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7화
* * *
카메라에 빨간 불이 들어왔다.
조금 전까지 투닥대며 바닥을 마구 뛰어 다니던 미음이와 라임이가 갑자기 얌전해졌다. 쿠션에 몸을 기댄 채 슬쩍 고개를 돌리는 모습은 아무래도 카메라를 의식하는 것 같다.
반대로 아스는 화면에 비치고 싶지 않은지 구석으로 달아난 지 오래였다.
“야옹야옹.”
미음아, 너 갑자기 ‘야옹야옹’ 하고 울고 있어. 평소에는 ‘왜우웅’이나 ‘왜오옭’이었잖아.
하지만 남 말 할 때가 아니었다.
“네, 이게 메뉴판이고요…….”
왼팔과 왼다리가 동시에 나갔다. 나는 어색하기 짝이 없는 동작으로 메뉴를 소개했다.
스마일 스킬이라도 있어서 다행이다. 비록 몸은 삐걱거릴지라도 표정만은 완벽한 영업용 미소였으니까.
“그래서 메뉴판을 보시고, 원하는 특수 효과가 있는 메뉴를 주문하시면 돼요.”
정식 등록 절차를 순식간에 마치고 엠바고가 풀린 첫 오픈일이었다.
<던전관리청>은 카페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알리기 위해 소개용 방송 촬영을 제안했다.
부담스럽기는 하지만…….
처음에 제대로 된 정보를 주는 게 중요하겠지. 카페에 대해 밝히기로 결심한 이상 거쳐야 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하자. 그런 마음으로 받아들였다.
‘녹화 뜨겠다는 권지운 뜯어 말리느라 고생했지…….’
그래서 오늘.
카페에 첫 방문하는 손님을 찍기 위해 리포터와 카메라 여러 대가 들이닥쳤다.
방송에 출연할 첫 번째 손님은 추첨으로 뽑혔다. 친구 사이로 보이는 세 명의 헌터들이었다.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메뉴판을 보던 손님 중 한 명이 불쑥 물었다.
“그럼 이 콜드 브루 커피의 효과는 뭔가요? 여기만 아무것도 안 적혀 있는데…….”
“아. 그건 랜덤이에요.”
“……랜덤이라고요?”
“네. 이번에 만든 신메뉴인데, 버프 종류도 적용되는 양도 전부 랜덤이에요.”
손님들의 눈이 반짝, 빛난 것 같았다.
“그럼 나는 콜드 브루로 할래.”
“나도 콜드 브루로.”
“어, 나도 콜드 브루 하려고 했는데.”
순식간에 메뉴가 통일되었다. 방송용으로 다양한 메뉴를 주문하는 모습을 찍고 싶었는지 리포터가 당황하며 끼어들었다.
“저, 여러분……? 다양한 메뉴가 많은데 이쪽엔 관심 없으세요? 예를 들어, 저는 여기, 캐러멜마키아토도 맛있어 보이는데요.”
“아니요, 도전을 피하면 헌터가 아니죠.”
“네……? 메뉴랑 그게 무슨 상관이 있죠?”
“이 도전, 받아들이겠어요!”
손님들의 완강함에 어쩔 수 없이 리포터가 물러났다.
나는 순식간에 콜드 브루 커피 세 잔을 만들어서 손님에게 건넸다.
“와! 진짜네요. 이 커피, 랜덤으로 버프를 준다는 상태 창이 떠요.”
“정말 기대됩니다.”
“그럼 저희가 한번 마셔 볼게요!”
손님들이 한 손에 커피 잔을 들고 카메라 앞에서 미리 요청받은 리액션을 했다.
어색하긴 했지만 나도 충분히 어색했으니 도긴개긴이라 할 수 있겠다.
곧바로 손님들이 콜드 브루 커피를 전부 마셨다. 중간중간 맛있다는 리액션도 잊지 않는 것이, 준비된 방송 출연자들이었다.
“……! 민첩 80% 상승 떴어. 괜찮은데?”
“나는 운 5% 상승……. 망했네, 힝…….”
자연히 시선이 마지막 한 명에게로 쏟아진다. 그는 커피를 전부 마신 뒤 자신의 상태 창을 확인하는지 짧게 허공을 응시하더니.
……포효했다.
“이야아아아압! 힘 200%!”
“……!”
“그게 정말이야? 우와, 대박이잖아!”
그리고 이 각양각색의 반응을 지켜보던 리포터도 콜드 브루 커피에 흥미를 느꼈다. 자신도 한 잔 시도해 볼 수 있냐고 하기에 곧장 만들어 주었다.
