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7화 (77/192)

77화

자세히 보지 않으면 알아차리기 힘들 정도로 섬세한 빛의 그물.

나는 이와 같은 것을 본 적이 있다.

당장 아스를 공격하려던 몬스터가 흠칫 놀랐다.

“그워어어……!”

소리를 지르며 몸을 뒤틀지만 빛의 그물은 더욱 촘촘하게 몬스터를 조여들었다.

쿵!

거구가 바닥에 쓰러졌다.

빛의 입자가 어떤 형태를 빚어내더니 이윽고 공중에 사람이 나타났다.

살짝 긴 검은 머리카락, 큰 키를 감싸는 코트, 하얀 뺨, 빛을 머금은 검은 눈동자.

나는 반가운 마음으로 이름을 불렀다.

“……유현 씨!”

탁!

가벼운 몸짓으로 바닥에 착지한 기유현이 주위를 둘러보고 물었다.

“이게…… 무슨 상황입니까?”

나도 알고 싶은데요…….

공간 이동? 아니면 소환? 방범 벨이라더니 설마 기유현이 갑자기 나타날 줄은 몰랐다.

어쨌건 그 덕분에 살아난 만큼 눈물이 날 정도로 반갑고 고마웠다.

나는 아스와 함께 용산역에 왔다가 몬스터의 습격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갑자기 이 공간에 갇혔다고도.

“그리고…….”

아스는 여전히 덤덤했다. 당장이라도 ‘몸이 죽는 것뿐’ 운운하는 소리를 할 듯한 표정. 그러나 다시 그런 말을 하게 둘 수는 없다. 나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몬스터가 아스를 노리고 있어요.’

기유현의 낯빛이 순식간에 심각해졌다.

‘아, 그래서 과거와 다른 일이 일어난 건가.’

그렇게 중얼거리는 것이, 짐작 가는 바가 있는 듯했다.

“여기를 빠져나가 대피 구역으로 가는 건 좋은 생각이 아닐 것 같군요.”

나도 동의했다. 대피 구역에 있는 사람들이 위험에 처할 수도 있고, 반대로…… 사람들 때문에 아스가 위험해 처할 수도 있으니까.

“네, 그러면…….”

그때, 쓰러졌던 몬스터가 괴성을 지르며 몸을 일으켰다.

새로이 바닥에서 솟아오른 몬스터와 몸을 합체해 더욱 거대해졌다. 기괴한 방향으로 팔다리가 뻗어 흉측했다. 그물을 찢고 놀라운 맹목성으로 다시 아스를 공격하려 했다.

“……처리가 어설펐군요.”

전혀 당황하지 않은 기유현이 곧장 몬스터를 향해 손짓했다. 빛의 그물이 더욱 강하게 몬스터를 옭아매고 이윽고 숨통을 끊으려는 순간.

어떤 물건이 눈에 들어왔다.

검은 점액질에 감싸여 잘 보이지 않았지만 몬스터의 몸에 천 조각이 감겨 있었다.

천 조각? 아니, 옷이다.

몬스터는 엉망진창으로 찢어진 옷을 걸친 채였다.

그런데 저 공작새를 연상시키는 화려한 디자인, 어디서 본 것 같은데…….

저렇게 특이한 옷을, 어디서…….

나는 황급히 기유현의 손을 붙잡았다. 몬스터의 반투명한 몸체 안에서 무언가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점액질에 감싸인, 꼭 사람처럼 보이는 것 말이다.

흠칫 놀란 기유현이 스킬 사용을 멈췄다. 나는 덜덜 떨리는 입술을 겨우 움직였다.

“유현 씨, 저거…… 어디서 본 적 있지 않아요……?”

기억났다.

튜토리얼 던전에 갔을 때 마주쳤던 헌터, 지존.

분명 그가…… 저런 특이한 옷을 입고 있었다.

아니, 벌써 오래전 일이다. 어쩌면 잘못 본 것뿐일지도 모른다. 저, 저 몬스터가 사람을 삼켰을 리가…….

띠링.

그때 눈앞에 시스템 창이 나타났다.

[인물 정보를 획득했습니다.]

[이름: 김지훈(헌터명: 지존)

등급: C급

클래스: 검사

상세정보: (더 보기)]

눈앞에 깜빡이는 시스템 창은 정확하게 쓰러진 몬스터를 가리켰다. 자세히 보니 원래 인간이었을 몸이 검은 점액질에 뒤엉켜 있었다.

“이, 이 몬스터 사람을 먹었…… 아니, 합체했어요. 어떻게, 이런 일이…….”

대답 없이 기유현이 몬스터 쪽을 바라보았다. 무언의 응시가 이어진다. 아마 스킬 따위를 써서 정보를 읽어 내는 것 같았다. 그리고 고요한 낯빛 그대로 짧게 탄식했다.

“……아.”

그 반응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그도 분명 나와 같은 내용을 보았다.

사람을 삼키고 자기 몸의 일부로 삼는 몬스터라니, 들어 본 적도 없다.

더군다나 그 몬스터가 다른 누구도 아닌 아스를 죽이려고 하는 건 대체 어째서지?

하늘의 저 검은 게이트는 또 뭐고?

“읏…….”

극도의 긴장 탓에 호흡이 가빠졌다. 가쁜 숨을 토해 내는 내 어깨를 붙잡는 손이 있었다. 기유현이다.

“리을 씨, 진정하세요.”

“지금 어떻게 진정을 해요……!”

“이쪽을 봐요.”

탁, 기유현이 손가락을 튕겨 내 주의를 끌었다.

