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화
상이라니, 상당히 뜬금없는 소리였다.
“어, 뭐…… 상?”
“마침 ‘헌터의 밤’ 행사 때 표창장 수여식이 있을 텐데, 얼른 담당자에게 문의해야겠어.”
“뭐? 오빠, 그, 마음은 고마운데 헌터가 균열에 대응한 건 대상 외 아니야?”
‘헌터의 밤 기념’인데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
이유인즉슨, 십 년 전까지 용감한 헌터에게 표창을 수여한다는 명목으로 포상금을 많이 해먹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헌터이니만큼 던전에 들어가는 일은 비일비재해서 사유는 가져다 붙이기 나름이다. 돌려돌려 돌림판식 포상금 지급이 횡행했다.
그 이후 단순히, ‘균열에 잘 대응했다.’, ‘던전을 성실히 공략했다.’ 따위의 사유로는 헌터에게 포상이 금지. 구체적 사유 명시와 엄격한 심사가 필수가 되었다.
모든 규정에는 다 생긴 이유가 있다더니…….
“그렇지 않단다. 각성자라고 하나 리을이 너는 길드나 공적 기관 소속이 아니니까. 그럴 의무가 없는 상황에서 나선 건 충분히 대단한 일이야.”
“그…… 나는 그냥 우리 가게 아르바이트생이 걱정되어서 그런 건데.”
“그러면 더더욱 대단하지.”
“으.”
이제 보니 권지운 좀 팔불출 같아.
전에는 왜 몰랐을까. 아니, 그냥 모르려 한 건가.
민망함에 입만 뻐끔거리는데, 노크 후 응접실의 문이 열렸다.
“그래요, 권지운 헌터님 말이 맞아요.”
“어…… 지나 씨? 여기 와 있었어요?”
“아까 기유현 헌터님께도 경위를 전해 들었는데, 충분히 표창 대상에 해당될 것 같습니다. 제가 담당자에게 전달해 놓을게요.”
“아니, 안 그래도 괜찮은데……. 지나 씨 일 바쁘지 않아요?”
“에이, 그 정도는 아니에요. 맡겨 주세요.”
…….
…….
그렇게 물 흐르듯 심사가 진행되었고.
결국 오늘이 오고 만 것이다.
포상금과 부상(<던전관리청> 본청 구내식당 식사권과 <헌터 마켓> 수수료 할인권이었다…….)을 받은 건 좋지만, 생각보다 너무 민망하다.
“시간도 이렇게 됐으니, 점심 어떠니?”
권지운이 내게 물었다.
음, 나오기 전에 동물들 밥도 넉넉하게 줬고 아스 점심도 챙겨 놨으니 괜찮겠지.
“그래, 좋아. 어디로 갈 건데?”
권지운과 행사장을 빠져 나오려는데, 맞은편에서 지나가 나를 발견하고 다가왔다.
“리을 씨, 축하드려요.”
“아하하, 감사해요.”
당연하다면 당연한 이야기지만, 원래 모습으로 돌아온 지나의 오빠 지존은 곧장 체포되었다고 한다.
살인미수 혐의 때문은 아니다. 김덕이 할머니의 공방이 불탄 사건에 한해서라면, 지존은 용의선상에서 벗어났고 중요 참고인에 불과하다.
다만 사정을 참작한다고 해도 여러 불법적인 일에 손을 댄 의혹이 있다. 이후 조사 결과가 나와 봐야 알겠지만 처벌을 피하기는 어려울 듯하다.
“뭐, 그 인간 자업자득인 걸 누굴 탓하겠어요. 목숨을 건졌으니 다행이죠. 처벌받은 다음에는 정신 차렸으면 좋겠어요.”
지나는 그렇게 말했지만…….
피곤해 보이기는 하지만 표정은 한결 편안하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 안심했다.
본청 소속 공무원의 가족이 대형 사건의 중요 참고인이다. 그 때문에 지나는 곧장 <던전관리청>을 그만둘 마음을 먹었다.
