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9화 (119/192)

119화

따뜻한 카페라테 잔을 기울이며 나는 생각했다.

어떡하지, 할 일이 없다.

청소도 설거지도 재고 보충도 공과금 내기도 심지어 핸드폰 사진첩 정리까지 다 했다.

그동안 너무 열심히 일했나 보다. 모처럼 맞이하는 이 느긋함이 어색하게 느껴진다.

“아스, 손님도 없는데 좀 쉬자.”

“……알았어.”

아스에게 카페모카와 간식을 챙겨 주고, 핸드폰으로 할 만한 게임이라도 검색해 보려던 찰나였다.

“다들 너무하다는…….”

창가 쪽 테이블에 앉아서 커피를 마시던 주노을이 낮게 말했다.

“어떻게 이곳을 놔두고 그런 짭을 올려칠 수 있냐는…….”

주노을은 <슈퍼 버프 커피>에 대해 짭이라며 엄청나게 화를 냈다.

헌터 채널에서 그 카페를 비판하다가 싸움이 나, 한 달 동안 헌터 채널 아이디를 차단당하기까지 했단다.

인터넷 커뮤니티 금단증상으로 괴로워하는 그녀의 모습을 보니, 고마우면서도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빨리 차단 풀리면 좋겠네…….

“저도 이해할 수 없군요.”

이건 조금 전 카페에 도착해 커피를 주문한 기유현의 말이다.

“리을 씨 커피가 훨씬 맛있는 게 당연한데요. 미각에 문제가 있는 사람들이 많군요.”

카페 내에 손님이 둘밖에 없는 상황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목소리가 들렸다. 주노을이 크게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뭘 좀 아는 손님이시라는…….”

“아. 크리스마스 때 뵈었죠.”

정작 그 크리스마스 파티는 <슈퍼 버프 커피> 관련 소식으로 혼란스러워서 일찍 끝났지만. 슬픈 일이다.

“주노을 헌터도 훌륭한 입맛의 소유자시군요.”

“그쪽도 인정한다는…….”

두 사람 사이에 극적인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하하, 두 분 다 감사해요.”

손님이 줄어든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카페는 첫째도 입지, 둘째도 입지, 셋째도 입지다.

외진 주택가에 있는 커피가 맛있는 개인 카페와 번화가 지하철역 출구 앞에 있는 균일한 서비스의 대형 체인.

어느 쪽이 손님이 많을지는 자명한 일이다.

하물며 던전게이트 앞의 우리 카페와 대형 길드가 몰린 번화가에 있는 4층짜리 대형 카페다. 같은 버프 효과라면 접근성 좋은 곳을 선호하겠지.

다만 몇몇 단골들은 계속 <카페 리을>을 찾으면서 지금 상황이 너무하다고 화를 냈다.

그중 김지나의 경우는…….

“미안해요. 어제 관련 규정을 싹 뒤졌는데, <슈퍼 버프 커피>를 처벌할 법적 근거는 애매한 상황이에요.”

“헉, 그걸 다 찾아보셨어요?!”

“이런 곳에 규정의 허점이 있다니, 정말 충격이에요!”

“아하하……. 그건 어쩔 수 없죠. 신경 써 주셔서 고마워요.”

“제게 더 힘이 있었다면 당장 비겁한 짭을 처벌할 규정을 만들 수 있는데! 분해요!”

“마음만으로도 충분히 기쁜걸요.”

“헉, 이럴 때가 아니군요. 얼른 진급 시험을 통과해서 힘을 손에 넣어야겠어요!”

“……지나 씨?”

“헌터계를 개선하기 위해서라면……!”

이렇게 진급을 향한 열의를 불태웠다.

나는 그녀에게 스트레스가 풀리는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버터 쿠키 세트를 포장해 주었다.

저렇게 열심이니 금방 진급에 성공할 것 같다. 과로만 하지 않으면 좋겠다.

그리고 또, 권지운과 최이찬이 함께 카페에 들렀다. 최이찬의 <백은 길드> 가입 기념으로 파티를 짜 던전에 가는 길이라고 했다.

“그렇구나. 던전에 갈 거면 커피를 테이크아웃하는 게 낫겠다. 뭘로 줄까?”

“메뉴판 처음부터 끝까지…….”

“……권지운?”

“각각 열 잔씩.”

