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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화 (122/192)

122화

약 5분 정도 걸으니 곧 <청라 길드>의 건물이 보였다.

소수정예 길드답게 건물의 규모는 그리 크지 않다. 그러나 본관과 별관 두 개로 나누어진 건물의 훤칠한 입구는 이 번쩍번쩍한 거리 내에서도 존재감이 상당했다.

“여기야?”

“응.”

아스와 함께 나는 <청라 길드>의 본관 입구로 들어갔다. 깔끔하게 꾸며진 현관의 정면에 접수대가 있었다. 먼저 접수대의 직원에게 방문 목적을 밝히고 안내를 받으려 했다.

“안녕하세요. 저…… 으앗?!”

하지만 나는 말을 다 끝내지 못했다.

“언니, 안녕하세요!”

퍽!

허리에 강렬한 충격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안쪽에서 주신희가 달려와 와락, 하고 내게 안겼다. 제법 묵직한 일격이다. 쌍둥이 동생인 주신우도 함께였다.

“언니, 여긴 어쩐 일이에요? 오는 줄 알았으면 마중 나갔을 건데!”

“아하하, 안녕. 오랜만이네. 잘 지냈어?”

“안녕하세요, 누나.”

주신우가 수줍게 인사를 더했다.

“어? 김아스도 왔네? 나도 언니랑 놀러 가고 싶었는데!”

“나도, 나도.”

쌍둥이가 나와 아스를 둘러싸고 빙글빙글 돌았다. 빠른 동작에 머리가 어지러웠다.

“언니, 우리 길드 안내해 드릴까요? 간식 먹을래요?”

빙글빙글 돌기를 멈춘 주신희가 팔짱을 끼고 나를 안으로 끌어당겼다. 그러자 이번에는 주신우가 반대쪽에서 내 팔을 잡아당겼다.

“이 멍청아! 네가 그러니까 누나가 곤란해하시잖아.”

“아하하, 곤란한 건 아닌데…….”

환대는 고맙지만, 내 몸이 하나라는 걸 기억해 주면 좋겠구나, 얘들아.

“이 멍청아! 괜찮다고 하시잖아! 나는 언니랑 진짜 친하거든?”

“이 멍청아! 나도 친하거든?”

해가 바뀌었지만 쌍둥이는 여전하구나. 활기찬 모습을 보니 안심된다. 앞으로도 이대로만, 회귀 전과 달리 활기차게 자라렴.

둘이서, 아니, 어느새 그 사이에 끼어 있는 아스를 포함해 셋이서 투닥거리다가 한참 뒤, 주신우가 물었다.

“그런데 오늘은 무슨 일로 오신 거예요?”

“응, 유현 씨를 좀 만나려고.”

“……!”

“……!”

쌍둥이가 놀란 표정으로 서로의 얼굴을 한번 쳐다본 다음 다시 나를 보았다. 눈이 엄청나게 빛난다. 아까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열렬한 기세로 둘이 딱 붙어 나를 집중 마크했다.

“잘 오셨어요! 이쪽으로 오세요, 언니. 제가 안내해 드릴게요.”

주신희는 내 손을 잡아끌었고, 주신우는 아스의 등을 밀었다. 우리는 그대로 쌍둥이에게 이끌려 위층으로 올라갔다.

계단을 통해 한 층 올라간 다음 별관으로 이어지는 긴 복도를 지나자 보안 게이트가 있었다.

쌍둥이가 보안 장치를 조작해 문을 열고 우리를 안내했다. 다른 인기척은 없는 것으로 보아 일반 길드원이나 직원은 들어올 수 없는 곳 같았다.

직접 우리를 길드장실 앞까지 데려다준 다음, 쌍둥이가 문을 가리켰다.

“누나, 저기, 저쪽 문이에요.”

그러더니.

“김아스, 너는 이쪽이야.”

“뭐?”

주신우가 아스의 등을 밀어 옆으로 방향을 틀었다.

“자, 우리랑 같이 놀자.”

“이거, 놔……!”

아스는 부루퉁한 표정으로 쌍둥이를 밀어 냈지만 2 대 1이라 버거워 보였다. 쌍둥이는 아스를 둘러싸고 재잘재잘 떠들었다.

“김아스, 우리 무기고 보여 줄게.”

“새로 만든 저주 말뚝 보고 싶지 않아?”

“……! 그건, 좀 보고 싶을지도.”

오. 아스가 호기심을 드러냈다.

“4성급 말뚝을 정화해서 불순물을 제거한 뒤 촘촘히 저주를 새겨 넣었어. 만드는 데 일주일이나 걸린 대작이라고! 아무리 고위급 마족이라도 한 방에 저주에 걸리게 할 수 있지.”

