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8화 (78/192)

78화

* * *

왜지?

아스는 생각했다.

대체 왜지?

그의 손은 옆의 인간에게 꽉 붙잡힌 상태였다. 꼼지락거리며 팔을 당겨 보았지만 손을 잡은 힘은 더욱 단단해지기만 했다. 낯선 온기가 손바닥을 통해 느껴졌다.

용산역의 쇼핑몰에서 이변을 감지했을 때 아스는 가장 먼저 마력을 확인했다.

[마력 절약 모드를 사용 중입니다.]

[마력 회복량: 35%]

[마력 부족으로 인해 일부 주문이 사용 시 제어가 불완전할 수 있습니다.]

저런 몬스터 하나쯤 해치울 수 있을 만큼은 마력이 회복된 상태였다.

곧장 마력을 풀려는 때, 부드러운 손길이 이마를 쓰다듬었다.

“아스, 잠깐 보고 올게. 여기서 기다려.”

자신을 약하고 어린 인간으로 보는 걱정 어린 눈길.

이제껏 짜증스럽다고 생각했는데, 어쩐지 그녀가 마음에 걸렸다.

자신의 정체를 알고 나면 이 인간은 머리를 쓰다듬어 주지도 얼빠진 얼굴로 웃어 주지도 않을 것이다. 경계하고 두려워하겠지.

상상만으로도 굉장히…… 기분이 나빴다.

그런 생각을 했기 때문일까.

[마력 제어가 불안정합니다.]

“……!”

이대로라면 제어되지 않은 마력에 옆의 인간이 휘말릴 것이다. 아스는 급히 마력을 거둬들였다.

어쩔 수 없다. 남은 방법은 자신이 죽는 것뿐. 그렇게 마음을 정했지만, 아스는 이해할 수 없었다.

왜 이 인간이 이토록 슬픈 표정을 짓는 걸까.

아스의 현재 몸은 진짜 몸이 아니다.

원시의 혼돈에서 마력을 모아 빚어낸 화신체 아스모데우스, 그것도 마력 부족으로 작고 연약한 불완전체.

이 얼빠진 얼굴의 인간은 자신을 그저 ‘중2병’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지만.

처음 다운로드 받은 인간계 지식(기초)에 없는 단어였기 때문에 아스는 중2병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아마 특정 연령대의 아이에게 발병하는 희귀병인 모양이다.

각설하고.

사실 이번 몸이 죽는다고 해도 원시의 혼돈으로 돌아간 뒤 새로운 화신체가 빚어질 따름. 진짜 존재의 소멸과는 다르다.

그래서 아스 자신은 그다지 위기의식을 느끼지 않았다. 그저 예정된 끝을 직감했을 뿐.

그런데 이 얼빠진 얼굴의 인간은 왜 이렇게 필사적인 걸까.

“유현 씨, 일단…… 아스를 가게로 데려가야겠어요. 거기라면 안전해요.”

“방법이 있습니다.”

기유현이란 남자가 허공에 문을 하나 만들어 냈다.

“이 공간을 강제로 부수는 문입니다. 다만 던전 게이트 인근은 접근이 불가능해서, 거기서부터는 걸어서 가야 합니다.”

공간이 부서지는 순간 공격이 올 테니 함께 가겠다고 덧붙인다.

“……알겠어요.”

사용법은 간단하다.

리을은 주저 없이 아스의 손을 잡고 문을 열었다. 주위의 검은 장막이 마치 신기루처럼 사그라들었다.

다음 순간 저녁노을에 붉게 물든 대던전 《어비스》의 석벽이 나타났다.

보통이라면 무척 아름다운 광경이었을 테다. 그러나 곧장 하늘의 게이트에서 검은 몬스터가 쏟아져 내린다.

괴이한 울음소리를 내며 몬스터가 달려들었다.

얼굴 없는 자가 불러들인 이계의 게이트에서 넘어온 괴물들. 이지는 없다. 다만 먹이를 찾아 끝도 없이 헤맬 뿐이다.