“오빠, 그렇게 마시면 카페인 중독에 걸리거든?”

“괜찮아. 다 마시고 상태 이상 해제 포션을 쓰면 되니까.”

“뭐? 대체 그게 무슨 의미야……. 이찬아, 권지운 좀 말려 봐.”

“하하하! 형님이 너무 오버하시지? 난 적당하게 시킬게. 메뉴판 처음부터 끝까지 각각 다섯 잔씩만.”

“……안 돼.”

당장 내가 길에 나앉기라도 할 것 같나?

나는 두 사람에게 카페인 중독에 걸리지 않을 만큼만 커피를 챙겨 주었다.

그밖에 이초록이 샤인머스캣을 한 상자 보내 주었고, 또……. 이런저런 과도한 걱정을 받았다.

상황이 이렇게 되었지만, 그래도 나는 괜찮았다.

괜찮은 척을 하는 게 아니라 정말로 괜찮다.

커피로 세상에 도움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역시 셀러브리티 인기 카페 주인은 체질에 안 맞다. SNS의 사소한 말까지 기사화되는 것도 그렇고. 슈퍼마켓에 장 보러 갔는데 나를 알아보는 사람이 있는 것은 곤혹스러운 일이다.

‘아무도 나를 몰랐으면 좋겠다…….’

나를 그냥 커피 파는 NPC로 생각해 주시면 안 될까요.

이렇게 은근히 부담스러운 상황이었는데, 또 다른 버프 커피 판매처가 나타났다.

<슈퍼 버프 커피>가 개업한 김에 원래의 계획대로 다시 ‘한적한 던전게이트 앞 숨겨진 카페’를 목표로 해야겠다.

범헌터를 위한 노력을 대형 체인 카페가 해 주면 나야 개이득이지. 열정적인 영업은 <슈퍼 버프 카페>에게 맡기고 나는 적당하게 한적한 F급 카페 주인의 본분에 충실하자.

이런 결론을 내렸지만.

다만 한 가지 의문은 느껴졌다.

나는 어제 먹고 남은 가래떡을 간식으로 먹어치우고 배가 볼록해진 미음이를 가만히 쳐다보았다.

“……왜오옹?!”

내 시선을 느끼고 미음이가 귀를 쫑긋 세웠다.

“왜옹, 왜오옹(나, 나만 먹은 게 아니라 얘도 먹었다)!”

“뀨우우웃!”

응, 알아. 그거 말고.

‘커피 만드는 스킬 나만 쓸 수 있다고 하지 않았어?’

“왜우웅…….”

‘헐. 미음이 나한테 거짓말한 거야? 나밖에 쓸 수 없다고 대단하다고 했으면서……. 그냥 한 말이었어?’

“왜오옭(그건 아니다).”

‘미음이 너를 믿었는데……. 믿을 고양이 하나 없다더니.’

“왜옹, 왜오옭(나는 언제나 인간 너한테 진실만을 말한다. 위대하신 시스템의 명예를 걸고)!”

‘흐음…….’

“캬갸갸옭! 갸옭(나를 못 믿는 거냐! 그 스킬은 정말로 너에게 부여된 고유한 스킬이다. 같은 스킬을 가진 헌터는 없다)!”

나는 미음이를 쳐다보았다.

털을 쭈뼛 세우더니 앞발을 들고 두 발로 선다. 그 상태로 펄쩍 펄쩍 뛰면서 마구 냥냥 펀치를 날린다. 정말 억울해하는 표정이다.

길길이 날뛰는 모습으로 보아 미음이의 말은 정말인 것 같다.

이 고양이는 그렇게 연기력이 좋지 않으니까.

“뀨우! 뀨우!”

옆에서 라임이도 몸을 통통 튕기면서 미음이의 편을 들어 주었다.

‘알겠어, 믿을게. 그러면 <슈퍼 버프 커피>는 뭐야? 어떻게 버프 커피를 파는 거지?’

다시 앞발을 내리고 바닥에 배를 깔고 앉은 미음이가 옆으로 고개를 저었다.

“왜웅, 왜우웅(그것까진 모르겠다. 스킬이 아니라 다른 방법을 쓰는 것은 틀림없다).”

‘그래, 일단 알겠어.’

나는 미음이의 동그란 턱을 쓰다듬어 주었다. 의심받은 서러움이 풀린 듯 미음이가 골골 소리를 냈다.

