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화
7장. 성녀님이 보고 계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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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랭킹, 길드 추노 금지. 현피는 던전에서
[잡담] 오늘 비오나????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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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더블비안코
(사진)
하늘 왜 이꼬라지임ㅡㅡ
일기예보에서 오늘 맑다고 했는데 시꺼멈
오늘 던전 가려고 했는데 그냥 헌챈이나 해야겠슴
힘없찐: ??? 처음부터 갈생각 없던거 아니신지?
ㅁㅁ: 오늘 비와서 던전 못감 아무튼 못감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라임사랑단: 이쯤되면 직업 헌터가 아니라 프로헌챈러 아니냐ㅇㅇㅋㅋㅋ
└더블비안코: 님보단 접속일수 적음ㅅㄱㅇ
gotohell: 근데 사진에 까만거 뭐임 창문좀 닦아라
ㅇㅇ: 헐 진짜다 구석에 뭐 찍혀있음
└더블비안코: 아무것도 없는데 뭔소리임 ㅅㅂ무서우니까 겁주지마
제주길드1짱: 님들 재난문자 보셈 큰일났음
* * *
지존은 침울하게 혼잣말을 읊조렸다.
못 해 먹겠다. 도저히 못 해 먹겠다.
나는 역시 눈에 띄는 대단한 일을 할 수 없는 평범한 사람이었다. 어울리지도 않는 일에 너무 오래 매달렸다.
그것이 지존이 내린 결론이었다.
며칠 전 밤 긴꼬리불사조가 사라진 사건 현장. 최세드릭은 지존을 그냥 보내 주었다.
위협이 안 되리라고 생각한 거겠지.
“오늘 여기 당신이 있었다는 건 보고 안 할게. 지저분한 일에 손대지 말고 평범하게 살아.”
그렇게 말하고 돌아서는 최세드릭의 모습은……. 솔직히 멋있었다.
다시 태어나지 않는 한 저렇게 되지 못할 것 같았다.
‘자수하자.’
운이 좋아 살인미수 누명을 벗는다고 해도 지존은 이미 신크라운파의 밀거래에 가담했다. 실형은 피할 수 없겠지. <씨앤엘 코퍼레이션>의 교사 혐의를 입증하기도 힘들 거다.
‘그 비서라면…….’
증거 같은 건 남기지 않았을 테니까.
자수를 결심하고 나니 마음이 홀가분했다. 처벌을 받고 나면 평범하게 살자.
어머니와 동생한테도 면목은 없지만…… 연락해야겠지.
리을과 아스가 쇼핑몰로 향하기 약 30분 전.
먼저 집에 돌아가 신변 정리를 하기 위해 골목길을 걷는 지존.
그때 맞은편에서 조용한 인기척이 있었다. 뒤에서도 누군가의 발소리가 바짝 따라붙는다.
“김지훈 씨 되십니까?”
“…….”
앞에 선 남자가 품에서 신분증을 꺼내 보였다. 커다랗게 찍힌 <던전관리청>의 마크가 눈에 들어왔다.
“잠깐 이야기를 듣고 싶은데, 본청까지 같이 좀 갑시다.”
등 뒤에 선 사람이 살짝 어깨에 손을 올려놓는다.
“무, 무슨 일이쇼?”
“알고 있을 텐데. 청계천 방화 현장에 있었지? 김지훈 씨를 봤다는 목격자가 있습니다.”
“……!”
지존은 곧 저항을 포기했다.
어차피 이 순간이 올 줄 알았다. 체포 엔딩이라니, 나 같은 자투리에게는 딱 맞지 않나. 지존은 양손을 들어 저항할 뜻이 없다는 걸 밝히고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때. 어디선가 불어온 바람에서 악취가 느껴졌다.
“앗, 뜨거!”
갑자기 몸 안쪽에서 뜨거움을 느끼고 지존이 마구 품을 뒤졌다. 꼭 달군 쇠로 몸을 지지는 것 같았다.
지존을 둘러싼 헌터들이 당황해서 제압하기 직전. 안주머니에서 별 모양 장식품이 나왔다.
이건 뭐지? 이런 걸 샀던가?
생각은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조심해!”
“윽, 으악! 저게 뭐야?”
하늘이 검게 물들었다. 악취를 풍기는 거센 바람이 몸을 감쌌다.
콰직.
하늘에서 나타난 거대한 부정형의 점액질이 그대로 쩌억 입을 벌리고 지존을 집어삼켰다.
이미 여러 인간을 삼킨 점액질은 거대한 덩어리가 되어 있었다.
“크르르…….”
불길한 울음소리가 들렸다.
거신에 어울리지 않는 날렵함으로 거대한 덩어리 몬스터는 주위의 헌터를 밀치고 달려 나갔다.
“도망쳤다!”
“본청에 지원 요청해!”
“……몬스터 발생! 현재 추적 중입니다. 각 길드 지원 바랍니다!”
* * *
“꺄아아악! 도망쳐!”
“크윽, 비상구 쪽은 벌써 막혔어! 반대로 가!”
“방재 셔터 내리고 결계 칩니다. 안으로 들어오세요!”
갑자기 나타난 몬스터로 인해 쇼핑몰은 혼돈이었다.
저걸 몬스터라고 불러도 좋을지 모르겠다.
검고 끈적한 덩어리는 고정된 형태가 없었다. 주르륵 흘러내리다가 다시 두 발로 직립하고 이쪽을 향해 달려온다.
곧장 몬스터 통제 셔터를 내리고, 안전관리 담당 헌터들이 쇼핑객들 대피를 도왔지만 사태는 좀처럼 진정되지 않았다.
