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3화 (83/192)

83화

“길드원들은 다 어디 갔어요? 누구 상황을 아는 다른 사람은 없어요?”

이 질문에는 다른 사람이 대답했다.

“그게…… <백은 길드>의 헌터는 이게 다입니다.”

“네?”

“던전 로테이션 때문에 없는 헌터도 있긴 한데 얼마 안 됩니다. 그게…… 최근에 일이 있어서, 많이 줄었어요.”

불편한 이야기인 듯 시선을 내리깐다. 다시 박희영이 떨리는 목소리로 읊조렸다.

“아까 그, 그 새 때문에 문제가 터진 게 틀림없어요! 그렇지 않고서야 왜, 부길드장님이 갑자기……. 흑.”

구슬픈 울음이 터진다. 그녀는 정말 큰 충격을 받은 것처럼 보였다.

“크흠, 진정하시고. 단순 결계석 오작동일 수도 있습니다. 다시 한번 해 보죠.”

마법사가 눈을 감고 앞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나 반투명한 막은 약간 흔들리기만 할 뿐, 아무런 변화가 없다.

“쿨럭, 쿨럭!”

스킬의 반동 때문인지 거친 기침을 터뜨리며 마법사가 몸을 비틀거렸다. 그 바람에 스킬이 끊겼다. 다시 마법사가 앞으로 손을 뻗으려 하는 순간이었다.

“됐어, 됐어. 그럴 필요 없네.”

인파의 뒷줄에서 한 나이든 남자가 앞으로 나왔다.

거들먹거리는 걸음걸이. 주위 사람들이 긴장한 표정으로 반걸음씩 뒤로 물러나는 것을 보아 지위가 높은 것 같았다.

“이럴 시간이 없어. 길드에 설치된 방호 결계가 얼마나 중요한지 다들 알 거 아닌가. 날이 밝는 대로 새로운 결계 제작 작업에 들어가도록 하겠네.”

“잠깐…… 그게 무슨 말이에요?”

“못 들었나? 말 그대로네. 제 애비 증발하고 젊은 헌터가 결계를 맡더니 제대로 관리를 못한 모양이야.”

“…….”

이 순간 나는 이 거만한 틀딱이 엄청나게 싫어졌다.

“방호 결계가 한 군데 파괴되면 도시 전체의 결계에 악영향을 끼친다. 이대로 두면 약해진 고리를 타고 균열이 터질 확률이 높아지네. 그대로 둘 순 없지. 당장 여길 닫게.”

“닫는다니…… 그럼 권지운은요?”

“깨어나면 스스로 봉인을 파훼하고 나오겠지. ……깨어난다면 말일세.”

“당신…… 뭐 하는 사람이야?”

“인사가 늦었군. 나는 <던전관리청> 방호 결계 대응관 김두천이라고 하네.”

탁! 악수를 하려고 뻔뻔하게 내민 손을 쳐 냈다.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지금 저 자의 말은, 혼수상태가 된 권지운을 그대로 결계 안에 방치하겠다는 말 아닌가.

방호 대응 어쩌고가 얼마나 잘난 사람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떻게 권지운을 두고 그런 말을 할 수 있지.

권지운에게 개인적인 감정이 있는 것과 별개로, 나는 안다.

탑급 힐러에 유명 길드의 부길드장, 써먹기 좋은 외모에 젊은 나이.

권지운을 대단하다고 치켜세우면서 던전관리청 놈들이 그에게 어린 시절부터 얼마나 많은 짐을 지웠는지 똑똑히 기억하는데.

“그게 지금 할 말이에요? 어떻게 관리청에서 그럴 수가 있어요?”

“호오. 그럼 아가씨가 책임질 수 있단 말인가?”

“뭐요?”

“쯧, 일반인이라 잘 모르는 모양인데.”

이 순간 나는 이 거만한 틀딱이 죽이고 싶을 정도로 싫어졌다.

“각 길드의 방호 결계가 하나의 커다란 결계를 이루고, 그건 고등급 균열 발생률을 억제하는 역할을 한다네. 균열을 닫을 때도 이 결계의 힘이 도움을 주지. 그런데 만약 이 연결고리가 파괴된 탓에 도시 한복판에 A급 균열이라도 발생하면, 아가씨가 책임지고 처리할 수 있냐는 말일세.”

“무슨, 그런……!”

화가 나서 소리를 치려던 순간이었다.

