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8화 (118/192)

118화

나는 옆에 놓인 건축 미니어처 만들기 세트 상자를 확인했다. 겉면에 ‘쉽게 만드는 DIY 미니어처 세트. 예쁜 꽃집 만들기 - 어린이 정서 발달에 좋아요.’라고 적혀 있었다.

‘꽃집을 어떻게 개조하면 마왕성이 되는 걸까.’

“왜오옭! 이 인간, 제법 재주가 좋구나.”

“뀨우! 뀨우우!”

우리 집 동물들이 마왕성 앞에서 폴짝폴짝 뛰며 감탄했다. 방금 우리 집 식구들과 마음의 거리가 한 걸음 벌어졌다.

칭찬을 기대하는 눈빛이 내게 쏟아졌다. 나는 최선을 다해 단어를 골랐다.

“그게…… 음, 아스는 대단하네.”

“흐흠, 이 정도쯤 아무것도 아니야!”

그렇게 말한 아스가 기대 어린 표정으로 덧붙였다.

“원한다면 하나 더 만들어 줄 수도 있어.”

“아아아아아아아아니야, 마음만 받을게.”

기대에 응하지 못해 미안하지만, 저런 것을 방에 두었다간 꿈자리가 사나울 것 같았다.

“……체.”

아쉬워하며 아스가 마왕성을 크리스마스트리 옆에 놓았다.

건전한 정서 함양을 위해 던전 디톡스는 물론이고, 노동 디톡스까지 실시했는데…….

더 이상 뭘 디톡스해야 아스의 어둠을 걷어 낼 수 있을까.

도저히 모르겠다…….

취향이 굉장히 독특하긴 하지만, 건강하면 됐지. 뭐.

어쨌건.

우리는 크리스마스 장식 세트를 이용해서 카페를 크리스마스 풍으로 꾸몄다. 장식을 마치니 이런 알림창이 떴다.

[크리스마스 장식을 완료했습니다. 크리스마스 장식 세트의 효과가 발휘됩니다.]

[효과: 카페에 들어온 손님이 굉장히 크리스마스 기분이 됩니다. 분위기: + 20]

역시 다들 이미 크리스마스 기분에 흠뻑 젖어서 효과를 체감할 순 없었다.

어쨌거나 장식을 해 놓으니 분위기가 나긴 했다.

준비를 전부 마치니 정오를 조금 넘긴 시각. 슬슬 손님이 도착할 때가 되었다.

그러고 보니 기유현과 만나는 건 꽤 오랜만이네. 경주에서 돌아왔다는 연락은 받았지만 만나지는 못했다. 쌍둥이도 그렇고, 또…….

설마 크리스마스 장식 효과 때문인가? 나도 들뜨기 시작했다. 무심코 캐럴을 흥얼거릴 것만 같다.

“리을 씨, 안녕하세요.”

“실례하겠습니다.”

가장 처음으로 도착한 손님은 공무원 2인조, 강현우 팀장과 김지나 씨였다.

오늘이 공휴일인데도 제복 차림인 점이 안타까웠다. 근무 때문에 파티 참석은 어렵지만 잠깐 시간을 내서 들렀다고 김지나가 설명했다.

“여기까지 오셨는데, 핫초코라도 드시고 가세요.”

나는 안쓰러운 마음으로 둘에게 크리스마스 핫초코를 만들어 주었다. 핫초코를 한 모금 마신 김지나가 조금 부드러워진 표정으로 말했다.

“이걸 마시니 어쩐지 휴일 기분이 되네요.”

“흠, 저도 그렇습니다. 이런 기분은 처음이군요.”

강현우 팀장이 김지나의 말에 동의했다.

“그 안건, 꼭 오늘 끝내지 않아도 괜찮지 않을까요?”

“지난주에 긴급한 일은 끝냈으니 스케줄에 여유가 있습니다.”

공무원들이 잠시 서로의 얼굴을 바라본 뒤 극적인 합의를 이끌어냈다.

“그럼 오늘은 이대로 퇴근하고 크리스마스나 즐길까요?”

“좋은 생각입니다.”

오.

이 ‘크리스마스 기분이 됩니다.’라는 효과, 진짜 효과가 있었구나.