공중에서 미세한 빛의 입자가 움직여 네모난 공간을 만들었다. 이 빛의 감옥은 몬스터를 감싸고 점점 줄어들더니 이윽고 몸에 딱 맞는 크기로 줄어들었다.

꿈틀거리며 몬스터가 빛의 감옥을 벗어나려 했지만 감옥은 견고했다.

“상황은 알겠어요. 리을 씨가 무엇을 걱정하는지도요. 하지만 지금 모든 걸 결정할 필요는 없어요.”

“…….”

“우선은 간단한 결계를 쳤어요. 검은 몬스터들이 저 소년의 기척을 찾고 있지만, 결계를 뚫지는 못할 겁니다. 하늘의 게이트도 완전히 열리기까지는 시간이 있어요. 그러니까 우선, 마음을 가라앉히세요.”

하늘을 바라보자 시스템 알림이 떴다. 실시간으로 줄어드는 시간이 보였다.

[얼굴 없는 자 □□□□□의 게이트

완전 개방까지 남은 시간 05:27:10]

진정하자. 그의 말이 맞다.

그래, 저 몬스터가 원래 무엇이었건 내가 모든 일을 알거나 해결할 수는 없는 법이다. 무력이 필요한 일은 나보다 더 강한 헌터의 영역이다.

그러니 지금 할 수 있는 일만 생각하자.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가장 우선해야 할 목표는 나와 아스가 무사히 돌아가는 것.

이 상황에 대해 이해가 되지 않는 점은 여럿 있다. 하지만 이해보다도 중요한 것은 이 목표다.

목표를 좁히자 겨우 마음이 차분해졌다.

머리를 식히니 보다 냉정하게 상황을 볼 수 있었다. 기유현 덕분에 당장 목숨의 위기는 피했다. 이 틈에 무슨 방법을 찾아낼 수 있을 거다.

그때 시스템 창이 시야 한 구석에서 깜빡이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더 보기]를 선택해 내용을 확인했다.

[상세 정보: 가족 관계 - 어머니, 동생(김지나)]

뭐? 이 몬스터와 융합된 인간이 지나의 오빠였어?

전에 지나에게 속 썩이는 헌터 오빠가 있다는 말은 들었지만, 설마 이 헌터일 줄은 몰랐다.

그런데 시스템 창이 굳이 이 정보를 나한테 보여 주는 이유는 뭘까.

이 의문은 이어진 알림을 보는 순간 해소되었다.

[Warning!

대상: 저주받은 자가 사망할 시 추후 퀘스트 진행에 지장을 받을 수 있습니다.

각별한 주의 바랍니다.]

“……!”

분명한 의도가 느껴지는 알림. 거의 협박처럼 들리는 주의 문구가 빨갛게 깜빡였다.

가만, 이 말 뜻은.

저 인간, 아직 살아 있다.

그리고 시스템은 저 인간이 죽지 않기를 바란다. 가족 관계까지 알려 주며 내 양심과 측은지심을 자극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겠지.

‘그건 알겠는데…….’

그러면 어떻게 하라고?

내 의문에 화답하듯 연달아 알림이 떴다.

[Warning!

얼굴 없는 자 □□□□□의 힘이 활성화 상태입니다.

하기 조건을 달성할 시 비활성화됩니다.

연계 퀘스트를 확인하시겠습니까?

네 / 아니오]

당연히 [네]를 골랐다.

[메인 퀘스트: 혼돈을 막아라!

큰일입니다.

모조품 ‘빛나는 트라페조헤드론’에 의해 얼굴 없는 자 □□□□□의 힘이 활성화되었습니다.

이대로라면 도시에 번지는 혼돈을 막을 수 없습니다.

게이트 오픈을 저지해 도시를 구하세요.

보상: 게이트 소멸. 도시에 발생한 몬스터들이 사라집니다.

에테르-위키 업데이트

카페 리을(E) 등급 상승

???

제한 시간: 05:11:10]

[해당 퀘스트를 클리어하는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원하는 방법을 선택해 진행하세요.]

[1. 화신체 아스모데우스의 사망 (난이도: Easy) ☜ 추천

2. 게이트의 봉인 (난이도: Special Hard)]

“미친…….”

반사적으로 욕지거리가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하지만 내 옆에 선 두 사람의 시선을 느끼고 얼른 뒷말을 삼켰다.

대체 화신체 아스모데우스는 또 누구야?

그런 의문을 느낄 틈도 없었다. 곧장 설명이 덧붙여졌기 때문이다.

[※Hint: 화신체 아스모데우스는 현재 김아스(17세) 명의를 사용 중이니 참고 바랍니다.]

……뭐라고?

당연히 2번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1번을 고를 생각은 없다.

[한 번 선택한 결과는 변경이 불가능합니다. 신중한 선택 부탁드립니다.

2번 루트는 난이도가 매우 높아 추천하지 않습니다. 정말 이대로 진행하시겠습니까?]

당연하지!

이 시스템 창은 세 번이나 같은 내용을 띄운 뒤에야 겨우 내 뜻을 알아들었는지 다음 내용으로 넘어갔다.

[1. 화신체 보호하기

대상: 화신체 아스모데우스 사망 시 퀘스트가 실패합니다.

대상을 안전한 곳에 보호하세요.

대상을 안전한 곳에 숨기기: (미완료)

비고: 추가 1명에게 이공간 입장 권한이 부여 가능합니다.]

……일단 안전한 곳에 숨기라 이거지.

“……유현 씨.”

“네?”

“여기서 저희 가게로 돌아갈 방법이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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