“……이상하군요.”

낮게 가라앉은 차분한 목소리가 공기를 갈랐다. 기유현이었다.

“뭐가 말인가?”

“아직 원인도 자세한 상황도 알 수 없는데 급히 결계를 닫는다고 하셔서요.”

“흐흠.”

“제가 알기론 위기 대응 프로시저가 그렇지 않을 텐데, 꼭…… 빨리 결계를 처리하고 싶어 하시는 것 같아서. 뭐 찔리는 데라도 있으신 건지.”

거만한 틀딱이 못마땅한 표정으로 기유현에게 물었다.

“자네는 뭔가?”

“그냥 리을 씨 동행입니다. 자세히 알 건 없으시고.”

생긋. 잠시 거만한 틀딱을 가만히 응시하던 기유현이 입꼬리를 끌어당겼다.

“상사한테 아무 언질도 듣지 못하셨나요? 승진 가능성은 없으신 모양입니다.”

“뭐, 뭐, 뭐뭣……!”

승진이 버튼이었는지 붉게 달아오르는 거만한 틀딱 앞에서 휙 고개를 돌린다.

“그리고 또 하나. 이곳의 방호 결계가 파괴된 것은 아닙니다.”

“네? 그게 정말이에요?”

“네, 정확히는 한 번 파괴되었으나 직후에 재생성되었습니다.”

“무, 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

거만한 틀딱의 항의를 무시하고 기유현이 말을 계속했다.

“말씀하신 대로 이 결계는 권지운 헌터의 관리하에 있습니다. 결계가 생명체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자기 방호를 하죠. 권지운 헌터가 치명상을 입은 순간, 그를 보호하기 위한 결계가 발동된 것으로 보이는군요.”

“치명상이라고요?”

검은 눈에 잠시 씁쓸한 빛이 비쳤다.

“이상한 일이죠. 힐러 클래스라고 하나 A급 헌터인 권지운 헌터가 다른 곳도 아닌 길드 건물 내에서 치명상을 입다니.”

자연히 시선이 기유현의 움직임을 뒤따랐다. 그의 발이 박희영 헌터의 앞에서 멈췄다.

“박희영 헌터……라고 하셨죠? 무슨 이변은 느끼지 못하셨나요?”

흠칫, 어깨가 떨린다.

“나…… 나는 모르겠어요. 밖에, 밖을 보고 오느라…….”

“그래요, 밖. 그러면 오늘 발생한 게이트가 소멸하는 모습은 보셨겠군요.”

“그야, 봤죠. 하늘에 크게 나타났으니까.”

“그 뒤 이변을 발견하고 신고하셨는데 이렇게 빨리 대응관이 직접 나오다니, 인맥이 있으셨나 봅니다.”

공중에서 시선이 얽힌다. 박희영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나, 나, 나를 의심하는 거예요?”

“그거야 천천히 조사해 보면 알 일이죠.”

기유현은 박희영의 옆으로 바짝 다가섰다. 잔뜩 낮춘 목소리는 박희영과 나한테만 겨우 들릴 정도로 작았다.

“당신에게 접근한 그쪽이 구해 주리란 기대는 하지 않는 게 좋을 겁니다. …….”

뒷말은 내게 들리지 않았다. 대체 무슨 말을 했는지는 모르겠으나, 기유현이 한걸음 물러난 다음 박희영의 낯빛이 새하얗게 질렸다.

사시나무처럼 떨리는 눈에 나타난 감정은…… 공포였다.

이어 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읊조리듯 토해낸다.

“그…… 그러려던 게 아니었어. 부길드장님이 나, 나를 의심하지만 않으셨어도…….”

기유현과 내가 떠나고 황금빛 꼬리를 늘어뜨린 흰 새가 하늘을 가로지르며 빛을 흩뿌릴 무렵.

혼자 남은 권지운이 박희영을 불러 물었다고 한다.

죽기 직전의 긴꼬리불사조를 가져다 둔 것이 박희영이냐고.

“누가 지시했는지는 말하지 않아도 돼. 알고 있으니까.”

“부길드장님, 저는 아무것도……!”

“왜 하필이면 이런 짓을 했는지만 솔직하게 말하면 내 선에서 처리하지.”

그 말에 당황한 나머지 몸싸움을 하다…… 권지운이 크게 다쳤고.