다음은 권지운과 최이찬이 왔다.

최이찬이 캐럴 박자에 맞추어 동물들로 저글링을 하는 동안, 나는 권지운에게 작게 물었다.

“큰아버지는 아직 연락 안 되셔?”

“응. 그래도 너무 걱정하지 마. 또 어디 바람 쐬러 가셨을 수도 있으니.”

사실 그렇게 말하는 권지운이야말로 얼굴에 걱정이 가득했다. 실종되었다가 돌아온 지 얼마 안 된 아버지가 다시 사라졌으니 그럴 만도 하다.

나는 권지운에게도 핫초코를 건넸다. 그는 구석으로 가서 전나무 트리에 장식을 달기 시작했다. 그래, 손을 움직이는 게 스트레스 해소에 좋다고 하더라.

“언니, 메리 크리스마스예요!”

“이 멍청아! 내가 먼저 말하려고 했거든!”

“이 멍청아! 먼저 말하는 사람이 임자거든!”

다음으로 온 손님은 쌍둥이와 기유현, 김덕이 할머니였다. 쌍둥이는 귀여운 산타 의상을 입었는데, 아스 몫의 의상도 가지고 왔다.

“윽, 나보고 성인(聖人)의 옷을 입으라는 거야? 모욕적이다!”

“와, 너희 그 옷 정말 귀엽다. 잘 어울려!”

“……흐, 흠. 특별히 한 번쯤 입어 줄 수도 있고.”

나는 산타 의상을 입은 쌍둥이와 아스의 사진을 여러 장 찍었다. 정말 귀엽다.

김덕이 할머니는 공무원들과 제작 아이템 거래 수수료에 대해 열띤 토론을 벌이셨다.

으음…….

크리스마스 파티라기보다는 다들 각자 알아서 노는 것 같은데.

뭐, 이런 것도 재밌어서 좋네.

최세드릭은 매년 동생과 함께 크리스마스를 보내서 못 온다고 말했다.

그럼 이제 남은 손님은 한 명이다. 손님이 전부 도착하면 그때 케이크를 자르면 되겠다.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기유현에게 말을 걸었다.

“유현 씨, 핫초코 마실래요?”

“좋죠. 그런데 왜 그런 눈으로 보세요?”

“네? 제가 뭘요?”

“굉장히 호기심이 넘쳐 보이는데요.”

크리스마스 기분이 된 기유현의 반응이 궁금했기 때문이다. 아직까지는 크리스마스 분위기에 흠뻑 젖은 주위에 어우러지지 않고 차분한 모습이지만, 이 핫초코를 마시면 달라지지 않을까.

너무 궁금하다. 늘 한발 물러선 느낌의 이 남자가 들뜨면 어떨지.

그런 속셈을 숨기고 핫초코를 건네려는 찰나였다.

벌컥!

“큰일이라는……!”

창백한 낯빛의 주노을 씨가 나타났다.

“노을 씨? 왜 그러세요?”

그녀가 오늘 파티의 마지막 참석 예정자였다. 머리에 빨간 산타 모자를 쓴 것으로 보아 파티에 오던 길이었던 듯했다.

그런데 큰일이라니?

“크, 큰일……. 헉…….”

“일단 여기, 찬물 좀 드세요.”

“헉, 허억…… 감사, 후, 하…….”

주노을은 얼음물 한 컵을 그대로 원샷하고 숨을 골랐다. 꽤 멀리서부터 달려온 것 같았다.

“큰일이란 건 뭐예요?”

“이것 좀 보라는……!”

주노을은 자신의 태블릿 pc를 내게 건네고 어떤 화면을 띄웠다. 그녀의 재촉에 이끌려 화면을 확인하니 평범한 블로그 포스팅이었다.

[신상카페] 힙한 신상 핫플 ‘슈퍼 버프 커피’ 길드중앙동점

작성자: 스태리

안녕하세요! 스태리입니다: )

요즘 유명 헌터 길드가 몰려 있는 길드중앙동이 떠오르는 핫플이죠?

길리단길에 감성 카페가 생겼어요!

대박 예감 신상 카페 ‘슈퍼 버프 커피’ 소개드려요♬

#길드중앙동신상카페 #신상카페 #길리단길카페 #슈퍼버프커피 #버프커피

…….

