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0화 (90/192)

90화

명당을 잡으려 눈치 게임을 하는 사람들 틈을 뚫고 적당한 자리를 찾아냈다. 전망대 옆으로 떨어져서 사람들 눈에 띄지 않지만 앞이 트여 시야가 좋은 곳, 저기다.

“유현 씨, 저쪽으로 가요. 저쪽이 잘 보이겠어요.”

“아, 네, 그러죠.”

자리 잡기는 시간 싸움.

기유현의 팔을 잡아채고 성큼성큼 걸어가 딱 맞는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오래지 않아 불꽃놀이가 시작되었다.

먼저 작은 노란 불꽃이 하늘에 어떤 그림을 그렸다.

아름다운 불꽃이 그려 낸 그림은…… 어……?

자기 얼굴……?

생긋, 환한 웃음을 지으며 윙크하는 오서호의 얼굴이었다.

사인과 함께 아래에 뜨는 문구는 ‘Made by Oh Seo-ho’

“그…… 자기애가 강한 사람이네요.”

“나쁜 사람은 아닌데…… 좀 그렇습니다.”

“아, 만난 적 있어요?”

“어쩌다 보니, 네.”

그다지 이야기하고 싶은 화제는 아닌지 기유현은 짧게 대답했다.

처음이 당황스럽기는 했지만 이어지는 불꽃은 화려하고 아름다웠다. 영롱한 빛이 끊임없이 형태를 바꿔 가며 하늘에 그림을 그린다.

과연 환영술사 오서호.

지금은 연예인으로 더 널리 알려졌지만 그 능력은 엄청났다.

서울 하늘 위에 거대한 성이 나타났다가 나비로 변해 사라질 때는, 꼭 불꽃이 아니라 환상의 세계로 이끄는 것 같았다.

서늘한 바람을 맞으며 불꽃을 보고 감탄하는 것도 잠시.

“……?”

나는 문득 위화감을 느꼈다.

뭐지?

“유현 씨, 잠깐만요.”

“왜 그러세요?”

“그러니까, 저기, 아, 자판기에서 마실 거를 사 올게요.”

“제가 가겠습니다.”

“아니에요. 바로 저기 있는데요, 뭐. 그대로 계세요.”

멀리 떨어지지 않는 곳에 음료수 자판기가 있었다.

나는 따뜻한 보리차를 두 개 산 다음 원래 자리로 돌아가는 척하다가 휙, 수풀 너머를 들여다보았다.

“…….”

“……아.”

황급히 모자를 눌러 쓰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어두운 밤에도 은은하게 반짝거리는 은빛 머리카락을 내가 알아보지 못할 리가 없지.

“……권지운, 거기서 뭐 해?”

수풀 뒤에 웅크리고 앉은 권지운. 그리고 옆에는 사람 좋아 보이는 남자, 한이성 헌터가 같이 있었다.

“하하, 하. 리을아, 여기서 만나다니 우연이구나.”

“……안녕하세요, 오랜만입니다.”

“설마 오빠, 여동생 뒤를 따라왔다거나 그런 건…… 아니지?”

그치? 아무리 그래도 권지운이 그런 짓이나 하고 다닐 만큼 한가하진 않지? 그런 눈빛으로 그를 훑어보았다.

“아, 아, 아니고말고! 그럴 리가 있겠니. 우연이야, 우연.”

“그런데 왜 둘이 여기 있어?”

“그야 불꽃놀이를 보기 위해서란다. 모처럼의 기회니까 말이다.”

생전 남들 들뜨는 행사에는 관심이 없던 사람이? 나는 미심쩍은 눈으로 권지운을 보았다.

“여기 전망대 뒤라서 안 보일 텐데…….”

“어! 저기, 저쪽! 저쪽에 마침 자리가 났군요, 가시죠!”

미심쩍은 마음에 더 추궁하려는 순간, 한이성 헌터가 권지운을 데리고 몸을 일으켰다. 다급히 좋은 자리를 잡기 위해 전망대 앞쪽으로 달려가는 모습은 꽤 친해 보인다.

아까 기유현이 둘이 친구라더니 진짜였군…….

얼마나 친하면 여기까지 둘이서 불꽃놀이를 보러 왔겠어.

멀어지는 그들의 뒷모습을 잠시 지켜본 뒤, 기유현이 있는 곳으로 되돌아갔다.