그 순간 정지 상태이던 결계가 발동하면서 권지운의 몸을 보호.

박희영은 같은 배후를 둔 저 거만한 틀딱에게 연락해서 수습하려 했다.

“자네! 그 입 다물게!”

거만한 틀딱이 버럭 화를 내는 소리가 멀게 들렸다.

내 인내는 거기까지였다.

“어떻게…….”

박희영이 내게 이제까지 퍽 재수 없게 굴어도 상대하지 않고 무시했던 이유는 간단하다.

그래도 그녀는 권지운의 부하고, 권지운에게는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런데 배신한 것도 모자라 권지운을 해치려 하다니.

왜? 대체 무슨 대가가 있어서 그런 짓을 해?

화를 참지 못하고 성큼 앞으로 발을 내딛는데, 기유현이 내 팔을 붙잡았다.

“리을 씨.”

“말리지 마요.”

“……그럴 리가요.”

커다란 손이 내 손 위를 덮는다. 길고 단단한 손가락이 꽉 쥔 주먹 안을 파고 들었다. 간지럽다.

나도 모르게 있는 힘껏 주먹을 쥔 탓에 손바닥에 상처가 나 있었다. 흥분한 탓에 아픈지도 몰랐다.

붉게 피가 배어 나오는 상처를 기유현이 손가락으로 살짝 쓰다듬더니 포션 몇 방울을 떨어뜨렸다. 금방 상처가 낫는다. 용건은 그것뿐이었다는 듯, 손을 놓고 한 걸음 물러난다.

“그냥, 이런 사람 때문에 리을 씨가 아파할 필요는 없어요.”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 * *

상황은 모두 정리되었다.

10분이 채 지나지 않아 <던전관리청>에서 새로운 사람이 나타났고, 박희영 헌터는 신병이 구금되었다.

“왜…… 처, 청, 청장님이 어떻게 직접 여기까지……. 지금 제주에 있던 게……!”

“데려가게.”

거만한 틀딱도 어디론가 끌려갔다.

이제 결계 안에 갇힌 상태인 권지운만 구해 내면 된다. 그렇게 새로운 마법사가 다시 결계를 열려 했지만…….

“크흑, 컥!”

결계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스킬의 반동으로 거센 기침을 터뜨린 마법사의 입에서 핏방울이 떨어졌다.

“기다리세요.”

잠시 가만히 있던 기유현이 엷은 한숨을 쉬며 앞으로 나섰다.

“외부에서 결계를 강제로 개문하기는 힘들 겁니다. 결계는 시전자를, 그러니까 권지운 헌터를 보호하기 위해서 작동했어요. 외부의 접근을 공격으로 인식하고 밀어내는 거고요.”

마법사가 당황해서 대답했다.

“하지만 이걸 열지 않으면 안에 있는 사람을 못 구하는 거 아닙니까.”

“강제로 결계를 개문할 게 아니라, 사람이 결계 안으로 들어가서 그를 깨워야 해요.”

“그건 너무 위험합니다. 육안으로 보이지 않을 뿐이지, 저 안은 에테르 흐름이 뒤엉켜 있어요.”

“걱정 마세요. 제가…….”

“내가 할게요.”

“……잠깐, 리을 씨?”

“내가 할 수 있어요.”

[메인 퀘스트: 은빛 폭풍 속으로

결계는 시전자를 보호하고자 합니다.

결계에 접촉해 시전자를 구해 내세요.

결계에 접촉하기: 0/1

보상: 기억의 조각, 대상의 생환]

나는 마른 눈으로 눈앞의 시스템 창을 훑어보았다.

지금 이런 퀘스트를 띄운다는 것은 내가 할 수 있다는 뜻이겠지. 그러나 꼭 나를 종용하는 이 시스템 때문에 하겠다고 말한 것은 아니었다.

회귀 전에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백은 길드>는 견고했고, 권지운 역시 안전했다.

그래서 이번에도 무의식적으로 권지운은 아무 일 없으리라 생각했는데.

하지만 다시 회귀 전의 과거와는 다른 일이 일어났다. 내가 아는 한에서 변수는 미래에서 돌아온 나뿐.

이 상황이 만약…….

만약 내가 미래를 바꿨기 때문이라면?

아스를 구한 일이 큰일이 되었듯, 내가 미처 알아차리지 못한 어떤 행동이 이 일로 이어졌다면?

……나 때문이면 어떡해?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