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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화 (87/192)

87화

“그래? 아주 친한 사이처럼 보이는구나.”

“어? 아, 응. 우리 카페 단골이야.”

쌍둥이가 깜짝 놀라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본 뒤 다시 나를 보았다.

“다…… 단골이요?”

“응, 아니야?”

“단골 맞아요, 언니! 나 단골 할래요.”

“나…… 나도!”

열심히 고개를 끄덕인다. 이렇게 보면 정말 평범한 애들인데 말이지.

“얘들아, 그리고 이쪽은 <백은 길드> 부길드장인 권지운. 우리 사촌 오빠야.”

“……!”

“사촌이에요?”

쌍둥이가 서로의 얼굴을 쳐다본 뒤 다시 나와 권지운을 본다. 이윽고 둥근 뺨에 환한 웃음이 피어올랐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눈이 반짝거린다. 묘하게 경계하던 기색은 어느새 온데간데없고 활발한 표정으로 돌아왔다.

쌍둥이에게도 점심을 권했지만 볼일이 있다고 해서 다음을 기약했다.

그런데 자리를 떠나기 전, 주신우가 한참 손가락만 꼼지락거리는 것이었다. 누가 봐도 할 말이 있는 기색이다.

“왜 그러니?”

“저기…… 누나, 걔는 괜찮아요?”

“걔? 아, 아스 말이야?”

마지막으로 만난 게 던전 게이트 앞에서 검은 점액질 덩어리를 피해 도망치던 때였지. 그래서 걱정됐던 모양이다.

“응, 잘 있어. 다음에 놀러 와.”

“……! 네.”

후다닥.

안심한 표정으로 쌍둥이가 달려갔다. 나는 그 뒷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잘 있긴 한데……. 좀 이상하단 말이지.’

* * *

“얘들아, 나 왔어.”

권지운과 점심에 디저트까지 먹고, 아스와 동물들에게 줄 디저트를 포장했더니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흘렀다.

“왜오오옹! 이제 왔느냐, 인간! 왜 이렇게 늦게 온 거냐!”

“뀨우우웃!”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미음이의 냥냥 펀치와 라임이의 몸통 박치기를 받았다.

온힘을 다해 부딪쳐 오는 통에 제법 아프다.

“그렇게 화내지 마. 봐, 간식도 사 왔다고.”

손에 들고 있던 상자에서 유명 디저트 가게의 얼그레이 케이크를 꺼냈다. 포상금도 받은 김에 제일 큰 사이즈를 고르길 잘했다. 커다란 케이크를 보고 미음이가 앞발을 내려놓았다.

“미음이 너는 고양이면서 정말 간식을 좋아하는구나.”

“왜오오옭?! 고양이 차별이다! 고양이라고 간식을 먹지 말라는 법 있느냐!”

뭐, 없긴 한데…….

나는 문득 환상 속에서 성녀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당신의 고양이가 당신을 인도하겠지요.”

진짜? 얘가?

“음…….”

“……우갸악?! 왜 갑자기 나를 그런 미심쩍은 눈으로 보는 거냐! 내가 아니라 이 녀석이 먹은 거다, 왜오옹!”

“뀨웃! 뀨우웃!”

“미음아, 입가에 크림 묻은 거 다 보인다.”

“캬갸갸옭!”

재빠르게 날아오는 묵직한 냥냥 펀치를 피한 뒤, 나는 케이크를 인원수대로 썰었다. 그런데 한 명이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아스는 어디 갔어?”

“저기서 혼자 틀어박혀 있다, 왜옹!”

“……?”

미음이가 말한 대로 옆방에 가 봤더니, 아스는 무릎을 세우고 앉아 텔레비전을 보는 중이었다.

화면에 나오는 영화는 <검은 사제들>. 주인공이 검은 돼지를 안고 달리자 아스는 눈물을 흘렸다.

어…… 저거, 슬픈 내용이었던가……?

아무튼.

나는 이미 열어젖힌 문을 가볍게 두드린 뒤 말을 걸었다.

“김아스! 내가 케이크 사 왔어. 나와서 같이 먹자.”

“…….”

“엄청 맛있는 케이크야. 얼른 와.”

“……응.”

