이 잘 보이는 투명한 유리컵에 얼음과 우유를 담았다. 위에 방금 만든 달고나 조각을 넉넉하게 올리고 에스프레소를 부었다.
애들이 직접 만든 달고나 조각을 토핑으로 올려 장식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띠리링.
[아이템: 달고나 커피(★★★★☆)
상태: 좋음 (남은 시간: 01:00:00)
효과: 모든 스테이터스가 10분 동안 100% 상승합니다.]
인원수대로 음료를 완성하고 나니 재깍 시스템 창이 떴다.
달고나 커피에는 상당히 좋은 효과가 붙어 있었다. 스테이터스 100% 상승이라니. 만약 힘이 100이면 200이 된단 거니까, 어지간한 버프 포션보다 효율적이다.
그리고 또 하나 주목할 부분은 등급이다.
이제까지와는 다르게 처음부터 4성 등급이 나왔다. 상태 유지 시간도 효과도 더 뛰어나다.
이건 바로 ‘내 손안의 카페’의 레벨 업 효과였다. ‘가게 안에서 음료 제조 시 완성도가 더 높아진다.’의 의미가 바로 이것. 모든 레시피가 4성으로 올라가면서 효과가 강화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하루 다섯 잔까지는 상태 이상 ‘카페인 중독’ 없이 커피를 마실 수 있는 것도 좋았다. 마구 몰려드는 손님들을 처리하다 보면 금방 그로기 상태가 되었으니까.
‘정말 다행한 일이지.’
그런데 어째서 눈가가 축축해지는 걸까…….
이제 맛을 볼 시간이다. 완성된 달고나 커피를 각자 한 잔씩 들고 자리에 앉았다.
“잘 먹겠습니다.”
“와, 설탕 냄새가 나요!”
“……흠.”
먼저 토핑으로 올린 달고나를 손으로 집어 입으로 가져갔다.
파삭!
기포가 많이 들어가 부드러운 달고나가 입 안에서 가볍게 부서졌다. 설탕의 단맛과 함께 살짝 쌉쌀한 탄 맛이 섞이는 것이 질리지 않는 맛이었다.
나는 옆에서 보채는 미음이와 라임이에게도 달고나 조각을 나눠주었다. 달고나를 녹여 먹고 갉아먹느라 잠시 둘이 조용해졌다.
“냐아아아(더 먹고 싶다)!”
“뀨우우우, 뀨우!”
여기 최이찬도 있으면 좋았을 텐데,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이 달콤함은 딱 최이찬이 좋아할 맛인데.
강해지기 위한 수련으로 뭘 하는지 모르겠지만…… 빨리 돌아오면 좋겠다. 달고나를 잔뜩 먹여 줘야지.
조금씩 녹기 시작한 달고나 가루를 음료에 잘 섞이게 휘휘 저어 준 뒤 곧장 빨대로 맛을 보았다. 달콤한 음료와 함께 달고나 조각이 입으로 들어와 씹히는 맛이 있었다.
“……!”
“맛있어…….”
“언니는 천재가 분명해요!”
달고나 커피를 마신 아이들이 감상을 쏟아 냈다. 제각각 반응은 달랐지만, 맛있어한다는 사실만큼은 굳이 머리 위의 막대를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나는 슬쩍 옆의 기유현을 보았다. 그 역시 부드러운 표정으로 앞에 놓인 달고나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여러 번 만났지만 여전히 이 남자에 대해 아는 사실은 많지 않다. 미음이의 말에 따르면, 미각이 많이 약화되었다는 것 정도가 신경 쓰이는 부분일까.
평소에 맛을 잘 느끼지 못하다가 달콤한 음료를 마시면 무척 자극적이겠지. 배탈이 나서 일주일간 간을 하지 않은 흰죽만 먹다가 간식을 먹었을 때의 환희와 비슷할까.
“왜 그렇게 보세요?”
이런. 갑자기 측은한 마음이 느껴져서 너무 빤히 쳐다본 모양이다.
“이거, 더 드세요.”
나는 달고나 조각을 한 스푼 더 떠서 컵에 부어 주었다. 달고나나마 많이 먹으라는 애처로운 마음에서였다.
“……?”
갑자기 주위가 조용하기에 고개를 돌리자 애들이 빤히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아스는 얼굴을 잔뜩 찌푸렸고 쌍둥이는 눈을 반짝거렸다. 그러다가 나와 눈이 마주치자 고개를 돌린다.
얘들아, 무슨 생각인진 몰라도 다 티 난다.
