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5화 (105/192)

105화

* * *

나는 창문을 열었다.

차가운 바람이 사정없이 안으로 불어닥쳤다. 눈앞에는 음침하기 짝이 없는 대던전 《어비스》의 석벽. 여전히 근처에 편의점 하나 보이지 않는 쓸쓸한 풍경이다. 가게는 삭막한 던전 게이트 3가 16로에 그대로 잘 있었다.

이것이 요즘 내 아침 일과다.

며칠 전 가게 통째로 던전에 끌려간 이후로 이 부동산의 부동성이 너무나도 신경 쓰였기 때문이다.

물론 크투가와 페페도 만났고, 우유도 구하고, 정령들에게 받아 온 생선 덕분에 며칠째 풍요로운 생선 반찬이고…….

얻은 것이 많았지만, 그렇다고 같은 일을 또 겪고 싶진 않았다.

“추워…….”

막 아침잠에서 깬 아스가 문을 열고 나오며 볼멘소리를 했다. 나는 얼른 도로 창문을 닫고 히터의 온도를 올렸다.

“헉, 춥다고? 미안해. 그래, 아스는 몸이 약하니까 감기 걸리면 안 되지. 히터 앞에 앉아 있어.”

“……그 정도로 약하지는 않아.”

애써 아닌 척을 했지만 아스는 히터 앞을 피하지는 않았다. 솔직하지 못한 녀석 같으니.

“우냐아…….”

“뀨우우…….”

제일 따뜻한 자리에는 이미 미음이와 라임이가 반쯤 액체가 된 상태로 늘어져 있었다.

이제 정말 겨울이구나.

그리고 던전에서 얻은 것이 하나 더 있었다. 바로 ‘어디든지 연결☆신비의 문’이다.

이름부터 알기 쉽고 직관적이다. 이 문을 통해 어디든지 연결된다 이거겠지.

퀘스트 보상으로 받았을 때부터 궁금했는데, 캠핑이다 뭐다 정신없어서 이제야 겨우 꺼내 보게 되었다.

[아이템: 어디든지 연결☆신비의 문(★★★★☆)

(※정식 명칭은 개인용 공간 연결형 일방향 도어이나 이해를 돕기 위해 친숙한 명칭으로 서비스됩니다.)

어디든지 연결됩니다.

카페 안에 설치 가능합니다. 설치 시 방향에 유의하세요.]

[신비의 문을 설치할 위치를 선택한 뒤 ‘설치하기’를 선택하세요.]

나는 인벤토리에서 문을 꺼낸 뒤 미리 봐 둔 적당한 빈 벽을 선택했다. 곧 메시지가 떴다.

[신비의 문을 설치하시겠습니까?

네 ☜ / 아니오]

[신비의 문을 설치하는 중입니다. 진행도: 0%]

[신비의 문을 설치하는 중입니다. 진행도: 0.01%]

…….

[신비의 문을 설치하는 중입니다. 진행도: 0.02%]

놀라울 정도로 느렸다. 설치가 끝나기를 기다리다간 속이 터질 것 같다.

안 되겠다. 아침을 먹고 카페 오픈 준비를 하느라 바쁘니 영업이 끝나고 다시 확인해야겠다.

영업 준비를 마친 난 정각에 문을 열었다. 곧 카페인이 부족한 얼굴을 한 손님들이 문을 열고 들이닥쳤다.

“어서 오세요. 주문은 결정하셨나요?”

그렇게 평소와 같은 날이 시작되었다.

여러 문제도 고민도 여전하지만 일단 오늘은 본업에 충실한 하루를 보낼 생각이다. 본업이 카페 주인이니까. 던전이다 뭐다 자칫하다간 본업을 까먹겠다.

“몸이 차시면 이 신메뉴 아이리시 커피를 추천드려요.”

일상은 소중하구나…….

한 가지 의아한 점이 있다면 아스의 상태였다.

아스가, 그러니까…….

“아, 테이블을 닦아야겠다. ……어?”

테이블은 이미 먼지 한 톨 없이 반짝반짝했다.

“그럼 난 설거지를 해야……. 어?”

막 쌓인 설거지를 마친 아스가 손의 물기를 닦았다.

“헉, 저 손님 핸드폰을 놓고 가셨네. 따라잡아서 갖다 줘야…… 어, 김아스, 어디 가?”

후다닥 달려간 아스가 핸드폰을 돌려주고 돌아왔다.

“아스, 이제 좀 쉬자.”

“이것만 하고.”

……지나치게 일을 열심히 했다.

원래도 천재 아르바이트생인데 오늘은 분신술이라도 쓰는 것처럼 빠르게 움직였다. 주문은 빨리 처리되었지만 저러다 쓰러지기라도 할까 걱정되었다.

“아스, 이리 와 봐.”

“왜 그래?”

잠시 손님이 끊긴 틈을 타, 나는 아스를 반강제로 의자에 앉혔다. 무릎에 라임이를 올리고 간식과 커피를 줘서 행동을 완벽하게 봉쇄했다.