어느 카페의 소개 포스팅이었는데, 사진 여러 장과 함께 상세한 설명이 쓰여 있었다.

대로변에 위치한 총 4층짜리 단독 건물은 최근에 오픈했는지 외관부터 번쩍번쩍했다. 내장도 최신 유행 인테리어라 세련되면서 화려했다.

음료 종류도 많고……. 오, 디저트와 베이커리도 충실하다. 케이크 맛있어 보이네. 위치도 좋으니 손님이 많이 몰릴 만한 카페였다.

“그런데 이 카페가 무슨 문제가 있나요?”

아주 멋지고 화려한 카페기는 하지만, 위기감이나 경쟁의식이 느껴지지는 않았다.

당연하다.

서울 시내, 아니, 전국 방방곡곡에 카페가 얼마나 많은데. 입지도 규모도 타겟 고객층도 다른 카페에 놀랄 이유는 없다.

그러나 주노을은 가슴을 치며 답답해했다.

“그게 아니라는……!”

“네?”

“이 카페, 커피를 마시면 버프 효과를 준다고 홍보하고 있다는……!”

“……네?”

그제야 블로그 포스팅의 하단에 적힌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놀라운 점은 ‘슈퍼 버프 커피’의 커피는 헌터 여러분에게 버프 효과를 준다는 것인데요!

체력 회복부터 스테이터스 업, 상태 이상 해제까지♬

다양하고 강력한 버프를 얻을 수 있어요.: )

기존에 버프 커피로 유명하던 카페 리을보다 종류가 다양해서, 입맛대로 고르기 좋은 것도 장점이예요~

번화가에 있으니 바쁜 헌터님들에게도 도움이 될 거 같네요^0^

카페 리을에서 줄 서기 힘들었던 헌터님들에게 추천!

슈퍼 버프 커피는 곧 헌터마켓점, 던전관리청점, 길드사거리점, 여의도헌터TV점을 순차적으로 오픈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

저 스태리의 추천 메뉴는 아인슈페너!

꼭 한번 드셔보세요♬

…….

…….

“이대로라면 손님을 빼앗기고 말 거라는……!”

“헐…….”

충격의 크리스마스였다.

11장. 정품을 애용합시다.

한국 No.1 헌터 커뮤니티 - 헌터 채널

자유게시판

- 랭킹, 길드 추노 금지. 현피는 던전에서

[잡담] 슈퍼 버프 커피 우리길드앞에 생김ㅎ (32)

추천: 21 / 비추: 2

작성자: 피즈치자

오늘 가서 마셔봄ㅎㅎ

분위기 괜찮드라 입구에 포토존있음

직원들 진짜 친절하고 인싸라서 놀랐음ㅋㅋ 서비스도 주고 음료 맛있었냐고 꼭 물어보더라고 bb

밤12시까지 하고 루프탑도 있어서ㄱㅊㄱㅊ

버프효과도 좋아서 앞으로 자주갈듯 ㅊㅊ함

프급: 후기ㄳㄳ

ㅇㅇ: 맛 ㄱㅊ?

└피즈치자: ㅇㅇ먹을만함 오픈 기념으로 크로플 서비스로 주는데 이것도 ㄱㅊㄱㅊ

 └ㅇㅇ: 올 나도 가봐야지 헌터티비앞에도 지점 생겼더라

라임사랑단: 짭가게 안삼ㅅㄱㅇ

뿌에엥: 요새 지점 많이 생겨서좋음ㅋㅋㅋㅋㅋㅋㅋㅋ 본청 지점은 24시간 영업임 굿굿ㅋㅋㅋㅋ

tal***: 여기 어디서 운영하는거임??규모ㄹㅇ크네

└스태리: 무슨 벤처기업이라든데,, 잠만 나 브로셔있는데 보고옴ㅋㅋㅋㅋ

└스태리: 성혜(星慧)기업이래 원래 제작계 길드로 시작했는데 카페 사업으로 확장했다네ㅇㅇ 버프커피로 특허 출원중인데 해외에서도 관심보이고있대ㅎㅎ

 └라임사랑단: 바이럴 ㄹㅇ티나거든여????

cdt***: 나낼가볼건데 가격은 ㅇㄸ?

