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5화 (125/192)

125화

오서호는 환영술로 아예 다른 사람으로 변신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보통 사람은 의외로 자기 모습이 변하면 적응을 어려워한다고 한다. 단시간이면 몰라도 며칠씩 변신 상태면 주변에서 위화감을 느낄 위험이 있었다.

그 때문에 원래 내 모습에서 크게 바꾸지 않는 선에서 환영술을 걸었다고 한다.

설명을 들으니 이해는 가지만…….

역시 핑크색 머리카락에 초록색 눈동자는 너무 눈에 띈다. 옷차림도, 카페 아르바이트가 아니라 무대 위에 올라가야 할 것 같다.

나는 다시 거울을 본 뒤 떨떠름하게 물었다.

“너무 튀지 않아요?”

“아니요, 이 정도는 해야죠. 화려한 차림에 본래의 인상을 감추는 겁니다.”

나는 의심 어린 눈초리로 오서호를 보았다.

“당신 취향이 반영된 건 아닌가요?”

“역시 마이 베스트 프렌드! 금발도 어울릴 줄 알고 있었어! 그리고 핑크색, 환상적인 조합이에요!”

그럼 그렇지. 어쩐지 이 핑크색 머리를 강권한다 싶었다.

어쨌건 정체를 들키지 않는다는 본래의 목적에는 부합하니까, 이대로 가기로 했다.

슬슬 출발할 시각이었다. 나는 각오를 다지고 문을 향했다.

“아스, 나 갔다 올게. 미음이랑 라임이도 집 잘 지키고 있어.”

“……응.”

“왜옹!”

“뀨우!”

띠링. 문을 나서는 순간 시스템 알림이 울렸다.

[메인 퀘스트: 커피 스파이 대작전

미션 파서블!

수상한 카페에 잠입하기로 한 당신!

그러나 방해 요소가 한가득입니다. 과연 당신은 정체를 들키지 않고 커피의 비밀을 찾을 수 있을까요?

정체를 들키지 않기: (성공)

커피의 비밀을 발견하기: (미완료)

남은 시간: 7일

보상: 경험치(500exp), 랜덤 레시피, 에테르-위키 업데이트]

‘방해 요소가 한가득’이라는 말이 찜찜하게 느껴지지만.

아무튼 퀘스트의 시작이다.

* * *

권리을이 변장을 하고 짭가게에 잠입을 하려는 그때, 어느 먼 곳.

“읍, 커헉, 쿨럭!”

권석민이 눈을 떴다.

“으헉! 요즘 초월자들은 인정이 없다니까, 인정이. 이번에는 진짜 죽는 줄 알았네.”

권석민은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감옥처럼 생긴 작은 방. 지하인 듯했다.

마도서의 행방을 알아내지 못한 이상, 이온은 자신을 죽일 수 없다.

그렇게 확신하고 그는 일부러 잡혔다. 정신 지배에 대한 방비도 미리 했는데…….

“그냥 무식하게 때려서 기절시킬 줄은 몰랐네. 떼잉, 요즘 초월자들은 세련미가 없어, 세련미가. 에고고, 오십견 심해지면 어쩔 거야.”

부러 기운찬 목소리로 투덜거렸지만 들어 줄 사람이 없으니 허무하기만 했다.

“…….”

큰소리를 냈는데도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는다. 정말 가둬두기만 한 모양이다.

흐음. 또 무슨 짓을 벌이려고 이 아저씨는 뒷전일까.

우습기도 하지. 어차피 무슨 짓을 하건 이 세계의 결말은 달라지지 않을 텐데.

시계가 없어 정확한 날짜는 알 수 없지만 이미 크리스마스는 지났겠지.

착한 아이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을 주려고 했는데 늦어 버렸다.

“별수 없지. 대신 착한 아이에게 세벳돈을 주도록 할까.”

권석민은 아직까지 몸에 걸치고 있던 산타 의상을 벗어 바닥에 내던졌다. 그리고 몸을 일으켜 감옥 문의 잠금장치를 부수려 했다.

“으잉……?”

그런데 왼쪽 다리가 움직이지 않는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발목에 거대한 족쇄가 채워져 있었다. 힘을 주어 내려쳐 봤지만 풀리지 않는다. 잠금장치는 에테르를 사용해 작동하는 방식이었다.

“허어…….”

권석민은 탄식했다.

‘떼잉, 이럴 줄 알았으면 방 탈출 카페 가서 연습이라도 할 걸 그랬지.’