하지만 아스는 간식으로 준 사과잼 쿠키를 먹으면서도 움찔거리며 카운터 쪽을 바라보았다.

설마…… 우리 집 아르바이트생이 워커홀릭?

안 된다. 워커홀릭은 불치병이다. 스스로 노동의 늪에 뛰어들면서도 기쁨을 느낀다니, 아스를 그런 무서운 병에 걸리게 둘 수는 없었다.

“아스, 오늘은 내가 혼자 가게 볼 테니까 쉴래? 그래. 신우랑 신희한테 연락해 보는 건 어때? 걔네도 네가 보고 싶을 거야.”

“……내가 필요 없어?”

아니, 이야기가 왜 그렇게 되지.

그게 아니라고 설명했지만 아스는 여전히 심각한 표정이었다. 잠시 포크로 사과잼 쿠키를 쿡쿡 찌르다가 겨우 다시 입을 열었다.

“내가 혼자서도 일을 다 하면…… 새 아르바이트생은 안 뽑을 테니까…….”

“응? 새 아르바이트생 구할 예정 없는데?”

아스가 있으니 충분한 데다, 구하고 싶다고 쉽게 구해질 리도 없다.

“전에 그 남자는?”

“누구? 아, 혹시 이찬이?”

“…….”

보일 듯 말 듯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최이찬이 예전에 임시 아르바이트생이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나 보다.

최이찬이 카페 일엔 젬병이어서 거의 동물들과 놀아 주기 전담 아르바이트였다는 건 차치하더라도.

최이찬은 현재 <던전관리청>에 붙잡혀 있는 상태다. 헌터 등급 갱신과 랭킹 측정은 금방 끝났지만, 여러 가지 절차가 남았다고 한다.

그 때문에 그가 하려던 말은 아직 듣지 못한 상태다.

“에이, 이찬이는 여기서 아르바이트 안 해. 전에는 잠깐 사정이 있었을 뿐이야. S급 헌터가 왜 여기서 아르바이트를 하겠어.”

“……그래.”

“그리고 아스만 있으면 충분한데, 뭐. 그래도 쉬엄쉬엄 하자.”

“크, 크흠! 그렇게까지 말하면 어쩔 수 없지.”

아스가 사과잼 쿠키를 집어 먹었다. 아닌 척했지만 입꼬리가 슬쩍 올라가는 거 다 봤다.

그때 다시 문이 열리고 손님이 들어왔다.

나는 아스에게 간식을 전부 먹기 전까지는 일어나서는 안 된다고 말하고 카운터를 향했다. 등 뒤로 쿠키 부스러기를 노리는 동물들과 접시를 방어하는 아스가 투닥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서 오세요.”

손님은 자주 우리 가게에 커피를 마시러 오는 단골이었다.

“안녕하세요. 저 어제도 왔었는데, 어제는 영업 안 해서 아쉬웠어요.”

“아하하…….”

안 그래도 이 걱정을 좀 했다.

최근에 장사가 잘되었으니까 분명 내가 던전에 끌려갔을 때도 온 손님이 있었을 거다. 그러면 가게가 통째로 없어진 것도 봤을 텐데.

가게가 통째로 없어졌다가 다시 생겨난 걸 뭐라고 설명하지? 던전에 소환되었다가 돌아왔다고 해도 되려나?

차라리 하루 만에 건물을 허물었다가 하루 만에 다시 지었다고 할까?

그걸 믿을 리가 없지…….

그런데 단골손님이 주문을 마치고 대수롭지 않아 하는 말투로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건물 수리 중이었다면서요? 수리는 끝났어요?”

“네? 아, 네, 네! 끝났어요.”

이어서 온 손님도 비슷한 반응이었다.

“오래된 주택은 꼭 하나씩 문제가 생기죠.”

“우리 집도 겨울 되면 꼭 보일러가 터지더라고요.”

“수도관 고장났었다면서요? 수리 잘하는 곳 아는데 소개해 드려요?”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가게가 사라진 동안 온 손님은 모두 건물 수도관이 터져서 임시 휴업한 것으로 알고 있었다.

이런 일을 할 만한 사람은…… 한 명뿐이다.

딸그랑, 종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고 그 한 명이 안으로 들어왔다. 기유현이었다.

“안녕하세요.”

“유현 씨, 내가 없는 동안 혹시 뭐 했어요?”

“갑자기 무슨 이야기인가요?”

“손님들이 우리 가게 수도관이 터진 걸로 알고 있더라고요.”

“……아. 네, 문제가 커질 것 같아서 살짝 손을 봤습니다.”

기유현의 말에 따르면 이랬다.

균열이 터진 것도 아닌데 건물이 사라지다니, 상당히 드문 일이었다. 반향을 막기 위해 그는 가게가 사라진 빈 공간에 스킬을 써서 대규모의 착시 효과를 걸었다.

그 효과란 가게에 접근하는 사람에게 ‘건물 보수 문제로 쉽니다.’라고 붙어 있는 가게의 환영을 보여 주는 것이었다.