그녀의 생각도 있었고, 주위에서 무언의 압박도 있었겠지.
그런데 뜻밖에 나선 사람이 상사인 긴급 던전 대책 팀장 강현우 헌터였다.
“지나 씨처럼 우수한 어시스턴스를 놓칠 수는 없습니다.”
“제발 본청에 남아 주세요. 지나 씨가 잘못한 일이 아니잖습니까.”
그가 보내준 전폭적인 지지 덕분에 결국 그만두지 않기로 결정했다는데.
이 부분 이야기가 굉장히 궁금하다. 자세히 듣고 싶다.
“지나 씨, 지금 점심 먹으러 갈 건데 같이 어떠세요?”
“그러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지금도 리을 씨가 표창 받으시는 날이라 잠깐 나온 거예요. 금방 들어가 봐야 해요.”
저런…….
지나는 한 손에는 서류철 여러 개, 반대쪽 손에는 책 한 권을 들고 있었다.
표지에 쓰인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던전관리청> 비각성자 전형 진급시험 대비 FINAL 완전 정리 한 권으로 끝내기.』
저건 그거군. 아주 느린 속도 1타 둔기. 휘두르면 한 방에 상대를 보내 버릴 수 있을 것 같다.
강현우 헌터의 말이 지나에게 어떤 감명을 준 모양이다. 그녀는 기운 넘치는 걸음으로 1타 둔기, 아니 책을 들고 떠나갔다.
……다음에 만나면 진하게 커피나 타 줘야겠다.
* * *
지나와 헤어진 뒤, 권지운이 예약한 식당에 가기 위해 나란히 걷던 중이었다.
“……?”
나는 몸에 딱 맞은 검은색 정장을 입은 어린아이와 마주쳤다.
머리카락은 깔끔하게 빗어 이마를 드러냈고, 얼굴은 무표정하다. 주위를 둘러싼 어른들에게는 무관심한 듯, 지루한 기색마저 보이는 차가운 눈동자.
쉽사리 다가가기 힘든 서늘한 분위기가 흐른다.
주위 사람 한둘이 말을 붙이려다 냉랭한 반응에 물러서는 것이 보였다.
이상하게 낯이 익은데. 기분 탓인가.
“권리을, 왜 그래?”
“아, 아니야. 지금 갈게.”
다섯 발짝 앞에서 권지운이 나를 부른다. 나는 얼른 그를 따라 걸음을 옮기려 했다.
“……아.”
그런데 마침 이쪽으로 고개를 돌린 어린아이와 눈이 마주쳤다.
냉랭하던 얼굴이 한순간에 발그레하게 달아올랐다.
“어! 야, 빨리 와 봐!”
“왜 그래? 짜증나니까 별일도 아닌 걸로 부르지 말라고 했지.”
“멍청아! 지금 그럴 때가 아니라니깐!”
홱, 조금 떨어진 곳에 있던 똑같은 차림에 똑같은 얼굴을 한 아이를 낚아챈다. 그리고 둘이 동시에 이쪽으로 달려오기 시작했다.
설마, 저 애들은…….
“언니, 안녕하세요! 여기는 무슨 일이에요? 깜짝 놀랐어요!”
“이 멍청아! 누나 오늘 표창 받는 것도 몰랐어? 난 알았는데!”
“누구 맘대로 누나라고 부르는 건데, 멍청아!”
“누나라고 불러도 되는데…….”
“뭐래, 된다고 하시잖아!”
“나도 언니 표창 받는 거 보러 가고 싶었는데! 오늘 완전 귀찮은 일 있어서 못 갔어요. 축하드려요. 진짜 멋있어요.”
“축하드려요!”
내가 한마디를 채 끝내기도 전에 와르르 쏟아져 들어오는 경쾌한 목소리.