어색한 분위기를 무마하려는지 주신희가 불쑥 새로운 화제를 꺼냈다.
“어제 저희 B급 던전 갔다 왔어요.”
“보스도 잡았어요. B급 맹독크라켄!”
“막타 때린 건 나거든!”
“이 멍청아! 내 저주가 문어를 약하게 만들어서 네가 맞힌 거지.”
“내가 헤드샷 안 맞혔으면 놓쳤거든, 멍청이가!”
이런…….
던전 디톡스를 하려 했는데 던전 이야기로 화제가 흘러가 버렸다.
의외로 이 이야기에 아스가 흥미로워하는 반응을 보였다.
“호오, 제법 대단한데. 크라켄은 나도 단번에는 해치우지 못하는 끈질긴 놈인데.”
“……! 너도 헌터야?”
“그런 건 아니야.”
깜짝 놀란 주신우의 물음에 아스는 고개를 저었다. 쌍둥이는 서로 눈을 마주쳤다가 다시 아스를 바라보았다.
“그래도 꽤 강해 보이는데?”
“맞아, 너 센 거 같은데?”
“……훗, 너희도 인간치고는 제법 강한 것 같군.”
“난 주신희. 얘는 주신우라고 해. 나는 궁사고 얘는 마법사인데 음침하게 저주를 잘 써.”
“멋진 특기군. 난 아스라고 불러라.”
갑자기 사이가 좋아졌다?!
쌍둥이와 아스는 그밖에 여러 몬스터에 대해서 재잘재잘 떠들어 댔다. 끊임없이 던전 토크가 활발하게 이어진다.
던전 디톡스, 흑…….
원래 계획했던 던전 디톡스는 완전히 글렀지만…… 뭐, 어쨌건 즐거워하니 됐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손님들이 돌아갈 때가 되었다.
“이걸 깜빡할 뻔했군요.”
의자에서 몸을 일으킨 기유현이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서 내게 내밀었다. 얼결에 받고 보니 동그란 버튼이 하나 달린 자그마한 물체였다.
“이게 뭔가요?”
“음…… 방범 벨 비슷한 거라고 할까요? 리을 씨는 아무래도 위험한 일을 많이 겪으시는 듯해서.”
“그런 건 아닌데요…….”
지난번 농원에서 몬스터지옥에게 삼켜졌을 때는 당황하긴 했지만, 어떻게 잘 끝났으니까.
“갖고 있다가 위험한 일이 생기면 누르세요. 도와드리러 가겠습니다.”
“한번 눌러 봐도 돼요?”
“네.”
달칵.
버튼을 눌러 봤는데 일반적인 방범 벨처럼 큰 소리가 나거나 빛이 번쩍거리지는 않았다. 하지만 기유현은 제대로 작동된다며 생긋 웃었다.
핸드폰 앱 알림이라도 오는 건가?
일단은 고맙게 받아 두기로 했다. 아직까진 별일 없지만 가게 손님도 부쩍 늘었으니까. 만에 하나 트러블이 생겼을 때 기유현의 도움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쓸 일이 없는 게 제일 좋겠지만…….
* * *
“후후, 오늘 재미있었지?”
“……별로.”
“다음에도 놀러 오라고 할까?”
“뭐, 그러든가.”
“아스, 오늘도 고생 많았어. 잘 자.”
얼빠진 얼굴의 여자는 그렇게 말하고 방문을 닫고 나갔다. 자신을 볼 때마다 생글생글 웃어 대는 모습에 기분이 불쾌했다.
그래도 성공적으로 이곳에 아르바이트생으로 잠입할 수 있었다.
그 여자가 만드는 커피는 아주 맛이 좋았고 마력도 빨리 회복되었다.
특히 아스의 마음에 든 것은 카페모카였다. 쌉싸름한 커피의 맛과 지옥의 초코 소스가 이루는 조화가 환상적이었다.
꾸준히 저 여자가 만드는 커피를 마신 덕분에 마력도 어느 정도 회복되었다.
[마력 절약 모드를 사용 중입니다.]
[마력 회복량: 20%]
[마력 부족으로 인해 일부 주문이 사용이 불가능할 수 있습니다.]
지금이라면 저 여자 한 명 정도는 얼마든지 손쉽게 죽일 수 있다. 정신 지배를 통해 자신의 명령을 따르게 할 수도 있었다.
그런데 어째서일까.
내키지 않는 기분이 들었다.
아스는 무심코 자신의 이마에 손을 올렸다. 방금 리을이 쓰다듬은 자리였다. 아직 은은하게 온기가 남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