“호오. 제법 수준급의 기술을 구사하는군.”

주신우의 말에 아스가 눈을 빛냈다.

“그래. 너한테는 특별히 보여 줄게. 누나 방해하지 말고 우리랑 놀자.”

“……방해?”

“언니, 김아스랑 놀고 있을 테니까 편하게 이야기 나누세요. 편하게!”

“야, 이거 놓으라니깐.”

“이쪽이야, 이쪽. 저주 말뚝 보러 가자.”

“……알았어.”

순식간에 쌍둥이가 아스를 데리고 복도 반대편으로 사라졌다. 폭풍이 휘몰아친 것 같았다.

어쨌건.

‘사이가 좋아 보이니 다행이네…….’

그때 눈앞의 문이 열렸다.

“오셨군요. 얼른 들어오세요.”

기유현이었다. 나는 쌍둥이에게 붙잡혀 끌려가는 아스의 뒷모습을 흘깃 본 뒤, 방 안으로 들어갔다.

<청라 길드>의 길드장실.

테이블과 소파, 책상, 책장이 놓인 방은 단출한 분위기였다. 그다지 자주 사용하지 않는지 생활감은 없었다.

“앉으세요.”

기유현은 검은색 바지에 풀오버 니트 한 장을 걸친 편한 차림이었다. 베이지색 니트가 그에게 잘 어울렸다.

자리를 권한 뒤 그가 차를 타서 내 앞에 놓았다. 따뜻한 녹차였다. 나는 차를 한 모금 마신 뒤 주위를 둘러보고 말했다.

“유현 씨, 진짜 <청라> 길드장이었군요.”

“이제까지는 가짜 같았나요?”

“아하하, 그런 건 아닌데요. 그냥.”

“뭐, 실질적인 관리 업무는 한이성 헌터가 도맡아 하기는 합니다. 이 방은 잘 안 써요.”

그렇게 말한 기유현이 내 맞은편 자리에 앉았다. 오후의 햇빛이 그의 얼굴 위로 엷은 그림자를 드리웠다.

그는 내 말을 기다리며 차를 한 모금 마셨다. 조용하지만 거북하지 않은 침묵이 그와 나 사이에 부드럽게 자리 잡았다.

머리로야 그의 정체가 무원이고 <청라 길드>의 길드장이라는 사실을 이미 알았지만. 매번 카페에 훌쩍 왔다 가는 모습만 보다가 이곳에서 만나니까 어쩐지 어색한 기분이다.

그리고 나를 여기까지 들어오게 해 줄 줄은 몰랐다.

미리 연락을 했다고는 하나, 십여 분 전에 카톡으로 대화한 것이 전부다. 그런데 입구에서 아무런 검증 절차 없이 들어올 수 있었다.

기유현이 무원이자 <청라 길드>의 길드장이라는 것은 대외비일 텐데.

그만큼 내가 그에게 신뢰받고 있는 걸까.

길드의 사무실은 무척 공적인 장소이지만, 반대로 그의 내밀한 공간에 허락받은 기분이 든다. 고요가 뺨을 간지럽히는 느낌이다.

그러고 보니 불꽃놀이를 보러 간 이후 그와 단둘이서 만나는 것은 처음이다.

그동안 카페에서 일어난 이런저런 일 때문에 정신이 없었고, 그가 카페에 왔을 때는 늘 아스와 동물들이 함께 있었으니까.

불꽃놀이를 보러 갔을 때는 굉장히 분위기가 그랬지.

……아. 그날의 기유현을 떠올리니 귓불이 달아오르는 것이 느껴진다. 나는 찻물로 타는 목을 축이고 말을 꺼냈다.

“갑자기 만나자고 해서 미안해요.”

“아닙니다. 마침 길드에 있던 참이기도 하고. 특별한 용건이 없을 때도 얼마든지 놀러 오세요.”

생긋, 웃음과 호의를 머금은 눈동자가 나를 향했다.

“그래서, 리을 씨가 하실 말씀은 뭔가요?”

“조금 전에…… 아스랑 거기를 다녀왔거든요.”

“거기라뇨?”

나는 <슈퍼 버프 커피>에서 있었던 일을 기유현에게 이야기했다.

내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기유현의 표정은 어두워지다가 종내 완전히 얼어붙었다. 웃음기를 지워 낸 입술이 엷은 한숨을 뱉어 냈다.

“그래서 일단 유현 씨한테 상담하려고 연락했어요.”

기유현이 손끝으로 미간을 문지르고는 말했다.

“그런 곳에는 왜 간 건가요?”