몬스터는 자유자재로 형태를 바꿔 가며 안으로 침입했다. 헌터가 몬스터를 공격했지만 대미지가 들어가지 않는다.
그리고 하늘에 나타난 거대한 구멍. 그 구멍의 안에서 끊임없이 검은 덩어리가 쏟아지는 중이었다.
내가 곧장 아스의 손을 잡고 대피 장소로 향하려는 와중이었다.
“……아스! 조심해!”
바리케이드를 뚫고 달려든 몬스터가 아스를 노렸다. 반사적으로 아스의 등을 밀어서 공격은 피했지만, 그 바람에 방재 셔터 밖으로 밀려나고 말았다.
“……읏!”
공간이 변화한다.
검은 덩어리가 액화되면서 주위를 감쌌고, 모든 형태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기둥과 난간, 바닥이 흐물흐물 녹아내리며 빛깔을 잃고 하나의 불투명한 막이 되었다.
사방이 분간 가지 않는 어둠. 출구는 보이지 않는다.
오직 머리 위에서 거대한 구멍이 일렁거릴 뿐.
‘아스, 이리 와.’
‘…….’
나는 아스와 눈을 맞추고 숨을 죽였다. 시커먼 공간 어딘가에서 몬스터의 발소리가 쿵 쿵 울렸다. 약간이라도 소리를 냈다간 당장 몬스터가 우리를 찢어발길 것 같았다.
긴장을 참으려 아스의 손을 꼭 잡았다. 작고 부드러운 손의 온기가 느껴지자 조금이나마 떨림이 진정되었다.
이상하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지?
회귀 전에 일어난 미래의 일을 모두 아는 것은 아니지만, 굵직한 사건은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용산에 몬스터가 나타난 적은 그동안 한 번도 없었다. 바로 옆 동네에서 균열이 터져도 용산은 멀쩡해서 ‘용산 결계’라는 밈도 생길 정도였다.
아스의 옷을 사러 올 곳으로 용산을 고른 이유도 무의식적으로 용산은 안전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째서 회귀 전과 다른 일이 일어났지?
미래가 바뀌었기 때문에?
하지만 그건 이상한 일이다. 미래를 바꾸는 변수라면 회귀 전의 기억을 지닌 나밖에 없을 텐데, 내가 일으킨 변화는 얼마 되지 않는다.
제임스를 살린 일도, 이초록의 농원에서 균열이 일찍 터진 일도 모두 원인이 분명했다.
그러나 아무리 자신의 행동을 되짚어 봐도 용산에 몬스터가 나타날 만한 일은 하지 않았다.
나비 효과 같은 건가?
그러나 어떻게 해야 던전 게이트 앞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나와 용산에 나타난 몬스터가 연결된단 말인가.
지이잉.
핸드폰이 진동했다.
[안전 안내 문자 <던전관리청>
오늘 17시 경 서울 시내 상공에 이계 게이트 발생 및 미확인 몬스터 출현.
현재 원인 파악 및 대응 중. 주의 바랍니다.]
아주 약한 진동이었는데도 이 공간 안의 몬스터가 우리를 알아차렸다. 바닥에서 불쑥 검은 거인이 솟아 오른다.
“아스, 피해!”
내가 더 가까이 있었는데도 몬스터의 주먹은 정확히 아스만을 노렸다. 마치 아스에게 끌리기라도 하는 듯했다.
확실히 알겠다. 이 몬스터는 아스를 죽이려 한다.
‘……바닥이 반짝반짝!’
스킬을 맞은 몬스터가 중심을 잃고 옆으로 크게 굴렀다.
“잡아!”
그 틈을 타 몸을 일으키고 아스의 손을 잡았다. 그대로 무작정 달렸다. 출구를 찾아 다 허물어진 공간을 가로지르다가 나는 흠칫 놀랐다.
“……!”
아, 하나 더 있다. 내가 바꾼 미래.
가게 앞에 쓰러져 있던 아스였다.
비약이지만, 비약에 불과하지만…….
회귀 전 내 가게는 텅 빈 폐가였다. 회귀 전 그날 그곳에서 아무 도움도 받지 못한 아스가 죽었다면?
그때와 달리 아스가 살아 있어서, 저 검은 몬스터가 살아남은 아스를 죽이기 위해 나타난 거라면?
나는 가만히 아스를 바라보았다.
급박한 상황에도 어딘가 무심한 듯 시니컬한 표정을 짓고 있지만, 내 손을 꽉 붙잡고 있다. 손을 통해 온기와 긴장, 떨림이 전해진다.
생각은 나중에 해도 충분하다. 지금은 어떻게 해서든…….
“됐어.”
아스가 내 손을 놓았다.
“쉿, 아스, 여길 빠져나가서 대피 구역 결계로 가야 해. 거긴 안전할 거야.”
“어차피 난 마력이 부족한 상태에서 만든 불완전 소환체에 불과해.”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늘 하던 설정 이야기가 아니라 아스가 터무니없는 말을 하리라는 예감.
“아스……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이번 몸이 죽는 것뿐이니까. 인간 주제에 그렇게 놀라지 마.”
어느새 검은 거인이 지척까지 따라왔다. 아스는 도망치는 대신 몬스터를 향해 등을 돌렸다. 손을 뻗었지만 닿지 않는다.
안 된다, 구해야 해.
“……!”
나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손에 쥔 아이템을 사용했다.
기유현에게 받은 방범 벨이었다. 찰나의 시간, 내 손은 겨우 이 아이템을 움켜쥘 수 있을 뿐이었다.
달칵, 소리가 나지 않는 버튼을 누르는 순간.
빛의 그물이 내려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