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화
* * *
암표 장사꾼도 퇴치하고 평화롭게 카페 영업을 하다 보니 어느덧 12월 중순.
거리는 완연히 크리스마스 분위기였다. 연말 특유의 분위기에 나도 덩달아 마음이 들뜬다.
<카페 리을>에도 매장 배경음악으로 캐럴을 틀까? 크리스마스용 실내 장식을 주문해서 꾸미는 것도 좋겠지.
하루 영업을 마친 시각, 그런 생각을 하며 핸드폰으로 크리스마스 용품 판매 페이지를 구경하던 때였다.
벌컥, 문이 열리더니.
“호호호, 메리 크리스마스!”
……산타가 나타났다.
“어……. 큰아버지?”
정확히는, 산타 분장을 한 큰아버지였다.
“떼잉, 그렇게 바로 이 산타의 정체를 알아보다니. 우리 조카는 눈썰미가 아주 좋구만.”
“그야…… 보통은 알아볼걸요.”
솜으로 만든 수염이 얼굴에서 떨어지기 직전이었다. 큰아버지는 헛기침을 하며 수염을 고쳐 붙였다.
빨간 산타 옷에 모자. 손에는 선물을 담는 주머니와 커다란 전나무 트리까지 들고 계셨다. 간단한 분장이지만 제법 그럴 듯한 분위기가 났다.
“잘 있었느냐, 조카야! 이건 크리스마스 선물이다.”
큰아버지는 내게 트리로 쓰기 딱 적당한 크기의 전나무를 내밀었다.
하지만 이 트리에는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이거 조화가 아니라 진짜 나무다.
“큰아버지, 산에서 침엽수 함부로 가져오면 불법이에요!”
“호호호! 걱정 말거라, 조카야. 시장에서 샀다.”
“그럼 다행이고요.”
이 전나무에 장식을 하면 딱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내기 좋을 것 같았다. 나는 감사 인사를 한 뒤 나무를 받아 들었다.
카운터 옆에 세워 두면 괜찮겠지? 전나무 트리를 놓을 위치를 고민하는데 큰아버지가 진지한 표정으로 덧붙였다.
“조카야, 큰애비 말을 꼭 기억해라. 뭐든 돈 내고 사는 게 제일이다.”
“아하하, 네에…….”
자연인이 되어 산 생활을 즐기겠다며 떠나신 걸로 아는데…….
그동안 고생이 많으셨나 보다. 큰아버지는 현대 소비 사회의 열렬한 추종자가 되어 있었다.
돈 내고 사는 게 낫다는 말에는 진심으로 동의한다.
커피 재배부터 설탕 만들기, 이제는 직접 짠 우유까지……. 극한 DIY 카페 운영 중이라 그다지 실천은 하지 못했지만.
큰아버지는 선물 주머니에서 선물 상자를 세 개 꺼냈다. 각각 미음이, 라임이, 아스 몫으로 하나씩이었다.
“그럼 착한 어린이에게는 이 산타클로스가 선물을 줘야지.”
“왜오옹(이 몸의 위대함을 알고 조공을 바치는구나)!”
“뀨우, 뀨!”
“산타클로스라……. 성 니콜라우스에서 유래된 인물로, 크리스마스 전날에 선물을 나누어준다는 자 말인가.”
“호호호! 그래, 잘 알고 있구나. 막 위키에서 긁어 온 것처럼 말이다.”
미음이와 라임이 선물은 새 밥그릇, 아스의 선물은 직접 만드는 건축 미니어처였다.
벌써 신나서 새 밥그릇 주위를 뛰어다니는 동물들은 그렇다 치고, 미니어처 같은 게 아스의 취향에 맞으려나? 나는 살짝 아스의 표정을 살폈다.
“이 부품을 잘라서 본드를 바르고……. 흠.”
벌써 조립 설명서를 읽고 있었다. 마음에 든 것 같네.
“아, 마실 거 만들어 드릴게요. 뭐로 드시겠어요?”