“음, 향이 풍부하고…… 끝맛까지 깔끔하네요. 정말 맛있는…… 어.”
“리포터님은 뭐 나왔어요?!”
“와. 전…… 지력 800% 상승 떴어요.”
“……!”
“와, 대박……!”
이것이, 대 헌터 뽑기 시대의 개막이었다.
* * *
“그쪽에 계신 분, 유튜브 촬영하시면 안 되세요!”
“앗, 잠시만요, 전화가……. 네, <카페 리을>입니다. 아니요, 더 이상 방송 출연은 안 할 거예요. 네? 맛집으로 홍보해 주신다고요? 무서운 말씀 하지 마세요.”
“다음 번호 손님 오세요!”
“콜드 브루 커피 열 잔 주세요.”
“한 사람당 두 잔까지만 판매 가능해요.”
“거 뽑기는 10연속 뽑기가 국룰인 거 모르십니까. 주인분도 뽑기 해 보셨죠?!”
많이 해 보긴 했죠…….
“그래도 두 잔까지만 판매 가능해요.”
“흑……. 그럼 두 잔만 주세요.”
그렇게 콜드 브루 커피를 받아 간 손님이 빈 테이블에 앉아 한 잔을 비웠다. 주먹을 꽉 쥐고 허공을 보면서 외친다.
“제발, 제발, 제발 으랴아아!”
…….
뽑기에 미친 사람들 같으니…….
“왜우우웅(네가 할 말은 아닌 것 같구나).”
“뀨우우!”
첫날 촬영한 방송이 방영된 다음, 헌터들 사이에서 뽑기가 엄청난 붐을 일으켰다.
다음 날부터 헌터들이 몰려오더니 연달아 콜드 브루 커피를 주문해 대기 시작했다.
콜드 브루 커피 뽑기에서 대박을 낸 헌터가 던전에서 보스 몬스터를 원샷원킬했다는 인증을 올리면서 붐은 걷잡을 수 없이 번져 갔다.
우리 가게에서 콜드 브루 커피를 테이크아웃한 다음, 던전에서 마셔서 효과를 시험하고 인증하는 게 챌린지라나 뭐라나.
물론 나도 뽑기는 좋아한다. 무료 뽑기 티켓을 얻기 위해 주7일 컬래버레이션 단팥빵만 먹은 적도 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까지 인기가 있을 일인가.
덕분에 이런 영상과 글이 인터넷을 점령했다.
[역대급] 민첩 1000% 대박 콜드 브루 효과
뽑기는 망했지만 보스는 잡고 싶어 (편집본)
콜드 브루 뽑기 | 확률 검증 | 뽑기 효과로 던전 스피드런 챌린지
평화롭다고 해야 할지, 뭐라고 해야 할지…….
챌린지의 유행 덕분에 던전 공략 속도가 빨라졌다는 기사도 났다.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니 다행이긴 한데……. 이렇게 뽑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많은지 처음 알았네.
뽑기는 나쁜 문명이라더니, 당분간 세상에서 뽑기가 사라질 일은 요원할 듯싶었다.
콜드 브루 커피의 인기 때문에 잠시 크투가라도 소환해서 아르바이트로 쓸까 하는 유혹을 느꼈다.
하지만 노동력을 보충하는 건 이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
회귀 후 처음 목적이었던 주 5일제(※휴일이 5일이다. 이거 중요)의 느긋한 욜로 라이프는 이미 글렀다는 사실은 인정했다. 그렇다고 이 미쳐 버린 뽑기 마니아들에게 계속 끌려다닐 수는 없었다.
현재 내 스테이터스 창은 이렇다.
[이름: 권리을
클래스: 카페 주인(F) (Lv.17)
체력 140/140 기력 140/140
힘: 26(+10), 지력: 21, 민첩: 18, 운: 19]
그 사이에 카페 영업을 통해 경험치가 쌓여 레벨은 17이 되었다.
하지만 최대 기력이 낮은 탓에 커피로 계속 회복을 하는데도 불구하고 하루에 만들 수 있는 양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미리 손님들에게 번호표를 배부하는 걸로 판매 방식을 변경했다.
자기 차례에 번호표를 제출하면 한 사람당 두 잔까지 구매가 가능하다.
콜드 브루 커피도 하루에 한 통으로 수량 제한을 두었다.
대신 ‘어디로든 연결☆신비의 문’으로 들어온 헌터가 급히 회복이나 버프를 필요로 하는 경우에는 번호표와 상관없이 커피를 판매하기로 했다.
