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화
* * *
용산의 현장은 혼돈이었다.
“헌터님, 조심하세요!”
김지나가 주의가 흐트러진 헌터를 향해 외쳤다. 호명된 헌터가 재빠르게 뒤를 돌아보며 무기를 휘둘렀다.
철퍽!
뒤에서 나타난 몬스터가 정면으로 무기를 맞았지만 대미지는 없었다. 검은 점액질이 잠시 흐물거리며 뒤로 한 걸음 물러났을 뿐이다.
‘몬스터? 아니, 그럴 리가……. 이런 몬스터는 처음이야.’
끊임없이 형태를 바꾸는 부정형의 검은 덩어리. 행동은 느리고 공격성은 거의 없다. 꼭 무언가를 찾듯이 주위 인간들을 툭툭 건드리며 주위를 배회한다.
특이한 점은 이쪽의 공격이 먹히지 않는다는 점. 물리적으로 약간 밀어내기만 가능할 뿐, 어떤 공격을 해도 저 몬스터를 쓰러뜨릴 수 없었다.
기질이 예민한 몇몇 사람은 몬스터를 보고 착란을 일으켰다. 쳐다보기만 해도 정신력에 충격을 주는 듯했다.
김지나가 이제껏 던전에 대한 수많은 책을 통째로 외웠지만, 어떤 책에도 저런 것에 대한 데이터는 없었다. 애초에 생명체가 맞기나 한지 모르겠다.
그리고 이변이 또 하나 있었다.
‘외계 게이트…….’
김지나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기이한 빛을 뿜어내는 커다란 구멍이 하늘에 떠 있었다.
아직까지는 잠잠하지만 요사스러운 빛이 점점 더 거세진다. 금방이라도 터질 듯 일렁거리는 하늘은 꼭 그녀를 바라보는 것 같다.
균열과 유사해 보여서 우선 측정기로 마력을 측정하려 했지만 에테르 측정기가 오류를 일으켰다. 일반적인 균열과는 다르다. 이제껏 어떤 균열도 이런 패턴을 보이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저건…….’
문득 얼마 전 읽은 자료가 머리를 스쳤다.
현재는 사라진 <던전관리청>의 전신, <각성자 센터>에서 발견된 극비 서류.
약 10년 전 단 한 번 발생했던 ‘외계 게이트’에 대한 기록이었다.
그것과 놀랍도록 닮았다.
[얼굴 없는 자 □□□□□의 게이트
완전 개방까지 남은 시간 00:58:32]
얼굴 없는 자.
지나의 예상이 맞는다면, 저 외계 게이트를 통해 나타나려 하는 것은…….
그녀는 속이 타는 것을 느꼈다. 믿기 어렵지만, 정말 예상이 맞다면 엄청나게 위험한 상황이다. 빨리 사람들을 대피시켜야 했다.
“선생님, 그쪽으로 가시면 안 돼요!”
“요원 따라서 대피소로 이동하세요. 대피소는 안전해요!”
우왕좌왕하는 사람들을 향해 지나는 큰 소리로 외쳤다.
각성자가 아닌 일개 공무원일 뿐인 지나가 할 수 있는 일은 얼마 없었다. 그저 한 명이라도 피해가 적도록 사람들을 유도할 뿐.
그러나 하늘의 게이트는 점점 더 강한 빛을 내뿜었으며, 그에 따라 검은 몬스터들의 힘도 강해졌다.
낙담이 안개처럼 피어오를 때.
어디선가 하늘을 가르고 하얀 새가 나타났다.
긴 황금빛 꼬리를 가진 새는 남산 방면에서 날아 와 천천히 공중을 한 바퀴 돌았다. 달빛을 받아 노랗게 빛나는 모습은 마치 번개처럼도 보였다.
지나는 곧장 저 새가 무엇인지 알아보았다.
혼란에 빠진 사람들조차 무심코 시선을 빼앗기게 될 법한 신비함이었다.
이토록 소란스러운데 동시에 고요하다. 어두운 하늘을 수놓는 빛의 족적이 고통을 지워 낸다.
그리고 외계 게이트 가까이 날아간 긴꼬리불사조는 다음 순간.