“그럼 아이리시 커피로 부탁한다.”
“네, 잠시만 앉아 계세요.”
나는 커피를 만들기 위해 에스프레소 머신 앞을 향했다. 등 뒤로 다시 큰아버지의 당부가 들려왔다.
“조카야, 아이리시 커피에 커피 빼고 위스키 많이 넣어 다오.”
그러면 커피가 아니라 그냥 위스키 아닌가?
나는 큰아버지의 말을 따르지 않고 정확히 위스키를 정량만 넣은 아이리시 커피를 만들어 건넸다.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어요?”
“크으, 하! 역시 문명의 맛은 좋구나!”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감격한 표정을 짓는다. 음. 그동안 고생이 많으셨던 모양이다.
큰아버지의 이야기는 이랬다.
준비 없이 시작한 자연인 라이프는 당연하지만 많은 고난이 있었다.
전기와 수도, 난방, 그밖에 여러 문명의 소중함을 깨닫는 시간이었다고 한다.
인생 제2막을 열고자 시작한 유튜브는 구독자 11명, 최고 조회 수 53회.
슬프게도 유튜브 스타의 꿈을 고이 접어 넣고 하산할 수밖에 없었다.
“떼잉…… 친구 녀석들, 내가 카톡으로 링크까지 보냈는데! ‘1’은 사라졌는데 유튜브 조회 수가 올라가지 않는 건 어째서냐.”
“글쎄요…….”
사실 나도 큰아버지 유튜브 안 봤는데. 죄송해라.
커피를 비운 큰아버지는 덥다며 산타 옷 상의를 벗어 의자에 걸어 두었다. 그리고 손으로 턱을 괴고 내게 물었다.
“그래서, 우리 조카가 뭐가 궁금해서 이 큰애비를 보자고 했을까.”
“할머니에 대해 알고 싶어서요.”
탈지면 솜으로 만든 수염에 절반이 넘게 덮인 얼굴이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오랜 기억을 더듬는 모습이었다.
“할머니가 숲속의 오두막에서 생활하신 적이 있었나요?”
“흐음, 그리고?”
“또, 할머니가 갖고 계시던 능력에 대해서 아시나 하고요. 크투가는 할머니가 별의 흐름을 읽는다고 했어요.”
“별의 흐름이라. 뭐, 그 미친 밥솥치고는 정확한 표현을 썼군.”
미친 밥솥이라니……. 크투가가 조금 안타깝게 느껴지는 표현이었다.
큰아버지가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창밖을 내다보며 낮게 읊조린다.
“별이라. 그래, 별.”
부쩍 짧아진 낮이 지나고 어둠이 내려앉은 시각. 오늘따라 유난히 별빛이 선명했다. 큰아버지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들자 수많은 별이 보였다.
기분 탓이겠지만, 꼭 별이 이쪽을 바라보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이 세계를 제멋대로 주무르려는 신들이 있다. 불리는 이름은 제각각이야. 목소리, 별, 성좌, 이계의 신……. 시스템은 위대한 자라고 부르지.”
큰아버지는 잠시 말을 끊고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웃기지 않느냐, 조카야. 지들 입으로 위대하다고 하다니 자의식 과잉도 정도가 있는 법이다.”
“하하하……. 그, 렇네요.”
“시스템은 그 자의식 과잉 초월자들이 인과율을 거스르지 않고 인간에게 개입하는 도구다.”
웃음기 걷힌 눈이 나를 향했다.
“이상하지 않느냐. 게임을 닮은 시스템 창이라는 것이 우리에게 능력을 준다는 게 말이다.”
“…….”
“초월자들은 시스템을 통해 우리를 조종하려 한다.”
큰아버지는 시스템에 대해 무척 냉소적으로 말했다.
그래서일까. 헌터셨던 큰아버지는 각성 능력을 잃은 지금이 더 편안해 보였다.
“……왜옹.”
