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화
“뭐? 설마 도도도독이라도……!”
나는 당황하며 몸을 일으켰다. 주변에는 주문한 음료를 마시는 손님들이 많았다. 음료에 문제가 있으면 당장 마시지 못하게 해야 한다.
그러나 아스가 내 옷자락을 잡아 당겨 다시 의자에 앉혔다.
“그렇게 호들갑 떨지 마. 당장 어떻게 되는 건 아니니까.”
차분한 아스의 반응을 보니 덩달아 나도 차분해진다. 나는 목소리를 낮추고 물었다.
“그러면? 뭐가 든 거야?”
“몸의 에테르 체계에 영향을 끼치는 물질이 든 것 같아. 정확히 뭔지는 모르겠지만.”
“그 물질이 버프 효과를 주는 걸까?”
“아마도.”
아스가 제 손의 커피 잔을 다시 살피더니 덧붙였다.
“한두 번 마시는 정도는 괜찮아. 그저 신체의 특정 에테르 흐름을 강하게 하는 것뿐이니까. 말하자면 오버클럭하고 비슷해. 하지만 장기 복용하면 좋지 않아.”
커피의 상태 창에 특별한 내용은 없다. 시스템 역시 다른 알림을 띄우지 않는다. 그런데 어떻게 아스는 이 커피의 정체를 알 수 있는 걸까. 그렇게 묻자 아스가 픽 웃음을 흘렸다.
“황혼의 마왕을 뭐라고 생각하는 거야?”
“아.”
“……까먹고 있던 표정인데?”
“아하하…….”
나는 뜨끔했다.
요즘은 건축 미니어처 만들기 같은 건전한 취미도 생겼고, 가끔 놀러오는 쌍둥이랑도 친하게 지내서 까맣게 잊고 있었다.
이 소년이 평범한 중2병이 아니라 화신체 아스모데우스라는 사실을 말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그저 붙임성 없는 청소년에 불과하니까.
아스가 계속 우리 가게에 있어도 괜찮은 걸까. 나야 아스가 같이 있어서 기쁘지만.
아차, 이런 생각을 할 때가 아니었다.
문제는 미지의 물질이 들었다고 추정되는 이 커피.
“맞아, 그게 있었지.”
나는 인벤토리를 열어 실버 티스푼을 꺼냈다.
지난번 암표 장사꾼을 퇴치하는 퀘스트 보상으로 얻은 아이템이다.
처음에는 공격력 1짜리 그냥 티스푼이라기에 쓸 곳이 없어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하지만 나중에 상태 창을 다시 보고 놀랐다.
[아이템: 실버 티스푼 (★★☆☆☆)
그냥 티스푼입니다. 의외로 무기로도 쓸 수 있습니다.
종류: 빠른 속도 단거리 무기
공격력:1
비고: 독극물에 닿을 시 변색됩니다.]
주의 깊게 다시 읽어 보자.
[비고: 독극물에 닿을 시 변색됩니다.]
저 마지막 문구가 너무 신경 쓰였다.
독극물? 독극물이라고?
이제껏 퀘스트의 보상은 가게를 업그레이드하는 것이 아니면, 향후의 일에 인과 관계가 있는 경우가 많았다.
즉, 이런 걸 준다는 뜻은…… 나 독극물을 먹게 되는 건가? 카페 주인의 길에는 그런 무서운 운명이 기다리고 있는 걸까?
너무나도 불길하다. 나는 앞으로 닥쳐올지도 모르는 사고를 피하기 위해 이 티스푼을 인벤토리에 꼭 넣어 다녔다.
다행히 이제까지 위험한 일은 없었지만…….
이 실버 티스푼을 한번 써 볼까.
나는 크림모카가 든 잔에 티스푼을 담갔다.
치지직.
타는 소리와 함께 연기가 피어올랐다. 황급히 티스푼을 꺼내니 커피에 닿은 부분이 새까맣게 변색된 상태였다.
“……!”