마지못해 아스가 몸을 일으켰지만 눈을 마주치지는 않는다. 내게는 아스의 발그레한 목덜미와 귓불이 보일 뿐이었다.

“아스, 혹시 열 나?”

열이 오르면 눈물샘이 헐거워진다. 방금 영화가 해피엔딩을 향해 달려가는 데도 훌쩍거린 건 그래서일까.

나는 바닥에 무릎을 대고 앉아 아스와 눈을 마주쳤다. 그리고 손을 뻗어 이마의 열을 재려 했다.

“읏……!”

손가락이 아스의 앞머리를 가볍게 쓸어 넘기려는 순간, 아스가 거칠게 손을 떼어 냈다. 그러더니 한층 더 달아오른 얼굴로 후다닥, 밖으로 달려 나가서 테이블 앞에 앉았다.

그야 처음 여기 왔을 때도 붙임성 없는 태도긴 했는데, 어딘가 다르다.

뭐라 딱 표현하기는 힘든데, 달라졌다.

계기는…… 역시 그날 일인가.

권지운이 무사한 것을 확인하고 나는 일단 한 번 가게로 돌아왔다.

아스를 이공간에서 꺼내 주기 위해서였다.

그 안에 혼자 있으면 얼마나 불안하겠어. 커다란 커피나무와 사탕수수뿐 달리 아무것도 없는 데니 지루하기도 할 테고. 빨리 만나서 이제 괜찮다고 말해 줘야지.

권지운을 부둥켜안고 운 통에 눈이 퉁퉁 부어 있었다. 바닥에 앉아 있던 미음이와 라임이가 내 얼굴을 보고 놀랄 정도였다.

그리고 곧장 이공간으로 들어갔는데.

아스는 나무 둥치 아래에 방금처럼 무릎을 끌어안고 앉은 채였다.

그 덤덤한 표정을 보니 이제 진짜 끝났다는 실감이 나, 나는 아스를 끌어안았다.

“아스, 많이 기다렸지. 이제 괜찮아.”

와락.

아스의 작고 마른 몸은 내 품에도 가득 들어왔다. 아스가 흠칫 놀라더니 어깨와 등허리에 힘이 뻣뻣하게 들어갔다.

나는 천천히 아스의 등을 토닥였다. 조금씩 어깨에 힘이 빠지고, 귓불이 달아오르는 것이 보였다.

완전히 힘이 빠진 뒤에야 천천히 아스가 입을 열었다.

“왜 안 물어봐?”

“응? 뭘?”

“이제 알잖아. 내가…….”

뒷말은 한참이나 이어지지 않다가, 들릴 듯 말 듯하게 ‘인간이 아니란 걸’이라고 덧붙여졌다.

내가 못 들은 것 같자 아스는 다시 입술을 열었다가, 결국 가느다란 숨만 뱉어 냈다.

그래, 아스의 말대로 아스의 정체가 평범한 인간은 아니라는 걸 안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 이 가게 앞에서 쓰러져 있을 때부터 알아차렸어야 했는데.

그냥 사정이 있는 예민한 나이의 애인 줄 알았지…….

그렇다고 무작정 아스가 안타까워서 아스의 정체를 추궁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나는 그렇게까지 착한 성격은 못 되었다.

시스템은 더 이상 아스를 처리하라고 하지 않는다.

그 말은 모르긴 몰라도 아스를 데리고 있는 일이 내게 위협이 되지는 않는단 거겠지.

까만 눈은 애써 덤덤한 체했지만 그 안에 들어찬 불안이 분명하게 보였다.

당장 이렇게 서글픈 표정을 짓는 아스를 추궁하고 쫓아낼 때 느낄 양심의 가책.

그로 인해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르는 불확실한 안전.

아스와 불확실한 안전을 저울질한 다음 전자를 택한 것뿐이다.

게다가 얘는 천재 아르바이트생이고…….

아스 없이 혼자 카페를 운영하다니 상상만 해도 눈앞이 깜깜해진다.

그래서 나는 아스를 더 꽉 안은 채 말했다.

“네가 화신체 아스모데우스라고 불리는 존재인 거?”

“……!”

아스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알면서 왜 그러는 거야.’ 그런 말을 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그러고 보니 처음 만났을 때 네가 말했었지. 그냥 하는 말인 줄 알았는데.”