애초에 이 일을 하기로 마음먹은 건 부상을 입은 헌터를 돕고 싶어서였으니까. 급한 사람이 우선이지.
오늘의 마지막 손님은 주노을 씨였다. <로열 길드> 소속으로 보이는 일행과 함께였다.
“어! 드디어 제 차례군요. 콜드 브루 커피는…… 벌써 끝났군요. 그럼 쿠키 세트로 주세요. 길드장님은요?”
“나는 아메리카노면 된다는……. 그보다 리을 씨, 인스타 팔로해도 되냐는…….”
“아하하, 그럼요. 저도 맞팔할게요.”
이렇게 카페를 정식으로 알리는 과정에서, 본의 아니게 나는 꽤 유명해졌다.
개설한 뒤 커피 잔 사진 몇 개를 올리고 존재도 까먹고 있던 인스타 팔로워가 어마무시하게 불어날 정도로는 말이다.
“어……?”
주노을의 인스타를 맞팔하기 위해 앱을 켠 나는 깜짝 놀랐다.
전 던전 농원 경영자이자 현 과일 가게 알바생인 이초록에게서 DM이 와 있었다. 내용은, 산지 직송 샤인머스캣을 보내 줄 테니 인스타에 홍보를 해 줄 수 있냐는 것이었다.
‘잘 지내고 있구나…….’
그녀의 과실이라고 하나 던전 농원을 폐업해서 안타까웠는데. 과일 가게 생활이 적성에 잘 맞나 보다.
주노을이 돌아간 다음, 나는 시계를 확인했다. 마침 번호표 배부 시각이 다 되었다.
“아스, 시간 됐어. 이거 먹고 쉬고 있어.”
아스에게 간식을 챙겨 준 뒤 미리 준비한 번호표를 들고 가게 앞을 향했다. 번호표를 받으려는 손님들이 이미 일렬로 길게 줄을 서 있었다. 이렇게나 사람이 많은 광경을 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여기 번호표예요. 감사합니다.”
순서대로 한 장씩 번호표를 나누어주던 중이었다.
문득 나는 어디서 본 듯한 사람을 발견했다. 평범한 인상의 중년 남자였는데, 목에 두른 목도리 무늬가 특이해서 시선을 끌었다. 어디서 봤더라.
아. 생각났다.
“어! 어제도 번호표 받으러 오셨었죠. 커피 좋아하시나 봐요!”
내 입으로 말하기는 조금 민망하지만……. 오전과 저녁, 하루에 두 번 실시하는 이 번호표 배부는 현재 상당히 경쟁률이 셌다. 예전의 단골손님들도 매일 방문하기는 버거울 정도니까.
그런데 이틀 연속으로 오다니 대단하다는 생각에 가볍게 말을 걸었다.
“크흠……. 뭐…….”
꾸벅. 번호표를 받아 든 손님이 머쓱하게 시선을 피하며 떠났다.
그 뒷모습을 무심코 바라보다가 한 박자 늦게 위화감을 깨달았다.
가만. 저 손님, 커피를 사러 온 적이 없는데?
커피를 주문할 때는 내가 못 알아봤나? 그럴 수도 있겠지만…… 어째 찜찜한데.
비슷한 일은 또 있었다. 번호표를 받는 대부분의 손님은 커피를 사러 왔다. 하지만 몇 명은 며칠씩 연달아 번호표를 받았는데도 카페에서 본 기억이 없다.
단순히 내가 바빠서 기억을 못한 걸까?
아니. 그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건 뭔가 이유가 있다.
“뀨우우……?”
“왜 그러느냐, 왜옭!”
“어둠이 곁을 잠식하고 있어.”
일단 번호표 배부를 끝내고 카페 안으로 돌아왔다. 마감과 정리를 마친 뒤, 나는 헌터 채널에 접속해서 우리 가게에 대한 정보를 검색했다.
키워드를 바꿔 가며 검색했지만 나오는 것은 평범한 잡담이나 감상, 챌린지 인증 따위였다.
“여기가 아닌가…….”
“혼자서 뭘 그렇게 보는 거냐, 왜오옹!”
옆에서 끼어들며 방해하는 미음이를 피하려는 순간, 마침 그럴듯한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잡담] 카페ㄹ 번호표 10번대 ㅈㅅ
“아. 이거다.”
당장 글을 눌렀지만 내용을 읽을 수는 없었다.
(삭제된 게시글입니다.)
내가 읽으려는 바로 그 순간 글이 지워졌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