이 아이템이 내게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니라면, 커피에 이상이 있다는 무시할 수 없는 선명한 증거였다.
나는 목이 타는 것을 느꼈다.
비록 후발 주자라도 이곳 <슈퍼 버프 커피>도 버프 커피를 만들어 헌터들에게 도움을 주려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런 위험한 수단을 쓰다니 화가 났다.
나는 실버 티스푼을 인벤토리에 넣고 가만히 주위를 살폈다.
웃는 얼굴로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이 보였다. 대부분이 헌터였지만 유명세 덕분인지 일반인처럼 보이는 사람도 조금 있었다. 유튜브 촬영을 하거나 인증샷을 찍는 등 각양각색이다.
마시고 이상을 호소하는 사람은 없다.
“하아…….”
일순 머리끝까지 차올랐던 열이 식었다. 화는 나지만 최대한 이성적으로 생각해 보자.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이 커피에 문제가 있다고 고래고래 떠들고 싶다.
문제는 내가 얼굴이 알려진, 라이벌 카페의 주인이란 사실이다. 더군다나 지금은 모자와 목도리로 눈에 띄지 않게 얼굴을 가리고 있다.
라이벌 카페를 역(逆) 바이럴 하려는 것으로 오해받지나 않으면 다행인 상태다.
“…….”
이 자리에서 널리 공론화를 하기에는 상황이 좋지 않다. 그래. 조용히 돌아가서 <던전관리청>이든 어디든 신고할 방법을 찾아보자.
나는 입에 대지 않은 커피와 디저트가 놓인 쟁반을 퇴식구에 두고 돌아가려 했다.
그러나 매의 눈으로 매장을 살피던 직원이 음식이 줄지 않은 쟁반을 보고 가까이 다가왔다.
“고객님, 메뉴가 입에 맞지 않으셨나요?”
“그런 건 아니에요.”
여기서 눈에 띄면 곤란하다. 최대한 조용히 나가기 위해 나는 애매한 웃음과 함께 고개를 저었다.
“고객님께 만족을 드리지 못한 점 송구합니다.”
꾸벅, 직원이 고개를 숙였다.
“입맛에 맞지 않으셨다면 무료로 다른 메뉴로 변경해 드리겠습니다.”
“아니에요. 벌써 배가 불러서, 하하.”
부담스럽다. 엄청나게 부담스럽다.
직원에게는 음료에 불만족한 손님을 그냥 놓칠 수 없다는 열의가 느껴졌다.
이 직원은 음료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은 모르는 걸까? 선의로 이루어진 과잉 친절은 거절하기도 고된 일이었다.
“그러시다면 쿠폰을 발행해 드리겠습니다. 마음이 편하신 때 재방문해 주시면 꼭 고객님께 만족스러운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아니, 이제 다시 올 생각은 없다.
쿠폰 안 줘도 괜찮다고 직원을 만류하려던 찰나였다.
어, 방금 뭐지?
“고객님, 여기 쿠폰……. 고객님?”
직원이 쿠폰을 가지러 스태프 룸을 향한 사이, 문틈으로 잠깐 보인 광경이 눈길을 잡아 끌었다.
나는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아스, 방금 봤어?’
‘……응.’
뒷문을 통해 어떤 남자가 들어왔고, 직원들이 정중하게 맞이했다.
이렇게만 말하면 특별히 이상한 부분이 없다.
그런데 그 사람의 옷차림이 굉장히 특이했다. 몸 전체를 감싸는 하얗고 긴 옷에 독특한 모자를 썼다. 꼭 무슨 종교인 같은 차림이다.
하지만 저런 옷을 입는 종교는 없을 텐데.
가만, 종교?
그동안 별일이 없어서 잊었는데, 이상한 사이비 종교맨을 만난 적이 있지 않았던가.
나는 직원에게 들으란 듯이 말을 꺼냈다.
“아스, 나 잠깐 화장실.”
“뭐?”
아스는 잠시 당황했지만, 내 뜻을 알아차리고 곧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난 그럼 저기서 기다리고 있을게.”