“아……!”
빛의 조각이 되어 비산한다.
쿠쿠쿵-
묵직한 우레가 울리더니, 뇌우가 쏟아졌다. 빗줄기가 주위의 검은 점액질을 녹이기 시작했다.
조금 전까지 사방을 어지럽히고 사람을 공격하던 몬스터가 금방 힘을 잃고 스르륵 녹아 대지에 흡수되었다.
천천히 하늘의 구멍이 닫혔다.
대피 유도용 바리케이드 너머, 누군가가 뒤늦게 환호성을 질렀다. 그리고 이어지는 박수와 함성.
“맙소사!”
“살았어! 살았다고!”
모두가 어안이벙벙했지만, 살아남은 건 진짜였다.
어째서 이런 일이 발생했는지 의문은 여전하다. 경위 조사, 뒤처리, 복구 등…… 남은 일거리를 생각하면 눈앞이 깜깜하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지나도 그 환호성에 공감했다.
이제 끝났다. 어쨌건 살아남았다.
남은 민간인들을 살펴 다친 곳이 없는 사람에겐 귀가 안내를 하려는 그때.
점액질 근처를 지나던 지나는 깜짝 놀랐다.
막 녹아내린 검은 점액질 안에서 익숙한 형체가 나왔기 때문이다.
바로 그녀의 말썽쟁이 손위 형제 말이다.
몇 년 전 세상에 이름을 떨치겠다느니 이상한 소리를 하며 지존으로 이름을 바꾸고 가출한 오빠. 전단지까지 만들어서 행방을 수소문했는데도 소식이 없었다.
그러더니 갑자기 무슨 상해 사건에 연루됐다지, <던전관리청> 조사팀 중요 참고인이라지, 또 실종되었다지, 온갖 말썽에 휘말렸대서 얼마나 걱정했는데.
점액질에서 풀려난 그는 아직 상황 파악이 안 되는 듯 어안이 벙벙한 기색이었다. 지나는 감격에 차 그에게 달려갔다.
“어? 네가 왜 여기…… 김지나?”
“으이그, 이…… 이 화상아!”
짜악! 등에 강렬한 한 방이 날아갔다.
아, 아얏, 하고 등을 문지르는 멍청한 꼴은 그녀가 기억하는 오빠의 모습이 맞았다.
안도의 마음이 들면서 울컥 눈물이 차올랐다.
마지막으로 오빠를 보았을 때가 기억에 선연했다.
“김지훈, 그 짐은 다 뭐야? 이 새벽에 뭐 해?”
“후후훗, 동생아, 나는 그 이름을 버렸다. 앞으로 나를 지존이라고 불러라.”
“미쳤나 봐…….”
“그럼 아디오스! 이 지존의 이름이 헌터계를 호령할 때 다시 보자!”
“잠깐, 엄마는 알아? 오빠. 어디 가는데? 야! 그 이름…….”
지나는 몇 년 전 그에게 하지 못했던 말을 드디어 할 수 있게 되었다.
“오빠, 그 지존이라는 이름…… 진짜 별로야.”
“…….”
그러니까 집에 다시 돌아와.
* * *
눈앞에 떠오른 시스템 알림을 보고 나는 안도했다.
[축하합니다!
얼굴 없는 자 □□□□□의 힘이 비활성화되었습니다.
게이트가 소멸합니다.]
[축하합니다! ‘메인 퀘스트: 혼돈을 막아라!’를 완료했습니다.
보상을 수령해 주세요.]
[에테르-위키가 업데이트되었습니다.]
[카페의 등급이 D가 되었습니다.]
[이공간에 새로운 구역이 열렸습니다. 새로운 아이템을 설치할 수 있습니다.]
끝났다.
하늘의 구멍이 점차 닫히는 것을 보며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아직 의문도, 뒤처리할 일도 남았지만 일단 가장 큰 고비는 넘겼다.
완연히 밤을 맞이한 하늘에서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초겨울의 장대비는 몸이 으스스할 정도로 춥다.
비 오는 날은 따뜻한 커피지.