남은 불꽃놀이를 보면서 기유현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뜻밖에 그는 꽤 괜찮은 이야기 상대였다. 나는 어제 만든 신메뉴에 대한 이야기를 했고, 기유현은 지난 사건 처리로 <던전관리청> 본청이 바쁘더라는 이야기를 했다.

“와아, 멋지네요.”

마지막 하이라이트, 겨울 숲을 모티브로 한 불꽃이 대미를 장식했다.

청량한 냄새마저 느껴지는 듯한 환상적인 숲이 눈송이로 변하고 하나씩 사라져 간다.

이윽고 마지막 눈송이마저 어둠으로 화한 뒤 불꽃놀이가 끝을 맞이했다.

과연 빨리빨리의 민족 아니랄까 봐. 차가 막히기 전에 얼른 집에 가야겠다며 전망대를 가득 채운 사람들이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할 말이 있다더니, 기유현은 불꽃놀이가 끝날 때까지도 별다른 없었다.

사람이 더 줄어든 다음 말할 작정인가? 아직 따뜻한 캔 보리차를 뜯어 마시면서, 나는 가만히 기유현을 바라보았다.

가게 앞마당에서 처음 이 남자와 마주친 뒤로 벌써 두 달 남짓의 시간이 흘렀다.

기유현은 여러 번 나를 도와주었고, 대체로 친절했다. 가끔 이상한 소리를 할 때도 있지만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에게서 뭐라 딱 표현하기 힘든 묘한 느낌을 받을 때가 있었다.

그걸 뭐라고 말해야 좋을까.

긴 머리카락이나 안경 따위로는 가려지지 않을 만큼 잘 빚어진 얼굴인데, 그런 것 치고는 존재감이 없다.

여기저기 불쑥 나타나지만 그만큼 또 불쑥 가 버린다.

이따금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아는 게 많은데, 또 어느 것에도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여기에 있는데 동시에 없는 느낌. 기유현이라는 사람의 일부가 여기가 아닌 다른 곳에 있는 것 같다.

지금도 그렇다.

미각을 거의 느끼지 못한다느니 하는 미음이의 말을 아무런 의문 없이 믿은 것도 그래서다. 어쩐지 이 사람이라면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불꽃놀이가 끝나 다시 어둠이 내려앉았다. 가로등 불빛은 이곳까지는 닿지 않는다. 저 검은 눈동자는 어둠 속에서도 빛을 머금은 듯 반짝거렸다.

그 말간 얼굴을 보면서 나는 문득, 용산의 쇼핑몰에서 그가 나타났을 때를 떠올렸다.

반짝이는 빛의 입자와 함께 나타나, 그만큼 금방 사라질 것 같은 느낌.

무심코 손을 뻗었지만 어디를 잡아야 할지 알 수 없어서 도로 거두었다.

“…….”

“…….”

완연한 적막 속, 나는 고요를 견디지 못하고 먼저 입을 열었다.

“슬슬 춥네요. 이제 정말 겨울인가 봐요.”

“그렇죠. 꽤 춥네요.”

“유현 씨, 오늘 하고 싶다던 말은 뭐예요?”

망설이는 기색이 분명한 얼굴이다. 기유현은 옅은 숨을 뱉어 내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건……. 미안합니다. 제가 선뜻 말이 나오지 않아서 리을 씨를 기다리게 했군요. 방해도 있었고요.”

“괜찮아요. 불꽃놀이 구경 재미있었어요. 그리고 유현 씨 말대로 권지운이랑 한이성 헌터 친구 맞나 봐요.”

여기까지 같이 온 걸 보면.

내 말에 기유현은 쓴웃음을 지었다.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놀라실 테지만, 저는…….”

그러나 뒷말은 곧장 이어지지 않고 다시 침묵이었다. 숨소리마저 또렷이 들릴 거리, 그의 긴장이 그대로 느껴졌다.

아.

나 이런 긴장되는 분위기 잘 못 참는데.

“에이, 뭔데 그래요. 안 놀랄 테니까 말하세요.”

덩달아 나까지 뻣뻣해지는 분위기를 견디지 못하고 나는 입을 열었다.

“무슨 비밀 이야기라도 하려는 거예요? 예를 들어…… 유현 씨가 랭킹 1위 무원이라는 거라든가?”

“……네?”

흠칫.

눈에 띌 정도로 기유현이 놀랐다. 검은 눈이 크게 흔들린다.

어, 진짜 이거였어?

난 또 뭐라고…….

* * *

기유현은 리을에게 자신의 정체를 밝히기로 결심했다.