그 먹이란 것은 자신. 원시의 혼돈에서 빚어낸 화신체다.

저것들은 아스를 삼키기 전까지는 멈추지 않을 테다.

“……!”

아스의 존재를 인식한 검은 몬스터가 갑자기 빠르게 달려오기 시작했다.

검은 눈의 남자가 재빠르게 스킬을 사용했고, 빛의 그물이 뻗어 나가 몬스터를 옭아매었다.

“달리세요. 이것들은 제가 맡겠습니다.”

“……알겠어요! 아스, 내 손 잡아.”

저 검은 눈의 남자는 자신을 싫어할 터였다.

백광의 냄새가 났다.

어둠 속에서 실을 잣는 자의 힘을 쓰는 자라면 자신의 정체쯤 금방 간파했을 테다.

실제로 이 남자는 처음 만난 순간 냉랭한 표정으로 바로 자신의 정보를 훑었다.

그런데도 왜…….

맞잡은 손은 조금도 힘이 빠지지 않았다. 여전히 단단하게 자신을 붙잡고 끌어당긴다.

알고 있을 텐데. 적어도 내가 어리고 약한 인간이 아니라는 사실 정도는 말이다.

그런데 왜 이렇게 필사적인 거지.

쿵!

달리던 방향 맞은편에서 몬스터가 나타났다.

그대로 아스를 향해 달려들려는 것을 쌩, 날아온 화살이 저지한다.

“……너희!”

전에 만난 적 있는 쌍둥이였다. 돌아보는 리을을 향해 쌍둥이 중 여자애 쪽이 외친다.

“언니, 빨리 가세요!”

잠시 염려 섞인 시선을 보낸 리을은 다시 아스의 손을 잡고 달렸다. <카페 리을>의 문을 열고 몸을 던지듯이 밀어 넣으면서 외친다.

“권미음, 문 열어!”

“왜오오옭, 왜옥(갑자기 와서 무슨 소리냐?! 으악, 저 괴물들은 뭐냐)!”

“뀨우우!”

말하는 이상한 고양이가 깜짝 놀랐다. 옆에는 매번 이상한 소리만 읊어 대는 슬라임.

이 고양이와 슬라임조차도 자신을 꺼린 적이 없다.

“말할 시간 없어. 이공간 입장 권한 부여, 대상 우리 집 아르바이트생 김아스!”

“냐아아!”

은은한 빛이 몸을 휘감더니, 곧 벽에 이공간으로 이어지는 푸른색 게이트가 생겼다.

리을은 그대로 게이트 안으로 아스를 밀어 넣었다. 그러나 그녀는 안으로 들어오지 않는다. 꼭 붙잡았던 손이 떨어졌고, 아스의 손은 허공만을 할퀴었다.

“아스, 잘 들어.”

빛으로 아롱져서 또렷하게 보이지 않는 게이트의 너머, 리을이 아스의 어깨를 붙잡고 속삭였다.

“이 안에 있으면 안전해. 아무도 너를 찾지 못할 거야.”

땀과 먼지로 얼룩진 얼굴, 하지만 한없이 부드러운 리을의 갈색 눈동자를 아스는 눈에 깊이 담았다.

“심심하겠지만 절대 나오지 말고 딱 한나절만 버텨. 금방 올 테니까, 내가 올 때까지만 여기 있는 거야. 응?”

“……응.”

게이트가 닫히고 그녀가 완전히 보이지 않게 될 때까지 결국 묻고 싶은 말은 하나도 묻지 못했다.

-나를 왜 살리려고 해?

거대한 나무 둥치의 아래, 아스가 무릎을 끌어안고 주저앉았다. 온기가 사그라든 손이 서늘하다.

어쩐지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그제야 깨닫는다.

혼돈에서 떨어져 나온 한 조각의 화신체에 불과할지라도, ‘나’는 살고 싶었다고.

* * *

[1. 화신체 보호하기

대상을 안전한 곳에 숨기기: (완료)]

퀘스트가 끝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다음 퀘스트가 떴다.