주신우, 주신희 쌍둥이였다. 정장 차림을 하니 너무 분위기가 달라져서 일순 못 알아봤다.
아니, 옷이 문제가 아니라……. 아까 그 냉랭하던 표정이 너무 달라서.
“잠깐! 주신희 헌터, 하던 이야기는 마저 해야지.”
그때, 아까 주신희에게 끈질기게 말을 걸던 사람이 버럭 화를 내며 주신희의 어깨를 붙잡으려다…….
“……꺼져.”
그녀의 시선을 받고 물러났다.
맞아, 회귀 전엔 원래 이랬지.
음. 더 열심히 던전 디톡스를 해야겠다…….
쌍둥이의 옆에 기유현이나 한이성 헌터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여기는 <던전관리청> 본청 대회의실 앞. 아이들끼리만 여기에 볼일이 있어서 온 건가?
“언니는 이제 어디 가세요?”
“이제 점심 먹으러 가려고.”
“……리을아.”
도통 내가 오지 않자 저 앞에서 권지운이 다시 돌아왔다.
“아, 잠깐 아는 애들을 만나서.”
“그래?”
“……!”
쌍둥이가 권지운을 보고 크게 놀란 얼굴을 했다.
눈동자가 바쁘게 나와 권지운을 번갈아 보았는데, 어째 긴장한 기색이었다. 왜지? 이 애들, 같은 헌터를 경계하는 건가?
자기들끼리 돌아서서 작은 목소리로 속닥거리기를 잠시. 다시 돌아온 쌍둥이 중 주신희가 먼저 결연하게 외쳤다.
“길…… 기유현 헌터님도 오늘 꼭 오고 싶어 했어요!”
“마, 맞아요! 꼭 와서 축하해 드리려고 했는데!”
“언니, 일부러 안 오신 거 아니에요.”
안다. 벌써 전화로 축하 인사도 받았으니까.
긴꼬리불사조를 살린 일도 권지운을 구한 일도 기유현과 같이 한 거라, 혼자서 표창을 받기가 퍽 민망했다. 기유현은 길드 소속의 헌터라 표창 대상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작 그는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지만…….
“왜 그렇게 생각하세요? 리을 씨가 한 일에 대한 정당한 상입니다, 마음 편히 받으세요. 그날 직접 참석하지 못해서 아쉽습니다.”
“아, 그날 바쁘신가 봐요?”
“네, 조금 귀찮은 일을 처리해야 해서. 본청에는 저를 보면 불편하실 분들도 많고요.”
“대체 무슨 일을 해서 그렇게 된 건데요…….”
“하하, 어쩌다 보니……. 미리 축하드립니다.”
그런 대화를 했었지.
“응, 들었어. 무슨 바쁜 일이 있다며?”
기유현을 변호하고 싶었던 듯, 주신우가 재빨리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 늙은 너구리가 빨리 입만 열었어도 되는 거였……. 아야! 아야야!”
주신희가 사정없이 주신우를 꼬집고는 목소리를 낮추었다.
“이 멍청아! 그 이야기를 하면 어떡해! 비밀이라고 하셨잖아.”
“그치만, 그 늙은 너구리가 뻗대지만 않았으면 되는데. 그 사이에 누나가 저런 흰 머리랑 밥을 먹는다고 하잖아.”
“괜찮아. 내가 보기엔 길…… 기유현 헌터님이 아직 유리해.”
“정말?!”
“그래, 저녁이 아니라 점심이니까 아직 승산이 있어. 저녁은 위험하지만!”
얘들아, 다 들린다…….
대충 무슨 오해를 한 건지는 알겠는데 이래서는 끝이 없겠다.
나는 쓴웃음을 삼키며 우선 권지운에게 쌍둥이를 소개했다.
“오빠, 아마 알 것 같지만 이 아이들은 <청라 길드>의 주신희, 주신우 헌터.”
“…….”
경계심 가득한 표정으로 쌍둥이가 살짝 고개를 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