“…….”

“여기 있는 게 싫어?”

움찔, 놀란 아스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그럼 됐어. 아스는 우리 집 아르바이트생인데, 뭐.”

“……응.”

그렇게 아스를 데리고 나온 것까진 좋았는데, 그 이후로는 계속 저 상태다.

데면데면한 것 같기도 하고, 수줍어하는 것 같기도 하고, 어쩐지 안절부절못하는 것 같기도 하고…….

역시 어려운 나이라 그런가 싶기도 하지만.

이럴 때는 역시 그거지.

나는 로스팅해 둔 커피 원두를 꺼냈다.

도시를 혼란에 빠뜨린 사건은 끝났다. 여전히 균열과 던전의 위험은 도사리고 있지만, 일단은 평화로운 상태.

그러나 여전히 <카페 리을>에는 한 가지 문제가 남아 있었다.

[신선한 우유: 품절

※ 현재 입고 준비 중입니다. 입고 시 알림을 보내 드립니다.]

도통 우유가 들어올 기미가 없단 사실이다.

내 루비를 몇 개나 받아먹고도 차원의 상점은 우유를 팔지 않았다.

우유가 없는 카페라니……. 본의 아니게 메뉴는 대폭 감소 상태다.

대신 신메뉴라도 만들 요량으로 이제껏 얻은 레시피 리스트를 살펴보다가 이 메뉴를 발견했다.

음, 이거다.

재료에 우유도 들어가지 않고, 지금 마시기 딱 좋을 듯했다.

나는 먼저 정화목의 열매, 그러니까 레몬을 이공간에서 하나 따 왔다. 그리고 레몬을 깨끗하게 씻은 뒤 잘게 슬라이스했다.

다음으로 에스프레소를 내린다.

커피 잔에 에스프레소를 넣고 썰어 둔 레몬을 넣으면 완성인 간단한 메뉴였다.

한 잔을 아스, 다시 한 잔을 내 앞에 내려놓으니 상태 창이 떴다.

[아이템: 카페 로마노(★★★★☆)

상태: 좋음 (남은 시간: 01:00:00)

효과: 1회 동안 인챈트 성공 확률이 200% 증가하며, 인챈트 실패 시 아이템 파손을 1회 방지합니다.]

인챈트란 다른 말로 부여 마법.

아이템에 마법을 걸어 반영구적으로 효능을 올리는 것을 말한다.

문제는 인챈트 실패 시 아이템이 깨지는 경우도 있다는 것. 애써 구한 고가의 아이템이 인챈트 때문에 파손된다면 화병이 날 테다.

이 메뉴는 다음에 김덕이 할머니에게 드리면 좋을 것 같았다.

상큼한 레몬 향이 에스프레소의 맛과 어우러진다. 나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신 뒤 아스에게 말을 걸었다.

“아스, 설탕 줄까?”

“괜찮아. 이대로도 맛있어.”

그렇게 말했지만 커피를 한 모금 마신 아스는 복잡한 표정이었다. 포크로 케이크를 크게 한 입 떠먹은 뒤에야 만족도 막대가 차오르는 걸 보니, 쓴 커피는 입에 맞지 않나 보다.

“아스는 쓴 커피도 잘 마시네.”

“당연하지.”

……모르는 척해 주기로 했다.

“우냐아아(나도! 나도 달라)!”

“뀨우! 뀨우!”

케이크 접시를 앞에 놓아주자 미음이와 라임이가 얼른 먹어 치우고 서로의 몸에 크림을 바르며 놀기 시작했다.

야, 너희 그거 청소 어떻게 하라고…….

뭐, ‘바닥이 반짝반짝’도 있으니까 상관없나.

크림 덩어리가 된 둘을 내버려 두고 나도 케이크를 한 입 떠먹었다.

맛있네.

* * *

“역시 <백은 길드>에 들어올 생각은 없어?”

권지운과 점심을 먹을 때였다.

지나가는 듯 가벼운 투였지만 나는 그가 진지하게 물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래서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응, 미안해.”

“그래, 알겠다.”

이미 한 번 거절했던 제안이었다. 그저 확인이었던 듯, 권지운은 재차 묻지 않고 물로 목만 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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