일단 이것부터 풀어야겠군.

* * *

나, 기유현, 오서호 이렇게 셋.

도무지 콘셉트가 통일되지 않은 각각의 화려한 차림으로 <슈퍼 버프 커피> 길드중앙동점을 향하던 길이었다.

툭.

맞은편에서 오던 사람을 미처 보지 못한 바람에 어깨가 부딪쳤다. 상대가 몸을 물리며 곧장 고개를 숙였다.

“으앗! 죄송합니다.”

“저야말로 죄송…… 어?”

마주 고개를 숙이다 깜짝 놀랐다. 나와 부딪친 상대가 최이찬이었기 때문이다.

“그럼.”

처음에 최이찬은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살짝 목례한 뒤 나를 지나쳐 길을 간다.

오. 신기하다. 내 얼굴을 잘 아는 최이찬도 알아보지 못하다니, 환영술이 진짜 효과가 있네.

그런데 최이찬은 몇 걸음 가다가 의아함을 느끼고 다시 돌아왔다.

“으음……. 아닌가?”

나를 보고 고개를 갸웃거린다.

돌아서서 몇 걸음 가다가 다시 멈춘다.

“……?”

뭐지. 자기 꼬리를 쫓아 빙빙 도는 개도 아니고. 몇 번이나 나를 보았다 고개를 돌렸다를 반복했다.

나는 오서호에게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못 알아본다면서요.’

‘저분이 눈썰미가 좋은 겁니다. S급이잖아요.’

저대로는 계속 내 주위를 빙빙 돌겠다. 최이찬이 일곱 번째 내 얼굴을 쳐다보았을 때, 내가 먼저 말했다.

“이찬아, 나 리을이야.”

“네? 무슨 말을……. 어? 진짜?”

“어, 진짜.”

“그 머리랑 옷은 어떻게 된 거야? 당장 메탈 밴드라도 할 것 같은데.”

“그건…….”

아르바이트 시간까지는 약간 여유가 있었다.

당분간 저녁에 연락이 어렵기도 한 만큼, 나는 기유현의 양해를 구하고 최이찬에게 간단하게 사정을 설명했다.

그러나 최이찬은 내 예상을 크게 벗어나는 반응을 보였다.

“그런 수상쩍은 곳에 저 수상쩍은 사람들이랑 같이 간다고?”

“유현 씨랑 오서호 헌터가 수상쩍지는 않지. 신원이 확실한 분들인데.”

“그런 뜻이 아니야.”

“이찬아.”

호의가 담기지 않은 시선이 내 옆에 선 남자를 향했다. 기유현이 쓴웃음을 짓는다.

바보라도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최이찬은 기유현을 경계하고 있다.

“유현 씨, 잠깐 이찬이랑 이야기 좀 할게요.”

나는 최이찬의 팔을 잡아 끌고 구석으로 향했다.

“이찬아, 너 왜 그래?”

“……위험할 것 같아서 그래.”

“괜찮아. 거기 그냥 시내에 있는 카페인 걸. 혼자 가는 것도 아니고.”

내 목적은 어디까지나 염탐. 퀘스트에서 요구하는 ‘커피의 비밀’을 찾는 것 이상으로 접근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최이찬은 여전히 불만 어린 표정이었다.

“네 말대로 그런 수상쩍은 놈들이 배후에 있다면, 무슨 일이 있을 줄 모르잖아.”

“거짓말하지 마. 너 유현 씨가 마음에 안 드는 거잖아.”

“그냥, 믿음이 안 가서 그래.”

옛날부터 최이찬은 거짓말을 참 못했다. 어쩌다 거짓말을 할 때면 눈이 흔들려서 바로 티가 났다.

바로 지금처럼.

“이찬아, 너 뭐 알고 있어?”

“…….”

고집스럽게 입을 꾹 다문다. 누가 봐도 아는 게 있는 사람의 반응이다.

최이찬도 S급이 된 지 꽤 시간이 흐른 만큼, 어디서 들은 정보라도 있는 걸까.

“아는 거 있으면 지금 이야기해. 들어 줄게.”

“그런 거, ……아니야.”

최이찬의 반응에 조금 속상했던 것도 같다.

나는 부루퉁한 표정을 감추지 않고 말했다.

“그래? 그럼 나도 마음대로 할게.”

“……! 리을아.”