[2. 모조품 빛나는 트라페조헤드론의 파편을 찾아라

모조품 빛나는 트라페조헤드론의 파편이 도시 여러 곳에 숨겨져 있습니다.

모든 파편을 제거하지 않는 한 게이트 오픈을 저지할 수 없습니다.

파편을 찾아 완전히 파괴하세요.

제한 시간(04:31:22)이 지날 시 퀘스트가 실패합니다.

파편 파괴하기 0/5: (미완료)

비고: 좌표 37°29'xx.4"N 127°00'xx.0"E]

무사히 아스를 이공간 안에 숨기고 돌아 나오자 뒤따라온 기유현의 모습이 보였다.

우선은 정보 공유부터 하자. 나는 눈앞에 나타난 시스템 창의 내용을 그대로 기유현에게 읽어 주었다.

“시스템이 그렇게 세세한 지시를요? 그건 처음 듣는…… 아니, 일단 알겠습니다.”

“혹시 더 궁금한 거 있어요?”

“굉장히 많지만…… 지금은 물어보지 않겠습니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다.

“저도 그런데. 지금은 안 묻는 걸로 할게요.”

갑자기 기유현이 나타난 일이며, 그의 능력이며…….

이것저것 머리를 메우는 의문을 한구석으로 치워 버렸다. 의문을 해결하는 것보다도 이 상황을 수습하는 것이 더 다급했으니까.

이렇게 극적으로 기유현과 나 사이에 ‘일단 나중에 이야기하자.’ 연합이 탄생했다.

트라 어쩌고의 파편을 파괴해야 이 사태를 해결할 수 있다 이거지.

시스템이 알려 준 저 좌표에 그 파편이란 것이 있을 텐데.

그런데 좌표로는 어떻게 이동하지.

고민하는데 옆에서 기유현이 웬 두루마리처럼 생긴 아이템을 꺼냈다.

“이동 마법 스크롤입니다.”

원래 도시 내에서 사용하는 것은 불법이지만, 지금은 비상사태니 괜찮다고 덧붙인다.

“방문한 적 없는 장소에 좌푯값만으로 이동하기는 어렵습니다. 위험한 장소일 가능성도 있고요. 좌표를 불러 주시면 제가 이동 마법을 쓰죠.”

“저어, 유현 씨.”

“네?”

“저랑 같이 가도 괜찮아요?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는데.”

“괜찮습니다. 퀘스트에 대한 것도 궁금하고, 리을 씨도 걱정되니까요.”

“……고마워요.”

스크롤을 찢는 순간 빛이 몸을 감싸고, 훅 정신이 어딘가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도착한 곳은 어느 평범한 놀이터.

이 넓은 곳에서 조각을 어떻게 찾지 고민할 필요는 없었다. 기유현이 백광의 그물로 금방 찾아냈기 때문이다. 거 스킬 엄청 편리하네.

나온 것은 별을 닮은 모양의 장식품이었다. 이게 트라 어쩌고의 파편인가.

[아이템: 모조품 빛나는 트라페조헤드론의 파편(☆☆☆☆☆)

모조품이지만 효과는 확실.

얼굴 없는 자의 힘을 강화합니다.]

파편을 손에 쥐는 순간 알림 창이 떴다.

힘을 주어 봤지만 쉽게 부서지지 않는다.

“리을 씨, 지금 낀 반지를 사용하세요.”

“반지요? ……설마 이거요?”

기유현이 내 손에 끼워진 크투가의 반지를 가리켰다.

이게 그렇게 대단한 물건이었나? 거의 커피 볶는 용도로만 사용했었는데.

반신반의하면서 시도해 보았는데.

화르르.

정신을 집중하자 피어오른 불꽃이 파편을 태웠다. 완전히 하얀 재가 되어 파편이 부스러진다.

……진짜 대단한 거 맞았구나.

곧장 퀘스트 화면에 새로운 좌표가 업데이트되었다. 다음 파편의 위치겠지.

“그럼 다음 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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