“네? 궁금해서요.”

“위험하다는 생각은…… 안 하신 것 같군요. 전혀.”

“위험하다뇨. 그냥 카페잖아요.”

“그 수상한 남자의 뒤를 밟은 사실을 들켰으면 위험했겠죠.”

“…….”

이 남자가 나를 걱정한다는 건 그냥 봐도 알 수 있었다.

거기다 대고 차마 ‘안 들켰으니 괜찮다.’, ‘파파라치 스킬을 썼다.’ 같은 말을 할 수 없어서 나는 말없이 찻잔만 비웠다. 현미녹차 맛있네.

“그 카페에 대해서는 우리 쪽에서도 조사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 라는 건요?”

“<청라>에서요.”

“……왜요?”

나야 버프 커피를 파는 후발 주자 카페가 궁금해서 갔다가 이상한 걸 봤지만.

길드 차원에서 조사할 만한 다른 이유가 있었나?

“<성혜 기업>. 그 카페, <슈퍼 버프 커피>를 운영하는 본사 이름입니다.”

“아.”

<슈퍼 버프 커피>에서 이상한 옷차림을 한 남자가 들어간 비밀 문에도 그렇게 적혀 있었다.

“제작계 길드로 시작했다고 하는데 유의미한 이력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거짓이겠지요.”

“…….”

“<성혜 기업>은 별 성(星)에 슬기로울 혜(慧)를 씁니다. 노골적인 이름이에요.”

성혜(星慧)의 뜻을 풀어서 생각하자 금방 익숙한 이름이 튀어나왔다.

“별의 지혜 교단…….”

“네.”

아예 예상하지 못했던 일은 아니지만, 여기서 이 이름이 튀어나오다니 놀라웠다.

기유현의 과거, <슈퍼 버프 커피>, 미래에 마신을 부활시키려는 종교 단체가 하나라니.

대놓고 내가 흑막입니다, 하고 광고하는 꼴이다.

“그 카페에서 이런 마크를 봤어요.”

나는 비밀 문에서 본 별 모양 마크를 종이에 그려서 보여 주었다.

대답을 듣지 않고도 이 마크가 <별의 지혜 교단>의 상징임을 알 수 있었다. 기유현이 굳은 낯빛으로 종이를 노려보았기 때문이다.

“한 가지 의아한 점은 있습니다. 비밀 문이라고 하나 리을 씨가 접근할 수 있을 만큼 외부에 이런 증거를 남겨 놓다니. 꼭 과시하려는 것 같군요.”

“회귀 전에는 이런 일이 없었어요?”

“네. 전면에 나서지 않고 철저하게 뒤에서 움직이는 쪽이었어요.”

기유현이 표정 없는 얼굴로 생각에 잠겼다.

“…….”

“…….”

나 역시 가만히 생각했다.

회귀자 메리트 유통 기한이 너무 짧지 않나?

회귀하고 아직 반년도 지나지 않았는데 미래가 너무 많이 바뀌었다.

반년이면 아직, ‘아! 저거 회귀 전의 그거!’ 이런 순간이 있어야 하는 거 아닐까?

아무리 생각해도 미래가 엄청 바뀐 건 나 때문이 아니라 기유현 때문인 것 같다. 나는 F급이고 이 남자는 S급이잖아.

그동안 내가 바꾼 미래라고 해 보았자…….

카페를 차리고, 최이찬을 살리고, 최세드릭의 동생을 아프지 않게 하는 꽃을 살리고, 아스를 만나고, 크투가의 반지를 얻어서 크투가의 정원에 다녀왔고, 큰아버지가 귀환하고, 신비의 문으로 던전 안의 헌터들에게 직접 버프를…….

……많네?

나, 난가?

<슈퍼 버프 커피>도 우리 카페를 참고해서 만든 걸 테니까.

나인가 보다…….

회귀자 두 명이 회귀자 메리트 없는 고민에 빠지길 잠시.

기유현이 다시 입을 열었다.

“알려 주신 게 도움이 되는 정보인 건 사실이에요. 하지만 교단이 관계된 걸 안 이상 리을 씨가 걱정됩니다.”

“…….”

“우선 그곳 커피의 성분을 조사하겠습니다.”

“……네.”

제일 시급한 일은 그 커피의 정체를 파악하는 일이다.

“그리고 리을 씨의 카페를 베끼려 한 놈들은 반드시 처리할 테니, 이 건은 저에게 맡겨 주실 수 있을까요.”

진심이 담긴 말이었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직접 <슈퍼 버프 커피>를 더 조사할 방법도 없는 상황이다. 그의 말을 믿고 호의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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