스킬이 아니라면 뭘까?

커피에 버프를 부여하는 물질이라도 타나? 하지만 포션을 타면 단가가 비싸지는 건 그렇다쳐도 포션의 쓴맛이 감춰지지 않을 텐데.

“흐음…….”

“리을 씨, 왜 그러세요?”

커피를 마시던 기유현이 옆에서 말을 걸었다. 갑자기 고양이는 왜옹거리고 나는 이마를 짚고 생각에 잠기니 신경 쓰인 모양이다.

뭐, 무슨 수단을 쓰건 나와는 관계없는 일이지. 나는 <슈퍼 버프 커피>에 대해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주노을은 방금 분을 토해 내고 돌아갔고, 가게 안에 손님은 기유현뿐이었다. 마침 타이밍이 좋다. 나는 원래 기유현에게 하려던 이야기를 입에 올렸다.

“경주에서 균열 터진 건 잘 정리됐어요?”

“아. 네. <청라> 쪽에서 후속 조사 중인데, 큰 이슈 사항 없이 끝날 것 같아요.”

“갑자기 경주에 간 건, 회귀 전에도 거기서 균열이 터졌기 때문이에요?”

“네, 그렇습니다.”

기유현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많은 부분이 회귀 전과 달라졌지만, 과거와 달라지지 않은 부분도 있으니까요. 적은 피해로 막을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먼치킨 회귀자도 참 고생이 많네요.”

“하하하……. 먼치킨, 까지는 아닌데요.”

기유현의 방금 이 발언을 다른 사람이 들었다면 기만자라고 말했을 것이 틀림없다. 당신이 아니면 누가 먼치킨인데요.

“뉴스에 영상도 나왔잖아요. 그건 괜찮아요? 그거…… 정체 말이에요.”

기유현이 무원이라는 거 일단 대외비 아닌가? 내 염려에 그가 생긋 미소 지었다.

“그럼요. 찍히는 건 알고 있었습니다. 얼굴은 안 찍힌 걸 알아서 내버려 뒀어요. 어차피 안경도 쓰고 있었고.”

“안경? 그 안경이 왜요?”

기유현은 지금도 가끔 쓰던 안경을 쓴 채였다. 그의 선명한 이목구비를 조금도 가려 주지 못했지만 말이다.

“안경 하나 썼다고 못 알아보지는 않을 텐데요.”

“어쩐지 이상하다 싶었는데……. 이거, 이래 보여도 굉장히 드문 아이템이에요.”

쓴웃음을 지으며 기유현이 설명했다.

저 평범해 보이는 안경은 특수 주문 아이템이었다.

주변 사람이 착용자를 인식하지 못하게 하는 효과가 있다고 했다. 즉, 기유현의 얼굴을 봐도 금방 잊어버리게 된다는 것이다.

“아까 노을 씨는 유현 씨 알아봤잖아요?”

“제가 말 걸기 전까지는 알아보지 못하셨죠.”

“아하.”

가만, 나는 왜 효과가 없었지?

띠링. 그렇게 생각하자마자 시스템 알림이 떴다.

[*system: 현재 의식에 개입하는 스킬을 무효 처리 중입니다.]

“아하…….”

“만능은 아니에요. 그저 약간 의식을 흐트러트릴 뿐이니까요. 그래도 조용히 움직이고 싶을 땐 도움이 됩니다.”

달칵, 문이 열리고 새로운 손님이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카페 리을>에 자주 오던 단골손님이었다.

얼마 전에 그와 통성명을 했다. 김형홍이라는 본명보다는 이름에서 따서 지었다는 ‘힝행홍’이라는 헌터 채널 닉네임이 기억에 남았다.

참고로 그도 우리 카페와 <슈퍼 버프 커피> 일로 헌터 채널에서 싸우다가 아이디가 차단되었다고 한다. ……감사하고 미안한 일이다.

아무튼, 이 힝행홍 씨는 기유현의 존재를 의식하지 못하고 터덜터덜 카운터 앞으로 와서 음료를 주문했다.

안경의 효과는 진짜였구나. 보통이라면 이렇게 튀는 남자를 발견하지 못했을 리가 없으니.

그런데 무슨 일일까. 힝행홍 씨는 굉장히 기운 없는 표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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