└마켓13호: 아아메10루비정도,, ㅋㅍㄹ보다 싸진아늠

 └cdt***: 그정도면ㄱㅊㄱㅊ 슈퍼버프가 더가까우니까ㅇㅋ

라임사랑단: 카페 리을이 훨씬 맛있는데 왜 짭가게 얘기함????ㅡㅡ 양심어디감

└피즈치자: 거기 너무 구석에있음ㅠ 던게앞까지 가기 ㅈㄴ귀찮

 └라임사랑단: 헐; 귀찮다고 짭사먹는단거임????? 피즈치자 개실망

└피즈치자: 왜 나한테 급발진임?ㅋㅋㅋㅋㅋ 짭은뭔소리임ㅋㅋㅋㅋ ㅋㅍㄹ에서 특허낸것도 아닌데ㅇㅇㅋㅋㅋㅋㅋ

└라임사랑단: 짭을 짭이라고 하지 뭐라고함???? ㅋㅍㄹ 주인이 좋은뜻으로 싸게팔던건데 헌챈러들 ㅈㄴ의리없다 양심좀 ㅇㅅㅇ

 └힝행홍: 22222 ㅠㅠㅠㅠ

 └설탕할짝: 333333ㅠㅠㅠㅠ

피즈치자: 띠용???? 내가 커피 사먹은 후기썼다가 양심없단 소리까지 들어야됨?ㅋㅋㅋㅋ

└red***: 라임이 요새 슈퍼버프커피글마다 악플달고다님ㅋㅋㅋㅋㅋ 걍 무시하셈;

└라임사랑단: 아니 악플이 아니라ㅡㅡ 너네가 자꾸 짭가게 옹호하니까 다는거 아님ㅡㅡ

 └ㅇㅇ: 머어쩌라고ㅋㅋㅋㅋㅋ 커피마시러 던게까지 어케감 ㅋㅍㄹ도 지점내든가

라임사랑단: ㅅㅂ;;;; 이럴거면 헌터마켓 욕은 왜함???? 이러니까 골목아이템샵들이 다 망한거아님???

└피즈치자: 그거하고 이거하고 같냐고;;

└라임사랑단: 그렇게 쉽고편한길만 찾으니까 피즈치자가 아직 뉴비인거임 ㅇㅅㅇ

 └힐러구함: 님 인신공격은 자제좀

프급: 슈퍼버프커피 블로그에 올라왔는데 오서호 데리고 CF 찍나봐

└ㅎㅎ: 대박ㄷㄷ 잘나가네ㅋㅋㅋㅋㅋㅋㅋ

라임사랑단: 짭 홍보하지 말라고 ㅡㅡ

(블라인드 처리된 리플입니다.)

(블라인드 처리된 리플입니다.)

…….

[닉네임: 라임사랑단

차단된 사용자입니다. (해제까지 남은 기간 30일)

사유: 악플, 인신공격

[관리자]: 헌터님 바르고 고운 언어 사용합시다.]

* * *

영광의 시대는 끝났다.

새해를 맞이할 때까지 약 일주일간 내게 일어난 일을 요약하면 이렇게 말할 수 있겠다.

우리 카페처럼 버프를 주는 커피를 판매한다는 <슈퍼 버프 커피>라는 카페 체인이 대거 오픈했다.

처음에는 효과를 의심하는 시선도 있었지만 오래 가지 않았다. 그곳의 커피를 마셔 본 헌터들은 모두 효과가 진짜라고 말했으니까.

매장 위치는 모두 서울 시내 헌터들의 접근성이 좋은 번화가였다.

거기다 주차장 딸린 대형 매장, 세련된 인테리어, 긴 영업시간, 적극적인 SNS 바이럴 마케팅 등……. 순식간에 <슈퍼 버프 커피>는 성황을 이뤘다.

그러니 이곳 <카페 리을>의 손님이 줄어드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1월 2일. 설 휴일이 끝나고 24살이 되어 처음으로 맞이한 영업일.

창밖은 싸늘한 바람만 부는 던전뷰다. 그 많던 손님은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다.

인스타에 올린 사소한 사진 한 장도 기사화되던 셀러브리티 생활은 이렇게 끝을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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