“이찬아, 네가 나를 걱정해서 말리는 건 알아. 유현 씨가 마음에 안 드는 것도 너한텐 이유가 있겠지. 하지만 유현 씨는 나를 도와준 사람이고.”

“…….”

“무엇보다 내가 하고 싶어.”

문득 회귀 전의 일을 떠올렸다.

나는 딱히 회사 일에 열의가 있는 편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매일 늦게까지 일을 했다. 권지운과의 관계 등, 외면하고 싶은 문제를 외면하는 데 쏟아지는 일거리는 좋은 핑계가 되어 주었으니까.

진짜 문제에 등을 돌리고 열의 없이 회사나 다니다 사망. 그것이 내 어이없는 첫 번째 삶의 결말이다.

시스템 창에서 깜빡이는 퀘스트 알림을 잠시 바라보았다.

그런 첫 번째 삶에 비하면, 해결해야 하는 문제를 직시할 수 있는 지금은 얼마나 다행인가.

나는 가만히 그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내가 하고 싶어서 그래.”

“…….”

한참 만에 최이찬이 고개를 끄덕였다. 가볍게 손을 잡았다가 천천히 놓는다. 그가 내 뜻을 알아줬다는 생각에 기쁜 것도 잠시.

“그럼 나도 같이 갈게.”

“뭐? 그건…….”

“……정말 좋은 생각이군요!”

불쑥, 오서호가 고개를 들이밀었다.

“혹시 평소에 눈치 없다는 말 많이 안 들어요?”

“그래서 눈치 볼 필요가 없는 직업을 골랐습니다.”

“그러시구나…….”

“둘보다는 셋이 좋지요. S급이니 유사시 전력도 될 테고. 그쪽은 인력난이니 거절하지 않을 겁니다.”

그렇게 깔끔하게 지금 상황을 정리한 오서호가 딱, 하고 손가락을 튕겼다.

환영술이 최이찬의 모습을 변화시켰다.

그 모습을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흑발의 격투가.

검은 머리카락에 검은 눈. 뺨에는 긴 흉터가 새겨졌다. 같은 얼굴을 약간 험상궂게 바꾼 느낌이었다.

그런데 그 모습이…….

“오, 옷은 왜 찢는 건데요?!”

좀 야하다.

격투가 콘셉트에 맞추려 한 건지, 단단한 근육이 드러나는 옷차림이었다. 셔츠 소매를 찢어 놓은 탓에 팔 근육이 그대로 보였다.

“난 괜찮은데…….”

최이찬은 이렇게 말했지만.

저 건장한 체구를 그대로 드러내고 다니는 건 역시 시각적 자극이 너무 강하다.

나는 오서호에게 물었다.

“체형은 못 바꿔요?”

“제 환영술을 어떻게 보고. 물론 가능합니다. 하지만 환영술은 실체를 바꾸는 게 아니라 감각을 속이는 거예요.”

딱. 오서호가 손가락을 튕긴다. 다음 순간, 최이찬의 몸이 꼬챙이처럼 변했다.

“체형을 변화시킬 경우, 시전 대상자가 위화감을 느껴 동작이 어색해집니다. 한번 걸어 보세요.”

최이찬이 천천히 한 바퀴를 돌았다. 가늘어진 자신의 팔 다리가 어색한지 걸음이 영 어설펐다.

“으음. 확실히 저래서는 안 되겠네요.”

딱. 다시 손가락을 튕긴다. 최이찬이 원래의 체형으로 돌아왔다. 어째서인지 옷이 더 찢겨 더욱 적나라하게 근육이 드러났다.

“와우! 어울리네요. 과거 격투기 선수였으나 부상으로 그만두고 일자리를 찾는 콘셉트로 가죠.”

“……전 격투기 선수를 카페에서 왜 뽑아요?”

“인력난이니까요.”

적을 걱정할 처지는 아니긴 한데, 그 카페 괜찮은 건가?

“이름은 최이참으로 해 두겠습니다.”

“가명 너무 대충 지은 거 아니에요?”

“참고로 여러분은 기유헌, 권니은 씨입니다.”

“하아…….”

기유현, 아니, 기유헌 씨가 한숨을 쉬었다.

그렇게 해서…….

메탈 밴드를 좋아하는 분홍색 머리의 권니은.

인스타 인기 모델 같은 차림의 기유헌.

부상으로 그만둔 전 격투기 선수, 최이참.

통일성이라곤 느껴지지 않는 콘셉트를 한 구직자 세 명과 인솔자 한 명이 <슈퍼 버프 커피> 앞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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