“그냥 간단한 눈속임이에요. 저보다 강한 헌터에게는 먹히지 않거든요.”

하지만 적어도 한국에서 기유현보다 강한 헌터는…….

……없지.

‘살짝 손을 봤다.’고 하기에는 얼핏 들어도 상당히 대단한 것 같은데.

어쨌건 귀찮은 일을 피했으니 고마운 일이다.

감사의 뜻으로 그에게 커피라도 대접하기로 했다. 히터를 세게 틀었더니 실내 공기가 따뜻해서 차가운 음료가 마시고 싶었다. 나는 아이스 아메리카노 두 잔을 만든 뒤 기유현을 구석 테이블로 데리고 갔다.

“전부터 궁금한 게 있었는데요.”

차가운 커피로 목을 축이고 눈앞의 회귀자 겸 랭킹 1위를 바라보았다. 그 역시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나와 눈을 맞춘다.

“우리 처음 만났을 때 있잖아요. 유현 씨가 엄청 수상한 모습으로 이 앞에서 얼쩡거렸을 때요.”

“……제가 수상했나요?”

“네? 그럼 지금까지 안 수상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

“…….”

우리는 각자의 이유로 잠시 충격에 빠졌다.

“아, 아무튼, 그때 유현 씨가 왔을 때 일시적으로 시스템 창이 안 열렸었거든요.”

기유현이 눈을 도르르 굴렸다. 천천히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한 모금 마신다. 누가 봐도 짚이는 곳이 있는 사람의 반응이었다.

“설마 남의 시스템 창을 멋대로 막은 거예요?!”

“아니, 아니, 아닙니다. 그건 아니에요.”

기유현이 황급히 손을 내저었다.

“아무리 나라도 그런 능력은 없어요. 시스템은 각 헌터의 고유 영역이니, 쉽게 침범할 수 없습니다. 그냥…….”

“뭘 하긴 했군요.”

“리을 씨와 이 건물 정보를 알아내려고 백광의 그물을 전개하고…….”

내 표정을 보고 흠칫 놀란 기유현이 말끝을 흐렸다. 어깨를 늘어뜨리고 힘없는 웃음을 짓는다.

“봐주세요. 내가 회귀자라고 말씀드렸었죠. 회귀 전에 이곳은 폐가였는걸요. 나로서는 과거와 달라진 부분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어요.”

“그…… 그렇군요. 왜 달라졌을까요, 아하하…….”

나는 커피 잔을 들어 어색한 웃음을 감췄다.

“아무튼. 생각할 수 있는 가능성은 이쪽이겠네요. 리을 씨나 이 가게에 대한 어떤 정보를 내게 들키지 않게 하기 위해, 시스템이 자발적으로 차단했을 수는 있습니다.”

“시스템이 그런 게 가능할까요. …… 아니, 가능하겠네요, 네.”

나는 성녀를 떠올리고 곧 수긍했다.

성녀는 시스템을 자신이 만들었다고 했다. 그녀의 신비한 힘과 제멋대로 개입하던 성향을 떠올리면 충분히 있을 법한 일이었다.

그러다 문득 큰아버지 생각이 났다.

던전에서 돌아오자마자 권지운은 큰아버지의 능력 소멸에 대해 조사했다.

결과는 변하지 않았다. 큰아버지의 능력은 소멸했고 아예 시스템 창에 접근이 불가능했다.

하지만 디버프나 상태 이상 수준이 아니라, 각성자가 아예 일반인이 되는 게 가능할까.

만약 기유현의 가설이 맞는다면…….

누군가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서 큰아버지와 시스템 창의 연결이 끊겼을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

크투가의 반지에 대해 알고 계셨던 것도 그렇고…… 그동안 대체 무슨 일이 있으셨던 걸까.

‘큰아버지라면 할머니에 대해서도 좀 더 잘 아시지 않을까.’

크투가를 만난 이후로 할머니에 대해 더 알아봐야겠다고 생각하던 차였다.

그런 생각으로 큰아버지를 뵙고 싶다고 카톡을 드렸지만…….

[큰아버지]

(산생활vlog) 은퇴 후 산에서 찾는 힐링 라이프 인생2막

Https://youtu.be/ ******

[나]

이게 뭐예요??

[큰아버지]

조카야! 큰애비 유튜브 시작했다.

구독과 좋아요, 알림 설정 부탁한다~~

즐거워 보이시니 다행이긴 한데…….

복잡한 이야기가 될 테니 가능한 한 직접 뵙고 이야기하고 싶다. 하지만 돌아오실 때까지는 좀 기다려야 할 듯싶었다.

이런 사소한 일들이 있었지만 어쨌거나 평소와 같은 날이 흘러갔다. 일상물의 정석, 일상 오브 일상. 만족스러운 날이었다.

[신비의 문의 설치를 완료했습니다.]

“어?”

처음 보는 헌터가 문을 열고 나타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열린 문 너머로 낯선 던전 풍경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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