더이상 그녀에게 거짓말을 할 순 없었다.

회귀 전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정체를 감춘 이유는 간단하다.

현 한국 헌터계의 랭킹 1위쯤 되면 이미 개인을 넘어선 일종의 전략 자원이다. 그 강한 능력만큼 행동에 제약이 걸리는 것은 당연했다.

그러니 불필요한 마찰을 피하고 자유롭게 움직이고자 하는 실리적 이유도 있었지만.

결국은 타인을 불신했기 때문이다.

계속 옆에 있던 한이성도, 마지막 결전을 함께한 파티까지도.

그뿐만 아니라 기유현은 곧 기억에 결핍된 부분이 있음을 깨달았다.

특히 각성 전의 과거 기억이 불분명했다. 생년월일, 나이, 어디서 태어났는지 따위의 정보는 그대로 남아 있었지만 그게 자신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마치 책을 읽듯 타인의 기억을 들여다 보는 느낌이었다.

몸을 이루는 세포 하나 하나가 낯설게 느껴졌다. 그저 기록된 정보의 집합을 자신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드디어 끝났군요.’

‘감사합니다, 헌터님……!’

<각성자 센터>를 무너뜨리자, 드디어 헌터계가 정상화될 수 있다며 환호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이 기다리던 사람은 무원이다.

기유현은 그순간 자신이 낯설어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들의 환희에 답하는 데 지독한 거부감이 든다. 그림자가 지워진 채 외딴 존재가 된 것 같았다.

백광의 권능.

어둠 속에서 실을 짓는 자, 거미 여신이 자아내는 촘촘한 빛의 그물을 이용하여 공간을 조종하는 스킬이다.

그러나 기유현은 이 힘을 사용할 때마다 빛의 그물을 통해 자신이 ‘저편’으로 흘러 들어간다는 느낌을 받는다.

언젠가, 이 그물이 완성되는 순간 자신은 《궁극의 문》 너머로 사라지고, 이 자리는 자신이 아닌 다른 존재가 차지하리란 두려움이 느껴졌다.

이러한 감각을 대체 누구와 공유할 수 있겠는가.

그렇게 과거에서 3년의 시간을 거슬러 와 지금.

처음에는 권리을에게 정체를 밝힐 생각이 없었다.

이미 회귀 전과 많은 부분이 달라졌다. 그 중심에 있는 이는 권리을이고, 이는 우연이 아닐 테다.

그러나 그녀는 어느 모로 보아도 평범한 사람이다. 교단이나 마신과 관련 있기는 커녕, 오히려 김덕이의 공방을 노린 수작에 다치기도 했다.

이대로 느슨한 관계를 유지하는 게 가장 좋을 테다.

위험에 처하면 도와주고, 가끔 커피를 마시러 가고, 자신이 누구인지는 결코 밝히지 않고. 잘 빚어진 인간적인 모습만 보여주는 느슨한 관계 말이다.

그렇게 생각했지만.

‘각성했다고 아예 다른 존재가 되는 것도 아니잖아요?’

그 말이 어쩐지 강렬하게 마음에 남았다.

자신을 향한 말이 아니다. 아직 어린 쌍둥이를 염려해서 한 말일 테지. 그녀는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평범하고 사소한 말일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곱씹을수록 자신에게 한 말 같아서.

그녀가 만든 커피를 마실 때면 닳아 없어진 영혼의 빈곳이 차오르는 느낌을 받았다. 그 따뜻함을 맛볼 때마다 묻고 싶었다.

지금도, 각성했다고 다른 존재가 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하는지.

그러나 선뜻 정체를 밝힐 결심을 하지 못하고 느슨한 관계를 유지하던 날.

검은 점액질이 나타나면서 도시가 혼란에 빠진다.

‘어, 방금까지 여기 계셨는데. 길드장님?!’

리을이 방범벨을 누른 순간, 기유현은 주저 없이 그녀를 향해 공간을 뛰어넘었다. 사고보다 행동이 빨랐던 통에 그곳이 어디인지 알아차리는 데는 약간의 시간이 필요했다.

빛의 그물이 몬스터를 쓰러뜨렸다.

심연의 화신체로 빚어진 아이를 껴안고, 아이를 살리기 위해 결연히 일어나는 그 낯을 보았다.

‘……유현 씨!’

또렷하게 울리는 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

기유현은 자신이 누구인지 알리고 싶다는 충동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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