큰아버지의 말에 반박하고 싶은 듯 미음이가 작게 울음소리를 냈다. 하지만 더 말하지는 않고 눈만 데굴데굴 굴렸다. 나름 눈치를 보는 듯했다.
“어머니는…… 눈이 특별했어.”
한 박자 늦게, 그 말이 내 질문에 대한 답임을 알아차렸다.
“눈이요?”
“그래. 인과를 읽어 낼 수 있는 눈. 요정안이라고도 부르지.”
“…….”
세상에 던전이 생겨나고 각성자가 나타나기도 전부터, 할머니는 남들이 볼 수 없는 것을 보셨다고 한다.
점쟁이 행세를 하셨으면 큰돈을 벌었을 거라며 큰아버지가 껄껄 웃었다.
“그리고 자식들이 어느 정도 컸을 때, ‘얽힌 인과를 풀겠다.’는 편지를 남기고 떠나셨다.”
놀라지는 않았다고 한다. 큰아버지가 보기에, 할머니는 언제든 떠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 미친 밥솥이 어머니를 만난 건 그때일 거다. 어딘가 조용한 곳에서 지냈다고 하셨으니까.”
“그 얽힌 인과라는 건…… 해결된 건가요?”
큰아버지는 옆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건 할머니만이 아는 일이라고 했다.
나는 강인하면서도 다정하던 할머니를 떠올렸다. 돌아가시기 전에 할머니에 대해 더 많이 알았으면 좋았을 텐데. 큰아버지의 이야기 속 할머니는 낯선 느낌이다.
이야기를 마치고 큰아버지가 돌아갈 채비를 했다.
“오빠 만나러 가실 거죠? 제가 미리 오빠한테 연락해 놓을게요.”
“아니, 아직 아니다. 내겐 해야 할 일이 있단다.”
“네? 일단 오빠한테 연락한 다음 하시면 안 될까요? 무슨 볼일인데요?”
큰아버지가 벗어둔 산타 옷 상의를 다시 걸치고, 탈지면 수염이 떨어지지 않았나 꼼꼼하게 확인했다.
“호호호! 산타클로스가 할 일은 하나뿐이지. 착한 어린이들에게 선물을 주는 거란다.”
“……네?”
아무래도 진심이신 것 같은데.
권지운이 지끈거리는 이마를 부여잡는 모습이 눈에 선했다.
“자, 잠깐만! 큰아버지, 하나만. 하나만 더 말씀해 주세요!”
크리스마스 전까지 선물을 배달하려면 바쁘다며 큰아버지가 떠나려 했다. 나는 황급히 큰아버지의 옷소매를 붙잡고 질문을 쏟아냈다.
“크투가는 할머니가 갑자기 아무 말 없이 오두막에서 없어졌다고 하더라고요. 그렇게 떠나셨던 할머니는 언제, 왜 돌아오신 건가요?”
“…….”
“……큰아버지?”
해묵은 기억을 더듬는 듯 얼어붙은 그는 잠시 말이 없었다.
“어머니가 돌아오신 건…….”
떨리는 숨에는 채 다 짐작할 수 없는 감정이 들어찼다.
“동생 부부가, 그러니까…… 조카, 네 부모님이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고서였단다.”
* * *
시간이 늦었다.
내일 영업 준비를 하고 잘 준비를 해야 했다.
큰아버지가 떠나고도 한참이 지난 시각, 나는 멍하니 앉아 있던 몸을 일으켰다.
“아스, 피곤할 텐데 얼른 쉬어.”
“…….”
“……아스?”
대답이 없다. 아스 쪽을 보자 어느새 미니어처 만들기에 푹 빠져 있었다. 다시없이 진지한 표정으로 부품을 자르고 사포질을 한다.
어떻게 저렇게 아스의 취향에 딱 맞는 선물을 고르셨지? 캠핑에서 큰아버지랑 아스가 많이 친해졌나?
아무튼, 즐거워 보이니까 놔둘까.
아스를 내버려 두고 잠시 이공간 안으로 들어가려는데, 이번에는 미음이가 내 앞을 가로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