갑자기 이공간에 밀어 넣어서 아스가 많이 놀랐겠지. 우선 가게로 돌아가서 아스를 챙기고 같이 커피를 마셔야겠다.
오늘은 이미 카페 주인에게 어울리지 않는 일을 너무 많이 해치웠으니까, 휴식이 필요하다.
그래, 시간은 늦었지만 계속 도와준 기유현에게도 같이 가자고 해야겠다.
권지운한테는…… 내일 연락하고.
그렇게 정한 나는 기유현을 찾아 고개를 돌렸다.
그때 눈앞에 빨간 불이 반짝거렸다.
[Warning!
장소: <백은 길드>의 결계가 파괴되었습니다.]
뭐……라고?
* * *
짧은 고민 끝에 난 다시 <백은 길드>로 돌아가기로 했다.
결계가 파괴된 데에 내가 가 봐야 할 수 있는 일은 없을 테지만, 일부러 시스템이 경고 알림을 띄운 데는 이유가 있을 테다.
뭐, 권지운이 ‘너는 괜찮으니까 집에 돌아가.’라고 하면 그때 집에 가서 따뜻한 커피나 마셔야지.
그런 생각으로 기유현과 함께 <백은 길드>를 향했는데, 상황은 생각보다 심각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에요?”
“잠깐, 여기 함부로 들어오시면 안 됩니다.”
“권지운 가족이에요! 지나가게 해 주세요.”
앞을 막았던 공무원으로 보이는 사람이 안타까운 표정으로 길을 비킨다.
왜? 왜 저런 표정을 짓는 거지?
어느덧 새벽 1시가 가까운 시각인데도 <백은 길드>의 지하실 앞에는 꽤 많은 사람이 있었다.
그런데 의아한 것은 그들 대부분이 공무원이었고, 정작 <백은 길드> 사람들은 보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박희영 헌터를 포함해서 넷이 전부였다. 늦은 시각이나 던전 공략으로 인한 부재 등을 감안해도 너무 적다.
다들 어디 간 거지?
그리고 권지운은 또 어디…….
“……아.”
그때 사람들 틈으로 열린 결계실의 안이 보였다.
균열? 아니, 결계?
복잡한 문양이 그려진 반투명한 막의 한가운데 권지운이 있었다.
의식은 없다. 옆에서 누군가 큰 소리로 그를 불렀는데 미동도 하지 않았다. 어딘가 아픈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마법사 클래스로 보이는 헌터가 강제로 결계를 열려 했다. 그러나 한참 중얼거리며 스킬을 쓰던 마법사는 고개를 저었다.
“큿…… 안 됩니다. 외부의 접속 시도에 일절 반응하지 않습니다. 이대로라면 강제로 파훼하기는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내가 긴꼬리불사조를 데리고 이곳을 떠나고 채 두 시간이 지나지 않았다.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기에 권지운이 저 안에 혼자 갇혀 있단 말인가. 저거 그냥 결계 유지 장치 아니었어?
홱. 나는 박희영 헌터를 돌아보았다.
“희영 씨, 어떻게 된 거예요? 계속 권지운 옆에 있었잖아요?”
“그…… 그건…….”
얼굴은 창백하고 입술은 가늘게 떨린다. 다른 때라면 내게 싫은 소리 한마디 꼭 했을 텐데, 박희영 역시 크게 충격을 받은 듯했다.
“부길드장님이……. 겨, 결계실의 결계는 현재 부길드장님만 가동이 가능해요. 아까…… 흑시, 결계에 이상이 없는지 혼자 확인한다고 하셔서. 저는 자, 잠깐 바깥 상황을 보고 왔는데, 그 사이에…….”
긴꼬리불사조도 되살렸고 결계실의 오염도 처리했겠다. 이제 결계실은 안전하니, 권지운이 원하는 대로 하도록 두고 본인은 몬스터 때문에 혼란스러운 바깥을 살피러 갔다.
그리고 돌아오니 이렇게 되어 있어서 <던전관리청>에 신고했다.
원인이나 정황은 모른다는 말.
……미심쩍은 부분이 있긴 했지만 어쨌건, 그녀의 말은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