“고객님, 화장실은 저쪽입니다.”
철저한 서비스 정신을 갖춘 직원이 화장실 위치를 알려 주었다. 나는 직원이 가르쳐 준 방향으로 걷다가, 화장실 앞 아무도 없는 복도에서 시스템 창을 열었다.
이제껏 얻은 스킬이 주르륵 떴다. 그중 내가 사용한 스킬은 바로 이것이다.
‘커피 한 잔의 인연.’
[커피 한 잔의 인연(B)
상세: (Lv.1) 궁극의 커피를 마신 상대의 스킬을 복사할 수 있다. (00:05:00)
쿨 타임: 24:00:00
사용 가능 대상: 최이찬, 김태운]
그 중 김태운, 즉 기자 아저씨를 선택했다.
설마 이 스킬을 쓸 날이 올 줄은 몰랐다.
[파파라치 (E)
(Lv.1) 일정 시간 동안 들키지 않고 대상을 미행할 수 있다. (01:00:00)]
“……됐다.”
나는 화장실 앞에서 몸을 틀어, 방금 이상한 옷차림을 한 남자를 본 곳으로 향했다.
스킬의 효과 덕분에 아무도 나를 의심하지 않았고, 나는 곧 그를 찾을 수 있었다. 슬쩍 얼굴을 봤는데 전에 만난 사이비 종교맨과는 다른 사람이었다.
그때, 이 카페 매니저가 남자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나는 벽에 몸을 바짝 붙인 뒤 말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귀한 물건이니 조심해서 다루게.”
“네,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이상한 옷차림의 남자가 황금빛 액체가 든 유리병을 건넸다.
저거다. 저 수상한 액체가 커피의 비밀이 틀림없었다.
조금만 더 가까이 가면 뭔지 알 수 있을 것 같은데. 반경 3m 이상 거리를 둬야 파파라치 스킬의 효과가 적용되어서 다가갈 수가 없었다.
‘……! 이동한다.’
남자는 스태프 룸의 안쪽, 너무나도 수상한 분위기의 비밀 문을 향했다.
황급히 뒤를 쫓았지만 눈앞에서 비밀 문이 닫혔다. 겉에 개폐 장치는 보이지 않았고, 밀고 당겨도 꿈쩍도 안 했다.
……놓쳐 버렸다.
닫힌 문에는 이 카페를 운영하는 회사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성혜(星慧)기업>.
제작계 길드로 시작해서 카페 산업에 진출했다고 하던데, 지금은 너무나도 수상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 아래에는 독특한 별 모양 마크.
[에테르-위키에 ‘별의 지혜 교단’ 항목이 추가되었습니다.]
“……!”
별 모양 마크를 발견하는 순간 기다렸다는 듯 시스템 알림이 울렸다. 나는 당장 이 항목을 확인해 보기로 했다.
‘에테르-위키.’
[자격을 확인 중입니다. ……완료.]
[적격자: 권리을 확인…….]
‘건너뛰기.’
주르르 뜨는 문자열을 스킵하고 항목을 열었다. 내용은 간단했다.
《별의 지혜 교단》
종류: 종교>단체
설명: 혼돈을 숭배하는 종교 집단. 약 10년 전 명맥이 끊어졌으나 다시 부활.
※ 더 상세한 정보는 해금이 필요합니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 * *
“어떻게 할 거야?”
아스가 내게 물었다.
차가운 바람이 뺨을 두들겼다.
아스와 나는 그대로 <슈퍼 버프 커피>를 나온 참이었다. 방금 본 광경이 너무도 찜찜했지만, 당장은 가만히 빠져나오는 것이 최선이었다.
어떻게 해야 할까.
누구 이 상황에 대해 상담할 만한 사람이 없을까. ……아.
나는 지도 앱을 켜서 길을 찾았다. 여기서 걸어갈 수 있을 만큼 거리가 가깝다.
“아스, 잠깐 다른 데 들렸다 가자.”
“알았어. 어딘데?”
나는 <청라 길드>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